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8, 2018


퓨터는 기계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대상 objet 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시장에는 내가 쓰는 제품보다 좋은 성능을 가지는 제품들이 나와 있고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 제품으로 정확하게 만들어 내기에는 신경쓸 것이 많다. 그래서 가급적 기성품을 사용하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제품으로 사용을 하다 보면 기계 자체의 결함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사용자의 잘못된 사용이 원인이 되어 기계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컴퓨터를 기계로 표현하면 듣는 사람의 반응에 따라 기계와 컴퓨터를 어떻게 구별하고 있는지 느낌이 온다. 기계를 말하면 보통 단단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무엇으로 공장에서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는 대상을 생각할 수 있고 정밀한 톱니바퀴, 다양한 부품으로 이루어진 정밀시계도 생각할 수 있다. Mechanical engineering 을 기계공학으로 번역하지만 machine 도 기계라고 번역한다. mechanics 는 더 정확하게는 '역학'을 뜻한다. 역학이란 물리학 법칙을 이용한 학문이며 여기에는 물리학을 기본으로 하고 기계장치에 사용되는 유체역학 혹은 수리학 hydraulics 과 같이 기계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는 다양한 힘의 학문을 다루는 분야이다. 그래서 mechanical engineering 은 기계공학이라기 보다는 '역학공학'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익숙하지 않아 차라리 machine 과 mechanics 를 혼재해서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게 되었다.

익숙하게 쓰고 있는 기계가 무슨 뜻인가

뜻하지 않게 기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되고 동시에 machine learning 이 부각되기 시작했는데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기계학습'이라 번역하게 되었다. 사실 machine 과 mechanics 에 대한 혼재로 기계학습과 기계공학이 같은 기계일까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의 경우 기계공학은 우리와 비슷하게 기계공학 機械工業 으로 쓰지만 기계학습은 機器學習 으로 사용하고 있다. 발음 상으로는 기기학습이다. 器는 '그릇 기' 이지만 기계란 뜻도 포함하고 더 나아가 유기적인 조직을 가지는 대상 (예: 신체 기관) 에도 사용된다. 즉, 소프트웨어를 담는 그릇으로 하드웨어로 그릇의 모양도 중요하지만 그릇에 담기는 것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Computer as machine ...

컴퓨터는 가장 대표적인 기기 machine 이다. 공장의 자동화 설비에 사용되는 많은 기계들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기계들은 소프트웨어의 의미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하드웨어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반면 컴퓨터는 자연스럽게 컴퓨터 본체만 가져오면 깡통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컴퓨터는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 - 가장 먼저 컴퓨터를 운영할 수 있는 운영체제라는 소프트웨어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잘아는 마이크로소프트 원도우, 애플의 맥OS 그밖에도 리눅스 유닉스 등이 있고 아주 작은 알람시계에 들어가는 무엇인가도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다. 간단하게 인간의 목적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는 것에는 운영체제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같은 생각으로 핸드폰이란 기계에도 운영체제는 당연히 들어간다.

기계의 하나인 컴퓨터는 하드웨어 만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하드웨어의 성능이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에 부족하다면 성능이 좋은 최신의 하드웨어를 원하게 된다. 어떤 CPU 를 썼는가 메모리는 얼마인지 그래픽 카드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은 바로 소프트웨어를 떠나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하드웨어를 말한다. 게임을 계속 해야 한다면 좋은 그래픽 카드는 당연하고 최고의 성능을 가지는 하드웨어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최고의 그래픽 카드는 항상 10% 미만의 성능만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하드웨어는 사용자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문서 작업만 하고 인터넷을 주로 본다면 최고급 성능의 그래픽 카드와 엄청난 클럭수의 CPU 그리고 바다를 헤엄칠 것 같은 광활한 메모리를 일부분만 쓸지 모른다.

소프트웨어도 사용자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선택된다. 노트북으로 이동하면서 문서작업을 자주하는지 누군가에게 웹페이지나 파일을 제공할 목적으로 컴퓨터를 쓰는지에 따라서 당연히 운영체제는 달라져야 한다. 우리가 인터넷에 접속하는 웹사이트는 '누군가의 컴퓨터'에 접근해서 제공하는 페이지와 데이터를 얻어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서버 server' 는 항상 누군가 어떤 목적으로 접근하는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놀고 있다가 누군가 접근하면 그때 필요한 서비스를 메모리에 올리고 처리하면 그만큼 느려진다. 컴퓨터 자체는 빠르더라도 누가 언제 어떻게 접근할지 대비하고 있지 않으면 그만큼 느려진다. 따라서 서버란 메모리에 가능한 많은 프로그램을 올려놓고 필요할때 빠르게 접근하는 사람에게 서비스를 바로 제공해줄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하고 노트북과 같이 개인적인 용도를 쓴다면 사용자가 노트북에서 쓰는 만큼만 빠르게 실행시켜주고 빠르게 메모리에서 제거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버는 많은 이들에게 서비스해주기 위한 성능좋은 컴퓨터이다.

그래서 컴퓨터의 성능은 단순히 비싼 컴퓨터에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의 성능을 얼마나 잘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지원이 기본이 되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는지에 따라서 알맞은 목적성을 가지는 운영체제를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Mobile as machines ...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두고 다니는 기계는 이제는 스마트폰이 되었다. 주머니에 넣을 정도로 작은 기기지만 그 작은 기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컴퓨터와 거의 동일하다고 본다. 스마트폰이 컴퓨터의 역할을 하기에 아직 부족한 부분은 화면과 입력 편리성 정도지만 스마트폰이 주변기기와 확장하기 편리해지고 주변에 있는 모니터에 연결이 되고 키보드를 같이 가지고 다닌다면 기존에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할 수 있는 작업들은 거의 할 수 있다고 본다. 노트북은 가질 수 없는 통신의 자유로움은 노트북보다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작업을 하는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거의 대부분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작업의 영역을 이미 작은 모바일 기기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다.

두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번째는 초기의 스마트폰이 가진 여러가지 컴퓨팅 능력을 극복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두번째는 정말 우리의 작업이 상당한 컴퓨팅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컴퓨터에서 중앙처리장치 CPU 와 메모리 및 연결을 위한 장치 소위 Northbridge & Southbridge 를 포함하는 작은 사이즈의 장치를 만들어 모바일 기기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초기에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성능을 희생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반도체 집적 기술과 모바일 기기에서 어떤 프로세서를 많이 사용하는지에 대한 연구와 함께 표준화가 이루어지면서 모바일 AP 의 발전은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기술 개발을 하는 사람이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하드웨어의 성능 다른 말로 해서 컴퓨팅 능력 computing power 에 대한 걱정은 이제는 그리 크게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시에 근본적으로 정말 인간이 일상적으로 하는 작업들은 컴퓨팅 능력을 심하게 요구할만큼 필요로 하는 작업들은 아닌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생긴다.


많은 사용자들은 자신의 모바일 기기가 느려지거나 어떤 작업을 하다가 순간 멈추는 장면을 목격하면 반사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 핸드폰을 바꿔야 할 때가 왔구나" 혹은 시간이 지나면 기기는 성능이 떨어져서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컴퓨터의 경우 부품 사이에서의 청결 문제나 접촉 문제 등에 의해서 하드웨어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는 존재하지만 거의 대부분 소프트웨어의 사용 상에서 무리를 주거나 필요 없는데 컴퓨터에 무리를 주는 어떤 요인이 상주하며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돌려 이야기했지만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깔지 않거나 제대로 된 프로그램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기기도 비슷하다. 열에 의해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크게 주어 성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대부분 소프트웨어의 문제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어쩌면 여전히 어느정도 계산 능력을 가지고 일반적인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모바일 기기들이 쓰이지도 못하고 버려지고 더 좋은 핸드폰을 바라는 것은 그냥 실증난 옷을 바꾸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조금 더 좋아 보이는 핸드폰을 들고 사용하고 싶은 것이고 미디어에서는 새로운 핸드폰을 사용하면 지금까지는 할 수 없는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속 자극하고 있기 때문에 버려지는 핸드폰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을 것이다.


Something as machine ...

궁극적으로 기계 machine 를 말할 때 컴퓨팅 능력 computing power 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다. 심지어 디지털 알람 시계도 어느정도의 컴퓨팅 능력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또한 기계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컴퓨팅 능력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물 중 통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요즘 말하는 사물인터넷 (IoT; Internet of Things) 이라 부를 수 있다. 그렇다면 컴퓨팅 능력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복잡하게 설명할 능력이 되지 않으니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정의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싶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차적인 체계와 논리처리할 수 있는 능력

그래서 단순히 기계란 전기가 들어오는 컴퓨터를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DNA 가 생화학 법칙 (자연 법칙) 을 통해서 필요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컴퓨팅 능력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자 시계가 아닌 일반 태엽으로 돌아가는 시계를 바라보아도 시간을 알고 싶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부속품들이 가지는 기계적인 특징 mechanical properties 을 통해서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아날로그 마저도 컴퓨팅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에 말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차적인 체계와 논리' 를 보통 알고리즘 algorithm 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컴퓨팅 능력이란 '알고리즘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다.

화성 탐사선 큐리오시티 Curiosity 는 바퀴로 모스부호를 만들거나 거리 측정을 위한 주행 패턴을 변화시키는 알고리즘을 적용했었다. - NASA Jet Propulsion Laboratory

현실 세상에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은 인간의 불편함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간의 발명품은 인간의 불편함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느끼는 감수성이나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내는 능력은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발명품의 품질이나 효용성은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역사에서 보면 해결책이 좋다고 대중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것이지만 정치 경제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더 좋은 발명품은 역사에 사라지고 한동안 많은 문제를 가지는 발명품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전기 자동차와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각한다. 전기 자동차가 개발된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오래된 일이지만 여전히 낮은 기름값(?)과 내연기관 산업 발전을 위해서 전기 자동차는 만들어졌다가 정책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내연기관이 만들어 낸 다양한 공해 물질과 내연기관 연료를 만들기 위한 높은 석유의존성을 남기게 되었다. 더 길게 보면 무엇이 인류에게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연기관은 쉽게 끊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한 기계가 된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 기계란 인간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작업들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느끼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재료들이 존재한다면 그 재료를 가지고 적절하게 조합해서 만들어 내는 과정은 결국 인간이나 기계의 컴퓨팅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Useless means ...

기계를 사용하는 사용자로 인간은 종종 '쓸모없음 uselessness' 에 대해서 쉽게 말한다. 어쩌면 완제품의 시대 era of ready-made product 에서는 완제품이 제공하는 모양과 기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쓸모없다고 말하는지 모른다. 예를 들어 3G 통신 제품은 지금은 쓸모없는 스마트폰일 뿐이다. 어쩌면 쓰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솔찍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기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두 종류로 구별되기도 한다. 새로운 제품과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모임이 첫번째이다. 새로운 제품 그래서 대체로 뛰어난 제품을 통해서 성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모임이 있고 다른 종류는 고물상같은 느낌으로 버려지고 쓸모없는 제품들의 사용 가능성을 보여주거나 필요하다면 부품으로 분해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모임이다. 개인적으로 후자를 좋아한다. 완제품이 주는 매력적인 성능의 이끌림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많은 경우 우리에게 한계로 다가오는 것은 그만큼 무엇을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제한 통신 요금제를 사용하면 편리해서 좋을 수 있지만 어떤 프로그램 (앱) 이 얼마나 네트워크를 사용하는지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핸드폰에서 어떤 앱을 보면 통신요금이 적용되지 않는 네트워크 환경 (주로 무선랜) 에서 필요한 내용을 받았다가 모바일 환경에서도 통신요금에 영향을 주지 않게 만든 앱들이 있다. 무제한 통신 요금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소위 통신 요금 폭탄을 걱정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제한 통신 환경을 생각하고 앱이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통신이 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바일 통신 환경이 아닌 오프라인에서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앱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더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어떤 환경에서도 쓸모없이 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생각을 하는 개발자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쓸모있음 usefulness 은 절대적인 대상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 얼마나 활용하고 인간이 얼마나 활용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지에 따라 변화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쓸모없는 대상을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Brand new born as ...

예전에 [ 오래된 컴퓨터 활용기 ─ 사라지는 것들에 희망을... ] 글을 통해서 사용하지 않는 노트북을 서버로 만들어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하드웨어 성능이 좋지 못해 일반적 작업에 사용하기 어려운 노트북을 서버로 만들어서 남는 저장장치와 연결해서 집안 내부에서 사용하는 홈 네트워크 서버로 사용하는 내용이였다. 시대가 변화해서 이제 큰 부피를 차지하는 노트북을 이용하지는 않지만 그 노트북에 연결된 저장장치는 거의 15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문제없이 계속 사용하고 있다. 다만 조금 더 적은 공간과 다양한 활용을 위해서 구형 노트북에서 라즈베리 파이 Raspberry Pi 로 바꾸었다. 그러나 여전히 저장장치로 사용하는 외장하드들은 대부분 10년 이상 넘어가고 있는 구형 장치들이다. 그래서 USB 3.0 도 아닌 USB 2.0 속도이고 네트워크도 전설에서나 들을 법한 100Mbps 속도이다. 그러나 활용도에서는 그 어떤 서버보다 더 즐거움을 줄 때가 많다.

소형 컴퓨터인 Raspberry Pi

구형 저장장치를 이용한 서버 뿐만 아니라 몇년전 부터는 핸드폰을 더이상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넥서스 시리즈가 사라지고 이제는 구글에서도 픽셀 Pixel 시리즈를 내놓았지만 넥서스 5X [ Nexus 5X in Júne's Wiki가 2년째 쓰는 핸드폰이다. 2013년쯤 얻은 넥서스 4 [ Nexus 4 in Júne's Wiki ] 도 여전히 잘 쓰고 있는다. 확실히 연산 능력은 떨어지기 때문에 느린 부분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통신도 잘하기 때문에 일종의 사물 인터넷 지휘소 fleet beacon 같은 역할을 하게 두었다. 그렇게 넥서스 시리즈의 다양한 핸드폰을 사용하고 더이상 쓸모없어 버린 제품들을 모아서 기존 운영체제가 아닌 최신 운영체제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커스텀 롬 custom rom 을 설치해서 사용하게 된다. 기기의 특성이나 품질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커스텀 롬 하나만 바꾸어 보면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는 정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롬은 리니지롬 [ Lineage Rom ] 이다.

