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소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선 기쁨을 느낀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물건을 보았을 때, 자신의 먹고 싶은 음식을 보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되고 그러한 욕망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가지게 된다면 참 소중할 것 같고 행복하고 온갖 좋은 감정으로 휩싸일 것 같지만 소유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오히려 그 소중함을 잊게 만들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가진 것이 몇명의 굶주린 사람을 살릴 수 있고 몇명의 꿈을 이루게 해줄 수 있는지 그 개념조차 모를 때가 많다. 오히려 그 재화를 통해서 자신의 욕심을 더 충족시킬려고 써버리는데 더 집중할 뿐 그 소중함은 생각하지도 않을 때가 많을 것이다. 소중함이란 만족되어 버린 상태보다는 결핍의 상태에서 더욱 더 우리에게 다가오기 쉽다.
내 삶에서 갑자기 당뇨가 찾아오기 전에는 배고픔을 느끼면 뭐든 먹고 귀찮으면 먹지 않는 그런 생활 안에서 먹는 것, 매 끼의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끼니 거르지 않고 매 끼니마다 먹어야 할것,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하고 과식하지 않으며 식생활을 조절도 하고, 불필요한 간식도 먹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끼니 때가 되면 배고픔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아침, 점심, 저녁을 규칙적으로 먹으면서 느끼는 한가지는 예전에는 얼마나 먹는 것에 대해서 소중히 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들이다. 식사 전 기도는 정말 이 양식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해야하는 의무와 같은 행동일 때가 많았다. 까다롭지 않게 이것 저것 먹으며 조금이라도 입이 심심하면 간식으로도 배부르게 먹는 것이 미덕인양 풍요롭게 먹던 그 생활을 버리고 먹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니 식사 한번의 의미와 소중함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부족하고 모자란 듯 하여도 그 안에서의 절실함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다분히 가난은 경제적인 의미가 일차적이겠지만 우리의 삶에서 ⓐ '욕망하는 어떤 것에 욕심내지 않는 그 마음의 상태'가 가난이고 ⓑ '그 마음의 상태를 행동하는 것'이 가난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주어진 것에 더욱 더 감사할 수 있는 상태, 그래서 가난이란 결핍이 아닌 부족하지만 만족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닐까. 그건 바로 욕심내지 않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플의 새로운 iPad, iPhone 모델이 나오면 사람들은 그동안 기다려 왔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일찍 사기 위해서 신경을 쓴다. 그리고 그 욕망은 자본이라는 댓가를 기꺼이 치루고 욕심을 충족시킨다. 그리고 얻어지는 기기는 일정 기간동안은 자신을 즐겁게 해주고 그 놀라운 기능과 할 수 있는 일들에 놀라며 이 기기는 나를 발전시켜줄 수 있는 것이라 확신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의 풍족한 자본을 쓸 하나의 장난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기에 대한 열정은 이미 자신이 목적했던 구체적이고 명확한 대상이 충족되어 버린 상태가 된다. 이미 소유의 상태에서는 그 기기를 꾸며줄 수 있는 새로운 주변기기(악세서리)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도 있고 때로는 쉽게 실증내거나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 기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기기에 대한 욕망은 결코 그 소중함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위 기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기기 자체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크지 않다. 그 기기를 도구로 해서 할 수 있는 내용에 더욱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한 욕구를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더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고 그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의 중요성을 부여할 것이다. 대중의 구매 욕망을 만들어 내는 현대의 마케팅 안에서는 생각보다 기기 자체가 목적이 되는 구매 욕망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 것 같다.
단지 의식주 우리의 삶에 직접 연결되는 것들에 대한 가난뿐만 아니라 우리의 재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나의 재능에 욕심내지 않는다는 것은 같은 의미로 나의 재능을 소중히 생각하며 남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연히 탐독하게 되었던 서정주 시인의 시를 보며 감동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문학적 재능을 너무도 믿고 욕심내서 결국 군사정권을 찬양하는 보기 민망한 시들을 쓰고 말았다. 그런 것이 결국 자신의 재능을 욕심내서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는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나치 정권 아래에서 정치를 위해 언론을 적절하게 사용했던 괴벨스는 사람들, 특히 대중이 가지는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그의 재능을 결국 나치의 선전을 위해서 사용했고 개인적인 추측으로 괴벨스는 자신의 의도대로 대중이 선동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자만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만의 모습, 즉, 충족되어진 욕망의 모습 안에는 자신의 재능을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함부로 사용한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의 재능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의식 안에서 소중하게, 가난하게 사용해야 한다. 가난하게 사용한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당뇨환자에게 한끼의 식사 하나 하나가 소중하듯이 자신의 재능이 쓰이는 모든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중함을 알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 소중함의 단짝 친구가 부족함이기에 우리에게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 재능, 재물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을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소중함을 통해서 나의 욕망만이 아닌 더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도록 사용할 수 있도록 나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그래서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그 가난은 우리를 부족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작은 것에도 감사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감사를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를 알게 해주고 그 의미를 통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욕망을 채우려는 방향으로만 나아가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이의 것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채움과 풍요의 삶이 아닌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사용하는 가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의미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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