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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May 23, 2019

작은 시골 학교가 있었다.
겨울철이면 그 학교는
항아리처럼 배가 불룩한 구식 석탄 난로에 불을 지펴
교실 난방을 해결했다.
날마다 한 어린 소년이 맨 먼저 등교해서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오기전에 난로를 지펴
교실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침
교사와 학생들이 등교해서 보니
학교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불타는 교실안에는
그 어린 소년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소년을 밖으로 끌어냈다.

소년은 살아날 가망이 희박해 보였다.
하체 부위가 끔찍한 화상을 입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곧바로 소년을 근처의 시립병원으로 옮겼다.

심한 화상을 입은 채 희미한 의식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어린 소년은
의사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말했다
불길이 소년의 하반신을 온통 망가뜨렸기 때문에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어쩌면 이 상태에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소년은 죽고 싶지 않았다.
꼭 살아나겠다고 소년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아무튼 의사에게 큰 놀라움을 선사하며
소년은 죽지 않고 소생했다.

위험한 고비를 일단 넘겼을 때
소년은 또다시 의사가 엄마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의사는 말했다.
하반신의 신경과 근육들이 화상으로 다 파괴되었기 때문에
소년을 위해선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 뻔 했으며
이제 하체 부위를 전혀 쓸 수 없으니
평생을 휠체어에서 불구자로 지내야만 한다고.

소년은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결코 불구자가 되지 않기로….
언젠가는 다시 정상적으로 걸으리라고 소년은 결심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허리 아래쪽에는
운동 신경이 하나도 살아 남아 있지 않았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힘없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소년은 퇴원을 했다.
엄마가 날마다 소년의 다리에 마사지를 해 주었다.
아무 느낌, 아무 감각,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걷고야 말겠다는 소년의 의지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 있지 않으면
좁은 휠체어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어느 햇빛이 맑은 날 아침
엄마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해 주려고
소년을 휠체어에 태워 앞 마당으로 나갔다.
소년은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간 틈을 타 휠체어에서 몸을 던져
마당의 잔디밭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다리를 잡아끌면서 두 팔의 힘으로
잔디밭을 가로질러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당가에 세워진 흰색 담장까지 기어간 소년은
온 힘을 다해
담장의 말뚝을 붙들고 일어섰다.
그런 다음 말뚝에서 말뚝으로 담장을 따라
무감각한 다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꼭 다시 걷겠다는 소년의 강한 의지를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날마다 그 일을 반복했다.
마침내는 담장 밑을 따라 잔디밭 위에
하얀 길이 생겨 날 정도였다.
자신의 두 다리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만큼
중요한것이 소년에게는 없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마사지와
소년의 강한 의지
흔들림없는 결심 덕분에
마침내 소년은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엔 더듬거리며 발을 옮겨 놓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다시 걸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달려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소년은 달리는 것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때문에
끝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훗날 대학에 들어간 소년은 육상부에 소속되었다.

더 훗날
한때는 살아 날 가망성이 희박했으며
결코 걸을 수 없고
결코 뛰어다닐 희망이 없었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 사람 글렌 커닝햄 박사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벌어진 1마일 달리기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학교 육상부원들을 부러워하고, 육상 선수가 되기를 바랬으나
하반신의 화상으로 다리를사용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던 소년.
그러나 1934년 1마일(1609.3m) 달리기에서 4분 6.7초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된 청년,



글렌 커닝햄 (Glenn Cunningham) 박사의 실화

Glenn Cunningham from Wikipedia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시련에 대해서 - 글렌 커닝햄

천천히 가는 사람이 종종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사람은 무언가에 쫓겨 미친 듯이 달리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까닭이다.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느림을 충분히 향유하라.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경직된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은 항상 영원을 약속한다는 소중한 비밀을.

오늘날, 세상은 기다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
사람들은 신속하게 해결책을 찾고 싶어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기다림은
우리가 지닌 본질적인 면을 가르쳐준다.
우리 자신의 발전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인내뿐이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잎들은 그만큼 빨리 시든다.
꽃이 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즉각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는 서서히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찾아온다.


안젤름 그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느림

국의 어느 명망 높은 추기경님께서 오래 전에 한 신학생을 성추행했다고 하여 고소되셨습니다. 성추행범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그렇듯 각계각층에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더 크게 소리내며 특집을 만듭니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 아닌 동정서원을 한 가톨릭 사제요, 명망 높은 추기경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추기경 자신은 하지도 않은 일이 세상 곳곳에 퍼져 사제로서의 신분은 물론 교회의 이름을 크게 실추시켰기에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악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한 후엔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담담하게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고, 악은 선 앞에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고통의 시간은 죽음과도 같았지만 추기경 자신은 이 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 그 죽음의 고독감을 함께함으로써 오히려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이의 욕망에 휘둘려 추기경을 고소했던 가련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와 화해의 은총도 받았습니다.

일생일대의 사건은 끝났지만 또 다른 어둠의 골짜기가 추기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췌장암' 진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를 죽음 안에 가둬두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암환자가 되어 죽음을 앞둔 이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한 사목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 ─ 《 평화의 선물 》



연히 알게 된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삶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테마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테마로 바꾸게 해준 성직자이다.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명망 높은 성직자의 고난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했다. 따로 글을 옮기기 보다는 양치기 신부님 이라는 필명으로 추기경님에 대해 쓴 글을 가져오는 것으로 저의 마음을 대신 합니다.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 양치기 신부님


요한 15장 1-8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우연히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님(1928-1996, 시카고 교구장 역임)의 영성일기 ‘평화의 선물’(바오로딸)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단 한 순간도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정도로 큰 감동이 제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230만 명 이상의 신자들, 1,800여명이나 되는 소속 사제들이 활동하는 시카고 교구의 교구장으로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던 추기경님께 1993년 11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추기경님께서 ‘성추행’이란 죄목으로 무고(誣告)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소장을 손에 받아든 추기경님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고소내용 역시 너무도 놀랍고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무죄한 추기경님이었기에 불확실한 소문을 무시하고 사목활동에 집중하려고 하셨으나, 당신의 가치관과 서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그 엄청난 고소 내용으로 인한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추기경께서는 당시의 고통스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나를 위해 허위 고소를 준비시켰단 말인가? 물론 예수님께서도 허위 고발 당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악몽은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CNN을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서는 경쟁하듯 이 고소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었고 흉흉한 소문들은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더욱 증폭되어만 갔습니다. 추기경님의 입장은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그토록 난감하고 혹독한 상황 속에서 추기경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진정 의연한 참목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먼저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청난 음모를 꾸민 사람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고, 자신만큼이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고소인은 에이즈 환자였던 스티븐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추기경님께는 힘든 삶을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던 한 마리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그 고소인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교회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사람, 에이즈와 그로 인한 외로움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극적으로 이루어진 고소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 무고 사건은 교회에 앙심을 품은 일단의 사람들의 음모와 스티븐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거짓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추기경님은 그를 그 자리에서 용서하고, 그와 함께 화해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리고 이윽고 고소인은 고소 취하를 통해 자신의 우매함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겨우 무고 사건이란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 추기경님에게 또 다른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췌장암이란 또 다른 십자가. 췌장암에 이은 간암으로 갖은 고생을 다하시던 추기경님께서 문병 온 친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병들 때까지 미루다가는 정작 기도하고 싶을 때는 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니까.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도하기 위해 마음을 모을 수가 없네. 신앙심을 잃어서가 아냐. 믿음은 그대로지만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 해도 힘들어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네. 건강할 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게.”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 달 전 추기경님의 모습입니다. 그간 받아온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이 재발되었지요. 담당의사는 길어야 1년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힘이 다하는 날까지 그들의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게는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 동안 남은 시간을 뜻 깊게 사용할 생각이며,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뜻 깊게 사용한다는 것은 남은 시간도 사제들과 교우들에게 봉사하는 나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거의 생애 막바지에 도달한 상황 속에서도 추기경님은 하루에 강연을 두 곳에서 하시면서도 암환자 사목을 계속하셨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12건 이상 전화 상담을 하셨고, 동료 암환자들에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쓰셨습니다. 아래의 추기경님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곤경에 처한 민중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병들었을 때, 도덕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억압적 사회구조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그들과 함께 어둠의 골짜기를 걸어가야만 비로소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췌장암과의 투쟁이란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했던 추기경님의 삶이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힘겨운 투병생활 가운데서도   끝까지 양떼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추기경님의 모습에서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 가시면서도 셀 수도 없이 많은 결실을 거둔 추기경님의 삶에서 참포도 나무이신 예수님의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

Monday, May 20, 2019


조급한 확신 A jumped assurance 


에피소드 하나: 병원 응급실에 아이가 들어왔다. 팔이 부러진 상태로 들어와서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혈관 주사로 진통제를 투여하려고 하니 아이는 갑자기 거부하고 경구용 진통제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요구에 경구용 진통제 알약을 주었다. 아이의 보호자인 아버지는 말끔하지 못한 모습으로 아이 곁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고 계속 진통제를 찾았다. 응급실에서는 몇번 주었지만 상황을 의심한 의사는 아이의 약물검사를 해서 처방한 진통제를 복용했는지 확인한다.