Lineage Custom ROM 사용이 가능한 기기들

보통 쓸모없어 버리거나 방치한 기기들을 모아서 쓸수 있는 부품들을 모아서 새롭게 핸드폰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혹시나 핸드폰에 새로운 롬을 깔아서 완전히 쓸 수 없게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수 있지만 어짜피 버려진 기기라면 해봐서 나쁠 것도 없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시도하는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것 그리고 그 해결책을 누군가는 가지고 있고 문제가 일어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과정 역시 새로운 탐험이다.

그러나 항상 구형 기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컴퓨팅 능력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잘 구성하고 빠른 서버를 구축했다고 해도 동영상 실행에 필요한 하드웨어가 존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컴퓨팅 능력이 가지는 한계와 극복 방법도 함께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Useless to Useful ...

몇가지 예를 통해서 어떤 과정으로 구성하고 활용할 수 있는지 간단하게 소개하려 한다. 또한 구성하는 과정에 필요한 매뉴얼은 동시에 개인 위키 (영문) 를 통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A. Home network storage ...

클라우드 서비스가 일상적이지만 기본적으로 클라우드는 용량 제한과 속도를 생각해 일정 네트워크에서 사용할 수 있는 파일 공유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필요성을 충족하기 위해 많은 제품들이 만들어진다. 외장하드 형태이지만 네트워크에 연결해서 사용자들이 필요한 자료를 올리고 내려받거나 바로 실행해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제품 제조사들이 만든 앱이나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 그래서 다음 번 펌웨어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구형 노트북을 리눅스 서버로 만들어서 네트워크에 연결해 기본적으로 리눅스가 제공하는 파일 공유 서비스 samba 등을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구형 노트북을 사용하는 방법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손바닥 크기의 라즈베리 파이란 기계를 사용한다. 소형이고 가격도 저렴하고 기계에 사용할 운영체제도 호환성이 좋고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이를 활용한 활용법이 많기 때문이다. 확장성은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모두 가능하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삼바까지 설정하고 나면 설정한 아이디 / 비밀번호를 통해서 다른 컴퓨터에서도 저장장치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위에 링크된 내용들은 개인적인 용도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것이 더 유용할 것 같다.


이렇게 삼바 서버를 설정하고 나면 사용하는 컴퓨터의 필요없는 자료를 백업하거나 동영상과 같이 용량이 큰 자료들은 옮겨 놓고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B. Wish to wiki my own ...

무엇인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을 잘 정리하고 싶을 때 노트를 위한 앱이나 프로그램 (예: 구글 킵 Google Keep, 에버노트 Evernote 나 원노트 OneNote) 와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지만 만약 동기화된 핸드폰이나 노트북이 없다면 다시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지식을 정리하고 소위 집단 지성을 만들기 위해 위피피디아 Wikipedia 를 만들었지만 이런 필요성은 개인에게도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이 한번 설정하고 반복적으로 그 설정값을 적용하고 싶을 때는 어딘가에 적힌 메모에서 반복해서 복사해서 사용하기 보다는 웹에서 바로 복사해서 사용하면 더 편리할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용도로 위키를 만들 수 없을까 싶었다.

웹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위키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위키피디아를 구성하는 미디어위키 MediaWiki [ MediaWiki ] 가 좋은 방법이지만 설치해야 할 서버가 필요하고 필요한 서버를 호스팅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뿐만 아니라 접근성의 문제로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이왕 사용하고 있는 라즈베리 파이를 이용해 웹서버로 만들고 위키를 올리는 것이다. 다만 미디어위키의 경우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서 원래 사용하려는 용도에 비해 무거울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대안을 찾아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지 않는 위키를 올리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삼바 서버까지 설정하는 과정을 그대로 거치고 추가적으로 웹서버를 설치한다. 웹서버로 Nginx (엔진엑스라 읽는다) 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웹서버를 설치하고 나서 기본적으로 필요한 SSL 설정 (보안웹 설정) 을 위해 Let's Encrypt 의 인증서 서비스를 설치하고 등록했다.



이후 나에게 맞는 위키로 생각한 DokuWiki [ DokuWiki ] 를 설치한다. 위키를 설치하고 나서 운영하면서 작업의 여러 변화들이 일어난다. 간단한 설정값을 확인하기 위해 노트 프로그램을 찾거나 다른 웹 서비스에 들어가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위키에 잘 정리된 내용이 있기 때문에 항상 위키에 먼저 접근해서 해당 설정을 찾아내거나 네트워크 관리도 간단한 php 스크립트를 통해서 관리하는 서버가 지금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 바로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음 번에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똑같은 페이지에서 해결방법을 찾았지만 위키에 한번 정리를 하고나면 동일한 문제에 바로 위키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C. Security sensor using phone ...

잘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핸드폰이라도 기본적인 기능은 가지고 있다. 특히 센서 기능은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활용도가 떨어지는 핸드폰은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핸드폰으로 가지고 다니며 사용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집이나 사무실에 두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괜찮은 앱들은 그런 용도를 바로 구현하기 좋은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A 라는 서버에 있는 자료들을 B 서버에 정기적으로 옮겨 놓고 싶을 때 컴퓨터로 그 작업을 생각날 때마다 하는 것이 아니라 동기화 기능을 제공하는 앱 (예: FolderSync) 을 설치해 놓고 A 서버와 B 서버를 등록해서 A 서버에 변화가 생기면 바로 동기화 해주거나 주기적으로 동기화 Synchronization 를 해주도록 설정해 놓는다.

본인이 집을 비운 동안 누군가 집에 몰래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면 사용하지 않는 구형 핸드폰을 이용할 수 있다. 핸드폰에 있는 근접 센서 proximity sensor 를 이용할 수 있다. 문에 핸드폰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하고 핸드폰을 가릴 수 있는 적당한 가림막을 놓아 문을 열면 핸드폰이 가림막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반대로 가까워지게 한다. 근접 센서에 변화가 발생하면 특정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거나 집 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활용하고 싶은 이들의 상상력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런 작업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소위 자동화 앱 (프로그램) 이 필요하다.

전화 통화 중 귀에 가까워지면 화면이 꺼지는 이유는 근접 센서 때문이다.

자동화 앱 (프로그램) 이란 특정 조건이 이루어지면 triggered 정해진 내용을 실행 execute 하도록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 새벽 1시가 되면 알람 소리를 제외하고 모든 소리가 나지않게 한다거나 읽기 위한 앱들 예를 들어 웹브라우저나 책 읽는 앱을 실행시키는 동안에는 화면이 꺼지는 시간을 길게 하도록 하거나 무선랜을 사용할 수 없으면 네트워크 사용량이 많은 동기화 auto-sync 나 다운로드 받는 작업을 중단하도록 한다 와 같이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내용을 자동으로 구현해주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안드로이드 앱은 Tasker [ Tasker ]이다. 이런 자동화 앱을 사용한다면 문에 설치한 핸드폰에서 근접 센서가 변화가 있을 때 집주인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그 이후 자동으로 녹음을 하도록 할 수 있다.

앞에서 설명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순차적인 체계와 논리' 를 핸드폰에서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자동화 앱은 순차적인 체계와 논리를 구현해주기 때문에 사용자는 프로그래밍 능력 ability to code 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Algorithm without programming ...

종종 알고리즘을 프로그래밍 할 수 있는 능력 as a coder 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 '알고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가장 근본적인 능력은 프로그래밍이 될 수 있지만 앞서 본 자동화 앱이나 정리가 잘된 운영체제로 일반 사용자들이 쉽게 쓸 수 있다면 알고리즘은 그 본연의 뜻인 '순차적인 체계와 논리' 로 돌아갈 수 있고 일반 사용자들도 쉽게 자신이 원하는 알고리즘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밍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다양한 범위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즉, 자동화 앱이나 일반적인 설정에서 제시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거나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문제의 더 근본적인 부분을 찾아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부분 프로그래밍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리눅스를 누구나 쉽게 화면에 나오는 안내에 따라서 잘 설치하고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인터넷에 잘 설명된 명령어를 그대로 따라해서 성공할 수 있지만 만약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해결하기 위해서는 리눅스 시스템의 기본적인 내용을 알고 있을 때 더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기본적인 명령어 체계와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면 인터넷에 소개된 따라하기 내용들도 자신에 맞게 응용해서 적용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알고리즘은 프로그래밍으로 해결하는 과정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 체계와 논리를 모두 다 포함하고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에 고민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컴퓨팅 능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수작업으로 확인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컴퓨터가 자료를 읽어내고 자동으로 분류하고 실수없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수작업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길고 실수에 의한 효율성이 떨어지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다. 인간의 불편함은 좀 더 정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에 더욱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알고리즘도 컴퓨팅 능력에 좀 더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프로그래밍을 몰라도 알고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제공한다. 앞서 소개한 자동화 작업 automatic workflows 은 안드로이드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웹서비스에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트위터에 올린 글을 자동으로 페이스북에도 올리게 하거나 내가 유투브에서 좋다고 누른 혹은 특정 리스트에 저장한 동영상을 내 블로그에 자동으로 올라가게 하게 하는 것처럼 웹서비스 사이에서 데이터의 이동이나 저장을 도와주는 서비스이다.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가 IFTTT [ IFTTT ] 이다. IFTTT 은 if this, then that 란 뜻으로 서비스의 이름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안드로이드의 자동화 앱과 동일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이론상으로 기기 내부에서 자동화가 이루어지는 앱과 웹 서비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자동화 서비스를 연결한다면 궁극적으로 거의 대부분이 자동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상상할 수 있다.

IFTTT - IF This, Then That


Lazy makes creative ...

인간의 창의력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 누군가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게으름'이라고 대답하게 된다. 가끔 반복적으로 하는 작업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맘에 드는 음악의 음원을 구매하고 나면 초기에는 어디에 저장을 할까 고민을 하게 되어 일정한 공간에 저장하지 않아서 결국 다시 구매한 내역에서 다시 다운받기도 한다. 클라우드가 보급되고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 늘어나서 음원 파일을 클라우드에 올려놓기도 했지만 클라우드 서비스가 무료 사용자에게 파일 당 용량 제한을 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다시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개인 서버에 저장해서 용량 걱정도 하지 않고 저장하게 되었지만 개인서버에서 매번 연결해서 듣기가 불편하기 때문에 구글 음악 Google Music 에 올려놓고 모바일 기기나 웹브라우저를 통해서 듣게 된다. 그런데 음원 파일을 가수별로 정리를 하고 파일 이름도 내려받은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불편함이 있어서 음원을 앨범이나 가수별로 잘 정리를 해주는 iTunes 를 이용한다. 이처럼 필요에 의해서 다양한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되지만 목표는 하나일 것이다. 그냥 잘 듣고 잘 보관하고 잘 정리했으면 좋겠다.

음원을 받고 나면 거의 동일한 작업이 이루어진다. ① 음원 파일을 내려 받고 음원 파일의 태그 tag 정보를 편집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불필요한 정보를 지워주고 구글 뮤직에 올려도 비 라틴 문자 non Latin characters 를 제대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편집해준다. (mp3tag 를 사용한다.) ② iTunes 를 열어 음원 파일을 끌어 넣으면 자동으로 iTunes 는 음악가에 따라서 폴더를 형성하고 파일명도 자동으로 정리해서 저장한다. iTunes 는 별도로 음원 파일을 관리해 준다. ( 기본값은 %USERPROFILE%\Music\iTunes\iTunes Media\Music ) ③ 내려받은 음원은 앨범 단위로 압축하고 ④ 압축한 파일들은 특정 클라우드 및 개인 서버에 올리고 ⑤ 올린 파일들은 삭제한다. ⑥ 구글 뮤직에 업로드 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iTunes 에 올린 음원을 구글 뮤직에 업로드해준다. (업로드를 위한 프로그램만 실행하면 된다.)


간단하게 여섯 과정 정도이지만 이런 작업들조차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귀찮아지면 음원은 받아 놓고 관리도 안하고 쌓여갈지 모른다. 이런 과정 다 귀찮고 그냥 음원 스트리밍으로 들으면 될 것 아니냐고 하면 별로 할말은 없지만 특정 서비스에 귀속되거나 스트리밍을 통해 발생하는 안 써도 되는 모바일 데이터도 그냥 개인적 취향에 맞지 않다고 하자. 내가 필요로 하는 목적 - 음악을 잘 듣고 싶어요 - 을 이루기 위해 태그도 편집하고 iTunes 에 옮기고 구글 뮤직에도 업로드 하지만 순간 이 모든 것을 맘먹고 하기에 너무 귀찮아지고 하나의 생각이 든다.

"좀 더 편하고 덜 움직일 수 없을까?"

최소한 음악을 고르고 음원은 내려받는 것 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특정 폴더에 음악을 내려 받으면 자동으로 모든 과정을 다 해주어 나는 그냥 음악을 구글 뮤직에서 들을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의 근원은 아마도 귀찮음일 것이다. 그리고 그 귀찮음은 결국 여러가지 찾아보게 된다. 한번 고생하고 계속 귀찮아 보자

① 당장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프로그램 (mp3tag) 를 실행시키고 태그를 편집한다. (사용자 작업: 프로그램 실행 및 편집)
② 편집이 완료된 음원 파일은 iTunes 에 있는 Automatically add to iTunes 폴더로 복사하면 자동으로 iTunes 에 등록된다. (사용자 작업: 복사, 프로그램 실행 필요 없음)
③ 폴더 별로 압축한다. rar 명령어를 이용해서 자동으로 폴더별로 압축 파일을 만들어 놓는다. (사용자 작업 없음) - rar 명령어를 포함하는 스크립트로 폴더 별 압축 파일을 만든다.
④ 압축 파일 *.rar 을 지정된 클라우드와 개인 서버로 동기화 한다. (사용자 작업 없음)
⑤ 동기화 프로그램에서 동기화 이후 압축 파일을 삭제한다. (사용자 작업 없음)
⑥ 구글 뮤직 매니저가 알아서 iTunes 의 변화된 내용을 업로드 한다. (사용자 작업 없음)

동기화 프로그램 GoodSync - 특정 폴더에 변화가 발생하면 동기화를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는 음원을 다운 받아서 MP3 태그를 편집해서 iTunes 의 특정 폴더 (Automatically add to iTunes) 에 복사하면 나머지 과정은 특별히 사용자가 손 댈 필요없이 클라우드에 올려 음원을 백업하는 과정도 구글 뮤직에 올리는 과정도 신경쓸 필요없이 바로 구글 뮤직으로 음악을 즐기면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작업이 필요없는 과정들은 해당 작업이 자동으로 실행되기 위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특정 폴더에 변화가 생기면 자동으로 특정 작업을 수행하게 된다. 참고로 여기에서 동기화 작업을 위해 GoodSync [ GoodSync ]란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 정도만 하면 적당히 귀찮지 않을 수 있지만 이제는 귀찮음을 떠나 더 체계적인 구조를 원하게 된다.


