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6, 2019

꽃에게서 배운다 ─ 자연의 섭리 그리고 인간의 배려에 대해서

Leave a Comment
운다라 말할 때 교육기관이나 지식이 많은 학자를 떠올리 쉽지만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은 사실 자연이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 providence 를 잘 따르는 대상은 오히려 인위적인 그래서 인간의 욕심이 반영되지 않는 진리를 선물해줄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동네 꽃집에서 만난 꽃집 아저씨(라지만 할아버지에 가까운) 를 만나고 꽃이 주는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은 꽃을 가볍게 바라본다. 아름답다는 가장 많은 수식어를 붙이지만 그 아름다움만큼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가장 기분좋은 선물이라고 받지만 가장 쉽게 버려지는 선물이 꽃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찬란한 꽃이 개화한 상태는 즐기지만 개화하지 않은 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시들어가는 꽃들 속에도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가장 미물처럼 보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가장 따르며 살아가려는 존재이기에 그들은 항상 순수하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그 짧은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가끔 꽃을 보면 자연의 섭리 그리고 만약 종교를 가졌다면 그 자연을 만든 창조주에게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원하는 소위 초자연적인 '기적'은 이미 꽃이라는 생명안에 살아 숨쉰다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다만 우리는 고개를 돌릴 뿐이다. 

용담초 Gentiana scabra , 한국자생꽃 중 하나

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린다.

─ 크리스티앙 보뱅, 인간 즐거움 [원문

국화 Chrysanthemum


국화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다. 한송이 꽃보다는 여러송이 작은 꽃들이 뭉쳐 있을 때 그 군집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꽃이다. 꽃집에서 국화를 고르면 국화는 정서에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구매욕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무엇에 좋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꽃은 무엇인가 나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떠돌 수 없는 꽃들이 나로 인해 세상을 구경하고 나는 꽃을 보아 기분이 좋아지고 기르는 과정 속에서 내가 주는 관심이 어떻게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대부분 화분을 공기정화를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잘 모르게 된다. 그리고 혹시나 어떤 식물은 인간에게 유해하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그런 식물은 보기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국화의 중앙 부위 관상화 부분과 주변부 설상화 색 조합이 다양하다

인간의 필요 욕구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꽃이지만 많은 이들이 별 거부감없이 좋아하는 꽃이 아마도 국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화 한다발 혹은 한움쿰 데려 오면 국화는 별 문제없이 잘 자란다. 잘 시들지도 않고 일부 시들어도 대부분이 활짝 피어 있으면 보기도 좋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많은 국화들은 꽃들은 생생해도 아래 줄기부터 시들어 말라버리기 시작한다. 한 줄기에서 자라 나온 꽃들은 생생하게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더 활짝 피어 화사로운 향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 아래 줄기에 붙은 잎들은 정말 시커멓게 말라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마른 잎들만 잘 뜯어내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계속 자란다. 신기하다. 한 줄기에서 나온 부분인데 꽃은 생생하게 살아있어도 잎들은 말라버린다. 같은 줄기를 가지고 있고 잎들이 말랐다면 줄기에서 물을 끌어올리지 못했나 싶지만 꽃은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것은 어쩌면 꽃을 살리기 위해서 잎들은 스스로 말라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산뜻한 연두색과 노란색의 조합

생명시스템 안에는 아포토시스 apoptosis 세포사멸이라는 과정이 있다. 한 세포가 계속해서 증식하지 않고 새로운 세포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멸하는 것이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세포 분열을 일정 회수를 하면 세포가 더이상 분열할 수 없는 현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자신만 살겠다고 계속 분열하게 되면 세포가 원래 해야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체 자리만 차지하는 세포들이 된다. 그런 세포를 우리는 암세포라고 부른다. [세포의 죽음 - 죽어야 산다] 식물에도 암세포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세포생명학 cell biology 은 식물도 암세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세포의 무한 증식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로 감염에 의한 작용이 많고 그렇게 암세포를 가진 식물들은 확산되는 전파가 약하기 때문에 거의 없다고 해도 된다. 세포사멸의 과정과 비교하기는 다른 규모이지만 꽃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사멸하는 잎들을 보면서 때로는 국화 꽃들이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국화 잎들이 스스로 말라 죽어 만든 희생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것을 바라본다면 국화꽃의 오랜 아름다움이 한없이 기쁘기도 어렵다.


