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3, 2019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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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의 어느 명망 높은 추기경님께서 오래 전에 한 신학생을 성추행했다고 하여 고소되셨습니다. 성추행범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그렇듯 각계각층에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더 크게 소리내며 특집을 만듭니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 아닌 동정서원을 한 가톨릭 사제요, 명망 높은 추기경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추기경 자신은 하지도 않은 일이 세상 곳곳에 퍼져 사제로서의 신분은 물론 교회의 이름을 크게 실추시켰기에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악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한 후엔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담담하게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고, 악은 선 앞에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고통의 시간은 죽음과도 같았지만 추기경 자신은 이 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 그 죽음의 고독감을 함께함으로써 오히려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이의 욕망에 휘둘려 추기경을 고소했던 가련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와 화해의 은총도 받았습니다.

일생일대의 사건은 끝났지만 또 다른 어둠의 골짜기가 추기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췌장암' 진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를 죽음 안에 가둬두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암환자가 되어 죽음을 앞둔 이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한 사목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 ─ 《 평화의 선물 》



연히 알게 된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삶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테마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테마로 바꾸게 해준 성직자이다.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명망 높은 성직자의 고난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했다. 따로 글을 옮기기 보다는 양치기 신부님 이라는 필명으로 추기경님에 대해 쓴 글을 가져오는 것으로 저의 마음을 대신 합니다.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 양치기 신부님


요한 15장 1-8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우연히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님(1928-1996, 시카고 교구장 역임)의 영성일기 ‘평화의 선물’(바오로딸)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단 한 순간도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정도로 큰 감동이 제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230만 명 이상의 신자들, 1,800여명이나 되는 소속 사제들이 활동하는 시카고 교구의 교구장으로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던 추기경님께 1993년 11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추기경님께서 ‘성추행’이란 죄목으로 무고(誣告)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소장을 손에 받아든 추기경님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고소내용 역시 너무도 놀랍고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무죄한 추기경님이었기에 불확실한 소문을 무시하고 사목활동에 집중하려고 하셨으나, 당신의 가치관과 서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그 엄청난 고소 내용으로 인한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추기경께서는 당시의 고통스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나를 위해 허위 고소를 준비시켰단 말인가? 물론 예수님께서도 허위 고발 당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악몽은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CNN을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서는 경쟁하듯 이 고소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었고 흉흉한 소문들은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더욱 증폭되어만 갔습니다. 추기경님의 입장은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그토록 난감하고 혹독한 상황 속에서 추기경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진정 의연한 참목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먼저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청난 음모를 꾸민 사람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고, 자신만큼이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고소인은 에이즈 환자였던 스티븐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추기경님께는 힘든 삶을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던 한 마리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그 고소인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교회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사람, 에이즈와 그로 인한 외로움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극적으로 이루어진 고소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 무고 사건은 교회에 앙심을 품은 일단의 사람들의 음모와 스티븐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거짓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추기경님은 그를 그 자리에서 용서하고, 그와 함께 화해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리고 이윽고 고소인은 고소 취하를 통해 자신의 우매함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겨우 무고 사건이란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 추기경님에게 또 다른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췌장암이란 또 다른 십자가. 췌장암에 이은 간암으로 갖은 고생을 다하시던 추기경님께서 문병 온 친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병들 때까지 미루다가는 정작 기도하고 싶을 때는 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니까.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도하기 위해 마음을 모을 수가 없네. 신앙심을 잃어서가 아냐. 믿음은 그대로지만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 해도 힘들어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네. 건강할 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게.”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 달 전 추기경님의 모습입니다. 그간 받아온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이 재발되었지요. 담당의사는 길어야 1년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힘이 다하는 날까지 그들의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게는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 동안 남은 시간을 뜻 깊게 사용할 생각이며,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뜻 깊게 사용한다는 것은 남은 시간도 사제들과 교우들에게 봉사하는 나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거의 생애 막바지에 도달한 상황 속에서도 추기경님은 하루에 강연을 두 곳에서 하시면서도 암환자 사목을 계속하셨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12건 이상 전화 상담을 하셨고, 동료 암환자들에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쓰셨습니다. 아래의 추기경님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곤경에 처한 민중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병들었을 때, 도덕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억압적 사회구조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그들과 함께 어둠의 골짜기를 걸어가야만 비로소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췌장암과의 투쟁이란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했던 추기경님의 삶이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힘겨운 투병생활 가운데서도   끝까지 양떼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추기경님의 모습에서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 가시면서도 셀 수도 없이 많은 결실을 거둔 추기경님의 삶에서 참포도 나무이신 예수님의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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