Push all behind ...

적절한 그리고 좋은 프로그램은 인간을 좀 더 게으르고 좀 더 편하게 만들 수 있고 잘 조합을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을 적당한 (혹은 훌륭한) 수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앞의 예를 통해서 음원 파일을 받아서 태그만 편집하고 특정 폴더에 넣고 나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편리함도 좋지만 무엇보다 수작업에서 만들어지는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 더 좋은 점이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그냥 쓸 수 도 있지만 좀 더 욕심이 생기게 되고 귀찮아서 시작한 자동화의 목표는 더 많은 일과 귀찮음을 만들게 되는 역설을 만든다. 좀 더 체계적으로 프로그래밍으로 내가 원하는 섬세한 과정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것이다.

앞의 예들을 통해서 생각해 볼 부분이 바로 자동화 automation 라는 과정 속에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우리는 그래픽 환경으로 이루어져 마우스로 키보드로 작업하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눈 앞에 어떤 창이 떠서 내가 원하는 작업을 실행할 수 있는 화면이 있어야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런 그래픽 환경에서는 사용자가 어떤 입력을 원하는지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용자를 귀찮게 한다. 그래서 알아서 자동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용자 눈앞에 '어떻게 해주세요' 라고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조건이 충족되면 정해진 작업을 알아서 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래픽 환경의 작업은 적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사용자가 원하는 작업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명령어들로 실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그래픽 사용자 환경 (GUI; Graphic User Interface) 와 대비되어 명령어줄 환경 (CLI; Command Line Interface) 라고 부른다. 그래픽 환경이 사용자들이 작업하기 편리할 수 있지만 사용자의 선택을 기다려야 prompt 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반복적인 작업에서는 오히려 더 불편할 수 있다.

명령어줄 환경

예를 들어 여러 파일들이 들어있는 폴더에서 파일명을 일괄적으로 다 바꿔버리고 싶을 때 원도우에서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있다. 파일명 변경을 원하는 파일들을 모두 선택하고 (Ctrl-A) 파일변경 단축키 (F2) 를 누르고 탭 (Tab) 을 누르면 순차적인 번호를 붙이며 변경될 수 있지만 옛 도스 DOS 시절 와일드 카드 문자 wild card characters 로 더 편리하고 유연한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래픽 환경이 편리하다고 보기 어려울 때가 많다. 특히 정해지고 반복된 작업들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은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원도우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명령어를 통해 작업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기능을 더 확장해 사용자가 그래픽 환경없이도 원하는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다. 다른 예로 네트워크 환경에서 새롭게 IP 주소를 받고 싶을 때 원도우 그래픽 환경에서는 네트워크에 관련된 설정 화면을 들어가서 해당 버튼을 눌러 작업을 할 수 있지만 명령어 줄로는 ipconfig /renew 로 명령을 하면 화면을 찾아 들어갔던 작업을 바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리눅스는 그래픽 환경도 제공하지만 주된 작업은 명령어줄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간단한 명령어만으로도 설정 settings 이나 구성 configuration 을 할 수 있다. 외부에서 서버로 접근해서 원격으로 관리하는데 명령어줄 환경은 아주 큰 장점이다. 그래픽 환경이 필요한 경우라면 원격 서버를 화면으로 뜨게 해서 관리해야 하지만 명령어줄은 간단하게 텍스트로만 들어갈 수 있는 터미널로 접속해서 명령어로 거의 대부분을 관리할 수 있다. 원격 서버의 화면을 멀리서 불러오는데 네트워크 속도가 좋지 않다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고 보안 상으로도 불리하다.


Back-front workflows ... 

만약 원도우나 맥에서 일반 사용자들이 하는 작업들을 모두 명령어줄로 해결할 수 있다면 앞서 예를 든 음원 파일의 관리처럼 특정 조건 trigger 이 발생하면 필요한 작업 action 을 실행하도록 하고 작업에 필요한 명령어가 존재해서 그래픽 환경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어떨지 상상해 본다.

안드로이드 기기 안에서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자동화가 광범위하게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아주 섬세한 수준까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평소에 밝기 수준을 낮게 했다가 이북 리더를 실행시켜 읽는다면 화면 밝기를 독서에 좋은 화면 밝기로 유지하고 자동으로 화면이 어두워지거나 꺼지는 것도 끄거나 길게 변경하고 알람도 소리없이 진동만 유지하도록 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용자가 설정하기 어려운 시스템 단위의 설정도 특별한 권한 root 을 가지고 있다면 리눅스 서버와 같이 사용할 수도 있다. 웹서비스와 클라우드 저장 공간은 이러한 개념으로 확장할 수 있다. 클라우드에 저장된 데이터를 특정 웹서비스에 자동으로 처리하게 해서 자신이 원하는 파일 형태로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녹음 파일이 wav 포맷으로 저장되어 있는데 필요에 의해 mp3 로 유지하고 싶다면 파일포맷을 변경해주는 웹서비스를 통해서 자신이 클라우드에 가지고 있는 파일들을 일괄적으로 변환할 수도 있다. 웹서비스 사이에서의 데이터의 교환과 유지도 가능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원도우나 다른 운영체제에서도 비슷한 자동화 작업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동영상을 볼 때는 화면 밝기를 최대로 바꾸고 싶을 수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도우는 기본적으로 전원 프로파일 power profiles 를 가지고 있고 전원에 관련된 설정을 변경할 수 있는 powercfg 명령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조건과 실행을 연결해서 관리할 수 있는 구조가 편리하게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물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명령어들이 있고 powershell 이란 참 괜찮은 도구도 있지만 사용하기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그래픽 환경의 운영체제는 자동화 작업 automatic workflows 이 필요한 환경이 아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반복 작업은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웹에 올리기 위해 필요한 이미지 파일들을 압축해서 용량을 줄이고 올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웹에 올리기 위해 이미지 파일들을 내려받고 이미지 압축을 해주는 도구를 사용해서 압축을 하고 올리면 된다. 이때 다양한 도구들이 있다. 웹서비스도 많아서 쉽게 사용할 수 있지만 해당 서비스에 들어가서 내려받은 파일들을 올려서 압축하고 다시 압축된 결과물을 내려받아야 한다. 이 과정조차도 귀찮다고 생각해서 방법이 없을지 찾아보았다. 쉽게 말해 웹서비스에 접속을 해서 압축을 하고 내려 받는 과정을 명령어로 해결할 수 없을지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방법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인 TinyPNG [ TinyPNG ] 에 들어가면 개발자 API Developer API 를 제공해준다. 개발자 API 를 통해서 특정 폴더에 있는 이미지 파일들을 한번에 압축해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자동화 작업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계할 수 있다.

ⓐ 이미지 파일을 특정 폴더에 내려 받는다. → ⓑ 폴더에 변화가 발생하면 이미지 압축을 위한 명령어를 실행한다. 폴더 내에 있는 모든 이미지 파일을 압축한다. 이미 압축된 이미지 파일이 있다면 더이상 압축이 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다. → ⓒ 압축된 결과물을 블로그 등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다.

품질 변화를 최소로 하며 이미지 크기를 줄여주는 TinyPNG 서비스의 개발자 API

반복적으로 실행되는 작업들은 실제로 사용자의 주의 (혹은 참여) attention 가 필요하지 않다면 컴퓨터는 보여주지 않고 백그라운드 background 에서 작업을 끝내는 것이다. 예전에 웹서버나 데이터베이스서버를 백엔드 오피스 back-end office 라고 부르고 워드나 엑셀과 같은 프로그램을 프론트엔드 오피스 font-end office 라고 부른 적이 있다. 백엔드 back-end 는 주로 기반 fundamental 서비스에 해당하고 워드나 엑셀과 같이 키보드로 입력하고 마우스로 작업해서 사용자가 필요했던 오피스를 프론트엔드로 불렀다. 그러나 이제 자동화 작업이 가능해지고 유연해진다면 사용자가 필요한 작업을 정의 define 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줄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실행해서 돌아가는 것은 background 이지만 실제 작업의 성격은 frond-end 의 내용이기 때문에 백-프론트 작업 back-front workflows 이라 부르고 싶다.


Lean Computing as Practical ... 

이제서야 제목에 나온 Lean Computing (충분한 한국어 표현을 찾지 못해 그대로 영문으로 표현한다.) 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Lean 은 '결핍'이란 뜻도 있고 '기대다'란 뜻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아마도 '군살없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즉, 사용자가 원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을 대기해 놓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작업에 필요한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며 사용하는 것이다. 게임을 주로 하는 사용자와 계산을 주로 하는 컴퓨터 작업을 떠나서 일상적인 작업들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컴퓨터는 이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반증이 이미 많은 스마트폰이 일반 컴퓨터가 할 수 있는 작업의 영역을 포함할 수 있게 되었고 일부는 오히려 스마트폰이 더 장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지역기반이나 모바일 환경 등) 따라서 더 좋은 컴퓨터 기술과 자원을 챙겨 놓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과정이 아니라 적당한 자원을 가지는 다양한 기기들을 통해 컴퓨팅 환경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Lean Computing 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먼저 충족시켜야 한다.

1. 하드웨어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다양한 커스텀 롬으로 하드웨어 성능을 최적화 한다.

안드로이드 초기 버전을 쓰다보면 안드로이드에 대한 많은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드웨어의 문제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지만 소프트웨어 특히 운영체제의 최적화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오래되거나 호환되지 않는 하드웨어는 제외한 여러 기기의 다양한 커스텀 롬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여전히 구형 하드웨어를 돌릴 수 있는 충분한 소프트웨어 개발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LineageOS 와 같은 개발 공간을 보면 5~6년이 넘어가는 기기들도 충분히 쓸 수 있도록 롬을 제공하고 있다. 어떤 기기들은 커스텀 롬을 설치하고 예전에는 볼 수 없던 성능과 사용 편의성을 가져오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2. 자동화 작업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용자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

사용할 수 있는 기기의 충분한 최적화가 이루어졌다면 기기들이 실행해야 하는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동화 작업 환경이 필요하다. 앞에서 본 이미지 파일 압축 과정을 스마트폰에서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도 웹브라우저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이미지를 내려받고 웹브라우저를 실행하고 해당 파일을 웹에 올리고 내려받는 과정을 스마트폰에서 한다면 분명 느리고 불편하고 때로는 원하는 작업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서버에 특정 폴더를 만들어 놓고 해당 폴더에 이미지를 올리기만 한다면 (복사) 자동화 작업을 통해서 특정 폴더에 있는 파일들을 알아서 압축해서 만들어 놓아 준다면 스마트기기는 아주 간단하게 복사할 능력정도만 되는 구형 스마트폰이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의도에서 Lean Computing 의 Lean 이 '군살없는' 뜻이였지만 실제로는 '기대어'라는 뜻도 통하게 된다. 사용자의 모든 작업들을 한 기기에서 하기 위해서라면 최신 핸드폰만이 살아남을 수 있지만 자동화 작업을 잘 만들어 놓는다면 구형 스마트폰도 사용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용 가치란 제품 혹은 기기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기를 어떻게 쓸 수 있는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인간의 상상으로 더 극대화 된다는 사실은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Your Highness, Performance ... 

한동안 고성능 컴퓨팅 High Performance Computing 환경이 주목받았던 적이 있었다. 여전히 중요한 분야이긴 하다. 계산과학에서는 계산하기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어떻게 잘 변환해서 빨리 풀 수 있는 문제로 바꿀지 심지어 그런 것도 잘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 무조건 계산해도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많은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는 분명 빠르게 계산하는 고성능의 컴퓨터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일상 생활에서 사용자들이 필요한 고성능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컴퓨터 하드웨어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해도 부팅하는데 얼마나 걸리는지 얼마나 빨리 파일을 복사하는 성능에 크게 관심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용자의 작업을 관찰해 보면 충분히 자동화 작업으로 금방할 수 있는 작업들을 컴퓨터라는 작업공간만 빌려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충분히 자동화가 가능한 영역이 왜 사용자의 진부한 수작업으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자동화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가능성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영역이 자율형주행시스템이나 바둑같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사용자 영역 앞서 표현한 프론트엔드 front-end 영역에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동화 작업의 가장 큰 장애는 그렇게 자동화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명령어가 무엇인지 그리고 실행하다 생기는 예외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지 exception handling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사용자들은 자동화 실행 과정을 믿지 못하는 것도 있다. 만약 적당한 능력의 인공지능을 가지는 기기가 존재한다면 특별히 모든 기기들이 똑똑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최소한의 작업만 할 수 있는 기기들이라면 적당히 똑똑한 기기와 통신할 수 있는 능력만 존재한다면 전체 네트워크의 기기는 충분히 똑똑해(?) 질 것이라 예상한다.

음성 명령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결국 Lean Computing 의 핵심은 기기들의 최적화도 필요하지만 기기 자체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컴퓨팅 능력이 필요한 문제 해결은 어떤 특정 기기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검색엔진이라는 조금 대화 능력이 떨어지는 아주 괜찮은 성능의 기기가 있지만 개인의 작업 내용까지 구글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구글 내 이미지 파일들을 웹에 올리기에 적당하게 압축해줘!" 라고 명령을 내린다면 지금은 그냥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정도를 검색엔진에서 찾아서 검색 내용만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적당히 컴퓨팅 능력을 가지는 서버를 자신의 네트워크에 놓고 자신이 자주 반복적으로 하는 내용을 자동화 작업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복사만 하면 된다. 좀더 멋지게(?) 구축하고 싶다. 기기에 음성 명령으로

"알파 기기 (임의의 기기)에 있는 이미지 폴더의 이미지 파일들을 솔라 서버 (임의의 서버이름) 이미지 압축 작업에 올려줘"

대상 (기기 및 폴더 이름 등) 을 정의내리면 아마 영화에서 보는 작업을 멋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 구글 어시스턴트 Google Assistant 와 태스커 Tasker 를 연결하면 된다.)


What further next ... 