하나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아름다움이 만든 많은 조건들과 희생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아름다움을 본다면 그 아름다움 안에는 어떤 희생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 같다.

설유화 Spiraea thunbergii


설유화를 처음 만난 것은 결혼식장에서 누군가의 부케에 꼽혀 있던 작은 가지였다. 화려한 꽃들 속에서 작은 가지와 작은 잎들로 제대로 꽃 하나 없는 상태였다. 부케를 해체하고 각자 맘에 드는 화려한 꽃들을 한송이 두송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나도 화려한 꽃 몇송이 가져가고 싶었지만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설유화란 이름을 가진 가지였다.

설유화 가지

뿌리도 없는 가지가 잘 자랄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그래도 희망하며 물에 넣어 주었다. 몇일이 지나 설유화에 있던 잎들은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녹색의 잎들은 몇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버려야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몇개 남은 잎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물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기대하지 못한 기적들은 그때부터였다. 새로운 잎들이 가지 사이사이에서 자라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녹색의 줄기가 옆으로 자라나고 있던 것이다. 더이상 희망이 없을 것만 같았고 그리고 한번 모든 잎들이 떨어져 앙상한 그 가지에서 내가 준 것은 물밖에 없는데 가지를 만들고 잎을 만들어 내고 있던 것이다. 새로 자라는 잎들과 가지들도 신기했지만 작은 가지 끝에는 눈송이같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거의 모든 잎들이 떨어지고 작은 잎들이 나온다

그렇게 오랜동안 잎들은 녹색에서 노랗게 변해 떨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 자라나고 작은 꽃들도 몇번 피어났지만 곧 검게 시들기를 반복했다. 우연히 만나 처음의 모든 실망감 속에서도 심지어 잘 자라주기 바라는 마음조차 없었던 설유화 가지에서 피어나는 녹색의 가지와 힌 꽃은 생명이란 누군가의 관심을 벗어나 자라려고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주고 그렇게 그 상처의 고통은 통증이 아니라도 살아가야 하는 의욕을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희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명은 자라나고 살아간다.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는 어느 날 이렇게 큰 생명체인 나는 얼마나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지 오히려 부끄러워질 뿐이다.

새로운 잎들이 자라고 가지가 옆으로 생긴 설유화

보면서 매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에서 김혜자 선생님의 대사는 이러했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것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드라마 「눈이 부시게」 마지막회 중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가장 힘들다. 하나의 작은 생명들 모두 "살 가치가 있습니다" 라는 말이 주는 위로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피어나는 작은 설유화 꽃처럼 한 순간에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그 설유화를 향해 나도 모르게 말했다. "대견하다. 고맙다."

두번째 잎들이 떨어지고 작은 흰꽃이 피어났다

삶은 아주 별것 아닌 위로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별것 아닌 상처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야 작은 꽃이라도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히려 다시 살아가며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게 된다.

스토크 Hoary stock


스토크를 만난 적이 있는 이들은 공감각으로 스토크 꽃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모양만 보아도 그 향기가 기억될만큼 꽃향기로 풍성한 꽃이다. 스토크는 꽃도 풍성하게 잘 나오기 때문에 굵은 줄기에서 나온 한 줄기만으로도 가득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향기로운 스토크는 물에 넣어 두면 물이 금방 혼탁해지고 마치 줄기가 녹아버린다. 녹는다는 표현을 가장 정확할 정도로 물에 담긴 줄기는 데친 아스파라거스처럼 흐늘해지고 무엇보다 녹색으로 짙어지는 물에서는 스토크가 가지는 꽃향기와 비교되는 묘한 냄새가 난다. 마치 정원을 모두 밀어버리고 거기에서 나온 식물들을 우물에 넣은지 일주일은 된 것 같은 냄새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토크의 향기에 반했다가 조금만 지나면 나는 악취때문에 꽃이 아직 시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장 색이 짙은 느낌의 핑크 스토크