CHICAGO | MED NBC

의사의 예상대로 아이에게서는 처방한 진통제는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몸이 불편하고 깔끔하지 못한 아버지를 의심했고 아이를 이용해서 약을 받기 위해서 병원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진실이 밝혀진다. 아이는 의도적으로 팔을 골절시켰다. 그리고 병원에 와서 진통제를 받고 이를 먹지 않고 숨겨두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사고로 몸이 불편해졌고 당시에는 쉽게 처방받을 수 있었던 옥시코돈을 처방받아 통증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정부 정책이 오남용을 먼저 걱정해서 처방을 제한하게 되고 나서는 제대로 약을 처방받을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처방을 받기 위해서는 더 높은 의료보험을 요구받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아버지는 계속 통증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 모습이 안타가웠던 아이는 스스로의 팔을 골절시켰던 것이다. 알약 몇개를 얻기 위해서 아버지의 고통을 옆에서 보면서 그 고통을 몇번이라도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약을 얻기 위해서 아이를 이용했다고 생각했던' 의사는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사과를 마땅히 받아야 할 아버지는 의사로 부터 제대로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직업적 신념에 따라서 아버지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고 잘 했던 행동이라고 확신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의심할 수 있고 쉽게 말해 '아니면 말고...' 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알 수 없는 씁쓸한 생각을 들게 한다. 아무튼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깊은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시카고 메드 Chicago Med 시즌 4의 에피소드 21편 Forever Hold Your Peace 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의심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잘못된 진실을 믿고 상대방을 의심했다면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충분히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는 노력할 때보다 진실을 알고 나서 더 많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진실이 밝혀졌으면 그만이지라고 이야기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면 의사가 밝혀낸 사실은 '아이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라는 결과는 알아냈지만 그 사실들이 '자신의 약을 얻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는 사실까지 말해주지 않지만 많은 편견과 시선으로 이미 그런 결론으로 도약할 때가 많다.

성급한 정의 A jumped justification 


에피소드 둘: 미국의 공립 병원인 뉴암스테르담 New Amsterdam 의 정신과 의사인 이기 프롬 Iggy Frome 은 평소와 같이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집단 상담 치료를 한다. 치료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모여서 치료활동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시의 복지담당 공무원은 환자인 아이 중 하나가 특별히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이를 이기 프롬 박사가 사적인 감정으로 아이를 다루어서 이에 생긴 트라우마가 아닌 것인지 의심하고 이를 조사하도록 요청하게 된다.


이기 프롬 박사의 치료 중 학대 사실을 의심하며 조사하는 과정에서 결국 피해 당사자인 아이에게도 질문을 하게 되지만 아이는 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결국 이기 프롬 박사에게만 말하겠다고 말했다. 환자의 치료 과정 중 학대 혐의 alleged 를 받은 이기 프롬은 모든 진료를 중단해야 했고 심지어 피해자였던 아이의 요청이라고 해도 모든 치료 과정이 중단된 상태에서는 쉽게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지만 이기 프롬은 이 요청을 듣고 바로 달려가서 아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가족 구성원의 학대를 받아왔었다는 그리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과가 좋아서 모든 혐의가 없어 다행이지만 만약 아이의 거짓 증언이나 잘못된 정황이 나왔다면 이기 프롬은 바로 의사 면허를 박탈 당했을 것이다.

뉴암스테르담 New Amsterdam 시즌 1의 에피소드 21 This Is Not the End 에서는 모든 환자들을 사랑으로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 이기 프롬은 어떤 아동을 부적절한 행동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고 이를 조사받는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서 이기 프롬은 천사에 가까운 정신과 의사였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배운 것은 버리고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주려는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모습의 의사이다.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보면 말도 안되는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보면 화가 날 수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모르고 이기 프롬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시 공무원에게는 잘못된 내용이 의심된다면 이를 적절하게 조치하고 그 의심을 풀어내는 것이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의심은 아주 순간적이다.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 ─ 익숙하지 않은 미래란 모험]


가정은 의심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은 대개 친근한 경험들에 근거하는 법이다. 따라서 그동안 유지해 온 과정을 적용할 때만이 가장 좋은 글을 쓰고, 가장 명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경우엔 박자를 조절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 행복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덧없이 사라지고 말 것들은 이런 신속함을 요구한다. 만일 행인이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하자, 당신은 우선 놀랄 것이다. 잠시 후 그를 관찰할 준비가 되고 보니, 그는 이미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이다. 만일 당신이 이제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생각해 보리라 하고 뒤 쫓아간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인가?

─ 피에르 썅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中 

그래서 우리의 의심은 심사숙고한 결과라기 보다는 순간적이고 때로는 충동적일 때가 많다. 충동적이란 뜻은 결국 충분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관찰할 결과라기 보다는 자신의 쌓아온 경험에 근거할 때가 많다. 자신이 전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의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본인이 자주 '노래방'을 가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고 자신의 딸과 함께 딸의 남자친구가 노래방 이야기를 한다면 그 노래방이 가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딸의 남자친구도 쉽게 의심하게 된다. 물론 그 의심의 근거는 밝혀진 사실들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Doubt (2008)

이런 이유로 미국의 어떤 주 정부는 내부 비리 혹은 부정 행위를 단속하는 인원들을 계속해서 근속시키지 않도록 한다. 왜냐하면 계속 의심하고 잘못된 형태를 봤던 이들에게는 모든이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쉽게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스스로 정의로운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악은 좀더 확신하고 정의롭다 


두가지 에피소드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수많은 정의로움으로 얼마나 많은 사회의 악인이 사라졌을까 보다는 얼마나 반항하지도 못한 억울한 의인들이 먼저 쉽게 사라졌을까 싶었다. 악인과 의인으로 구별하는 것도 어렵지만 악인에 가까워서 사회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잘 사용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잘 피해다니고 그 구조 안에서 잘 생존하지만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살려고 하는 이들은 종종 그 사회 안에서의 의심을 더 많이 받고 스스로 방어하기 어려워하는 성격 혹은 스스로 방어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은 이들이 먼저 사라지게 만들 때가 많다. 뉴암스테르담의 이기 프롬 박사가 그런 모습의 인물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기존의 시스템과 규칙을 어기더라도 환자들의 마음을 먼저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였고 그렇게 기존의 규칙을 어기는 모습들은 모두 의심을 받기 쉬웠다.

아버지의 고통을 보고 참지 못한 아이를 보며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한 부분이 있다.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자신에게 다가올 고통마저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위해 더 큰 고통을 받으면서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하기에 그런 경우 정 반대로 생각해서 아이를 이용하는 아버지가 되고 만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부의 약물 남용 opioid crisis 정책에 의해서 제대로 된 진통제도 받지 못하고 참으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런 정책이 원망스러워도 그것조차 제대로 어기지도 못하고 참는 시민이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CHICAGO | MED Season 4 Episode 21 -  Forever Hold Your Peace

"그동안 어떻게 견디어 오셨나요?"

아버지: "대부분 술이였죠." 

사회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악인보다는 의인들이 더 쉽게 지치고 먼저 쓰러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회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참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신의 고통을 절대 참지 못하는 이들은 불법으로 약을 구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회가 가지는 규칙이 아무리 정의를 외쳐서 악인들의 남용이나 잘못된 부분들을 막으려고 해도 개인의 고통으로 참아내야 하는 이들의 소리도 잘 들어야 한다. 만약 그런 개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생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다면 정의를 강하게 외치고 누군가의 잘못을 확신하는 이들은 선에 가까울까 악에 가까울까 생각해 본다. 그 구별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도 선한 이들은 자신의 정의감으로 누군가 잘못된 진실로 상처받을 수 없는지 그리고 그 상처로 상대방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서 좀 더 신중할 수 있고 좀 덜 확신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정의를 외치는 이들이 우리에게는 전혀 정의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말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세상의 화려한 곳에는 사람의 고통을 찾아가지 않고 타인의 실수마저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화려하게 할 수 있다는 공명심에 빠진 경우를 보게 된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천사들은 세상의 화려한 곳이 아닌 세상의 고통이 가장 큰 곳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이다. [[내주변] 지상에 내려온 천사와 악마]

확인될 때까지 확신하지 않는 것 Not sure till confirmed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사법살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권력에 의해서 사적으로 죽였던 많은 역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되었다 싶었던 시절에도 사코와 반제티 사건 [Struggle ...]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법살인들 인민혁명당 사건을 비롯해서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들은 결국 소수의 권력자들을 위해서 사법살인을 했던 비극적인 역사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서는 사법부는 증거와 사실을 중심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정의'에 의해 휩싸인 확신에 의해서 많은 생명을 죽인 사건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것, 소위 팩트 체크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미디어와 인간의 편견들은 수많은 잘못된 정보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으로 모든 것을 다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에는 어떤 의로움도 어떤 사실도 없다고 믿는 것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어느 시대보다 증거로 인정이 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고 그만큼 증거, 증인 material evidence, witness 의 증거능력을 더 고려하게 되지만 이 증거능력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고 죄지은 사람들은 풀려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악마는 항상 섬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지 모른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
이 말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섬세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곳에는 악마가 숨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쉽게 확신해서 섬세한 것을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곳에는 항상 어떤 악마가 숨어있는지 알 수 없다.

이기 프롬 선생님 Dr. Iggy Frome


고민을 남기는 두 편의 드라마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뉴암스테르담 시즌 1 에피소드 22 Luna 에서 이기 프롬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통해서 마무리한다. 내용을 담을 수 없지만 드라마 속의 장면들과 겹치는 이 대사들 속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수많은 섬세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

Dr. Iggy Frome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전까지는 직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뇌는 무엇인가 합리적이고 잘 설명되는 것으로 결론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때로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친구의 밝은 웃음이나 막 태어난 아이가 당신의 손가락을 잡으려는 때 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또한 부서지기도 쉽다.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공포와 마주할 때,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트라우마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려고 한다, 심지어 전혀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도. 그런데 왜 세상이 악으로 가득찼다고 말하기 어려워 하는가? 그건 악이란 당신의 두려움이 맞다는 뜻이다. 악이란 쉽게 포기할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으로 가득차 보여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쁜 상황이 되면 그런 믿음은 더욱 더 힘들어 진다. 그때는 우리가 일어나기 위해 선택해야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의 주변은 그리고 매순간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한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어두워 보이나? 당연하다. 그러나 항상 빛은 존재한다. 더 많은 빛들 말이다. 당신은 그저 눈을 뜨고 바라보면 된다."

─ 이기 프롬 박사

"It does seem counter-intuitive until you realize how the brain works. The brain is just it's just trying to make sense of things. Like, sometimes the world is so beautiful, you know? The laughter of a friend, a newborn baby gripping your finger. Life is also fragile. You blink, it's gone, just like that. Into the face of horror, our minds turn our trauma into a story to make sense of it, even if it doesn't make sense. So why would you mind tell you that the world was evil? Because evil means that your fear is right. Evil means that you can just give up.

