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19, 2014

인내없는 사회, 질문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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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국의 한 항공사 부사장이 일등석에서 승무원을 혼내고 결국 사무장을 JFK 뉴욕 공항에 내리게 했던 사건은 대한민국의 모든 뉴스를 흡수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Korea 라면 우선 North Korea 를 먼저 생각하는 외국 언론에서도 이번 사건은 비교적 비중있게 다루었던 것 같다.


갑의 횡포, 재벌 3세의 특권의식 등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과 언론이 이미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법적 문제를 일으켰다면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다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순조롭고 평온할 때보다 어렵고 곤란한 일에 처했을 때 대응하는 태도를 보아야 속마음을 알기 쉬운 편이다. 사건의 당사자인 부사장이 아닌 부사장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공식 사과문을 한번 살펴본다. 

1. 승객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비상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승무원을 하기시킨 점은 지나친 행동이었으며, 이로 인해 승객 분들께 불편을 끼쳐드려 사과 드립니다. 당시 항공기는 탑승교로부터 10미터도 이동하지 않은 상태로, 항공기 안전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2.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의 의무가 있습니다. 사무장을 하기시킨 이유는 최고 서비스와 안전을 추구해야 할 사무장이 1) 담당 부사장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다는 점 2) 매뉴얼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변명과 거짓으로 적당히 둘러댔다는 점을 들어 조 부사장이 사무장의 자질을 문제 삼았고, 기장이 하기 조치한 것입니다. 대한항공 전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습니다.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서비스와 기내식을 책임지고 있는 임원으로서 문제 제기 및 지적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습니다. 대한항공은 이번 일을 계기로 승무원 교육을 더욱 강화해 대 고객 서비스 및 안전 제고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결론은 더욱 더 승무원 교육을 강화해 고객 서비스 및 안전 제고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공분과 지적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여기에서 회사를 경영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 가졌으면 하는 아쉬운 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공기를 탑승하는 승객들 중 가장 큰 안전사고가 무엇일까? 대규모의 충돌이나 추락사고에 의한 사고야 그 규모가 크기 때문에 논외로 두고 항공기를 탑승하는 승객들의 생명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의외로 사소한 것들이다. 보통 우리가 사소하다... 란 표현을 쓸 때는 많은 경우 의, 식, 주에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많이 알려진 장기간 좁은 좌석에서 움직이지 않아 생길 수 있는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하지정맥류와 같이 장시간 좌석에 앉아 있어 생기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를 발생할 수 있는 요인은 역시 먹는 것이다. 특히 음식이나 특정 물질에 의한 아나필락시스 (anaphylaxis) 는 조심해야 한다. 아나필라시스는 특정 알레르기 항원에 의해 전신적 알레르기 반응이 단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호흡기, 소화기에 급격한 반응으로 생명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게 되어 사망에 이르기 쉽다. 


그런데 이런 아나필락시스의 원인이 되는 항원 물질 (식품) 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견과류이다. 견과류의 경우 그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중 어떤 물질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일 수 있다는 후보군은 있지만 그 마저도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가급적 이런 견과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도 경영자는 무엇을 변화해야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중견기업도 아닌 소위 재벌 기업의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서비스가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에 대해서 바로 즉각적인 반응과 지적을 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반응이 감정적 대응이 아닌 이성적이고 자신이 속한 기업을 위한 반응이었다면 견과류는 왜 고객의 의사를 물은 다음 원하는 경우 포장을 뜯어 그릇에 담아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했을 것이다. 즉, 항공사의 기내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 경영자라면 현재의 매뉴얼의 항목마다 "왜" 이런 서비스 매뉴얼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철학과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공부했어야 할 것이다.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경영자의 몫인가? 경영자는 오히려 매뉴얼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있다면 현실과 매뉴얼에는 어떤 차이가 있고 왜 매뉴얼이 아닌 현실대로 움직이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처음 이 사건을 듣고 들었던 생각은 아마도 견과류라는 특수성 때문에 고객의 의사를 묻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미국의 항공사의 경우 많은 경우 견과류 뿐만 아니라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식품 (먹고 남은 씨 혹은 특정 재료 포함) 에 대해서는 별도 포장을 한다. 기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중 승객의 안전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부사장이 이런 내용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매뉴얼은 말 그대로 사람이 사용하기에 편리한 지침일 뿐 절대 변경되서는 안되는 바이블이 아니다. 

이 사건을 통해 개인적으로 사회가 가지는 두가지의 결핍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싶었다. 첫번째는 인내 (patience) 의 결핍이고 두번째는 질문 (question) 의 결핍이다. 

인내의 결핍 

개인적으로 스스로 똑똑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 때, 그만큼 내가 내리는 결정은 항상 옳을 것이라는 심각한 착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즉, 내가 옳고 내가 이성적인데 내가 내리는 결정이 항상 옳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그런 성격을 가지고 대학을 포함한 사회를 통해서 살아가다 보니 내 결정 중 인내심이 부족한 즉흥적인 결정의 경우 내가 아무리 이성적이라고 해도 상당히 편향되고 감정적인 결정이라는 사실을 점점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내가 아무리 옳은 삶을 살았다고 해도 빠르게 정해지는 결정들은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정적 판단이고 결국 내 감정의 상태에 따라서 달라지는 불완전한 결정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당장 내 눈앞에서 무엇인가 결론이 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녀 사이에서 당장 확답을 얻어야 자신의 성질이 풀리는 경우이다. 상대방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장 결론이 내려지지 않고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어떤 과일도 햇볕에 익어가기 전에 과육은 쓴맛을 가진다. [ 인내는 기다림이 아닌 과정임을... ]