"나는 식물을 못길러요."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설유화의 꽃처럼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살아가려는 존재이고 작은 관심으로도 그 생명의 시간은 차이가 난다. 스토크는 물에 넣고 이틀이면 빠르게 줄기가 녹는다. 그리고 그렇게 녹은 부위에서는 제대로 물을 끌어올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스토크같은 줄기를 가진 식물들은 처음에는 줄기가 조금만 잠기게 놓고 잠긴 부위가 녹아들때는 다시 꺼내 잘라주어 다시 단단한 줄기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스토크 같이 줄기가 녹는 꽃들인 라넌큘러스나 거베라는 꽃으로 만나서 그렇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을 보면 물에 담겨 있는 존재가 아니다. 반면 그냥 보아도 튼튼한 방수 체질같은 국화나 장미를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장미는 물에 많이 잠겨도 잘 자라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원래 어떤 존재인지 알고 그에 맞게 맞춰주지 않고 똑같은 방법으로 대할 때 누구는 쉽게 사라지고 누구는 잘 자랄 수 있게 된다. 꽃집에 가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가요." 혹은 "관리 잘 안해줘도 되어요."라고 하지만 각자 가진 특징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가장 귀찮은 상태에서 손쉽게 죽지 않는 강한 꽃들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사람들의 강한 선호 preference 는 다양한 대상의 특징을 생각하고 싶지않다는 폭력일 때가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만나 서로의 특징을 알려고 하고 그 특징에 따라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야지 모든 꽃들을 장미다루듯 스토크 줄기를 물에 깊게 담궈두고는 냄새난다고 스토크를 향해 싫어한다면 그것이 스토크의 잘못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보라색 스토크

교육도 비슷하다. 획일화 된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창의력이나 학습능력의 저하와 같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 획일화에 맞지 않는 특징을 가진 이들은 항상 소외되고 심지어는 제거되어도 그들의 특징때문이라고 말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이 아무리 다양해도 일부 꽃들만 집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들은 꽃 그대로의 존재로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해 꽃이 필요한 것 뿐이다. 간단하게 우리가 지구에 사는 꽃이고 지구를 가꾸는 어떤 정원사가 있다고 했을 때 우리들이 정원사의 마음에 드는 특징을 가지고 나올 가능성보다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저 필요없는 잡초가 될 뿐이다. 스토크의 특징을 잘 알고 잘 길러주면 오랫동안 기분좋은 꽃이다. 피어날때의 향기도 오래가고 꽃이 시들어도 크게 색이 변하지 않고 마르기 시작할 때 꽃잎만 잘라주어 말려주어도 스토크의 향기가 오랫동안 남아 있어 모아두어 옷장에 넣어두면 꽃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말린 꽃을 글리세린과 알콜을 적당하게 섞어서 스토크 마른 꽃들을 넣어두면 화장실에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맨드라미 Cockscomb & 꿩의비름 Hylotelephium erythrostictum


맨드라미가 불꽃같은 모습으로 보였을 때 한 줄기를 데려온 적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열정이 느껴지는 불꽃같은 느낌이라 좋아하지만 꽃이라는 느낌보다는 갈대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큰 한줄기에서 작은 줄기를 잘라서 여러 개의 꽃병에 나누어 담고는 가장 큰 줄기는 버리기 위해 한 곳에 남겨 두었다. 그리고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몇일 후 맨드라미를 둔 카페에 다시 갔는데 시험관 모양의 꽃병에 내가 버린 그 맨드라미 줄기가 담겨 있던 것이다.

"아니 이걸 왜 버리지 않으셨어요?"

꽃에 대한 애정 (죽이지 말아야지 하는) 은 있지만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던 카페 사장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냥 있길래 아직 죽지 않은 것 아니였나요?"