But to believe that we all have the capacity to be heroes, no matter how evil the world may seem. That's harder because that means when the worst happens we can choose to stand up, we can choose to help. And that's what, all day, all around us, people do. So is the world dark? Sure. But there's light. There's so much lights. You just have to open your eyes and look."

─ Dr. Iggy Frome



조급한 확신과 성급한 정의의 섬세함

Wednesday, August 8, 2018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정호승

서울에 푸짐하게 첫눈내리는 날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고요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 없어
추기경 몰래 명동성당을 빠져나와


서울역 시계탑 아래에 눈사람 하나 세워놓고
노숙자들과 한바탕 눈싸움을 하다가
무료급식소에 들러 밥과 국을 퍼주다가
늙은 환경미화원과 같이 눈길을 쓸다가


부지런히 종각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껌파는 할머니의 껌통을 들고 서 있다가
전동차가 들어오는 순간 선로로 뛰어내린
한 젊은 여자를 껴안아 주고 있다가


인사동 길바닥에 앉아 있는 아기부처님 곁에 앉아
돌아가신 엄마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다가
엄마의 시신을 몇개월이나 안방에 둔
중학생 소년의 두려운 눈물을 닦아주고


경기도 어느 모텔의 좌변기에 버려진
한 갓난아기를 건져내고 엉엉 울다가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은
부지런히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


소주를 들이켜고
눈 위에 라면박스를 깔고 웅크린
노숙자들의 잠을 일일이 쓰담듬은 뒤
서울역 청동빛 돔에 올라가
내려오지 않는다
비둘기처럼.



님, 평화의 안식을 주소서...

이땅에 사랑을 남기고 가셨듯이 하늘 나라에서 평화의 안식속에서 편히 쉬소서...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하는 손 - 정호승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 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의 삶을 살게 합니다.





내등에 짐

Monday, June 15, 2015

Our own experience with loneliness, depression, and fear can become a gift for others, especially when we have received good care. As long as our wounds are open and bleeding, we scare others away. But after someone has carefully tended to our wounds, they no longer frighten us or others.
When we experience the healing presence of another person, we can discover our own gifts of healing. Then our wounds allow us to enter into a deep solidarity with our wounded brothers and sisters.

To enter into solidarity with a suffering person does not mean that we have to talk with that person about our own suffering. Speaking about our own pain is seldom helpful for someone who is in pain. A wounded healer is someone who can listen to a person in pain without having to speak about his or her own wounds. When we have lived through a painful depression, we can listen with great attentiveness and love to a depressed friend without mentioning our experience. Mostly it is better not to direct a suffering person’s attention to ourselves. We have to trust that our own bandaged wounds will allow us to listen to others with our whole beings. That is healing.”

- Henri Nouwen, The Wounded Healer, 1979


로움, 우울함 그리고 두려움을 통한 우리들만의 경험은 다른 이들을 위해 재능이 될 수 있다, 특히 우리들이 잘 돌보아질 때 말이다. 우리의 상처가 들어나고 여전히 상처가 깊을 때는 우리는 오히려 다른 이들을 겁줄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우리의 상처가 아물게 조심스럽게 도움을 준다면 더이상 다른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치유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치유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상처는 우리들이 다른 상처입은 형제 자매들과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통받고 있는 사람과 유대감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아픔에 대해 상대방에게 이야기 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상처받은 치유자는 자신이 겪은 상처를 이야기할 필요없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가 고통스런 기분을 통해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의 경험을 언급하지 않아도 고통받는 상대방에게 매우 친절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경우엔 고통받는 사람의 주의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치유받은 상처가 최선을 다해서 상대방을 들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다. 

- 헨리 나우엔, 상처받은 치유자, 1979




전 블로그에서 옮기다가 이 글은 언제 옮기나 싶은 생각을 항상 했었다. 그냥 습관처럼 글을 옮기는 작업은 어렵지 않지만 이 글의 첫 문장을 볼때마다 왜이렇게 힘든지 글을 끝까지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을 기억한다. 가족들은 있지만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기분, 친구들은 있지만 그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누구도 좋은 치유자가 되기 위해 상처받고 고통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치유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에게는 남들이 평생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은 힘든 시기가 있었다. 주관적인 평가를 떠나 병원에서 무엇인가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냥 힘들다. 치료의 과정도 아프지만 그 과정이 나만 겪고 있다는 외로움이 더 아프다. 아무리 주변에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어도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외로움은 속으로 더 커진다.

경험하지 못하면 그 아픔의 구체성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구체성을 알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자신이 겪은 상처를 이야기할 필요없이...' 우리는 그 상처와 아픔이 다가오는 그 알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그 상처의 공포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만약 그 상처의 공포가 제대로 위로받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의 상처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우숩게 보고 아픔을 왜 이기지 못하냐고 말했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번의 병원 치료를 통해서 신에 대한 원망보다는 그때마다 내가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한다고 다양한 방법으로 상처와 아픔의 원리를 알려주시려 한다고 합리화를 한다.


상처받은 치유자 ─ 헨리 나우엔

Wednesday, December 11, 2013

송에서 넬슨 만델라 (Nelson Mandela; 1918-2013) 추모식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연설하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강한 메세지의 내용들이 점점 빠져 들어 결국 번역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완벽할 수 없지만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했던 넬슨 만델라의 정신을 본 받아 일단 번역을 시작했다. 연설문 중간 넬슨 만델라의 말을 적절하게 인용하며 그가 남긴 정신에 대해서 살아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멋진 메세지에 끌려 번역을 올린다. 연설문 번역 이전에 먼저 기사 하나와 영문 연설문 원문 링크를 같이 올린다.

Nelson Mandela Memorial: Photos From Celebration Of Madiba's Life

오랜동안 적대 관계로 있던 미국 대통령이 쿠바의 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은 넬슨 만델라가 얼마나 큰 영혼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뭉클한 사진은 흑인 남성와 백인 여성이 같이 있는 장면이었다.

(LAUREN MULLIGAN © THE TIMES)

용서와 화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준 그의 정신을 깊게 길게 느끼고 싶다.

─ 오바마 대통령 연설문 원문 및 동영상
Transcript: Obama's speech at Nelson Mandela service by CNN
President Obama Speaks at a Memorial Service for Nelson Mandela by the WHITEHOUSE

오바마 대통령 연설문 번역 (번역: Thomas Júne Park)

번역前주: ① 큰 따옴표는 넬슨 만델라의 말을 연설문 중 인용한 내용 ② 편의상 연설문을 경어체로 작성 ③ 가능한 직역을 위주로 번역하려고 했지만 능력의 부족으로 내용의 전달을 위해 의역 혹은 표현을 변화시켰음 ④ 의미 전달이나 배경 지식의 이해를 위해 [번역주:  ] 로 추가했다.


1 만델라 부인 (Graça Machel; 만델라의 미망인) 과 유가족 여러분, 남아프리카 공화국 Zuma 대통령 및 정부 각료 여러분, 연방 주정부 지도자 및 관료 여러분, 전, 현직 내빈 여러분. 오늘 여기 이 자리에 여러분들과 소중한 한 사람의 삶을 추모하기 위해 있게 되어 크나큰 영광입니다. 남아프리카 국민들, 모든 민족과 모든 계층의 여러분들에게 전 세계는 넬슨 만델라와 같은 인물과 함께 할 수 있었음에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그의 투쟁은 여러분들의 투쟁이었습니다. 그의 승리는 여러분들의 승리였습니다. 여러분의 존엄성과 희망은 그의 삶 속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의 소중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2 한 사람을 찬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한 삶을 구성했던 사실과 기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들의 기쁨과 슬픔이 녹아 들어간 한 사람의 본질적인 진실을 통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을 밝혀주는 소중한 순간과 고유한 특성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번역주: 앞의 사실(facts) 기록(dates) 에 대응하여 unique qualities quiet moments 가 대응한다.]  (이렇게 어려운데) 역사의 위대한 한 사람을 찬사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은 한 국가를 정의로 이끌었고, 그 과정을 통해 전세계 수십억의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3 1차 세계 대전 중 태어난 권력의 중심(종주)과 관계없던 한 소년은 소떼를 기르고 템부(Thembu) 부족에 안에서 배우고 결국 그 소년은 20세기 마지막 위대한 민족 해방자가 되었습니다. 간디와 같이, 그는 저항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 저항운동은 초기에는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킹 목사와 같이, 그는 억압받는 자들을 대변하고 인종 문제에 정의를 위해 도덕적 필요성을 영향력 있는 목소리로 주장했습니다. 케너디와 후르시초프 시대에 시작된 잔혹한 감옥 생활을 이겨내고 냉전의 마지막 날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감옥에서 나와서 무장 세력도 없이 그는 아브라함 링컨과 같이 조국이 분열될 위기에도 국가가 같이 공존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미합중국 건국 시조들과 같이 미래 세대를 위해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제헌 질서를 세웠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의회와 법질서 체계를 선거를 통해서 비준했을 뿐만 아니라 임기를 끝내고 재임을 포기하는 그의 의지를 통해서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4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며 그가 이룬 업적의 내용과 올바르게 얻었던 덕망을 생각할 때, 넬슨 만델라를 떠올리면 미소와 평온의 상징과 같은 존재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미소와 평온은 속 좁은 사람의 억지스럽고 화려하기만 한 모습이 아닌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만델라는 오히려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만델라는 그가 가진 의문과 두려움을 우리와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그의 승리와 함께 그의 실수들도 함께하려 했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나는 성인이 아니다. 성인이란 항상 노력하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번역주: 만약 사람들이 성인을 항상 노력하는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만델라는 스스로 성인이라 부를 수 없다.]