글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모든 자동화 작업 및 실행 automatic workflows & execution 을 웹으로 올려서 설계할 수 없을까? 하는 내용은 이 글을 통해 소개하기 어려울 것 같다. 웹의 발전 과정을 보면 2차세계대전의 핵개발보다 더 빠른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한때는 웹에서 채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인내심을 요구하고 이래서 '온라인 데이트는 성공할 수 없어'란 한숨을 들었지만 이제는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화 환경 내부에서 여러 개발자들끼리 작업을 해서 웹서비스를 개발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 거의 대부분 사용자 작업은 웹에서 거의 모두 가능하게 되고 개인 컴퓨터에서 필요한 컴퓨팅 능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도 10년 가까이 되는 고물이 되어가는 노트북이 있지만 여전히 Windows 10 을 돌리기도 충분하고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웹에서 하기 때문에 별 무리없이 사용하고 있다. 점점 웹 (클라우드 포함)이나 서버에 컴퓨팅 능력을 의존하게 되기 때문에 사용자가 눈 앞에서 작업하는 컴퓨터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그리 크지 않아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궁극적으로 지금 당장 생각할 수 있는 Lean Computing 의 도착점웹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자동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웹에서 자동화 작업은 오히려 원도우 환경보다 더 수월할 수 있다. 특히 리눅스 서버 환경에서는 많은 개발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명령어줄 환경에서 만들어 놓은 뛰어난 스크립트 나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심지어 대부분 사용에 큰 제한도 없는 오픈 소스이기 때문에 개인적 필요에 의해서는 자유로운 편집으로 개인에게 맞게 고칠 수도 있다. 그래서 원도우 환경과 같은 그래픽 환경보다 오히려 웹 환경은 자동화 작업 및 실행을 위해 더 유리한 환경이라 생각한다.

Lean Computing 에 대한 소개는 마무리하며 앞으로는 웹에서 자동화 작업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왜 점점 개인화되는 컴퓨팅 환경이 필요한지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자동화 작업을 통한 Lean Computing ─ 인간은 왜 기계를 필요로 하는가

Monday, April 2, 2018


간이 흘러도 머리에 계속 남아 잘 지워지지 않는 일은 아주 기억하기 싫지만 상처처럼 남아 흉터처럼 떠오르는 일이거나 큰 충격처럼 남아 정말 잊지 않기를 바라는 강한 의지로 남아있는 일이다. 많은 경우 상처로 인해 남는 아픈 일들이 더 많이 남아 있지만 개인적으로 몇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나는 일이 있다.

어느날 저녁을 먹지 못해 늦은 저녁을 챙겨 먹기 위해 시장 골목에 순대국 집에 들어갔다. 술잔을 기울이는 손님들 사이 한 자리에서 나는 순대국 한그릇 시켜 먹기 시작했다. 조금 배를 채워가고 있는 중 할머니 한분이 순대국 집에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허리가 직각으로 굽어 있었고 할머니의 걸음마다 손으로 다리를 잡지 않으면 안되실 정도로 힘들어 보였다. 할머니는 식당 손님들에게 껌을 팔기 위해 들어오셨다.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셨던 식당 관계자 분들도 이내 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힘든 발걸음에 불편한 표정을 더이상 지을 수 없으셨는지 계산대에 한분이 가셔서 천원짜리 지폐를 준비하시려고 움직이셨다.

대지팡이 들고 걸어가는 꼬부랑할머니 뒤태를 담은 강재훈 사진가의 전시 출품작

그런데 할머니는 너무 힘드셨는지 눈 앞에 보이는 정수기로 가셔서 물 한잔을 받아 마시셨다. 조금은 힘든 숨 뒤에 한잔 물을 드시고는 조금 멈춰 그 자리에서 쉬셨다. 할머니를 본 몇몇 손님들은 할머니를 위해 지갑을 꺼내셨고 나도 잔돈이 있을까 지갑을 꺼내는 순간이였다. 할머니는 손님들에게 다가가 껌을 파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급하게 밖으로 빠른 걸음으로 나가시는 것이였다. 나를 포함해 아마도 몇몇 분들은 할머니의 그런 행동에 놀라기도 했지만 천원 지폐를 준비하러 계산대로 가셨던 식당 관계자분이 가장 많이 놀라셨다. 할머니를 따라 할머니를 불렀는데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더 빠른 걸음으로 나가셨던 것이다. 할머니의 그런 행동을 계속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할머니께서 하셨던 말은 정확하게 들을 수 없었지만

"물도 마셨는데 괜찮다. 염치없이 어떻게 ..." 

란 말을 남기고 식당 밖으로 급하게 나가셨다. 난 사실 순간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물 한잔 마셨다는 이유로 염치없이 어떻게 이 식당에서 껌을 팔 수 있겠냐는 내용으로 할머니가 말씀하셨을 때 사실 어떤 느낌인지 표현할 수 없는 멍한 가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천원 지폐를 챙겨 따라가던 아주머니 뒤로 나도 잠깐 식당 밖으로 나가보았지만 할머니는 힘든 발걸음으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셨을까 싶을만큼 저 멀리 가고 계셨다.

사실 그때도 할머니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굽은 허리와 물 한잔에 '염치'를 말씀하시며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나가셨던 모습은 몇년이 지나도 여전히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염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굽은 허리의 할머니는 항상 내 머리 속에 들어오신다. 가끔 쓰는 말이지만 '염치'란 말은 참 어려운 말이다. 국립 국어원에 의하면 염치/얌치 없다 로 표현하고 얌체란 얌체/염치 없는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표현이라 말한다. 고 해다. 그리고 '염치'를 영어로는 무엇인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아서 사전을 찾아보면 shame 이라 나온다. 그러나 shame 이 염치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좀 더 설명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e attitude of trying to maintain one's dignity or refraining from doing something shameful.

더 어렵다. 인간의 존엄 혹은 체면을 지키기 위한 태도나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한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염치 없다' 표현하는 것처럼 사리사욕보다는 타인을 위해 지켜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조절하려는 모습이 더 가깝다. 그래서 염치란 염치없다는 표현으로 자주 쓰이기 때문에 많은 경우 부정적 느낌이 더 다가오기는 하지만 염치란 말 자체는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어떤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특히 허리 굽은 할머니의 행동을 본 이후 염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친필로 알려진 예의염치

회가 복잡해지고 경쟁사회가 되면서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소위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하겠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고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생각한 태도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쉽게 이해되는 세상이기도 하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통해 더 많은 욕심을 채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사람에게 높고 낮음이 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높은 자리에서 대우받기를 원하는 그 모든 태도들이 인간의 존엄성이나 체면을 지키는 모습인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통해 소위 권위와 위력을 통해서 타인에게 상처를 주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는 사실상 염치란 별로 중요한 덕목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힘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인간의 존엄은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출처: 한국교원신문

체면이나 부끄러움이란 말과 염치란 조금 느낌이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염치, 한자로 廉恥 : 청렴할 렴,부끄러울 치 이다. 부끄러움을 알거나 사람의 체면을 지키려는 태도라고 생각했지만 염치의 염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청렴함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이다.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 속에서 청렴은 자신의 권력과 위치를 통해 탐욕을 챙길 수 있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하나의 덕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모든 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향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태도가 염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SAN FRUTTUOSO, ITALY Christ of the Abyss
낮은 곳 ─ 이정하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삶에서 많은 이들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높은 곳을 동경하며 그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나쁘다 말할 수 없지만 그 과정에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염치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높은 곳에서 인간의 염치를 찾기 보다는 낮은 곳에서 염치를 찾기 더 쉬울 것이란 알 수 없는 확신을 하게 된다. 이정하 시인의 시처럼 '너를 위해 나를 온저히 비우겠다는 뜻' 그리고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는 사랑의 노래에는 자신이 낮은 곳에 있지 않는다면 그 잠겨 죽어도 좋을 사랑은 밀려 오지 않을 것이다.

간에게 낮은 곳이란 그런 의미같다. 낮은 곳에 있어야 사랑도 흘러 내려오고 인간의 아름다움도 내려온다. 염치란 그 낮은 곳으로 향하려는 인간의 태도일지 모른다.

낮은 곳이라도 허리 굽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어 내 삶에 무엇이 소중한지 생각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 낮은 곳으로 내려가고 싶다.


염치 ─ 더 낮은 곳으로 ...

Sunday, April 1, 2018


통 유리창으로 풍경이 다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파리 한마리가 들어와 윙윙거리며 자유롭게 비행하고 있다. 소리가 크게 들렸는지 카페 주인이 다가와 파리가 어딘가에 앉기만을 기다리다가 잡지책으로 잡아 죽였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사라져서 좋기는 하지만 갑자기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 파리는 유리창으로 나가려고 노력했지만 유리창으로 막혀 나가지도 못하고 얼마나 당황하고 있었을까 특별히 유리창 안 실내에서 파리가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단지 어쩌면 우연히 들어온 실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파리가 유리창의 밖에 있었다면 더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잡지 책에 압사당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파리가 죽어야만 했던 유일한 이유는 유리창이 만들어 놓은 공간 중 파리가 있으면 사람들이 싫어할 실내에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만든 것은 인간이 만든 유리창이였다. 파리의 입장에서는 유리창을 인지할 수도 없고 그렇게 구별된 공간 중 자신이 원해서 선택했다기 보다는 우연한 비행의 경로로 실내를 선택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더 넓은 자연에서 더 자유로운 비행을 할 수 있었던 파리에게는 유리창이라는 원하지 않는 공간의 구분으로 인해서 죽음까지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photo by https://www.pexels.com/@danielbendig

잡지에 눌려 죽음을 맞이한 파리를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인간은 이처럼 유리창과 같은 구조로 인해서 생존에 위험을 맞이하는 경우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더욱 근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구조가 인간의 자유를 누릴 공간을 줄이고 심지어 생존에 큰 위험이 되는 경우는 없는지 궁금해졌다. 자연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인간 개인의 자유가 줄어드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렇게 제한된 자유에 대해서 사회는 개인들에게 얼마나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구조가 계속 되어서 인간을 체계적으로 억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파리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유리창이 존재하고 그 유리창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가 억압하는 구조가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Glass Ceiling

전 영부인이자 전 국무장관이자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Hillary Clinton 이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연설에서 나온 장면은 유리천장 glass ceiling 이 깨지는 장면이였다. 유리천장이란 하나의 관용구처럼 사용된다. 그 정의는 다음과 같다.

an unofficially acknowledged barrier to advancement in a profession, especially affecting women and members of minorities.
직업 활동에서 성취를 가로막는 특히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비공식적이지만 잘 알려진 장애물 

유리천장은 말그대로 더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지만 여성이나 민족,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소수자라는 이유로 더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없는 방해물들 특히 사회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편견들을 포함한다. 유리천장의 의미는 다양하다. 유리는 투명하기 때문에 더 좋은 위치가 보이지만 이미 기득권에 의해서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고 그 모습은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막상 그 위치에 오르려고 하면 유리천장 자체가 더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없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보여주기는 하지만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조건과 기득권에 의해서 만들어진 환경에 의해서 오를 수 있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지만 그들이 누리는 좋은 환경은 이미 대중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동일한 능력이라면 직업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 바꿀 수 없는 조건에 의해서 사람들은 더이상 성취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가장 큰 범위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비교해서 동일한 교육 환경 동일 조건에서의 노동에서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임금의 차이도 결국 생활 조건에 차별을 주는 다양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힐러리 클린턴은 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 존재하는 장애물을 국가가 나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유리천장을 깨는 이미지를 통해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유리천장의 종합판과 같은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 에게 패배하였다. 미국 대선 후보정도 되면 대놓고 유리천장을 깨지 말고 차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기는 어려운데 신비롭게도 도널드 트럼프는 그러한 유리천장을 대놓고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끊임없이 만들고 있다는 것도 더욱 신비로운 일이다. 그래서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는 유리천장을 더욱 굳건히 하여 표를 얻은 가장 최근의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유리천장의 정의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비공식적 unofficially 하다는 점이다. 사회의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이 어떻다 해도 차별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그리고 사회가 성숙할 수록 그런 차별이 만드는 사회적 문제가 크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차별을 만드는 유리천장과 같은 비공식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가 대부분 인정하고 때로는 법이나 문화가 만드는 구조들이 인간을 차별하는 경우는 없는지 더 생각해 본다.


Glass Wall

유리창으로 인간에게는 실내와 실외의 구별이 생기지만 파리에게는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도 않고 심지어 인식하지도 못할 것이다. 실내의 파리와 실외의 파리는 우리에게는 구별이 되지만 파리에게는 실내나 실외나 자신들이 날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유리창이라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공간은 실내와 실외로 구별이 되고 실외에서 날아다니는 파리는 억지로 쫓아다니면 죽이려 하지 않지만 실내에 있는 파리는 기회가 된다면 죽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저 미물이지만 파리 사회에서 바라보면 누군가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 형제 혹은 자매의 죽음일 수 있고 파리 한 개인에게는 삶을 마감해야 하는 안타가운 상황이다. 한 생명의 종말이다. 그렇게 한 생명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유리창이 대단한 것인지 그리고 실내와 실외의 구별 이전에 인간이 감히 날아다닐 수 없는 넓은 공간의 자유를 가지던 파리에게 실내라는 공간을 제한하고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는지 파리의 입장이라면 어떨지 그리고 더 확대해서 우리가 그런 유리창에 의해서 우리의 자유가 제한되고 심지어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면 단순히 파리의 생명이 아닌 사회 안에서 인간에게도 심각하게 생각해 볼 문제가 될 것이다.

2017년 1월에 프랑스의 한 농부는 법정에 서게 된다. 그의 죄는 프랑스 국경 안으로 들어온 난민을 도와준 죄였다. 그의 올리브 농장은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워서 난민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지중해를 건너 온 난민들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해주고 도와주었지만 그는 불법체류자를 도운 협의로 법정에 서야 했고 농부 세드릭 에루 Cédric Herrou 는 법원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Al Jazeera

"만약 사람을 돕기 위해 법을 어겨야 한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농부는 사람을 먹여 살린다. 나는 내 일을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도

"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이 위험을 넘어서도록 돕는 것이고, 저 국경이야말로 그들에게 큰 위험"

이라고 말했다. 국경이 그들에게 큰 위험이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에게 위험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난민 혹은 난민이 될 수 밖에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실내에 놓인 파리와 같이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출생지 그리고 난민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난민들의 생존을 도와줄 도움조차도 법에 의해서 해서는 안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국경이나 난민이 만들어질 수 있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아주 초기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결국 위험한 생명을 도와주는 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이 불법이고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법과 국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파리에게 유리창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인종, 성별, 국적 등이 아닐까 싶지만 파리이기 때문에 항상 죽는 것이 아니라 실내의 파리이기 때문에 더 쉽게 죽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인간이 만든 사회 제도가 유리창에 더 가깝지 않을까 그리고 유리창은 인간에게는 비와 바람을 막아주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일종의 보호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 의해서 파리는 실내의 파리와 실외의 파리로 구별되고 실내의 파리는 인간에게 해충이 되기 쉽다. 유리천창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조건과 환경에 의해 차별받는 장애물이라면 유리창 혹은 유리벽은 오히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지만 그 구조에 의해 차별을 받을 수 있는 존재들이 만들어지는 상황이다. 난민을 도와준 사람이 범죄자가 될 수 있지만 그가 정말 죄를 지었는지 물어본다면 누군가는 죄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마치 유리창이 만든 구조에 의해서 실내의 파리와 실외의 파리가 되는 것처럼 동일한 존재이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에 의해서 그 죄인이 되기도 하고 안되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그가 쓰러진 프랑스 사람을 도와줬다면 그는 의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리벽 혹은 유리창 glass wall 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게 된다.