그런데 그 순간 너무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꽃 하나 있지 않던 맨드라미 줄기는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줄기의 잘린 부분 옆으로 작은 잎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미리 버렸다면 그리고 사장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쓰레기통에 들어갔다면 볼 수 없을 장면이다. 순간 그 맨드라미 줄기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생각해보면 줄기도 생명인데 그저 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버릴려고 했기 때문이다. 꽃을 좋아하지만 꽃만을 좋아한 것은 아닌가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비롭게 그 맨드라미에서는 붉은 꽃 몇개가 나왔고 다른 맨드라미보다 더 오래 자랐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는 맨드라미는 붉은색을 떠올리는 식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줄기의 색과 신비롭게 나온 힌 뿌리의 색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맨드라미 Celosia cristata

그래서 가끔 처음보는 식물들을 볼때 맨드라미 같은 줄기는 아닐까 살핀다. 그런 꽃들은 잘 자라면 뿌리가 내릴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에 부응했던 꽃이 뀡의비름 꽃집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불로초이다. 아직 개화하지 않은 꽃들은 연두색으로 꽃이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면 별모양의 작은 꽃들이 한순간에 개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게 그냥 한 자리를 조용히 차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색의 변화도 별로 많지 않고 꽃이 마르고 시들어도 조용히 작은 꽃들만 떨어질 뿐 그리 큰 변화가 없다. 무엇보다 물만 잘주고 빛만 적당히 허락해주면 꽃잎들도 변색없이 오래동안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맨드라미 줄기와 같은 강인한 줄기에서는 조금씩 뿌리가 내려온다. 처음에는 이 꽃을 불로초라 불렀을까 궁금했지만 이제는 정말 죽지않고 살아가는 꽃이 아닐까 싶은 의심까지 든다. 그리고 맨드라미도 불로초도 그렇지만 뿌리가 잘 내리고 살아가는 꽃들은 장수하는 비율이 높다. 앞서 언급한 설유화도 가지 굵기만 충분하다면 뿌리를 내린다. 그러나 나무가지보다는 맨드라미나 불로초와 같이 단단하고 연두색을 가진 줄기들은 뿌리를 확 내리고 강인하게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꿩의비름 Hylotelephium erythrostictum

우연히 안목없는 것 같은 카페 사장님의 선택을 받은 꽃없는 맨드라미 줄기를 보면서 꽃이 없어도 줄기만 있다면 두번째 기회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뭘 좀 좋아한다고 뭘 좀 안다고 함부로 버릴려고 했던 내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꽃들이 사라진 줄기들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살려고 하는 그 강한 의지에 불구하고 내가 기회를 없애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르 레브 Le Rêve & 페루백합 Alstroemeria


백합의 개화를 지켜보면 수학의 기하학이 떠오른다. 안 꽃잎과 바깥 꽃잎이 조화롭게 더 정확하게는 안쪽 3개의 꽃잎들이 뭉쳐 있으면 바깥 꽃잎은 안쪽 꽃잎의 반을 걸쳐서 피어난다. 그래서 안쪽 꽃잎들은 120도를 이루어 있고 바깥 꽃잎들은 60도 정도 돌아가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백합의 꽃잎이 몇개인지 물어보면 머리 속에서 개화하는 모습이 떠오르며 쉽게 6개라 대답할 수 있다. 백합은 힌백 [白] 을 생각해서 힌 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백합의 백은 100 [百] 을 뜻한다. 알뿌리의 모양이 겹겹히 쌓인 모습에서 유래된 명칭이고 나리꽃이라고 불리운다. 그래서 나리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꽃들이 가진 각자의 고유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다양한 핑크의 아름다움을 가진 부활절 나리꽃 Easter lily 인 르 레브 Le Rêve 가 있다. 힌색의 시베리아 Siberian lily 도 비슷하지만 르 레브 한 송이를 밤새 놔두면 아침이면 공간 전체가 꽃향기로 가득하다.