5 그가 불완전함, 결점을 인정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는 유쾌한 유머감각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가져야 했던 삶의 무게에도 불구하고 곤란한 상황에서도 여전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를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흉상같은 사람이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의 사람이었습니다. -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아버지였고 친구였습니다. 그도 역시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에게 배울 것을 찾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가 이룬 어떤 것도 운명적인 것들은 없었습니다. (그냥 이루어진 것은 없습니다.) 그가 남긴 삶의 한 획에서, 우리는 투쟁과 통찰을 통해, 인내와 신념을 가지고 역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은 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6 만델라는 우리에게 실천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이상을 위하여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마도 만델라가 그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부끄럽지 않은 저항정신, 공정함에 대한 고집있는 의지 를 통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수백만의 남아프리카 흑인, 유색인종과 함께 그가 말했던 것처럼 무수한 멸시와 수많은 모욕, 기억할 수 조차 없는 순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분노와 우리 국민들을 가두는 체제에 싸울 수 있는 욕망을 공유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7 그러나 아프리카민족회의 (ANC) 의 초기 지도자들이었던 Sisulus (Walter Sisulus) 와 Tambo (Oliver Tambo) 와 같이, 만델라도 그의 분노를 조절하고 조직을 통해, 플랫폼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전략을 통해 싸울 수 있도록 그의 욕망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모두가 신이 부여한 존엄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행동들이 만든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강력한 이해관계와 부정함에 맞서는 것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백인 기득권에 맞서 싸워왔다. 또한 흑인 기득권과도 맞서야 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고 기회의 평등이 주어진 곳에서 같이 살아가는 민주주의, 자유 사회의 이상을 소중히 여겼다. 이것이 내가 살고 싶은 그리고 이루고 싶은 이상이다. 그러나 만약 필요하다면, 나는 그 이상을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었다.

8 만델라는 우리에게 실천의 힘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상의 힘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성(reason)과 논의(arguments) 의 중요성입니다. 당신이 찬성하는 사람들에 의한 것 뿐만 아니라 당신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검토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만델라는 이상은 감옥의 벽에 의해 갇혀 있을 수 없음을, 저격수의 총탄에 제거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피고로 선 법정은 인종차별주의를 기소하는 재판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의 언변과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번역주: 만델라의 죄를 묻는 재판을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항변으로 이끌어 냈다는 뜻] 변호사로 지낸 시절또한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보낸 수십년간의 시간을 통해 논의를 제대로 이끌어 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또한 (투쟁) 운동에서 만난 다른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지적 갈망을 표현하는데 활용했습니다. 그리고 억압자들의 언어와 습성을 배워 훗날 그들의 자유가 얼마나 억압자들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지 제대로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번역주: 억압자들의 모습과 본성을 이해하여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들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지 잘 설득하려고 했다는 뜻]

9 만델라는 우리의 실천과 이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보여주었다. 아무리 옳은 것이라 해도 법과 조직에 의해 상처나고 부정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는 현실적 (practical) 이었습니다. 그는 상황과 역사의 역경에 부딪치며 그가 믿는 것을 시험해보았기 때문입니다. 지켜야 할 핵심적인 원칙들에 대해서는 그는 단호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무조건적 사면 요구에 대해서 거절할 수 있었습니다. [번역주: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백인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무조건적 사면을 요구했지만 만델라는 거부했다. 오직 “범인이 진실을 밝히고 그들의 행동이 정치적 동기였음을 증명하면 위원회는 개인별로 사면을 행한다.” 는 원칙을 고수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인종분리 정책) 체제에 “죄수들은 계약에 참여할 수 없다.” 는 말을 떠올리게 하였습니다. [번역주: “오직 자유로운 인간만이 협상할 수 있다. 죄수는 계약같은 걸 할 수 없다.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나의 자유는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의 인용 참고: http://onni.me/J73nRn ]

10 그러나 정권 이양과 새로운 법률안의 기초에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협상력을 보여준 것처럼, 그는 큰 목표를 위해 타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투쟁) 운동의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능숙한 정치인이기도 했습니다. 헌법은 다민족 국가의 민주주의에 적합했으며 다수의 권리 뿐만 아니라 소수의 권리까지도 보호할 수 있고, 모든 남아프리카 국민의 소중한 자유를 위해 법이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비젼에도 충분했습니다.

11 그리고 마침내, 만델라는 인간 정신을 엮을 수 있는 유대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남아프리카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유분투 (Ubuntu). - 만델라의 뛰어난 재능을 그대로 말해줍니다.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서로 유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인류를 위해 하나될 수 있음을, 서로 서로가 공유하며 우리 이웃을 돌보는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줍니다.

12 우리는 그가 이런 정신을 얼마나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며 그가 보낸 어둠과 고독의 공간 안에서 (감옥안에서) 얼마나 이런 정신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취임식에서 귀빈과 같이 감옥 시절 자신의 간수를 소개하는 그의 모습을; 남아프리카 유니폼을 입고 럭비 경기장에 있던 그의 모습을; HIV / 에이즈와 직면해야 했던 슬픈 가족사를 접하는 그의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 이렇게 그가 가진 공감의 깊이와 이해심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는 유분투를 구체화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안에 있는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번역주: Springbok uniform : 만델라는 대통령이 되고 백인의 유산같던 럭비 경기에서 남아프리카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그리고 감격적인 승리를 거둔다. 영화 INVICTUS 참고 ; HIV / AIDS : 만델라의 아들은 에이즈로 생을 마감하였다. 이에 만델라는 에이즈 퇴치를 위해 노력했다. 그의 죄수 번호인 46664 은 에이즈 퇴치 운동을 위한 캠패인 이름이 되었다.]

13 이렇게 만델라와 같은 사람이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었던 것 뿐만 아니라 간수들도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다른이들이 당신을 신뢰하기 위해 먼저 당신이 다른이를 신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화합은 잔혹했던 과거를 무시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거를 직면하여 포용, 관용과 진실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법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바꾼 것입니다.

14 남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그에게 영향을 받은 전세계 사람들에게, 만델라의 죽음은 당장 슬픔의 시간이고 그의 영웅적 삶을 기억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나 (오바마) 는 우리 각자에게 스스로를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솔찍하게, 우리의 위치와 상황에 관계없이,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그가 남긴 교훈을 얼마나 내 삶에 반영하며 살아왔는지. 이것이 나또한 스스로에게 질문한 것입니다. 한 사람으로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15 남아프리카와 같이 미국도 인종적 차별 지배의 시절을 극복해야만 했습니다. 잘 알듯이, 그에 따른 희생이 있었습니다. -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새로운 날의 서막을 보기 위해서 말입니다. 미첼 (오바마 부인) 과 나는 이러한 투쟁의 수혜자들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는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할 수 없습니다. (퇴색되게 할 수 없습니다.)

16 형식상 평등이나 보편적 선거권을 이끄는 투쟁들은 드라마나 예전과 마찬가지로 항상 도덕적으로 분명한 것처럼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번역주: 우리가 투쟁해야 하는 옳은 것들이 도덕적으로 분명한 내용인지 알기 힘들지 모른다는 뜻] 오히려 그런 것들은 덜 중요할지 모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여전히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습니다. 여전히 미래에 대한 희망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전세계에는 단지 정치적 믿음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그들의 생김새, 그들이 믿는 것, 그들이 사랑하는 것 때문에 죄가 되는 사람들도 여전히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오늘날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17 그런 이유로 우리도 역시 정의를 위해 행동(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도 역시 평화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만델라가 이끈 인종간 화합의 유산을 누리며 행복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조적 빈곤과 급증하는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적당한 타협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합니다. 만델라가 보여준 자유를 위한 투쟁의 결속을 요구하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따르지 않으면 참지 못하는 많은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기만족과 냉소주의에 안주하는 방관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18 오늘날 우리가 풀어야 할 질문은 - 어떻게 평등과 정의를 실현시킬 것인가; 어떻게 자유와 인권을 지킬 것인가; 어떻게 갈등과 분파에 의한 전쟁을 종식시킬 것인가; 입니다. 이런 질문에 쉬운 해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역시 1차 세계대전에 태어난 한 소년도 쉬운 해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우리에게 끝나기 전에는 항상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남아프리카는 이 말이 사실임을 알려주었습니다. 남아프리카는 우리가 변화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름으로 구별되지 않고 우리가 함께 가진 희망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갈등에 의해 갈리지 않고 평화, 정의, 기회로 만들어지는 세상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 우리는 다시는 넬슨 만델라 같은 분을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세상 모든 곳의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만델라가 보여준 일들을 당신의 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입니다. 30여년 전, 학생이었던 나는 넬슨 만델라를 알게 되었고, 그가 이 아름다운 땅 (남아프리카) 에서 이끌었던 투쟁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내 안의 무엇인가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나에게 다른이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여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만델라 그분에 비한다면 항상 모자른 존재일테지만, 그는 항상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원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는 내 안에 무엇이 최선인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20 위대한 해방자가 안식을 찾게 된 후, 우리 모두가 각자의 도시로, 집으로 돌아가 매일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의 용기를 찾기 바랍니다. 우리들 어딘가 있을 그가 보여준 영혼의 웅장함을 찾아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밤이 되어 어두워질 때, 부당함이 우리의 심장을 짓누르게 되고,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에도 불구하고 힘들 때, 감옥의 공간 안에서도 갇혀 있었지만 평온을 찾을 수 있었던 만델라의 말들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문이 얼마나 좁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많은 형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다;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너무도 위대했던 한 영혼이여. 우리는 그를 무척 그리워 하게 될 것입니다. 신의 은총이 넬슨 만델라와 함께하기를, 신의 은총이 남아프리카 국민들과 함께 하기를...

Rest in Peace, Nelson Mandela

번역: 오바마 연설문 - 넬슨 만델라 추모식

Monday, November 25, 2013

In a way despair is at the center of things ─ if only we are prepared to go through it.  We must be prepared for a period when God is not there for us and we must be aware of not trying to substitute a false God. 

