Monday, June 15, 2015

상처받은 치유자 ─ 헨리 나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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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r own experience with loneliness, depression, and fear can become a gift for others, especially when we have received good care. As long as our wounds are open and bleeding, we scare others away. But after someone has carefully tended to our wounds, they no longer frighten us or others.
When we experience the healing presence of another person, we can discover our own gifts of healing. Then our wounds allow us to enter into a deep solidarity with our wounded brothers and sisters.

To enter into solidarity with a suffering person does not mean that we have to talk with that person about our own suffering. Speaking about our own pain is seldom helpful for someone who is in pain. A wounded healer is someone who can listen to a person in pain without having to speak about his or her own wounds. When we have lived through a painful depression, we can listen with great attentiveness and love to a depressed friend without mentioning our experience. Mostly it is better not to direct a suffering person’s attention to ourselves. We have to trust that our own bandaged wounds will allow us to listen to others with our whole beings. That is healing.”

- Henri Nouwen, The Wounded Healer, 1979


로움, 우울함 그리고 두려움을 통한 우리들만의 경험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재능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들이 잘 돌보아질 때 말이다. 우리의 상처가 들어나고 여전히 상처가 깊을 때는 우리는 오히려 다른 이들을 겁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우리의 상처가 아물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준다면 더이상 다른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치유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치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상처는 우리들이 다른 상처입은 형제 자매들과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통받고 있는 사람과 유대감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아픔에 대해 상대방에게 이야기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상처받은 치유자는 자신이 겪은 상처를 이야기할 필요없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고통스런 기분을 통해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을 언급하지 않아도 고통받는 상대방에게 매우 친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경우엔 고통받는 사람의 주의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치유받은 상처가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을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 헨리 나우엔, 상처받은 치유자, 1979




전 블로그에서 옮기다가 이 글은 언제 옮기나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냥 습관처럼 글을 옮기는 작업은 어렵지 않지만 이 글의 첫 문장을 볼때마다 왜이렇게 힘든지 글을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기억한다. 가족들은 있지만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기분, 친구들은 있지만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누구도 좋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 상처받고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치유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에게는 남들이 평생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은 힘든 시기가 있었다. 주관적인 평가를 떠나 병원에서 무엇인가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냥 힘들다. 치료의 과정도 아프지만 그 과정이 나만 겪고 있다는 외로움이 더 아프다. 아무리 주변에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속으로 더 커진다.

경험하지 못하면 그 아픔의 구체성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구체성을 알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이 겪은 상처를 이야기할 필요없이...' 우리는 그 상처와 아픔이 다가오는 그 알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그 상처의 공포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상처의 공포가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의 상처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우숩게 보고 아픔을 왜 이기지 못하냐고 말했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번의 병원 치료를 통해서 신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때마다 내가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다고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와 아픔의 원리를 알려주시려 한다고 합리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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