흰 나리꽃 백합 Siberian Lily 

많은 이들은 반려 동물들이 좋은 점으로 들어오면 반겨주는 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르 레브 한송이가 만드는 향기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반려 동물 뿐만 아니라 꽃도 반겨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꽃 향기의 특징은 자신의 향기를 위해 다른 향기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공적인 향이 나는 향초나 향수 같은 경우에는 그 향기 때문에 다른 향기들을 몰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화로운 향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꽃 향기는 신비롭다. 강한 향기를 가지는 꽃들이라고 해도 각자의 향의 영역이 있고 자신의 향때문에 다른 향을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화로운 그리고 공간의 구조에 따라서 향이 가지는 특징도 달라진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향을 가진 꽃들이 있고 수평으로 퍼지는 향을 가진 꽃들이 있다. 르 네브와 같은 꽃들은 수평으로 올라가는 향이 강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 들어나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밤동안에 수평으로 올라간 향들은 순환하며 넓은 범위까지 향을 전파한다.

르 레브 Le Rêve

과학적으로도 꽃들이 가지는 향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적 향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향이란 결국 인간의 코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은 주로 향을 내는 물질의 확산 그리고 공기 속에서의 농도 더 정확히 말하면 공기안에서 얼마나 농도를 가지는 분압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화학물질의 분압은 확산하기 유리한 단순 분자이기 때문에 다른 향을 몰아내거나 분압을 줄이지만 꽃향기는 대체로 분자량이 큰 형태이기 때문에 분압도 적당하게 유지하면서 향기를 유지한다. 그래서 다른 향을 방해하지 않고 고유의 향을 낸다.

잎들의 기하학적 구조를 보면 꽃잎의 구조를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향이 강한 백합, 나리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만나 그 매력에 푹 빠진 꽃이 바로 페루백합 보통은 알스트로에메리아 라고 부르는 꽃이다. 꽃시장을 가면 알스트로에메리아 색은 다양하다. 실제로 야생형태로 있는 꽃 모양은 계속 발견되고 있고 그 중 상품으로 팔기 좋은 꽃들만 주로 해서 30여가지가 있다고 한다. 알스트로에메리아는 페루백합 Lily of the Incas 잉카의나리꽃이라 불린다. 작은 꽃들이 국화처럼 모여 있지만 꽃 하나씩 보면 나리꽃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꽃잎도 6개이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꽃잎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서 무늬가 다르다. 그래서 백합에 누군가 위 아래를 구별하기 위해 표시한 것 같은 느낌이다.

페루백합 알스트로에메리아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 cosmos 의 이름을 그대로 가진 꽃인 코스모스보다 개인적으로 나리꽃 종류가 우주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꽃이란 생각이 든다. 향기부터 개화하는 꽃잎의 조화로움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나는 강인한 수술들은 생명력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꽃잎 하나에 무늬마저도 어떻게 저 꽃들은 중력을 더 잘 알고 기하학을 이해하는 자연과학자 같은 꽃이다. 알스트로에메리아를 끝까지 살게 하면 꽃들이 떨어지고 처음에는 볼 수 없던 굵은 씨방이 생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꽃에서 끝나버리는 꽃들과는 달리 나리꽃 백합류의 꽃들은 신비로운 규칙을 가진 꽃들이라 좋다.


거베라 Transvaal daisy 


거베라도 오랫동안 같이 하기 힘든 꽃이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데려오면 쉽게 꺾어지고 줄기가 쉽게 녹는 것 같은 느낌이라 데리고 올때마다 걱정이 먼저 앞서는 꽃이다. 그러나 거베라는 참 매력적인 꽃이다. 많은 사람들은 처음 접할 때 종이로 만든 조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이 거베라의 꽃잎은 잘 가위질한 종이같기도 하고 그 색이 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파스텔톤이기 때문이다.

삼색의 거베라

우연히 꽃상자로 선물받은 분께서 시들어가는 꽃을 처리하기 위해서 버리시는데 종류별로 뽑아서 가져갔다. 짧아진 줄기가 아쉽긴 했지만 잘 묶어주고 꽃병에 잘 세워주었다. 그리고 그 거베라는 거의 한달 가까이 잘 지켜주었다. 그런데 그 전에는 보지 못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거베라는 안쪽에서 작은 꽃들이 몽글몽글 자라나는 것이다. 자세히 확대해서 보면 작은 꽃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안쪽으로 어두운 꽃의 중심은 거베라의 작은 꽃들로 점점 화사해진다. 그렇게 시간을 가지고 잘 자라면 거베라 한송이는 인구가 증가하는 지구같은 모습으로 점점 자신의 색을 찾아서 변화해 간다.