( One day, as I described in the book, a girl came to my surgery and condemned the Gospels without having read them. On her honeymoon she went to the cinema with her husband and she suddenly went blind. Later they discovered that she had an incurable disease. In the final stages of her illness she wrote to me, "My heart hasn't the strength to beat Godwards' and she had the courage to accept real absence and would not substitute a false God, a comforter. The tremendous courage of this person impressed me immensely and I have never forgotten that. )

The day when God is absent, when He is silent ─that is the beginning of prayer. Not when we have a lot to say, but when we say to God 'I can't live without You, why are You so cruel, so silent?' This knowledge that we must find or die ─that makes us break through to the place where we are in the Presence. If we listen to what our hearts know of love and longing and are never afraid of despair, we find that victory is always there the other side of it. 

Beginning to Pray, Anthony (Bloom) of Sourozh


떤 의미에서 모든 일들의 중심에는 절망이 놓여 있다. ─우리가 그 절망을 통해 헤치고 나갈 준비가 되었다면 말이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계시지 않는 시기를 위해 대비해야 하고 거짓 우상으로 대체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중략 ; 책 본문에 나와있지만 책의 다른 부분과 연결되는 내용이라 원문 내용만 남겨두고 번역하지 않음)

느님이 부재중인 어느날, 하느님이 침묵 속에 있을 때 ─그때가 기도의 시작이다. 우리가 말할 거리가 많을 때가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에게 '당신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은 왜 이리도 잔인하십니까, 왜이리 침묵하십니까?' 라고 외칠 때이다. 찾아내거나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은 우리를 하느님과 현존(Presence)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도록 돌진하게 만든다. 우리가 사랑하고 갈망하는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절망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절망의 이면에는 항상 승리의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앤서니 블룸, 「기도의 시작」


절망의 반대편 ─ 기도의 시작

Sunday, November 24, 2013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de 1789
Les représentants du peuple français, constitués en Assemblée nationale, considérant que l'ignorance, l'oubli ou le mépris des droits de l'homme sont les seules causes des malheurs publics et de la corruption des gouvernements, ont résolu d'exposer, dans une déclaration solennelle, les droits naturels, inaliénables et sacrés de l'homme, afin que cette déclaration, constamment présente à tous les membres du corps social, leur rappelle sans cesse leurs droits et leurs devoirs ; afin que les actes du pouvoir législatif et ceux du pouvoir exécutif, pouvant être à chaque instant comparés avec le but de toute institution politique, en soient plus respectés ; afin que les réclamations des citoyens, fondées désormais sur des principes simples et incontestables, tournent toujours au maintien de la Constitution et au bonheur de tous.

En conséquence, l'Assemblée nationale reconnaît et déclare, en présence et sous les auspices de l'Être Suprême, les droits suivants de l'homme et du citoyen.

Article premier - Les hommes naissent et demeurent libres et égaux en droits. Les distinctions sociales ne peuvent être fondées que sur l'utilité commune.

Article 2 - Le but de toute association politique est la conservation des droits naturels et imprescriptibles de l'homme. Ces droits sont la liberté, la propriété, la sûreté et la résistance à l'oppression.

Article 3 - Le principe de toute souveraineté réside essentiellement dans la Nation. Nul corps, nul individu ne peut exercer d'autorité qui n'en émane expressément.

Article 4 - La liberté consiste à pouvoir faire tout ce qui ne nuit pas à autrui : ainsi, l'exercice des droits naturels de chaque homme n'a de bornes que celles qui assurent aux autres membres de la société la jouissance de ces mêmes droits. Ces bornes ne peuvent être déterminées que par la loi.

Article 5 - La loi n'a le droit de défendre que les actions nuisibles à la société. Tout ce qui n'est pas défendu par la loi ne peut être empêché, et nul ne peut être contraint à faire ce qu'elle n'ordonne pas.

Article 6 - La loi est l'expression de la volonté générale. Tous les citoyens ont droit de concourir personnellement ou par leurs représentants à sa formation. Elle doit être la même pour tous, soit qu'elle protège, soit qu'elle punisse. Tous les citoyens, étant égaux à ses yeux, sont également admissibles à toutes dignités, places et emplois publics, selon leur capacité et sans autre distinction que celle de leurs vertus et de leurs talents.

Article 7 - Nul homme ne peut être accusé, arrêté ou détenu que dans les cas déterminés par la loi et selon les formes qu'elle a prescrites. Ceux qui sollicitent, expédient, exécutent ou font exécuter des ordres arbitraires doivent être punis ; mais tout citoyen appelé ou saisi en vertu de la loi doit obéir à l'instant ; il se rend coupable par la résistance.

Article 8 - La loi ne doit établir que des peines strictement et évidemment nécessaires, et nul ne peut être puni qu'en vertu d'une loi établie et promulguée antérieurement au délit, et légalement appliquée.

Article 9 - Tout homme étant présumé innocent jusqu'à ce qu'il ait été déclaré coupable, s'il est jugé indispensable de l'arrêter, toute rigueur qui ne serait pas nécessaire pour s'assurer de sa personne doit être sévèrement réprimée par la loi.

Article 10 - Nul ne doit être inquiété pour ses opinions, mêmes religieuses, pourvu que leur manifestation ne trouble pas l'ordre public établi par la loi.

Article 11 - La libre communication des pensées et des opinions est un des droits les plus précieux de l'homme ; tout citoyen peut donc parler, écrire, imprimer librement, sauf à répondre de l'abus de cette liberté dans les cas déterminés par la loi.

Article 12 - La garantie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nécessite une force publique ; cette force est donc instituée pour l'avantage de tous, et non pour l'utilité particulière de ceux à qui elle est confiée.

Article 13 - Pour l'entretien de la force publique, et pour les dépenses d'administration, une contribution commune est indispensable ; elle doit être également répartie entre les citoyens, en raison de leurs facultés.

Article 14 - Les citoyens ont le droit de constater, par eux-mêmes ou par leurs représentants, la nécessité de la contribution publique, de la consentir librement, d'en suivre l'emploi, et d'en déterminer la quotité, l'assiette, le recouvrement et la durée.

Article 15 - La société a le droit de demander compte à tout agent public de son administration.

Article 16 - Toute société dans laquelle la garantie des droits n'est pas assurée ni la séparation des pouvoirs déterminée, n'a point de Constitution.

Article 17 - La propriété étant un droit inviolable et sacré, nul ne peut en être privé, si ce n'est lorsque la nécessité publique, légalement constatée, l'exige évidemment, et sous la condition d'une juste et préalable indemnité.




Declaration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

Approved by the National Assembly of France, August 26, 1789
The representatives of the French people, organized as a National Assembly, believing that the ignorance, neglect, or contempt of the rights of man are the sole cause of public calamities and of the corruption of governments, have determined to set forth in a solemn declaration the natural, unalienable, and sacred rights of man, in order that this declaration, being constantly before all the members of the Social body, shall remind them continually of their rights and duties; in order that the acts of the legislative power, as well as those of the executive power, may be compared at any moment with the objects and purposes of all political institutions and may thus be more respected, and, lastly, in order that the grievances of the citizens, based hereafter upon simple and incontestable principles, shall tend to the maintenance of the constitution and redound to the happiness of all. Therefore the National Assembly recognizes and proclaims, in the presence and under the auspices of the Supreme Being, the following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

Articles:

1.  Men are born and remain free and equal in rights. Social distinctions may be founded only upon the general good.

2.  The aim of all political association is the preservation of the natural and imprescriptible rights of man. These rights are liberty, property, security, and resistance to oppression.

3.  The principle of all sovereignty resides essentially in the nation. No body nor individual may exercise any authority which does not proceed directly from the nation.

4.  Liberty consists in the freedom to do everything which injures no one else; hence the exercise of the natural rights of each man has no limits except those which assure to the other members of the society the enjoyment of the same rights. These limits can only be determined by law.

5.  Law can only prohibit such actions as are hurtful to society. Nothing may be prevented which is not forbidden by law, and no one may be forced to do anything not provided for by law.

6.  Law is the expression of the general will. Every citizen has a right to participate personally, or through his representative, in its foundation. It must be the same for all, whether it protects or punishes. All citizens, being equal in the eyes of the law, are equally eligible to all dignities and to all public positions and occupations, according to their abilities, and without distinction except that of their virtues and talents.

7.  No person shall be accused, arrested, or imprisoned except in the cases and according to the forms prescribed by law. Any one soliciting, transmitting, executing, or causing to be executed, any arbitrary order, shall be punished. But any citizen summoned or arrested in virtue of the law shall submit without delay, as resistance constitutes an offense.

8.  The law shall provide for such punishments only as are strictly and obviously necessary, and no one shall suffer punishment except it be legally inflicted in virtue of a law passed and promulgated before the commission of the offense.

9.  As all persons are held innocent until they shall have been declared guilty, if arrest shall be deemed indispensable, all harshness not essential to the securing of the prisoner's person shall be severely repressed by law.

10.  No one shall be disquieted on account of his opinions, including his religious views, provided their manifestation does not disturb the public order established by law.

11.  The free communication of ideas and opinions is one of the most precious of the rights of man. Every citizen may, accordingly, speak, write, and print with freedom, but shall be responsible for such abuses of this freedom as shall be defined by law.

12.  The security of the rights of man and of the citizen requires public military forces. These forces are, therefore, established for the good of all and not for the personal advantage of those to whom they shall be intrusted.

13.  A common contribution is essential for the maintenance of the public forces and for the cost of administration. This should be equitably distributed among all the citizens in proportion to their means.

14.  All the citizens have a right to decide, either personally or by their representatives, as to the necessity of the public contribution; to grant this freely; to know to what uses it is put; and to fix the proportion, the mode of assessment and of collection and the duration of the taxes.

15.  Society has the right to require of every public agent an account of his administration.

16.  A society in which the observance of the law is not assured, nor the separation of powers defined, has no constitution at all.

