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February 15, 2008

믿음... 아픔을 이기는 약해보이는 가장 강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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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도 모르고 수술실에 들어간 아이는 수술에 대한 공포보다는 내일 학교를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수술만 끝나면 곧 학교를 갈 수 있겠지."

어떤 수술인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수술하는 선생님과 부모들만이 알고 있을 뿐 그 아이는 그 수술실에서 자신에게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고 있다.

오히려 수술을 즐기고 있었다. 흉부외과 선생님이

"너 심장 보고 싶니?" 

라는 터무니 없는 질문에 아이는 "네!" 하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리가 알고 있는 고통과 두려움이란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습관적으로 느껴질 때만이 고통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10시간이 넘는 수술과 그 이후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약물의 느낌까지 느껴질 고통을 경험하기 전까지 수술과 치료는 그저 남의 이야기로밖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지식이 늘어가면 늘어갈 수록 그 지식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의사들은 자신에게 닥쳐온 현실을 고통과 두려움으로 알기 전에 공포와 불안감으로 먼저 머리로 알게 되어 희망을 얻기 전까지도 좌절을 겪곤 한다.

수술실에 들어간 그 아이에겐 수술실은 그저 '학교를 갈 수 있는 그저 하나의 희망'이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무지의 아이는 그래서 그 무시무시한 장소에서도 희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남들은 눈물과 좌절로 겪어야 할지 모르는 그 시절을 그저 '희망' 하나로 견디어 낼 수 있었다. 비록 혈관을 타고 올라가는 항암제의 아픔과 다음번에 오면 똑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그래도 희망은 그곳에 있었다.


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위한 그 십자가의 길에서 세번 넘어지셨다. 세번... 그리고 남들은 희망없고 다 끝이라고 생각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희망의 구원을 선물해주셨다. 누가 그렇게 믿었을까? 처참하게 돌아가시는 그 예수님에게... 그저 슬퍼했을 뿐이지 그 분에게는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믿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희망이 없다고 낙담한 제자들에게 가장 큰 희망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해주셨다.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고통과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일시적이다. 그것은 희망이 있다면 곧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십자가일 것이다. 믿음은 이런 희망없는(hopeless) 곳에 희망(hope)만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도구이다.


당신에게 의탁합니다. 모든걸 의탁합니다.
포기하기에 의탁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당신께 의탁합니다.

그 끝이 절망스러워 보이는 죽음이라도 그 것은 당신의 뜻임을 믿겠습니다.
희망은 희망없어 보이는 그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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