유리창 이론: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구조에 의해 동일한 존재가 상이한 상태에 놓이게 되는 현상


Artificial structure

앞서 설명한 구조 structure 를 언급하면 주로 물리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structure 을 떠올리게 된다. 유리창도 하나의 구조물이 된다. 그러나 유리창 이론에서 구조물이 아닌 구조라고 표현한 이유는 물리적인 그리고 눈에 보이는 구조물보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사회 문화 뿐만 아니라 제도 그리고 가장 넓은 범위로 법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다고 표현할 수 있고 봉건시대의 농노 villein, serf 와 비교하면 당연히 자유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를 표현할 때는 두가지의 개념을 통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자유 freedom 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어떤 방해나 구속이 없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할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른 자유 liberty 는 조금 다른 의미지만 한국어로는 모두 자유로 표현된다. 두가지 자유를 표현하는 말 중에 좋은 예는 나는 말할 자유가 없다 - I have no liberty to speak 란 표현이 있다. 말은 할 수 있는 자유 freedom 은 있지만 말을 했을 때 자신이 가져야 할 책임 혹은 피해 등을 생각하면 자신은 그렇게 말할 자유 no liberty to speak 가 없다고 표현한다. 말을 할 수 있는 발성기관은 정상이지만 그리고 말은 할 수 있지만 말을 했을 때 지어야 하는 책임과 사회적 피해를 생각했을 때 말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유 liberty 는 사회적 가치와 더욱 중요한 인간이 만든 모든 구조 속에서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그래서 아무리 자신의 머리 속에서 욕을 하고 험한 막말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을 했을 때 사회적으로 받을 비난이나 평판이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사회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할 자유 freedom 보다는 해야 할 말만 하는 자유 liberty 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 가정하기 어렵지만 어떤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서는 가족이 죽은 유가족을 향해서 '시체 장사를 한다' 와 같은 막말을 하는 것이 장려된다면 그 세상에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항상 위로받지 못하고 슬픔에서 헤어나오기 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화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 이유는 그런 문화가 존재할 때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이득도 없지만 그런 문화가 가지는 위험성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문화가 모든 면이 합리적이라 볼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융합되는 과정에서 점점 진보한다고 믿을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이 만든 구조란 광범위하게 그런 문화적 요소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제도와 법도 포함해야 한다. 제도와 법은 원칙적으로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항상 그렇다고 그리고 심지어 문화와 조금 다르지만 시간과 사람의 다양성이 많이 융합된다고 해서 더 좋아지고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어려울 때가 많다. 그 복잡성은 인간의 구조가 단순히 인간 사상과 생각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라 본다. 가장 대표적인 가능성은 역시 인간의 기술이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하면 할 수록 그 기술이 가져올 피해와 이득을 정확하게 계량하기 어려울 때가 많고 때로는 기술이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소수의 인간에게만 이득을 주고 다수의 인간에게는 피해를 줄 때도 많다. 그것은 인간이 문화적으로 인문학적 사상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기술을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인간이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이 지켜야 할 할 가치보다 기술이 가져다 주는 당장의 이득이 세상의 모습을 더 빠르게 바꾸기 때문이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이들이 핸드폰을 소지하고 활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핸드폰으로 생각하지 못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어 편리하고 좋아졌다.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집에 카메라를 두고 빈집을 지켜보거나 애완동물의 활동을 관찰할 수 있는 편리함은 주었지만 인간은 그 기술에 비해 제대로 관리하고 보안에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면 인터넷에 연결된 카메라는 자신의 사생활을 너무 쉽게 노출시킬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 인간이 누군가의 사생활을 몰래 보고 이를 악용하는 것이 나쁘다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인식할 수 있지만 기술이 가지는 편리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는 이는 자신의 음침한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타인을 몰래 살펴보는 도구로 사용할 것이다. 이는 문화적인 구조나 인간이 가진 도덕적 규율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일어나는 일이라기 보다는 대중이 기술을 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기술의 구조적인 불완전성이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인간이 인터넷 카메라의 원리와 보안 원리를 이해해서 모두가 자신만의 강력한 암호화 체계와 보안이 잘되는 인터넷을 관리한다면 인터넷 카메라 기술은 많은 이들이 충분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은 항상 그렇게 많은 이들을 이해시키고 확산되지 않고 확산되고 이해할 사람만 이해하도록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삶에서 인위적인 구조는 법과 제도 뿐만 아니라 기술도 포함을 시키는 것이 더 합리적이고 유리창 이론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용하는 많은 기술들 특히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사용할 줄 안다고 당연히 대답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나 악의적인 활동에 의해서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 때가 많다. 너무 밀접하게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용자의 편리성을 강조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하는 입장에서도 똑똑한 사용자가 많아서 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든 서비스 활동이 감시받거나 평가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많은 이들의 글과 그림을 보는 것에 빠져 자신의 개인정보가 얼마나 많이 빠져나가는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가 많고 심지어 자신의 주소록이 빠져나가거나 자신의 사적인 활동까지 수집하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내용이 뉴스로 나와도 순간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몇시간 후에는 다시 접속하는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인간의 기술이 점점 발전해서 인간이 이해하는 속도보다 빨라지면 우선 삶의 모습을 빠르게 바꾸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술에 의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고 그것을 악용하는 비율도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기술이 주는 이득을 자주 접한다. 기술이 발전해 인간은 손하나 움직이지 않고 말로도 전자기기를 제어할 수 있고 택시를 부를 수도 있고 생필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고 알고 있고 그런 삶이 주는 편리함에 대해서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주인의 말을 기다리는 음성인식 기기는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항상 감청할 수 있는 기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유리창 너머 화려한 세상은 계속 지켜보고 있지만 유리창 안에서도 나는 실외에 있다고 믿는 파리처럼 나는 자유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유리창 안에서 감시받거나 자신의 삶의 반경이 제한될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해서는 점점 잊어버릴 수 있다.


Glassified legally

인간이 만든 구조를 생각하면서 다양한 대상을 생각할 수 있지만 우선 법과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법은 우선 영어로 law 라고 말한다. 그런데 자유를 표현하는 영어 개념이 freedom 과 liberty 로 나눌 수 있는 것과 다르게 law 에는 어쩌면 상반될 수 있는 두가지의 뜻이 존재한다. 첫번째는 법이다. 그 법에 대한 영어 정의는 다음과 같다.

the system of rules that a particular country or community recognizes as regulating the actions of its members and may enforce by the imposition of penalties.

즉, 국가나 공동체에서 구성원의 행동을 규제하도록 인식된 규칙의 체계 혹은 구조이며 이를 어겼을 경우에 대비한 형벌을 포함한다.

그러나 두번째 law 는 한국어로 법칙이란 뜻으로

a statement of fact, deduced from observation, to the effect that a particular natural or scientific phenomenon always occurs if certain conditions are present.

관찰에 의해 추론된 사실의 정리 혹은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을 법칙이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영어로 역시 law 이고 열역학 제2법칙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과 같이 자연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자연의 작동 원리도 역시 law 라고 표현한다.

첫번째 법은 상당히 인위적이고 무엇보다 국가 혹은 공동체를 전제로 정의되고 행동의 자유로운 활동보다는 규제되는 것을 더 표현하고 있다. 결국 공동체에서 인식된 법이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정한다면 그것이 법이 된다. 그런 이유로 동시대를 사는 지금도 어떤 나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법에 의해서 여성의 차별이 법으로 정해진 나라도 있고 국가의 법 혹은 성문법 statement 의 내용과는 다른 관습법 customary law 이 더 존중받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어떤 경우든 법은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보다는 제한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혹은 하면 공동체 일원으로 비난받기 쉬운 내용들이 더 많다. 그래서 법은 무엇을 적극 장려한다는 내용보다는 하면 어떤 불이익이 가해진다는 내용으로 인식되기 쉽다. 한국어로는 법과 법칙으로 그 의미를 구별할 수 있지만 영어로는 law 가 법률의 법과 자연의 법칙으로 동일하게 사용된다는 것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아마도 자연이란 존재가 따라야 하는 법이기 때문에 법칙이라 볼 수 있지만 자연의 법칙은 제한하고 통제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인과관계를 찾아내는 단서가 된다. 그래서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법칙은 어쩌면 법칙이 아니라 섭리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자연의 섭리를 이용해서 그 섭리의 내용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내용이 오히려 기술이 된다. 그래서 기술은 중력을 이겨내어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고 지구 대기를 뚫고 우주로 나갈 수 있는 로켓을 만들어 낸다. 자연의 섭리로는 유전에 의한 선천적인 장애를 받아들이도록 하지만 이 또한 유전자 치료로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도전하게 된다. 서양에서는 인간 공동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든 법이나 자연의 법칙도 모두 따라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 기술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법칙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항상 만들어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법률을 극복하거나 이용하면 보통 편법이라고 말하고 자연의 법칙을 이겨내면 이는 기술이라 말한다. 인간이 완벽할 수 없는 가장 큰 약점 때문에 인간이 만든 법률도 완벽하지 않아 이를 이용해서 이득을 얻는 소수가 생길 수 있기도 하지만 어쩌면 당연히 따라야 할 자연의 법칙을 극복하는 기술조차도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는 수많은 부작용에 대해서는 크게 바라보지 못한다. 결국 인간이 만드는 법은 공동체를 위한 내용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는 유리창처럼 장벽이 될 수 있기도 한다.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법률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기 싫고 법률에 의해 피해를 보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좋은 표현이 바로 대의명분 大義名分 이다. 영어로 조금은 의미가 다를 수 있지만 종종 사용되는 표현으로 the greater good 은 대의가 되고 명분은 cause 가 된다. 좋은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이들의 권리 혹은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 더 큰 선 즉, 대의를 위해서 사람들이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the greater good 를 말할 때가 많다. 그리고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대의명분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해야 하는 경우보다는 일부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경우가 더 많음을 알고 있다. 즉, 우리가 양보하고 포기하는 많은 자유들이 어떤 더 큰 선과 이유를 위해서 내용은 잘 알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막히고 특히 법률의 양이 많아지면 그런 경우는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든 법이란 그 특성상 제한 사항과 그것을 어겼을 경우에 대한 처벌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이다.


Glassified technically 

마가렛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는 Payback: Debt and the Shadow Side of Wealth (번역본: 돈을 다시 생각한다) 에서 과학 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Paris Review

모든 과학 기술은 인간의 몸과 마음의 연장이다. 따라서 안경, 망원경, 텔레비전, 영화, 그림은 눈의 연장이고, 라디오와 전화는 귀의 연장이며, 지팡이와 목발은 다리의 연장이다. 이 외에도 더 있을 것이다. 
과학 기술은 인간이 가진 능력을 외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도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능력을 연장시킨다 표현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연장' 이라는 표현으로 신체적 물리적 능력 뿐만 아니라 마음의 연장까지도 포함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앞에서 과학 법칙에 따르지 않고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기술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가렛 애트우드의 과학 기술은 natuaral science and technology 가 아닌 technology 만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번역본에서는 과학 기술로 번역이 되었지만 원문 책은

All human technologies are extensions of the human body and the human mind. 

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 & 기술이 아닌 기술만 놓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종종 과학 기술이 하나의 단어처럼 표현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두가지의 단어는 별도로 놓고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자연 법칙에 따르는 현상을 알아내려는 자연과학 natural science 와 그 현상을 이용하고 극복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연장 extensions 이 되는 기술은 분명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 그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이 기술이 만든 다양한 유리창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것 같은 다양한 기술 용어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기술 용어들은 우선 기술 소비자들보다는 그 기술을 이용했을 것 같은 느낌을 가지는 제품을 소비하는 매력으로 등장할 때가 많다. 여전히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의 정확한 구조와 실현 방법에 대해서 연구가 계속 되고 있지만 가전제품 뿐만 아니라 주식거래와 같이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 구현되지도 않은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되었다고 광고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실현되지 않는 기술이라도 개념만 존재한다면 인간의 마음에서는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떤 기술 하나만 있으면 인간의 삶은 획기적으로 바뀌고 그 바뀐 삶은 항상 행복할 수 있고 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희망이다. 플라스틱이 발명된 시절에도 비싼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혁명적인 재료라고 믿었고 플라스틱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믿었지만 지금 플라스틱이 인간에 이득이 더 많았는지 아니면 해가 더 많은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고 플라스틱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조차도 더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다. 결국 플라스틱이 가져다 준 편리성과 경제성은 인간을 한순간에 매혹시켰지만 플라스틱이 가져오는 환경 문제와 그 환경 문제가 다시 인간 사회에 어떻게 재앙으로 돌아오는지는 여전히 관찰 중이다.


플라스틱 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많은 기술들도 그런 거대한 희망의 크기 때문에 기술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천재보다 자신이 연구하는 기술이 가져다 줄 부작용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현명한 이가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기술은 항상 그렇지 않다. 많은 경우 기술은 문제점을 걱정하며 더디게 진행되기 보다는 이념처럼 종교처럼 빠르게 실현시키는 것을 좋아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아무래도 핵폭탄 개발을 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많은 과학자들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참여 과학자는 당대 최고의 지성이였고 물리학, 화학에서 가장 최고의 과학자들이였다. 그러나 그들의 과학적 업적 예를 들어 원자핵의 구조나 원리 등을 알아내는 업적은 인정받아야 하지만 이를 무기로 만든 기술적 업적은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자폭탄이 거의 완성되고 핵 실험을 하는 단계에서 이를 참관한 과학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만든 엄청난 기술의 결과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다는 살상력보다는 이를 통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더 큰 대의명분에 휩싸여 기뻐했을 것이다. 물론 이 상황에서 기뻐하지 않은 아주 소수의 과학자도 있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거대한 기술의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술은 항상 피해자를 만드는가? 