17.  Since property is an inviolable and sacred right, no one shall be deprived thereof except where public necessity, legally determined, shall clearly demand it, and then only on condition that the owner shall have been previously and equitably indemnified.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국민 의회를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인민의 대표자들은 인권에 관한 무지·망각 그리고 멸시가 오로지 공공의 불행과 정부 부패의 모든 원인이라는 것에 유의하면서, 하나의 엄숙한 선언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연적이고 불가양이며, 신성한 제 권리를 밝히려 결의하거니와, 그 의도하는 바는, 사회체의 모든 구성원이 항시 이 선언에 준하여 부단히 그들의 권리와 의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하며, 입법권과 행정권의 제 행위가 수시로 모든 정치제도의 목적과의 비교에서 보다 존중되게 하기 위하여, 시민의 요구가 차후 단순하고 명확한 제 원리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언제나 헌법의 유지와 모두의 행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 의회는 지고의 존재 앞에 그 비호 아래 다음과 같은 인간과 시민의 제 권리를 승인하고 선언한다.

제 1 조, 인간은 권리에 있어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 생존한다. 사회적 차별은 공동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 2 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를 보전함에 있다. 그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의 저항 등이다.

제 3 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유래하지 않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제 4 조, 자유는 타인에게 해롭지 않은 모든 것을 행할 수 있음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자연권의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 원에게 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이외의 제약을 갖 지 아니한다. 그 제약은 법에 의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제 5 조, 법은 사회에 유해한 행위가 아니면 금지할 권리를 갖지 아니한다. 법에 의해 금지되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방해될 수 없으며, 또 누구도 법이 명하지 않는 것을 행 하도록 강제될 수 없다.

제 6 조, 법은 일반 의사의 표명이다.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 표자를 통하여 그 작성에 협력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법은 보호를 부여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가하는 경우에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모든 시민은 법 앞 에 평등하므로 그 능력에 따라서, 그리고 덕성과 재능에 의한 차별 이외에는 평등하게 공적인 위계, 지위, 직무 등에 취임할 수 있다.

제 7 조, 누구도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 그리고 법이 정하는 형식 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소추, 체포 또는 구금될 수 없다. 자의적 명령을 간청하거나 발령하거나 집행하거나 또는 집행시키는 자는 처벌된다. 그러나 법에 의해 소환되거나 체포된 시민은 모두 즉각 순응해야 한다. 이에 저항하는 자는 범죄자가 된다.

제 8 조, 법은 엄격히, 그리고 명백히 필요한 형벌만을 설정해야 하고 누구도 범죄 이전에 제정·공포되고, 또 합법적으로 적용된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될 수 없다.

제 9 조, 모든 사람은 범죄자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것이므로,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판정되더라도 신병을 확보하는 데 불가결하지 않은 모든 강제 조치를 법에 의해 준엄하게 제압된다.

제 10 조, 누구도 그 의사에 있어서 종교상의 것일지라도 그 표명이 법에 의해 설정된 공공 질서를 교란하지 않는 한 방해될 수 없다.

제 11 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귀중한 권리의 하나이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로이 발언하고 기술하고 인쇄할 수 있다. 다만, 법에 의해 규정된 경우 에 있어서의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제 12 조, 인간과 시민의 제 권리의 보장은 공공 무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이는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설치되는 것 으로서, 그것이 위탁되는 사람들의 특수 이익을 위해 설치되지 아니한다.

제 13 조, 공공 무력의 유지를 위해, 그리고 행정의 제 비용을 위해 일반적인 조세는 불가결하다. 이는 모든 시민에게 그들의 능력에 따라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제 14 조,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그들의 대표자를 통하여 공공 조세의 필요성을 검토하며, 그것에 자유로이 동의하며, 그 용도를 추급하며, 또한 그 액수, 기준, 징수, 그리고 존속 기간을 설정할 권리를 가진다.

제 15 조, 사회는 모든 공직자로부터 그 행정에 관한 보고를 요구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제 16 조,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확정 되어 있지 아니한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아니한다.

제 17 조, 하나의 불가침적이고 신성한 권리인 소유권은 합법적으 로 확인된 공공 필요성이 명백히 요구하고, 또 정당하 고, 사전의 보상의 조건하에서가 아니면 침탈될 수 없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Friday, November 8, 2013


I am not accustomed to rejoicing in things that are small, hidden, and scarcely noticed by the people around me. I am generally ready and prepared to receive bad news, to read about wars, violence, and crimes, and to witness conflict and disarray. I always expect my visitors to talk about their problems and pain, their setbacks and disappointments, their depressions and their anguish. Somehow I have become accustomed to living with sadness, and so have lost the eyes to see the joy and the ears to hear the gladness that belongs to God and which is to be found in the hidden corners of the world.

I have a friend who is so deeply connected with God that he can see joy where I expect only sadness. He travels much and meets countless people. When he returns home, I always expect him to tell me about the difficult economic situation of the countries he visited, about the great injustices he heard about, and the pain he has seen. But even though he is very aware of the great upheaval of the world, he seldom speaks of it. When he shares his experiences, he tells about the hidden joys he has discovered. He tells about a man, a woman, or a child who brought him hope and peace. He tells about little groups of people who are faithful to each other in the midst of all the turmoil. He tells about the small wonders of God. At times I realize that I am disappointed because I want to hear "newspaper news,"exciting and exhilarating stories that can be talked about among friends. But he never responds to my need for sensationalism. He keeps saying: "I saw something very small and very beautiful, something that gave me much joy."

The father of the prodigal son gives himself totally to the joy that his returning son brings him. I have to learn from that. I have to learn to "steal" all the real joy there is to steal and lift it up for others to see. Yes, I know that not everybody has been converted yet, that there is not yet peace everywhere, that all pain has not yet been taken away, but still, I see people turning and returning home; I hear voices that pray; I notice moments of forgiveness, and I witness many signs of hope. I don't have to wait until all is well, but I can celebrate every little hint of the Kingdom that is at hand.

This is a real discipline. It requires choosing for the light even when there is much darkness to frighten me, choosing for life even when the forces of death are so visible, and choosing for the truth even when I am surrounded with lies. I am tempted to be so impressed by the obvious sadness of the human condition that I no longer claim the joy manifesting itself in many small but very real ways. The reward of choosing joy is joy itself. Living among people with mental disabilities has convinced me of that. There is so much rejection, pain, and woundedness among us, but once you choose to claim the joy hidden in the midst of all suffering, life becomes celebration. Joy never denies the sadness, but transforms it to a fertile soil for more joy.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Henri J. M. Nouwen (1932 – 1996)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Rembrandt (1669)

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을 즐기는 습관은 몸에 배어 있지 않다. 그보다 전쟁과 폭력과 범죄에 대한 '나쁜 소식'을 듣고 갈등과 투쟁을 목격할 준비는 언제나 되어 있다. 나는 언제나 나를 찾아오는 이들이 으레 골치 아픈 문제와 괴로움, 실망과 낙담, 불안과 분노를 토해 내리라고 기대한다. 어쩌다 보니 슬픔과 아픔에는 익숙해 있으면서 세상의 은밀한 구석에 감춰진 기쁨을 보는 눈과 즐거움을 듣는 귀는 잃어버렸다.

내겐 내가 슬픔을 기대하는 곳에서 기쁨을 보는 친구가 있다. 그는 하느님께 깊이 연결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여행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나는 그가 집으로 돌아오면, 그동안 방문한 나라들의 어려운 경제 사정과 듣고 본 세계의 참상, 불의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그는 세계의 심각한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입에 담지 않는다. 자기가 찾아낸 숨은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 희망과 평화를 가져다준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 이야기, 온갖 시련 속에서도 서로 믿고 돕는 사람들 이야기, 하느님이 일으키시는 사소한 사건에 대해 들려준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에게 전해 줄 만한 흥분되고 거창한 이야기, '신문에서 읽은 새 소식'을 듣지 못해 실망한다. 그는 나의 선정주의(sensationalism)에 응하는 법이 없다. 그냥 "나는 매우 작고 아름다우며 내게 큰 기쁨을 주는 무엇을 보았어." 하고 말할 뿐이다.

탕자의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이 가져다 준 기쁨에 자신을 몽땅 내맡긴다. 그한테서 배워야 한다. 현장에 숨어 있는 진짜 기쁨을 '훔치는'법을 익혀, 그 기쁨을 훔쳐 모두가 보도록 높이 들어 올려야 한다. 그렇다.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과 평화롭지 못한 곳이 많으며 아직도 고통을 겪는 많은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가던 길을 돌아서 집으로 가는 사람들을 보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서로 용서하는 순간을 목격하며 희망을 본다. 모든 것이 좋아지기를 마냥 기다릴 때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작은 일들을 축하해야 한다. 나를 겁주는 깊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선택하고 죽음의 힘이 기승 부릴 때 생명을 선택하며 온갖 거짓으로 에워싸인 곳에 서 진실을 선택하기!

것이 진정한 수련이다. 지금까지 나는 인간 세상의 아프고 괴로운 현상에 마음을 쏟으려는 유혹에 넘어가, 사소하지만 분명하고 진실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기쁨과 즐거움에 눈이 멀어 있었다. 기쁨을 선택하면 그 보상으로 기쁨을 얻는다. 나는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살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는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괴로움 속에 있는 작은 기쁨과 즐거움을 찾기로 마음 먹을 때 삶은 축제로 바뀐다. 기쁨은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며 더 큰 기쁨을 위한 기름진 토양으로 바꾸어 놓는다.

헨리 나우웬 (1932 – 1996) ─ 탕자의 귀향

숨은 기쁨 ─ 부정하지 않은 슬픔에 대해서...

Thursday, November 7, 2013

은 꽃이 핀다고 해서 봄에 감사하지 않고
나무는 잎이 진다고 해서 가을을 원망하지 않는다.
─ 신흠 (申欽, 1566~1628) 

린아이가 패달을 구르며 신나게 달린다. 아이가 탄 자전거는 뒤에서 누군가 아이를 위해 밀어주어 앞으로 가고 있다.