많은 경우 참지 못해 얻는 결과는 대부분 쓴맛을 가진 덜 익은 과일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참지 못하고 덜 익은 과일이라도 먹으려고 하는 것은 인내가 가지는 그 가치를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는 경험의 부족일 가능성이 많다. 은수저를 손에 쥐고 태어나 자라면서 원하는 것은 대부분 이룰 수 있는 사람에게 인내라는 가치는 불필요할지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서비스가 맘에 안들 때 그 순간을 참을 수 있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정에 의해 행동을 해도 마땅히 그것이 옳지 않은 행동일 수 있다고 충고해주기 보다는 그 감정에 휘둘려 난장판이 된 순간에도 누군가 뒷처리를 해주었다면 자신의 감정대로 행동했을 때 누가 피해를 볼 수 있는지 상대방은 어떤 기분인지 별로 배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잠시라도 인내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자신이 느껴야 하는 감정적 불쾌함이 매뉴얼의 문제인지 아니면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 승무원의 문제인지 한번 쯤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더욱 더 인내의 가치가 빛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높은 위치란 그만큼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인내가 작동하고 나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왜 자신이 감정적으로 불편한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근본적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즉, 본인이 불편한 것이 '매뉴얼대로 서비스하지 않는 승무원'이 마음에 안들어서인지, 아니면 '마침 매뉴얼대로 서비스하지 않은' 승무원이 마음에 안들어서인지, 포장뜯기 싫었던 자신의 귀찮은 마음때문인지, 이미 기분이 안 좋은 상태에서 때 마침 포장안 뜯고 서비스한 승무원이 마음에 안들어서인지 는 알 수 없지만 감정적으로 대응을 하고 나면 사실 그 이후 어떤 변명과 변론을 해도 궁색해진다. 

질문의 결핍 

특히 기내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는 임원이였다면 감정의 문제를 떠나 나에게 다가오는 불편이 사적인 내용인지 아니면 내가 담당하는 기내 서비스가 정말 문제인지 생각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 충분한 시간을 인내의 시간이라 표현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당장 나에게 다가오는 그 감정적 불쾌함과 내가 제대로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그 감정의 문제를 차분히 질문하는 것이 바로 변화를 만드는 경영자와 그렇지 않은 경영자의 차이가 아닐까? 


많은 경험은 없어도 기내 서비스를 책임지고 있는 임원의 입장에서 많은 질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왜 견과류는 승객의 의사를 물어봐야 하는 것일까?
만약 견과류가 아나필락시스와 같은 승객의 안전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포장을 뜯어 서비스하는 것이 안전할까? 아니면 포장된 상태에서 서비스하는 것이 더 안전할까
현재의 매뉴얼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현재의 매뉴얼 상태에서 더 안전한 서비스를 위해서는 어떤 선택이 좋을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사무장에게 '내릴 것을 권고(?)...' 한 순간 결과는 자신의 감정에 의한 상당히 즉흥적 결과가 되어버렸고 결국 경영자의 한사람으로 특히 자신이 책임지는 부분에 대한 많은 고민은 저 멀리 하늘 위로 날라가버렸다. 좀 더 현명한 경영인이라면 잠시의 감정은 참고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수많은 질문을 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질문들은 매뉴얼이 왜 필요하고 그 매뉴얼의 각 항목은 왜 만들어졌고 필요하다면 질문을 통해서 현재의 매뉴얼을 개선하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멋진 경영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문하지 않는 학생을 만들어 내는 교육은 질문하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세상의 잘못에도 질문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질문하지 않는 학생은 세상의 잘못이 가득한 세상에서 무관심하게 생존하며 살아가야 한다. [ 교육이 학생들에게 질문한다 ─ 교육의 역할에 대해서 ] 

가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몇개의 요소들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에서 놀랄 때가 있다. 즉, 몇가지 요소들이 결국 이 사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의 사건도 비슷하다. 인내없는 사회 그리고 질문없는 사회는 당장의 결과를 바라고 현재의 구조 안에서 빠른 결과물을 바라는 어른들의 욕심으로 이룩된 사회에서 교육받은 많은 사람들의 슬픔이 아닐까 싶다. 인내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더욱 더 감정에 치우치게 될 수 밖에 없다. 빠르게 결정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존에 영향을 받게 되고 옳은 결론보다는 빠른 결론을 바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많은 것을 심사숙고할 수 있는 시간보다는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게 된다. 

드라마 마르코 폴로 (Marco Polo) 에서 원나라 성종이 되는 테무르 칸이 마르코 폴로에게 전하는 대사 하나가 있다. 

Patience, patience to ensure that true aim finds the true target.
인내, 인내는 참된 목적이 참된 목표를 찾도록 해준다. 


경쟁 사회에서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교육에서는 무엇이 옳은지 보다 무엇이 맞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빠른 결정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결국 빠르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빠지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정을 전혀 하지 않은 체 자신의 감정적 행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빠른 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옳은 결정...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택을 위해 인내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또한 그 인내의 시간은 그저 기다림이 아니라 항상 질문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참된 인내는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차분히 제거하고 무엇이 본질인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를 통해 많은 질문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질문이 아닌 해답을 주는 정치인,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해답을 제시하는 지도자는 많은 경우 자신이 옳다는 가정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의 미덕이 없기 때문이다. 겸손은 단지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 영향력이 많은 인물이 겸손하지 않을 때 제시된 정답에 그저 따르는 집단과 제시된 정답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의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내하지 못하는 사회... 문하지 못하는 사회... 

우리가 그런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세상의 문제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의 희생자로 끊임없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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