이 질문에 많은 이들은 그렇다고 마음으로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곧 이어 기술이 만들어 주는 많은 혜택을 강조하게 된다. 그리고 기술은 인간 사회가 원한다면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동체에 해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법으로 막을 수 있지만 기술이 주는 다양한 달콤함은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된다. 어느날 정부가 핸드폰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니 다음달부터는 전면적으로 사용을 금지하고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불법이라고 말한다면 공동체가 순순히 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기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들어와서 오랫동안 머무르며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을 더 길게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마가렛 애트우드의 표현처럼 이미 연장된 extended 인간의 몸과 마음은 쉽게 제거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기술은 완전하게 비가역적 absolutely irreversible 이지 않지만 가역하기에는 너무 완전한 irreversiblely absolute 대상이라 본다. 그리고 되돌리기 어려운 많은 기술의 결과들은 그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이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생산품들을 만든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경제적으로 부족하다면 핸드폰을 쓰지 않아 통신 요금을 내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통신 요금은 하나의 식사를 위한 비용만큼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그래서 이미 기술에 의해 연장된 인간의 삶에서 기술이 만들어 낸 영역까지도 고려하는 현대 사회에 맞는 인간의 기본 권리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없어 교통요금을 낼 수 없고 통신요금을 낼 수 없는 취약 계층들은 그대로 돈이 없으니 당연히 움직이지 말고 전화하지 말라고 한다면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쓸 수 있는 자 / 쓸 수 없는 자 로 구별되어 기술의 사용할 수 없는 소외계층이 아닌 제외계층이 될 것이다. 한 개인이 해결 할 수 없는 기술들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자본이 기술의 사용 가능성을 만드는 거의 유일한 원인이 된다. 따라서 기술을 떠나 현대 사회의 자본 의존성 그리고 기술 사용에 필요한 비용이 증가하면 기술 자체가 아무리 선하고 인간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Colored or Painted glass 

성당의 멋진 스테인드 글라스 stained glass 를 볼 때 교회 밖은 지옥같지만 스테인드 글라스에 의해서 멋진 성인과 아름다운 교회의 역사만 바라보라는 뜻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교회 밖 세상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고 억울한 일들이 가득한데 교회 안에서는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운 이야기만 보면서 세상의 모습을 잠시 잊으라는 배려인가 싶기도 하다. 가끔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처럼 세상 밖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유리창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삶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보다는 보여주고 싶은 어쩌면 보면 싫어할 내용은 모두 다 제거하고 사람들이 보고 즐거워할 것만 보여주는 그런 유리창 말이다. 멀리 생각할 필요도 없이 '눈의 연장'이 된 텔레비전 혹은 언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병에 걸린 주인공도 극적으로 해외 유명 대학의 저명한 의사가 갑자기 난데없이 찾아와서 고쳐주기도 하고 하루 삶이 고단한 주인공의 앞에 갑자기 자신의 미모에 홀딱 반해버린 재벌집 자식이 나타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우연히 만난 많은 은인들은 재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모든 이야기를 그저 현실성 없는 드라마같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드라마란 허구지만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는 장르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드라마는 차라리 환타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Washington National Cathedral

우리가 볼 수 있는 유리창 모두가 스테인드 글라스라면 정말 세상은 아름다울까 아니면 현실은 무시하고 내 삶만이라도 아름다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서 행복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의 모든 아픈 현실을 무시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에 따르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대부분 개인의 욕망을 자유롭게 채우면 거의 대부분 공동체의 범죄자가 되기 쉽다. 최소한 현실에서 일어나는 불합리한 피해자들의 고통 그들의 신음소리를 무시하고 살면 어느정도는 편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자기 먹을만큼 살고 자기만을 위해 살면 된다.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저』 에서 '성안의 사람들'이라 표현된 소위 대기업에 직장을 가질 수 있거나 이미 일정 부를 대물림 받을 수 있어 경제적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스테인드 글라스에 둘러쌓여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더 행복할 것이다. 언론이 다양해지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언론이나 미디어를 소비하는 이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 현실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의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자극적이고 화려한 내용 contents 에 더 소비하게 된다. 그래서 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다양성을 대변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진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해줄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스테인드 글라스에 민중을 갇히게 하려 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찾기 때문이다. [ 참고: 거칠어 지는 언론 - 미디어의 그레샴 법칙 ]

한국 사회 특히 정치에서는 '색깔론' 이란 표현을 종종 들을 수 있다. 상대방을 정치적 적으로 간주하고 대중들이 싫어하는 대상으로 단정지어 말한다. 그래서 색깔론으로 효과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는 짧고 명료해야 한다. "김아무개는 빨갱이다." 라고 말해야지 효과적이지 "김아무개의 정치철학은 우리 사회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사회민주주의를 강조하고 심지어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상을 연상시키는 ..." 이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색깔론은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아주 간결하고 명확하고 심하게 부정적인 단어만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런 공격을 받은 점잖은 정치인은 반박한다. "그런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지 마세요" 그러나 이 표현은 결정적으로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색깔론 공격을 하는 사람이 색안경을 썼다면 세상사람들이 색깔있게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없을 것이다. 그래서 효과적인 색깔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색안경을 쓴 사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공격하는 이와 같은 색안경을 쓰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색 유리창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다수가 색안경을 끼고 있다면 그 색안경을 벗을 수 있도록 해주거나 자신을 감싸고 있는 색 유리창을 깨야 한다. 농담같지만 우리 사회에 가득한 수많은 색 유리창(안경)을 어떻게 깰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깨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공동체의 지도자가 가져야 할 요건으로 포르투나 fortuna, 비루트 virtu, 네체시타 necessita 을 강조했다. 포르투나는 운 혹은 운명이고 비루트는 덕 virtune 이라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virtune 이란 말 조차도 어원은 남성을 뜻하는 vir 에서 나왔고 힘이란 뜻이 더 강조된다. 즉, 운명에 의해 결정된 인물이 힘을 가지고 공동체를 이끌어가야 하고 네체시타는 시대가 필요한 정신, 혹은 시대에 적합한 행동 그리고 요즘은 시대정신 zeitgeist 을 강조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올바른 도덕적인 군주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공동체의 선을 위해 효과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내용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다양성을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면 시대정신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라기 보다는 소수의 욕망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 힘과 네체시타를 강조하는 경우 공동체는 거대한 방향성을 가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런 네체시타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지도자들은 다양한 색 유리창을 통해서 사람들이 봐야하는 다양성의 색이 아닌 지도자가 강조하는 하나의 색 혹은 소수의 색만으로 보도록 강요받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색 유리창 안에서 갇혀 살아가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세상에 존재하는 무지개 색에 대한 인식도 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나중에 무지개색을 보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부정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힘을 가진 (권력을 가진) 이들이 하나의 정확한 결론을 낼 때는 우리가 색 유리창에 갇혀 있도록 원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예전에는 합리적이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 성스러운 군주를 믿을 수 밖에 없지만 지금 시대는 다양성의 목소리와 다양한 색의 조화를 기대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합리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완전한 능력을 가진 인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한민국은 모든 국민들이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며 경제를 살릴 수 [ 참고: 사람들은 조금씩 병들고 경제는 살아나고... ] 색안경 속에서 제대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한 경험도 있다.


당장 앞에 보이는 모습이 화려하고 마음에 든다고 해도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많은 유리창이 존재할 때 우리의 삶은 왜곡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조차도 잘못되어 그 잘못된 시선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발전되어 모니터에 보이는 심지어 VR 헤드기어에 보이는 모습들이 사실같다고 해도 정확한 것은 사실이 아니다. 유리창이 투명하게 현실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도 한번쯤은 내 앞의 유리창이 어쩌면 색 유리창이나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 유리창이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 유리창 안 실내가 분명 실외보다 안전할 수 있지만 가끔은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직접 가볼 필요도 있다.


Build or Break glass 

유리창이 만든 실내와 실외 그리고 그 안에 놓인 실내의 파리의 운명으로 별 생각을 다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의 운명처럼 인간 사회에도 인간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 놓은 구조들에 의해서 인간 스스로 파괴되거나 인간의 권리조차 무시당하는 경우도 생각했다. 또한 그렇게 만드는 장애물 같은 구조들을 만들어 내는 것 중에 법이나 기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결론은 어쩌면 아주 간단하다. 우리의 삶을 방해하는 구조같은 유리창을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깰 수 있는지 그리고 꼭 깨야 하는 것인지 묻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만든 다양한 구조들은 처음부터 '인간을 파괴하고 억압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을 두고 만들 수 없다. 그런 경우 공동체가 허락하지도 않을 것이고 심지어 실체적으로 파괴와 억압을 위해 만들어진 구조조차도 항상 권력은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색안경을 쓰게 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인간을 위해 잘 작동하는 구조라고 해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부작용으로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우도 많다. 역사에서 권력이 만든 색안경을 스스로 벗어내고 깨는 작용은 일종의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이 심어놓은 유리창으로 구별해서 적과 아군을 정하고 적은 억압하고 아군은 유혹하는 과정을 과감하게 벗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그 억압을 당하는 현실을 볼 수 있도록 색안경을 벗어내는 과정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혁명의 시작은 누군가의 큰 희생이 알려지면서 붉은 색안경조차도 피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색안경을 버려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과정이 혁명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반면 완벽해 보이는 권력이라도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충분히 필요하고 아무런 문제조차 없는 것이라도 종종 인간을 파괴하는 경우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많은 경우 초기의 선한 목적과는 상관없이 권력을 가진 주체가 바뀌면서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만든 경찰저지선 (폴리스라인) 을 볼 수 있다. 경찰저지선을 정하고 운영하는 것은 경찰의 몫이지만 시위조차 할 수 없도록 경찰저지선을 만들거나 경찰차로 도로 통행에 방해가 되는 정도로 과도하게 만들어 놓고 경찰저지선을 어기는 사람들은 무관용 원칙에 의해 죄인이 된다면 그때 법은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된다.

과 권위는 정의를 구현하는 목적으로 존재한다. 만약 이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사회가 흘러가야할 흐름을 막아버리는 위협적이고 조직적인 댐이 되어버린다.

─ 마틴 루터 킹 주니어  (1929~1968) [원문 보기]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은 인간의 보호를 위해 만든 유리창이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때는 목적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 유리창을 과감하게 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유리창 안의 실내가 항상 안전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때로는 실외로 나갈 수 있는 흐름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라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규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규제가 인간을 억압할 수 있는 구조라면 규제철폐해야 하지만 규제가 사라진다면 인간은 실내 실외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가 될지 모른다. 자연상태란 자연 법칙이 따르는 상태가 아니다. 이미 사회 안에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일원으로는 그리고 그 공동체에 이미 존재하는 권력 (힘) 과 자본 (돈) 이 지배되는 세상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으로 경쟁해서 자신의 생업은 대기업의 자본으로 밀려 살아남지 못하게 될지 모르고 권력에 의해서 불공정한 거래보다는 부정한 청탁이나 뇌물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가 될지 모른다. 애석하게도 실내에 놓인 파리는 죽음을 당하게 되었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유리창은 실외의 파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서 파리 죽음을 당할 가능성을 낮추는 보호막이 되기도 한다. 즉, 인간의 불공정하고 부도덕적인 모습이 만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법과 규제는 필요하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공정거래법이 있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를 통해서 재벌 자식들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자식들이 아닌) 은 최소한의 자본으로 엄청난 주식을 소유하게 된다. 예를 들어 특정 기업을 만들고 기업의 일감을 대기업에서 몰아주어 이익을 극대화해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다. 만약 규제가 없다면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 없는 재벌일가가 이런 획기적인 방법을 하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모든 재벌들은 이런 식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가져야 할 노동의 대가를 독식하게 되고 가만히 있어도 엄청난 이익을 얻는 불로소득 unearned income 을 가져가게 된다. 재벌은 부를 얻기 위해서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개인적인 양심 혹은 도덕적인 가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방법이 퍼지기 전에 유리창 안에 가둬놔야 한다. 파리를 보면 미친듯이 잡아 죽이는 사람이 실내에 있는데 실외에 있는 파리들이 들어가 죽지 않도록 유리창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의 규제를 설정하는 과정을 단순히 시대의 필요성 (네체시타) 에 의존해서 설정하거나 해제하기 보다는 법이나 규제가 유리창처럼 존재할 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압받을 수 있는지 아니면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인간이 만든 수많은 구조들은 모두 유리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유리창이 인간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도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유리창의 비유로 계속 설명을 한다면

1. 유리창이 존재할 때 얻는 이득과 손해를 투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참여자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한다. 특정 치료제가 일부 환자들에게는 효과를 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국민의료보험제도에 의해서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을 때가 있다. 치료제가 특정 약이 아닌 원래 제약회사가 신청한 임상 효과가 일정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일 때가 있다. 심지어 보험이 되지 않지만 환자들이 비싼 약값을 감당하서라도 쓰겠다고 하지만 약의 처방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정부의 행정이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그 규제에 의해서 피해를 받거나 이익을 얻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당사자들의 소리는 듣지 않고 소위 탁상공론으로 수많은 지식의 색안경을 쓴 학자들의 의견이 크게 반영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특히 이해당사자의 생명권에 관련된다면 이는 의무적으로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본다.


2. 오염된 유리창을 확인할 수 있는 구조적 방법론을 만든다.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등장한 탈진실 post truth 시대에서 가장 큰 저항은 역시 사실확인 fact check 이다. 사실이 무엇이다 알린다 해도 이미 색안경을 쓰고 다니는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실확인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리천장이라는 편견의 벽에 갇히고 색유리창에 갇히게 될 때 많은 피해자들이 오히려 가해자처럼 비난받게 되고 최근의 소위 미투운동 #metoo 의 많은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의 권력과 자본으로 오히려 더 힘든 상황에 놓이는 것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 명확한 결론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색안경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단순하게 인과관계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을 가해자혹은 원인제공자로 만들기 전에 오염된 유리창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들이 만들어 질 필요를 느낀다.

3. 필요하다면 깰 수 있어야 한다. 유리창이 오염되어 닦아 낼 수 있어 투명하게 볼 수 있다면 보호막이 되어 공동체에 이로운 구조가 될 수 있지만 너무 오염되어 더이상 유리창으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외로 나가고 싶은 이들을 막는 장애물이 된다면 그때는 유리창을 깰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마키아벨리가 말한 시대정신 네체시타란 단순히 소수 지성인의 선각적인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무지개의 다양한 색을 보여줄 수 있는 투명한 상태에서 사람들의 생각으로 모으는 과정이라고 본다. 당연히 시간이 오래걸리고 또 당연히 오염되기 쉽다. 시대가 변하고 유리창은 점점 오염되는데 그 유리창을 그대로 놔둔다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유리창을 깰 수 있어야 한다.