거베라 A & B

매번 금방 시들어버리는 거베라를 바라보면서 나와 거베라는 성격이 맞지 않는구나 혹은 나에게는 꽃집에서는 좋은 거베라는 주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꽃상자에 꼽혀 있던 줄기가 짧은 거베라들을 모아서 보면서 알게 된 점은 거베라의 줄기를 꽃병에 닿도록 두면 그렇게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쉽게 꺾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꽃병에 닫지 않게 잘 묶어주어서 여유 공간은 종이로 둘러쌓서 거베라의 줄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더 정확하게는 거베라의 줄기 중 한 부분이 힘을 더 받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볼 수 있던 거베라의 경험으로 그 이후에는 거베라는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꽃상자에서 버려진 거베라들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거베라들

보통 인간 관계에서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이에게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면 대부분 자신의 탓을 하다가도 혹시나 다른이에게 그 문제의 원인이 있지 않을까 원망하게 될 때가 많다. 사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도 너무 많은 자기 탓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줄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남탓은 중요하다고 한다. 가끔 무엇인가 안될 때 존재의 문제로 탓할 때가 있다. 거베라처럼 '나는 거베라랑 맞지 않아'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베라는 내가 어떻게 해도 잘 자라지 못할 꽃이라고 한동안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거베라가 주는 매력은 항상 매번 이번에는... 이라는 희망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거베라가 잘 자라고 심지어 작은 꽃들이 만들어내는 그 마법같은 생명력을 느끼게 되었다.

위 거베라 B 가 한달가까이 지난 모습

몇번의 시도로 쉽게 결론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인 것처럼 쉽게 편견으로 만들고 그 편견은 결국 새로운 매력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모르고 살아도 별 문제는 없지만 짧은 인생 속에서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거베라가 참 좋아졌다. 그리고 그동안 빨리 보내야 했던 많은 거베라들이 생각났다. 이제는 데려오면 잘 기를 자신이 생긴 꽃이지만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들 그 무엇보다 좀더 세심하게 다루지 못하고 좀더 잘 알아주지 못했던 나의 무관심에 있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탓을 하는 것은 좋지 못할지 몰라도 그 탓을 떠나 원인이 무엇일까 알아보는 것은 이후의 같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수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신비를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생명은 항상 이로움이 있다. 


하나의 믿음처럼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가끔 보이는 바퀴벌레들에게도..?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지구의 생태계 차원 혹은 도시의 생태계를 위해서도 바퀴벌레는 어떤 이로움을 가지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 꽃의 향기에는 특유의 고유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거주하는 공간마다 항상 같은 꽃을 두고 그 꽃을 통해서 시각장애인들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후각적으로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엌에는 스토크를 두고 화장실근처에는 후레지아를 두어서 꽃이 가지는 특유의 향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익숙해진 공간이라면 그런 것이 왜 필요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각을 쓸 수 없을 때 공간이 아무리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후각이 주는 안도감은 여러가지 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위치한 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 다른 감각을 제공해주는 것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살구향기 가득한 수선화 

꽃향기 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면 다양한 이로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이로움을 어디에 어떻게 필요한지 생각해야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도 하지만 쓰레기이도 하고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구에는 도움이 되는 존재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하나의 특권 중 하나는 생명이 가지는 다양한 이로움을 찾아서 그 이로움이 필요한 곳에 배치하고 이로움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만물의 영장일 수 있기는 하다.