아이는 자기가 탄 자전거가 왜 앞으로 가는지 원리를 모른다. 만약 알고 있다면 패달을 열심히 구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이는 뒤에서 밀어주는 누군가에게 감사해 하지 않는다. 아이를 밀어주는 누군가도 아이에게 감사함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즐길 수 있다. 그 즐거움의 본질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연스러움이란 ... 그런 것일지 모른다. 너무도 당연해 감사함도 원망함도 너무 어색해지는 그런 것들...

... 가을을 원망하지 않는다

Thursday, October 17, 2013

2013년10월16일 연중 제 28주간 수요일 복음묵상

희는 불행하여라!” (루카11,44)


복과 불행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 거리를 한 번 재보도록 하자.
불행(不幸)이란 글자 그대로 ‘행복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이 말은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말과 같다.
반대로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붙어있으니 거리는 ‘제로’로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행복과 불행의 거리는 무척 큰 것처럼 보인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는데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쉽게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행복과 불행은 늘 같은 자리에 있다.
하지만 우리의 어리석음은 조건을 먼저 생각한다.
그리고 그 조건이 채워지도록 모든 힘을 기울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불행은 무엇인가?
조건이란 쉽게 말해서 “그렇게 된다면”을 뜻한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렇게 된다면’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행복과 불행은 조건 이전에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한테 불행한 이들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들은 누구였던가?
그들은 왜 예수님께 불행한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들어야만 했을까?
그들 역시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믿는 길을 채우고자 달려왔을 것이다.
그리고 얻고자 한 것들을 얻었을 것이고, 얻은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이 틀렸기에 옳은 삶을 만들 수 없었고, 그럼에도 무엇이 틀렸는지조차 모르는 삶이었다.
그래서 “너희는 불행하다”라는 말을 예수님께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무엇이 참 행복인지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야만 한다.
같은 자리에 있는 행복과 불행 중 당연히 행복을 선택해야 한다.
답은 간단명료하다.
복음적 가치를 선택해야 한다.
그 가치를 선택하고 살 수 있을 때, 그 어떤 조건이나 환경은 의미를 잃게 된다.
이미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억하자.
불행하지 않다면 행복한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며, 어떤 어려움이 찾아온다고 해도 희망을 갖고 기쁘게 복음적 삶을 살아야 한다.


매일의 복음 내용을 통해 글을 올려주시는 [ 김대열 프란치스코 하이에르 (소나무) 신부님 ]께서 올려주신 글이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경쟁을 하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느냐?' 라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대답이 '행복하기 위해서...' 라고 한다.

린 시절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져야 행복할 수 있다고... 그러나 삶의 고난과 삶의 무게가 자신의 마음처럼 될 수 없을 때 특히, 자신이 원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순간마다... 즉, 조건이 하나 하나 실현되지 않을 때마다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 좌절하기도 한다.

신부님의 글처럼 "불행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바로 필요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하기 않기 때문이다. 모두 "행복해지고 싶다" 고 이야기하며 그 행복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탓만 하게 된다. 눈을 돌려 살펴보면 내가 행복하지 않고 행복의 조건이 있다면 나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불행해야 한다. 그 조건도 참 복잡하고 요구사항도 많다. 경제적 조건을 포함하여 자신의 욕심을 반영하는 모든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나 그것은 행복하지 않으려는 핑계일 뿐이다. 세상에는 행복을 선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내가 부족함이라 생각하는 조건을 적당함이라 생각하며 선택한다.
내가 모자람이라 생각하는 조건을 충분함이라 생각하며 선택한다.
내가 불만족이라 생각하는 조건을 흡족함이라 생각하며 선택한다.

행복은 선택의 문제이다.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신부님의 글을 접하고 알 수 없는 가슴의 벅찬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이맘때 나에게 찾아온 병마들은 나에게 행복을 빼앗아갈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들은 순간이었다. 그땐 행복은 절대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행복은 조건이 맞아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의 조건을 버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 선택을 한다면...
그 어느 순간보다 벅찬 행복을 만나게 된다.

불행하지 않다면 행복한 것입니다.

Wednesday, September 18, 2013

연히 뮤지션 중에 '울랄라 세션'을 알게 되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멤버 중에 한명이 위암 말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안타가움과 그 아픔이 느껴졌는데 인터넷 상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떠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암 말기라는데 결혼 준비를 하고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동정심을 이용한 언론 플레이가 아니냐는 익명의 이야기들을 보는 순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모습,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모습, 무엇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자신의 머리를 통해서 검증하려는 모습들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제부터인가 '가난한 마음'이라는 주제가 맴돌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가난함을 벗어나 삶의 방식으로 '가난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잠깐의 생각을 아침마다 해보고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고민하게 된 시기와 더불어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에 연재되는 "프란치스코와 함께 30일 기도"를 보게 되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역시나 무거운 마음으로 머무르게 된다. 그 중 [ 12일째 기도 ] 에 나온 아침 기도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였다.
한번은 그의 제자 하나가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가 가난한 척하는 부자인지 아닌지,
그것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 말에 가난한 사람은 상심하였고
프란치스코는 크게 화를 내며 제자를 꾸짖어,
그 가난한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발에 입맞추며 용서를 빌라고 명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자주 말하였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오.
가난한 사람은 우리를 위하여
몸소 가난해지신 그리스도의 형상이오.” 


람들의 아픔은 머리로 이해되고 자신의 모든 논리적 과정을 이해시켜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처럼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며 가슴따라 그 아픔에 같이 기도해주는 마음만이면 충분할 때가 많다. 때로는 그 아픔에 귀를 기울이며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자신이 너의 아픔에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자신의 머리로 상대방을 증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픈 상처에 손을 넣어 진짜 상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잔인함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가난하다는 것은...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머리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도 버리고 가슴으로 누군가를 같이 아파해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누군가를 공감하고 다가갈 수 있는 선물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가난한 마음은 계산하지 않는다.

Tuesday, July 23, 2013

머를 위한 기도 ─ 성 토마스 모어 (1478-1535)

주님, 제가 먹은 음식을 잘 소화하도록 해 주시고,
아울러 소화하기 좋은 음식도 내려주소서.

제 몸을 잘 살피고 유지할 감각과
육신의 건강을 선사하소서.
주님, 제가 참된 것과 깨끗한 것을
눈여겨 간직할 수 있도록,
거룩한 영혼을 선사하소서.

그리하여 제 영혼이 죄 앞에서 겁먹지 않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갈 길을
찾도록 도와주소서.

저에게 지루함은 낯선 것임을 일러주시고,
불평불만, 한숨 그리고 탄식을 알지 못하는
영혼을 선사하소서.

제가 이 세상에서 “나”만 잘 되기 위해
너무 많이 고민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

주님, 남을 즐겁게 해 줄 유머 감각을 선사하시고,
제 삶 속에 스며있는 많은 행복을 느끼며,
그 행복을 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Prayer for Good Humor ─ St. Thomas More (1478-1535)

Grant me, O Lord, good digestion,
and also something to digest.
Grant me a healthy body, and
the necessary good humor to maintain it.
Grant me a simple soul that knows to
treasure all that is good and that
doesn’t frighten easily at the sight of evil,
but rather finds the means to put things
back in their place.
Give me a soul that knows not boredom,
grumblings, sighs and laments,
nor excess of stress, because of that
obstructing thing called “I.”
Grant me, O Lord, a sense of good humor.
Allow me the grace to be able to take a joke
to discover in life a bit of joy,
and to be able to share it with others.

유머를 위한 기도 - 토마스 모어

Monday, July 15, 2013

네에게 묻겠네. 사람이 습지에서 자면 허리가 아프고 반신불수가 되겠지. 그러나 미꾸라지도 그럴까? 사람이 나무 위에서 산다면 겁이 나서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일세. 그러나 원숭이도 그럴까? 이 셋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거주지' 〔正處〕 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고 뱀은 지네를 달게 먹고, 올빼미는 쥐를 좋다고 먹지.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맛' 〔正味〕 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원숭이는 비슷한 원숭이와 짝을 맺고, 순록은 사슴과 사귀고,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함께 놀지. 모장이나 여희는 남자들이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물고기는 보자마자 물속 깊이 들어가 숨고, 새는 보자마자 높이 날아가 버리고, 사슴은 보자마자 급히 도망가 버린다네. 이 넷 중에서 어느 쪽이 '올바른 아름다움' 〔正色〕 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장자, 제물론」 


름다움은 인간의 주관적 판단의 결과라는 것을 이야기해준다. 만약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물고기도 새들도 사슴도 도망가지 않고 아름다움에 반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름다움이란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기 보다는 반대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주는 환상적 요소를 인식하는 것이 더 중요할 지 모른다.

간이 바라보는 아름다움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움은 대부분 순간적인 것들이 많다. 일시적이고 영원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욕심은 때로는 인간 스스로를 허무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일지 모른다. 우리가 아름다움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되돌아 보는 자세와 더불어 대중적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목받지 않거나 너무도 익숙해 아름다움을 인식하지 못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섬세한 관심도 필요하지 않을까?

결국 아름다움에 대한 허무한 결론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세지도 전해주는 것은 아닌가.

진정한 아름다움...

Wednesday, July 3, 2013

"가 추구하는 것과 동경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바로 네 안에 있다"
─ 앤소니 드 멜로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으로부터 또는 죄의식으로부터 도망친다.
또 위협적인 상황과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러나 그들이 도망치려는 것들은 여전히 그들 안에 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자신 안에 지니고 도망치기 때문이다.

신의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는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고 빨리 달렸지만
뒤돌아보기가 무섭게 그림자도 따라와 있었다.
그는 쓰러져 죽을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며 달렸지만
끝내 그림자를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우리에게서 떨쳐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 안에 있는 것을 떨쳐버리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못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멈춰 서서 우리 안에 있는 그것과 화해하는 것이다.