Glassy conclusion 

참혹한(?) 압사를 당한 파리를 보고 본 글을 생각한지는 거의 3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건강상의 문제와 여러가지로 블로그를 이어가지 못하는 동안에도 소위 시대정신도 많이 변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촛불 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색안경 속에서 묻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단색적으로 바라보던 사람들 (나를 포함해서) 도 하나씩의 색안경을 벗어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조금은 맥이 없는 glassy 결론이기는 하지만 세상의 혁명은 유리창에 생긴 작은 균열 crack 이 유리창 전체를 깰 수 있듯이 작은 노력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진 결과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시대가 아니라 몰랐던 오래된 그리고 유명한 혁명들 속에서도 유명한 이들의 노력보다 수많은 민중들이 작게는 자신의 편한 색안경을 벗어버리는 행동들로 인해 가능했다고 믿게 된다.

파리의 죽음을 목격한 유리창을 생각하게 한 4.19 혁명 민주묘지 근처 한 카페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어떤 이름의 유리창이 필요한지 생각하다 읽게 된 내용으로 마무리한다.

"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단체에는 양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모인 단체는 양심을 가진 단체이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 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

─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

유리창 이론 ─ 구조의 억압과 보호에 대해서

Tuesday, March 13, 2018

정치인이자 장관이고 현 작가인 분 (이하 갑)이 팟캐스트를 통해서 전했던 전 정치인이고 전 행정인 그리고 현 무직인 분 (이하 을)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갑이 행정부 장관이였고 을은 당시 야당의 대표였다. 국민연금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갑은 당시 대통령에게 백지위임장을 받아 야당 대표 을과 협상을 했었지만 결국 결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 측 갑이 내놓은 안은 삼백오십만명 (350만명) 에게 월 9만원을 지급하는 안이였고 야당은 오백만명 (500만명) 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는 안이였다. 그런데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던 갑이 협상 관계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을이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이다.

"왜 3000억원밖에 차이가 안나는데 우리의 안대로 안 해주느냐"
─ 당시 (2006년 4월 ~ 6월) 야당 (한나라당) 대표 을


그리고 갑은 이에 대해서 "그 때 '이 사람은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며 "협상대표로 나온 사람이 허위보고를 했다하더라도 산수만 할 수 있다면 여야안의 차이를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전했다. 정리를 하자면,

  • 갑의 제안: 90,000 KRW/PERSON·MONTH × 12 MONTH/YEAR × 3,500,000 PERSON ≒  3,780,000,000,000 KRW/YEAR (방송에서는 3조2천억원)   
  • 을의 제안: 200,000 KRW/PERSON·MONTH × 12 MONTH/YEAR × 5,000,000 PERSON ≒  12,000,000,000,000 KRW/YEAR

인데 야당 대표인 을은 이 둘의 차이를 3,000억원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책의 수립 그리고 협상의 과정 사이에서 간단한 산수만 할 수 있었다면 둘의 차이는 3,000억원 차이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단 말이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위해서 시작한 내용은 아니다. 흔히 어떤 정책에 필요한 예산이 얼마이다 말할 때 쉽게 결과만 듣기 쉽다. 아마도 야당 대표까지 할 정도였다면 정책 결정에 있어서 본인 당의 제안과 정부의 제안을 서로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당의 산적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부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협상 대표로 참여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결론을 내렸을 수 있다.

을이 두가지 안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예산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간접비용을 제외한다면 지급 대상 인원수와 지급액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산수를 해서 계산을 할 수도 있었지만 만약 두가지 안의 중요한 요소 즉, 지급액과 지급 대상 인원수를 파악하고 있다면 9만원보다 을의 안인 20만원은 대충 2배 (이상) 정도 차이가 나고 350만에 비해 을의 안인 500만을 비교하면 7분의 10 ( 10 / 7 ) 배 더 많이 소요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을의 안이 12조 예산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대충 4분의 1정도인 3~4조임을 파악할 수 있다.


하기 ... 

영어 표현에 자주 듣는 말이 figure out 이란 말이 있다. 다양한 상황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이란 뜻이 많은 경우이다. figure out 이란 말도 그런 경우이다. figure out 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생각해 내다', '알아내다', '이해하다', '계산해 내다' 와 같이 다양한 뜻이 존재한다. 누군가 문제를 냈는데 잘 모를 때 'I will figure it out' 과 같이 말하면 한번 알아보지란 뜻이고 'I can't figure him out' 하면 그가 누군지 모르겠다 란 뜻이다. 동사 뿐만 아니라 명사로도 figure 는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익숙한 표현으로는 논문이나 책에 나온 도표나 그래프 등을 Figure 라고 부른다. 또한 형태나 모양 등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실체가 있는 모양에도 figure 란 말이 사용된다. 이렇게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figure 의 가장 첫번째 뜻은 수 (number) 혹은 수치 (numbers) 이다. 여기서 수는 의미를 가지는 수를 말한다.

론에서 소개된 일화에서 산수 calculus 로 계산한 것은 12조 혹은 3조 와 같은 계산된 값 value 이지만 수많은 자릿수 digit 모두 계산하지 말고 계산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소만 고려해서 계산하는 것은 산수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가늠하기 (figuring) 이다. 많은 경우 계산하다 혹은 이해하다 생각하다 와 같이 표현하지만 figure out 은 생각의 근거를 숫자와 계산을 통해서 가늠하여 자신의 생각을 결정하는 과정에 더 가까운 표현이다. 따라서 12조의 반의 반토막 ( one quarter) 정도에서 조금 많은 정도가 갑의 안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 차이가 3천억원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즉, 가늠하기를 잘못한 것이다. 즉, 가늠하기 (figuring) 이란 비교 대상과의 차이가 나는 요소를 파악하고 숫자의 규모혹은 자릿수 order of magnitude 가 몇개인지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다.



만약 경우 해외 뉴스에서 백만달러 혹은 천만달러 와 같이 나오면 한국에서만 살았던 사람들 머리 위에는 비슷한 말풍선이 보인다. 바로 자신이 쓰는 통화 가치로 환산하는 과정이다. 자릿수도 다르고 환율도 정확하게 달러당 1,000원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대충 얼마정도인지 파악하려고 한다. 달러는 1,000원에서 1,200원 정도로 생각해서 쉽게 계산하고 자주 나오기 때문에 익숙할 수 있지만 오만달러라고 하면 얼마인지 쉽게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오만달러를 머리 속에서 50,000 으로 숫자로 늘어놓고 여기에 1,000 혹은 1,200 을 곱해서 50,000,000원 으로 계산해서 오천만원에서 육천만원 정도로 생각한다. 순간 육백만불의 사나이는 비싼 놈일까 싼 놈일까 고민하게 된다. 우선 숫자가 아닌 '육백만'는 몇 자릿수일까 궁금해진다. 6,000,000 이기 때문에 달러당 1,000으로 계산하면 6,000,000,000 이 된다. 대충 60억 정도이다. 숫자를 표현할 때 6000000000 이 아닌 6,000,000,000 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이 쉽게 가늠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수를 막기 위한 아주 괜찮은 표현이다.

달러를 많이 쓰다 보면 환율을 가늠하는 방법은 조금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육백만불이라고 하면 육백+만 으로 나누어서 600에서 한 자릿수를 빼고 억을 붙이기 시작한다. 즉, 바로 육백만불은 60억이라 생각하고 칠천오백만불이라면 칠백오십억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억단위의 큰 돈이야 그렇게 생각하지만 해외여행을 가서 밥값이 45불이 나왔다고 하면 내가 먹은 식사에 적당한 가격인지 아닌지 고민하며 환율을 적용한다. 계산기를 꺼내 계산해본다. 오늘의 환율에 적용해서 계산할 수 있지만 비싼지 가치 판단을 하기 위해 십의 자리나 일의 자리는 중요하지 않다. 환율의 변동에 의해서 45불은 항상 변동된다. 5만원이 넘지 않을 수도 있지만 5만원을 넘어 환율이 달러당 환율이 1,200원 이상이면 5만5천원이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45달러는 단순히 45,000원으로 생각한다. 환율은 국가 대 국가의 가치의 변동이지만 현지 물가를 고려한다면 45달러는 지속적인 가치로 정해진 값이다. 다양한 문화 경제 및 시장의 환경에 맞게 정해진 값이다. 십진법에 모두 익숙해진 인류에게는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1달러는 항상 1,000원이라고 생각하고 현지에 적응하는 것이 더 편할 때가 많다.

농담같은 이야기지만 해외에 가면 소주가 비싸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소주는 현지 화폐 가치로 20달러라는 것이다. 미국에 가면 미화 20달러 (USD) 이고 싱가포르는 20싱가포르달러 (SGD) 호주에 가면 20호주달러 (AUD) 란 이야기다. 소매점에서 쉽게 찾을 수 없기에 한국 음식점을 중심으로 판매되기에 가격이 다소 높긴 하지만 15~20달러 사이에서 판매가 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시장의 수요 공급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만 십진법의 묘수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7.99 달러라고 판매하는 음식은 판매자가 한국이라도 만원 정도 하는 가격으로 맞추기 위해서 정한 가격이라기 보다 단지 8달러 정도라는 10달러가 되지 않는 가격이라는 점을 더 고려했을 것이다. 2006년에는 1 싱가포르달러 (SGD) 는 600원이라 생각하고 계산했다. 그러나 현재는 환율은 1 SGD 당 815원 (2018년 3월 초) 정도이다. 거의 30% 이상이 상승하였다. 싱가포르달러로 돈을 벌어 한국에서 소비하는 사람이라면 이득인듯 보이지만 싱가포르에서 거주하는 사람에게는 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싱가포르의 물가가 상승했다면 실질 수입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가늠하는 작업은 정확하게 계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만 확인한다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figuring 의 가장 첫번째 기능은 정확하게 계산하는 수가 아니라 내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중요한 덩어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자릿수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즉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크기 magnitude 에 따라 수를 인식하는 것이다. 화폐 경제에서도 십원짜리 백개가 부피가득 있다고 해도 결국 만원짜리 종이보다 가치가 덜 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미 만원이 가지고 있는 자리수 order of magnitude 가 다르기 때문이다.


기 ... 

온도를 나타내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섭씨 (°C) 이다. 섭씨는 스웨덴 천문학자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가 제안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물의 어는점과 물이 끓는점을 100등분 한 방법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물의 삼중점을 0.01도, 1 기압에서 물의 끓는점을 100도로 정하여 사용한다.) 제안한 사람 이름이 셀시우스라서 중국 사람들은 셀시우스씨 (Mr. Celsius) 가 제안한 것이라 해서 섭씨 (섭氏) 라 이름 붙였다. 많은 국가에서 많이 사용되기도 하고 국제 표준이기도 하기 때문에 섭씨 25도라면 어느정도 날씨인지 섭씨 영하라면 춥다는 것은 바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날씨는 다른 온도 방법을 선호한다. 역시 제안한 사람이 독일 출신 물리학자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Daniel Gabriel Fahrenheit) 이기에 파렌하이트씨라 화씨가 되었다. 온도를 처음 배우면 단골처럼 시험문제에 자주 나오는 문제가 바로 섭씨와 화씨 변환 문제이다. 화씨 40도는 섭씨 몇도인가? 와 같은 문제이다. 문제는 수백번 변환해도 화씨 40도가 따뜻한 온도인지 추운 온도인지 느낌이 잘 안온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히려 화씨에 익숙한 사람들은 섭씨의 온도가 더 어색하다.

섭씨 (파렌하이트) 본인이 얼마나 그 유용성을 생각하고 제안했는지 모르지만 화씨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체온과 비교하면 더 직관적이다. 인간 성인의 정상 체온은 보통 36.5 ~ 37.2 정도이다. 이를 화씨로 변환하면 97.8 ~ 99 이다. 저체온 영역은 35도 이하라면 화씨로 95이다. 열이 동반되는 경우 보통 38 °C (100.4 °F) 이상 관찰하게 된다. 직관적으로 100을 기준으로 해서 생각하면 얼마나 편차가 존재하는지 생각하면 된다.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화씨 1도 올라가는 것은 섭씨 0.556 도 올라가는 것이다. 즉, 화씨는 섭씨보다 작은 온도 상승을 표시한다. 예를 들어 체온이 섭씨 0.556도 올라가면 화씨는 1도 올라가는 것이다. 온도 변화를 민감하게 관찰해야 하는 화씨가 더 유용할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화씨로 날씨를 알려주면 간단하게 100을 기준으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생각할 수 있다. 화씨 0도는 섭씨 -17.7 정도이다. 어느 정도 중무장을 하면 그래도 견딜만한 온도가 아닐까 싶다. 결국 화씨로 표현하면 인간이 활동하는데 추운 한계와 더워 죽을 것 같은 한계를 통해 비교할 수 있다. 화씨 50도는 섭씨로 10도 정도이다. [ 미국만이 거의 실질적으로 mile/Fahrenheit 의 UK 도량형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기사 - Why Americans still use Fahrenheit long after everyone else switched to Celsius ]

금은 어려울 수 있지만 편차 가늠하기의 좋은 예는 유체역학에서 볼 수 있다. 유체 fluid (流體)는 고체에 비해 형상이 일정하지 않아 변형이 쉽고 자유로이 흐를 수 있는 상태이다. 가장 대표적인 액체, 기체 그리고 플라즈마와 고체 중에서도 흐름이 존재하는 일부 고체도 유체이다. 이해하기 편하게 기체만 생각해 본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비행기가 난류 turbulence 를 만나서 기체 airframe 가 흔들릴 수 있으니 안전벨트를 매달라고 한다. 난류는 유체가 가지는 상태 중 하나이다. 유체는 층류 laminar flow 와 난류 turbulent flow 로 구별될 수 있다. 층류란 유체가 진행 방향을 따라 층을 이루며 진행하는 흐름으로 안정적 형태를 보인다. 반면 난류란 전체적인 진행 방향에 비해 유체의 흐름이 혼란스럽고 변화가 심한 흐름이다.

출처: https://www.nuclear-power.net/ 강의 노트 중 


유체의 흐름이 층류인지 난류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직접 경험할 수도 있지만 이를 가늠하는 방법으로 레이놀즈 (Osborne Reynolds) 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수를 제안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붙여 이를 레이놀즈수 Reynolds number 라 부른다.

