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진리도 상처보다 깊을 수 없다.

아이들이 유독 많이 모이는 어느 국수집 엄마와 함께,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와 함께 따라온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와 국수를 먹는다.

옆자리에 어떤 엄마와 큰딸, 그리고 둘째인 아들과 셋이서 국수를 나누어 먹는다. 양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같이 온 엄마의 국수를 나누어 조금씩 먹고 있었다. 큰 딸이 국수 면발 몇가닥을 먹고나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뜨거워" 

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옆에서 딸 아이가 혹시나 뜨거워 입이 데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너무도 무덤덤하게 대답해준다.

"뭐가 뜨거워 하나도 안 뜨겁구먼..." 

엄마는 또 다시 국수 면발을 수저에 담아 다시 딸에게 주었다. 딸은 다시 말했다.

"엄마 뜨거워... 정말 뜨거워!" 

엄마는 이제는 조금은 혼내듯 말한다.

"뭐가 뜨거워 이렇게 차가운데! 잔소리하지 말고 얼른 먹어!" 

그래도 뜨거운 김이 모락 모락나는 국수 면발을 먹으면서 그래도 차갑다고 표현하는 것은 좀 너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은 유심히 딸과 엄마, 그리고 가끔 이야기에 참여하는 어린 아들의 대화를 들어 보았다. 그런데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딸과 아들은 엄마에게 말을 할 때 '너무' , '진짜' 와 같은 수식어가 습관처럼 붙어 다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집까지 멀어" 가 아니라 "집까지 너무 멀어! 진짜 멀단말야",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강조를 나타내는 표현이 자주 나왔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충격적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는 궁극적으로 부모들 뿐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무엇이 사실인가를 떠나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일단 믿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정말 뜨거워서 뜨겁다고 표현을 했던 것인데 그것이 뜨겁지 않다고 하면 아이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동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도 진취적인 아이였다면 감각기관의 감각 수용 방법과 신경 전달 그리고 뇌에서 뜨겁다고 느끼는 과정에 대해서 철저히 공부를 하고 이에 대해 엄마에게 대꾸한다면 좀 더 통쾌할 수 있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 그런 것을 바란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일 것이다.

문제는 반복되는 부모, 보호자이 자신의 주관적 감각과 느낌 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틀리다고 말하는 순간 엄마의 잘못된 도덕적 태도를 탓하기 보다는 자신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지고 스스로 자신의 감정조차 믿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아이들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정말 자신이 느끼고 바라는 것을 부모가 수용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진짜', '너무' 와 같이 강조하는 표현을 자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사실 부모에게 경제적 손실이나 명예적 실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은 분명 상처를 입을 것이다.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점점 희미해지는 자신의 자존감을 바라보면서 구멍 뚫리는 심정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은 부모의 입장에서도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일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뿐일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의 말을 그냥 그대로 받아주는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 병원에서 가장 미운 의사는 환자는 아프다고 어렵게 찾아왔는데 "어? 그럴리 없는데... 아플 이유가 없는데..." 하는 의사라고 한다.

세상을 바꿀 그 어떤 진리라고 해도 아이에게 상처 줄만큼 대단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옳아도 아무리 백번 논리적으로 합당하고 세상의 그 어떤 이치에 다 부합되는 완벽한 법칙 (Universal laws) 라고 해도 아이의 마음에 상처준다면 사라져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