배려 받음의 미학 


꽃집에서는 꽃병에 담아 주려면 약 45도 사선으로 줄기를 잘라주고 물병에 넣어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라고 해도 그렇게 안하고 그냥 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왜 사선으로 자르고 넣으라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그대로 한다. 사실 그렇게 자르는 것이 좋은 이유는 물병에 담아 두었을 때 수평으로 정확하게 자르면 그 단면이 물병에 모두 접촉해서 물을 흡수할 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선으로 자르면 잘린 끝 부분으로 서있고 그 단면은 물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선으로 잘라도 꽃이 기울어져 물병의 옆면에 사선과 모두 닿아있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물을 흡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티로폼으로 잘 서있도록 해준 라넌큘러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어떻게 있으면 물을 잘 흡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보통의 경우 사선으로 잘라주면 되지만 물병의 모양에 따라서 평면으로 잘라줘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사선도 평면도 좋지 않다면 가운데 부분만 오목하게 잘라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자르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물에서 한번 나온 줄기는 다시 잘라주는 것이 좋다. 물론 줄기가 안 좋아지거나 물을 흡수할 수 없을 것 같은 색이라면 물을 잘 먹을 수 있는 길이까지 잘라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에서 한번 나온 줄기를 한번 잘라주고 다시 넣는 이유는 공기주사를 생각하면 빠를 것 같다. 한번 빠진 줄기에서는 이미 공기와 접촉을 했기 때문에 공기 방울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그대로 다시 넣어준다면 공기방울은 줄기 안에서 공기 색전 air(gas) embolism 과 같이 물이 흡수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꽃들은 어떻게 하면 물을 잘먹을 수 있을까 그 고민만 잘해준다면 생각보다 많은 꽃들이 오랫동안 살아 즐거움을 줄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꽃을 못 길러...' 라고 하지만 그건 꽃병에 그냥 넣는 것만으로 꽃들은 잘 자라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들은 사람이 넣어준 대로 그리고 움직인 그대로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꽃병이 줄기가 딱 붙어 물을 흡수할 수 없는데 오래 살거라는 것은 코와 입을 막아버리고 잘 잘아봐 하는 것과 비슷하다. 꽃들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최소한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가꾸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서 그 생명력의 길이는 달라진다. 물론 꽃들의 특징에 따라서 신경써줘야 할 내용들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 목표는 모두 동일하다. 물을 잘 먹이기이다.

바로 말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스티블루는 꽃들이 색을 변하며 피어난다

꽃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명력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국화는 종종 마른 잎과 꽃들을 잘 골라줘야 하고 약해진 줄기는 잘 잘라줘야 한다. 조금 넓은 범위에서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을 생각하면 어떤 도움이 그들에게 필요할지 생각할 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배려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덜 불편할 수 있을까' 이고 지나친 도움도 장애인들에게는 부담이라는 불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에 비해 꽃들은 아주 단순해보이고 명료한 '물의 흡수'라는 목표가 있지만 꽃들마다 그 방법들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다양한 꽃들을 접할 때마다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마땅히 배려 받아야 하는 존재들은 그만큼 우리의 손길에 따라서 결과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

라넌큘러스는 피어나는 공간이 서로 확보가 될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배려한다는 것은 대상의 특징을 더 알수록 수월해지고 자연스러워 진다. 그리고 모든 배려라는 미덕에는 어떤 목표를 두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 목표의식이 정확해야 할 때가 많다. 꽃병에 담을 때 줄기가 약한 꽃들은 병과 기대어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확실히 물병과 접촉한 부분의 줄기들은 다른 부분보다 약해진다. 그래서 줄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그리고 가능한 수직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스티로폼이나 종이로 모양을 잡아준다. 수직으로 곧은 줄기들은 줄기 전체가 균형있게 물을 올리기 때문에 물의 흡수에서도 유리하다.

다양한 색의 알스트로에메리아 줄기가 수직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 주변에 사소하고 미물이라 불리는 생명들에는 그만큼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손길에 따라 그 생명력이 달라진다. 그런 이유로 같은 꽃들이 다르게 자라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조금은 알게 되고 인간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생명력을 보면서 섬세한 배려가 주는 그 변화를 알게 된다. 그렇게 인간은 아무런 힘없어 보이는 꽃들에게서 무엇인가 배운다.


0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