출처: https://www.nuclear-power.net/ 강의 노트 중 

복잡한 수식을 떠나 유체가 앞으로 진행하려는 힘과 진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힘의 비율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즉, 유체가 앞으로 진행하려고 하는 힘 (관성력 inertial force) 이 강하다면 진행할 것이지만 유체가 흐르는데 방해가 되는 힘들이 존재한다면 이와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유체의 행동이 결정될 것이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방해가 되는 힘이라 표현했지만 레이놀즈 수에서는 이를 점성력 viscous force 라 부른다. 간단한 예로 점성 viscosity 을 생각하면 끈적한 꿀이 물보다 덜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레이놀즈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레이놀즈수가 가지는 유체역학적 의미가 아니다. 두개의 대립된 요소를 분자 분모에 넣어서 그 비율을 통해서 우리에게 의미있는 수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의의 물성 material property 를 열거해서 얻어내면 되는 것인가? 비율의 편차를 찾아내는 방법에는 다소 직관적이지만 아주 논리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수식의 물성들이 나타내는 단위 unit 를 살펴보면 분자 분모 모두 동일하다. 즉, 분자 분모는 단위로 표시하면 모두 소거되어 레이놀즈수는 단위가 존재하지 않는 수가 된다. 이를 무차원수 dimensionless number 라 부른다. 무차원수 특히 레이놀즈수는 유체의 흐름 특성을 수로 표시하지만 분자 분모의 요소들은 서로 동일한 차원을 가지는 물성이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레이놀즈수와 같은 무차원수는 우리가 특정 대상의 특징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좋은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무차원수는 찾아보면 우리가 어떤 대상의 상태를 구별하기 위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씨 온도와 같이 의학적 의미에서 편리성을 줄 수 있는 +/- (가감)의 편차가 대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무차원수와 같이 분자/분모 로 표현하여 비율 (ratio) 로 표현하여 이해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많은 무차원수는 주로 유체역학에서 사용되는 듯 보이지만 그 응용은 다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초반 대규모 항만 컨테이너 물류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무차원수의 아이디어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 문제는 항만에 들어온 컨테이너의 체류시간 및 긴급도 등에 따라서 컨테어너의 위치가 최적화되지 않았다. 무차원수의 아이디어를 통해서 컨테이너가 가지는 다양한 속성을 통해서 무차원수를 만든 것이다. 분자에는 컨테이너가 빨리 나가야 하는 요소를 모으고 분모에는 오래 머물게 되는 요소를 모아서 무차원수를 만들었다. 대상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대상의 속성을 구별할 수 있는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정리하고 이를 정리하고 이를 계산하는 방법은 인간의 직관적 이해 이상의 다양한 결과를 만들어 준다.


늠하 ...

2012년 대한민국 대선 토론 과정에서 모 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향해 질문한 내용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 내용은 당시 야당 후보는


"전○○ 합동수사본부장에게서 받은 6억 원이면 (이때 시세로) 은마아파트 30채를 살 수 있었다"

라고 질문했다. 이 질문이 기억나는 이유는 6억이란 돈이 아니라 당시의 시세를 통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아파트 30채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서상 은마아파트라는 상징성이 가지는 공감되는 가치를 통해서 당시 6억원이란 돈이 상당히 큰 돈임을 바로 느끼게 해주었단 점이다. 많은 언론은 이에 대해서 정말 6억원이면 당시 은마아파트를 30채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사실(?) 검증을 했는데 평수와 매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평균 매매 가격을 고려하면 당시 6억원으로 은마아파트는 30채가 아니라 29채까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2년 시세 기준으로 약 192억여원이다. 실제로 은마아파트가 현재 얼마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아파트가 가지는 의미와 그 가치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공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6억원이라 강조했다면 6억이 가지는 현재가치를 생각하며 그 가치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아파트 30채가 가지는 가치의 크기는 분명 규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설의 은마아파트 단지

문의 예술성 art of question 이 더 뛰어난 이유는 과거가치와 현재가치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짜장면이나 자동차와 같은 대상이 아닌 물가에 비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뛰어오른 주택 (아파트) 을 통해 비교했다는 점이다. 만약 1979년 기준 짜장면 가격 (인상폭이 높은 시기였다고 한다.) 1,200원 기준으로 생각해도 5십만 그릇이라고 말한다면 지금 가치로 20억이다. 결국 서민과 가장 친근하다는 이유로 짜장면 몇그릇으로 질문을 했다면 질문의 의도와 다르게 별것 아닌 것이 되어버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가치를 가늠하는데 중요한 것은 동일한 자본이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어떤 가치가 되어 있을 것이란 소위 투자 가치 investment value 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 6억원이란 돈을 짜장면 오십만 그릇을 사는데 투자했다면 배고픈 오십만명의 한끼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 돈을 고스라니 은마아파트 29채를 샀다면 2012년에 팔기면 해도 192억여원을 벌 수 있었다. (임대에 의한 이자 및 월세 수입은 별도)

따라서 투자는 역시 아파트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조금 다른 시각을 생각해보고 싶다. 국가가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60세 이상의 국민들에게 일정 금액을 주려고 할 때' 어떻게 계산할지 물어보면 다양한 계산 방법이 나온다. 어떻게 계산하는지 고등학생들(공부 잘해 들어간다는 소위 명문고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당연히 몰려드는 질문들은 월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 60세 인구가 몇명이냐 물어본다. 모든 것은 각자 알아서 가정하고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하면 정답 강박증이 심한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불평이 가득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학생 1: 60세 이상 인구가 몇명인지 알아서 여기에 일인당 주려고 하는 금액을 정한다.
 학생 2: 전체 인구중 60세 이상 인구 비율이 어느정도인지 알아서 일인당 지급액을 곱해서 구한다.
 학생 3: 전체 예산을 통해서 60세 인구로 나누어서 일인당 지급액을 정한다.
 학생 4: 전체 예산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서 금액을 차등 지급한다. 저소득 인구에 더 많은 지급액을 설정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나온 의견들을 분류하고 비슷한 것들을 모아서 약 6가지 정도의 방법을 통해서 각 내용을 수식으로 표현하게 했다. 이 분류 과정에서 나름 두가지의 접근 방법 approaches 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예산이 정해진 상태에서 계산을 하는 것이다. 반대로 예산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인당 지급액을 정하고 이에 따라 예산을 정하는 방법이었다. 어떻게 계산을 하는 것이 좋은지 계산 방법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계산된 일인당 금액이 어느정도의 가치를 가지는 것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두번째 질문을 받았을 때 몇명의 아이들은 일인당 금액이 가지는 가치는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이 금액을 가지고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와 같이 인간의 활동 영역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정 금액을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금액이 인간의 활동하는데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고 결국 물가나 개인의 형편과 같이 생각할 수 있는 변수들을 추가하기 시작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라는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가 인간의 활동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대로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 를 '가치' 라고 생각해 보자.

공무원들에게 '복지'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멋진 대답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스웨덴의 공무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스웨덴 공무원 중 한명이 이런 대답을 한적이 있었다.

"시민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공적 보험" ─ "Public insurance that helps citizens' activities practically."

UK welfare spending 출처: The Guardian 

복지를 단순히 돈을 지급하고 그 돈으로 알아서 쓰라는 용돈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종종 선별적 복지를 이야기하고 돈을 지급했을 때 엉뚱한 곳에 쓴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복지가 단순히 자본을 투입하는 형태가 아니라 인간의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형태로 보장된다면 예를 들어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의미에서 교통비를 지원해주고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지역 농산물에 대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한다면 개인별로 지급되는 복지비를 줄여도 큰 불평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복지라는 형태로 돈을 지급받아도 거주를 위한 월세비용으로 다 빠져 나가고 일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데 교통비로 빠져 나간다면 국가가 지급하는 복지 비용의 종착역이 어딘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에게 복지 비용을 지급하거나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국가가 보장해주는 형태거나 모두 돈 즉, 국가의 예산은 필요하게 된다.

결국 가치를 가지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이 만들어 내어 인간이 필요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여 한다. 인간 활동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적은 돈으로도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고 많은 돈을 썼다고 해도 다수의 인간 활동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소수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된다면 가치 있다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가치를 가늠한다는 시작점은 전체 예산이 얼마가 필요한지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자본이 얼마인지를 계산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는 것이다.


과와 효에 대해서... 

가늠하기 활동에는 이처럼 크기를 가늠하거나 편차를 가늠하거나 궁극적으로 가치를 가늠하는 활동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영어로 'figure out' 이란 말에는 크기를 가늠하고 편차(차이)를 가늠하고 가치를 알아내다는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가늠하기 활동을 통해서 알아내려고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과정까지 모두 figure out 이라 말하고 대상을 '이해한다'는 말까지도 포함하게 된다. 사전에서 확인해보면 '계산해서 (합계를) 알아내다' 란 뜻이 먼저 나오고 이해하다 그리고 해결하다는 뜻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대상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수치로 표현될 수 있는 내용을 통해서 대상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예산안의 크기는 몇자리 수의 단위인지를 통해서 예산을 어디서 조달할 것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고 편차를 통해서는 대상이 가지는 특징을 알아내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미리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가늠하는 과정은 대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미리 전략을 세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율과 효과는 비슷한 표현이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효과적인은 영어로 effective 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좋다는 뜻이고 효율적인은 efficient 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들인 노력에 대비해 얼마나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지 나타낸다. 예를 들어 '멜라토닌은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라고 표현을 하지 '멜라토닌은 불면증에 효율이 있다' 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멜라토닌 2mg 으로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면 20mg 을 먹는 것은 효율이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용량이 2mg 단위인지 20mg 단위인지에 따라서 약이 우리 몸에서 작용하는 효율은 비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용량의 크기에 따라서 약이 작용하는 범위가 전신 systemic 범위인지 극소 부위인지 가늠할 수 있다. 같은 효과를 내는 두가지 약을 비교할때 한 약이 다른 약에 비해 적은 양으로도 거의 동일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약이 몸에서 한번 쓰이고 배출되는지 아니면 반복되서 사용되는지 등과 같이 약의 특성을 가늠할 수도 있다. 여기서도 편차 가늠하기를 통해서 같은 효과를 보이는데 적은 양이 사용된다면 효율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그 효과와 효율을 통해서 가치를 평가하는 것도 가늠하기를 통해서 대상을 평가하게 된다.



가늠하기의 다양한 활동은 결국 대상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좀 더 높은 효율을 얻어내기 위한 과정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미리 크기와 편차를 가늠하는 과정은 대상의 특징을 알아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엉뚱하거게 크기가 맞지 않거나 편차가 너무 심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 제외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통 효과적, 효율적이라는 말은 가장 최적화된 결론을 얻어내기 위한 과정이라기 보다는 말도 안되는 대상들을 제거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예산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도 예산의 크기를 가늠하고 어느정도 크기인지를 확인해서 어떻게 예산을 얻을 수 있는지에 따라서 선택하는 전략이 달라야 하고 일인당 복지비용을 계산하는 과정에서도 현실적 가치와 너무 편차가 심하거나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로 너무 크거나 작다면 이를 제외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적절하지 않는 것을 제외시키는 과정을 위해서 가늠하기가 필요한 것이다.

확하지 않음에 대한 여유 ... 

대한민국 수학 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가늠하기의 영역은 거의 무시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정확한 정답을 요구하고 그래서 문제도 가늠하기 위해 필요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정답에 써야 하는 정확한 숫자가 무엇인지 요구받는다. 그래서 삼각 함수의 문제는 계산하기 쉬운 각도가 나오고 조금 익숙하지 않은 각도도 배운 공식으로 알아내려고 할 때가 많다. 계산기를 이용하기 보다는 외우고 있는 내용을 요구한다. 계산기와 컴퓨터가 이처럼 많은 세상에서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문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지만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현실 세상에서 수학의 다양한 원리를 응용하고 그 값을 통해서 정확하지 않더라도 적절하게 가늠하는 훈련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이런 정확한 정답을 요구 받아온 교육에 익숙해 있다가 컴퓨터의 반복 계산을 통해서 근사한 값 approximate value 을 찾아내는 근사한 fabulous 과정을 하는 수치해석 numerical analysis 를 접하면 당황해 하기도 한다.

출처: https://github.com/kmammou/v-hacd 대상을 분석하기 위해 근사값으로 나눌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준다.

상은 정확한 값을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도 많은 수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세상의 교육은 얼마나 정확한 원리를 배울 수 있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가늠하기 방법을 배울 수 있는지에 따라서 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위 현실적 교육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가늠하기 방법을 배운 이들은 세상에서 정확한 정답을 찾아내서 이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그리고 효율적인 결과를 위해서 해서는 안되는 일들과 하면 도움이 안되는 일들에 대한 감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라의 행정이 효과적이지 못하고 이미 집행된 예산도 효율적이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지적된다면 이는 예산을 집행하기 위한 항목을 결정하는 정책 결정권자들이 이런 가늠하기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탐욕이 너무 강해서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부터 잘못 가늠된 내용은 실제로 집행하는 사람들도 힘들게 하고 예산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도 불평하게 된다. 그래서 정확하지 않음에 대한 여유란 대충 계산하고 대충 하자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하지 않지만 실제로 실행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가늠하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 이유로 다양한 학문 예를 들어 통계학도 이런 현실 세상에 맞는 다양한 가늠하기 방법이 필요하다. 그 가늠하기 방법은 크기를 평가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편차를 통해서 대상의 특징을 밝혀내고 비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더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늠하기의 방법이 좋으면 좋을수록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효율은 더욱 더 높아진다. 따라서 가치란 정해진 절대적 값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가치가 '인간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도'라고 정의한다면 얼마나 효율적으로 국가의 자원 - 돈을 포함하여 - 을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사회 구성원의 가치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가늠하기 방법론을 만들어 내서 효율을 높이면 높일수록 가치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단순히 어떤 공약을 시행하기 위해서 얼마나 필요하다고 말하는 정치인 혹은 행정가들을 보면 저들에게는 가치란 어떤 뜻일까 궁금할 때가 많다. 인간의 활동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게 많을 수 있고 그 다양한 방법을 개발할 때도 인간에게는 정확한 값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잘 가늠하고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정치인 혹은 행정가가 더 우리 세상에 필요하다. 그래서 투표권을 가지는 사람들이 좀 더 시선을 바꾸어서 이런 가늠하기를 잘하는 사람을 뽑았으면 하는 큰 바람이 있다. 그들은 대단한 어떤 것을 해내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나 해도 별 효과가 없는 일들을 적절하게 제거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해서 인간의 가치를 높여줄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늠하기의 과학 ─ 가치를 생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