화해의 첫걸음은, 진심으로 떨쳐버리고 싶은 것을
우리 안에 머물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가치 평가를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그것을 허용해야 한다.
둘째 걸음은, 애정과 관심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토록 거부하던 그것 역시 나의 한 부분이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런데 우리 안에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동경' 또한 자리잡고 있다.
영혼의 고향, 따뜻한 보살핌,
사랑에 대한 동경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동경은 당신을 기억하도록 하느님이
우리의 마음 안에 감추어 두신 흔적이다.
우리가 동경하는 것은 언제나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성공, 사랑, 타인의 인정, 평화,
고향 등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
내 안에 있는 사랑을 인지하기만 하면 된다.

인생의 심오한 비밀이 내 안에 살고 있다면
나의 고향은 바로 그곳에 있는 것이다.

성공이란 또 무엇인가?
어떤 것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떤 것이 나에게 이루어지면 나는 행복하다.
행복 역시 이미 내 안에 있기에 나는
그것을 애써 얻으려 할 필요가 없다.

오직 나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이 행복한 조화에
만족하면서 그 빛을 밖으로 발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게 되면 남들의
인정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앞에서 인용한 앤소니 드 멜로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동경을 정확히 바라보게 하고,
내가 동경하는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멈춰 서서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나는 이 모든 것이 이미 내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리 인생의 가장 심오한 진리는 바로,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동경하는 모든 것이 내 마음 안에 있게 된다.
도망치려 하지 말고,
멈춰 서서 이 진리에 다가가야 한다.


Buch der Lebenskunst 「삶의 기술」
─ 안젤름 그륀 지음 /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그림자

Friday, June 28, 2013

"정은 의심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은 대개 친근한 경험들에 근거하는 법이다. 따라서 그동안 유지해 온 과정을 적용할 때만이 가장 좋은 글을 쓰고, 가장 명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경우엔 박자를 조절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 행복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덧없이 사라지고 말 것들은 이런 신속함을 요구한다. 만일 행인이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하자, 당신은 우선 놀랄 것이다. 잠시 후 그를 관찰할 준비가 되고 보니, 그는 이미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이다. 만일 당신이 이제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생각해 보리라 하고 뒤 쫓아간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인가?" 

─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中

가정은 의심을 초래할 수 있다.

Thursday, June 6, 2013

(漢) 나라 유향(劉向: BC 77~BC 6 기원전인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이 지은 '설원(說苑)'에는 바른 벼슬아치와 그른 벼슬아치를 각각 여섯 종류로 구별해 놓았다. 현대의 정치가 뿐만 아니라 조직이 있는 어떤 곳이나 적용할 수 있는 지혜가 보인다.


그른 벼슬아치 - 6사(六邪)

1. 패신(貝臣)
벼슬은 좋아하지만 공사(公事)보다는 사익(私益)에 힘쓰면서 주위의 정세에만 신경쓰는 신하. 패는 조개를 나타낸다. 숫자를 채우는 신하.

2. 유신(諛臣)
군주의 언행은 무조건 칭송하면서 남 몰래 군주가 좋아하는 것을 갖다 바쳐 군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지만 뒤에 닥칠 환란은 돌아보지 신하.

3. 간신(姦臣)
말 잘하고 낯빛은 좋지만(巧言令色) 어진 이를 미워할 뿐만 아니라 자기 편을 진출시키기 위해 단점은 숨기고 장점만 나열하고, 반대편을 쫓아내기 위해 장점은 숨기고 단점만 나열해 군주에게 상벌을 잘못 시행하게 해서 호령(號令)이 서지 않게 하는 신하.

4. 참신(讒臣)
남의 잘못을 꾸며낼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을 만큼 말도 잘하지만 집안에서는 골육지친(骨肉之親)을 이간질하고 집 밖에서는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신하.

5. 적신(賊臣)
권력과 세도를 장악해 국사의 경중(輕重)도 사문(私門)의 이익을 기준으로 삼고, 당파를 만들어 군주의 명령도 무시하고 자신만 귀하게 여기는 신하.

6. 망국신(亡國臣)
간사한 말로 아첨해 군주를 불의(不義)한 곳에 떨어지게 하고 붕당(朋黨)을 만들어 군주의 총명을 가리고, 옳고 그름과 흑백의 구분도 없어서 군주의 잘못이 국내에 퍼지고 외국에까지 들리게 하는 신하.

바른 벼슬아치 - 6정(六正)

1. 성신(聖臣)
어떤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알아채고 예방하는 벼슬아치로서 군주를 편안하게 하는 신하.

2. 양신(良臣)
사심 없이(虛心) 군주에게 장기적인 대책을 진언하고 성사시켜 군주를 착한 길로 이끄는 어진 신하.

3. 충신(忠臣)
새벽부터 밤까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면서 현인(賢人)을 추천하고 옛날의 덕스런 정사(德行)를 군주에게 권하는 신하.

4. 지신(智臣)
성공할 일과 실패할 일을 일찍 간파해 잘못될 일을 예방하고 구제함으로써 화를 복으로 전환시켜 군주가 아무런 걱정이 없도록 하는 신하.

5. 정신(貞臣)
법을 받들면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되 봉록(俸祿)과 하사품은 사양하고 의복과 음식을 절검(節儉)하는 신하.

6. 직신(直臣)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아첨하지 않고 면전에서 군주의 잘못을 간언해 죽기를 사양하지 않아서 비록 몸은 죽어도 나라가 편안해질 수 있다면 후회하지 않는 신하.


라 혹은 조직에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를 이렇게 정확하게 그리고 빠짐없이 분류한 것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조직 인사나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비추어 생각해 볼 좋은 내용같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충신(忠臣)이나 간신(姦臣) 은 이 중 하나이다. 현대 국가의 행정관료들도 이 분류에 따라 살펴보며 국가 인사에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위직은 바로 그 위치의 잘못된 권한과 횡포만으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보고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원전의 지혜가 이 시대의 귀감이 되고 현대의 지혜와 다르지 않은 것은 우리가 역사와 고전을 통해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벼슬아치

Wednesday, May 15, 2013



혼하는 딸을 위해 아버지가 사위에게 해주는 이야기. 이렇게 멋진 wedding speech 는 처음인 것 같다.

Philip, I want to tell you a story and like all good stories it starts like this...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father and in case you can't figure that out, that's me.
This father had a wonderful little boy. He was very happy.
Then one day, he found out his wife was going to have another baby. 

So I prayed, "Lord if it's Your Will... make her a little girl." And He did.
I was the first person to hold her in my arms.
And I looked at her and said, "Lord make her like her mother." And He did.
She was loving and giving and so good and so kind. 

But then I realized I was getting left out
So I said, "Lord, make her like me." And He did.
She could drive a truck and a tractor. She could load hay and chew tobacco.
Do you realize what you're getting?
But at the same time, she was opinionated, emotional and hard-headed.
So I said, "Lord that's enough of that. Make her like YOU." And He did.
He gave her the desire to serve people. She loves people.
She gave her life to being a nurse. She's brought people back from the dead.
And she's held the hand of people who have breathed their last breath.
He gave her a heart of for missions and she's trekked all over the world.
Pushing canoes up swollen rivers. Laid on the on the floor as bullets whizzed outside.
So she could tell people about Jesus. 

But still something was missing.
So I said Lord, "Make her happy." And she met you.
See that look on her face? I never saw that, until she met you.
And I'm grateful for that.
Today I'm giving you the best thing I have to give.
And I just want you to know before I do that....
how hard me and God has worked to get her ready.
So Philip, as I give her to you, I don't think you'll mind if I give you one more word of advice.
Me and God's worked hard...
Don't screw it up! 

번역 by 몽달이

필립(사위), 이야기 하나 해주고 싶네. 그리고 모든 괜찮은 이야기들의 시작같이...
옛날 옛적에, 아버지가 있었네 혹시 눈치채지 못했을까 알려주지만 그 아버지는 나일세.
이 아버지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다네. 아빠는 무척 행복했었다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아내가 다른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그래서 기도했지, "하느님, 당신의 뜻이 허락한다면 딸을 얻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느님은 이루어주셨지.
나는 그 딸 아이가 태어나 가장 먼저 안아준 사람이었지.
그리고 딸을 보면서 기도했지, "하느님, 엄마를 닮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느님은이루어주셨지.
딸아이는 사랑이 넘치고 따뜻한 아이였고 매우 착하고 인정많은 소녀였지.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점점 소외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네.
그래서 기도했지, "하느님, 딸이 나를 닮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느님은이루어주셨지.
딸은 트럭이며 트랙터를 운전하였고 축사도 돌보고 담배도 재배하게 되었지.
어떤 딸인지 이제 알 수 있겠나? (얼마나 생활력 좋은 딸과 결혼하는지 알 수 있는가?)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고집세고, 감성적이고 완고하기까지 했네.
그래서 기도했지, "하느님, 이제 괜찮으니 딸을 당신을 닮게 해주세요." 그리고 하느님은 이루어주셨지.
하느님은 그녀에게 사람들을 봉사할 열정을 주었고 딸은 사람들을 사랑했다네.
딸은 간호사가 되어 삶을 개척해 갔다네. 딸은 죽음에서 사람들을 살려내기도 했다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네.
하느님은 그녀가 선교를 위한 용기를 주었고 딸은 전세계를 돌아다녔다네.
급류에 카누를 몰고가기도 하고 총알이 날라다니는 곳에서 몸을 피하기도 했다네.
그렇게 딸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다네.
그러나 여전히 뭔가가 부족했네.
그래서 하느님께 기도했지, "딸을 행복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딸은 자네를 만났네.
딸의 얼굴 표정을 보았나? 자네를 만나기 전엔 볼 수 없던 표정이라네.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고맙다네.
오늘 나는 내가 자네에게 주어야만 하는 최고의 선물을 주려 하네.
그리고 자네가 이것만은 알아주었으면 하네.
얼마나 나와 하느님이 현재의 딸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그래서 필립, 자네에게 딸을 주는 오늘 한마디만 더 자네에게 충고하고 싶다네.
나와 하느님이 이렇게 열심히 만들어 놓았으니
망치지 말게나. 

망치지 말게나 ─ Don't screw it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