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May 6, 2018

사회 안에서 비밀유지 ─ 지키기 너무 가벼울 수 있는 비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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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2005) 로 유명해진 이미지가 하나 있다. 존재해야 할 의미가 없는 국가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표현되는 벤데타 가면이다. 1600년대 영국은 제임스 1세에 의해서 가톨릭 탄압 정책을 펼쳤고 이에 저항하는 의미로 가이 포크스 Guy Fawkes 는 11월 5일을 기점으로 웨스트 민스터 궁전을 폭파해서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고 했지만 암살 계획이 미리 알려져서 화약에 점화하는 역할을 맡은 가이 포크스는 현장에서 잡혀서 극심한 고문으로 사전 공모자 등을 털어놓고 결국 사건 관련자들은 사지가 찢기는 등의 극형에 쳐해 죽게 되었다. 이후 영국은 11월 5일을 화약음모사건 Gunpowder Plot 을 막은 기념으로 '가이 포크스의 날'로 정하고 사람들에게 싫어하는 인물의 형상을 한 인형도 불태우고 모닥불도 불태우며 보낸다. 사실 가이 포크스는 핵심적인 주동자라기 보다는 실행자였지만 현장에서 잡히고 결국 극심한 고문으로 계획을 발설했지만 그래도 시대를 지나면서 가이 포크스는 하나의 저항의 아이콘이 되어 갔다. 그 이후 저항의 의미 반정부를 뜻하는 의미의 의미로 가이 포스크 가면은 사용되어 왔다. 이제는 가이 포크스의 이미지를 검색하면 실제 모습보다는 '벤데타 가면'이 더 많이 나오기도 한다.


벤데타 가면이나 저항 정신 혹은 무정부주의 anarchism 에 대해 쓰고 싶은 것은 아니고 이렇게 유명한 가이 포크스와 관련된 흥미로운 그렇지만 무서운 그리고 무거운 이야기 하나가 있다. 바로 암살 계획을 듣고도 이를 발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극형을 받은 가톨릭 신부인 헨리 가넷 Henry Garnet 에 대해 전하고자 한다. 헨리 가넷은 폭파시킬 계획을 고해성사에서 듣게 되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없었다. 계획을 알고도 미리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와 그렇지 않아도 맘에 안들었던 가톨릭 신부이기 때문인지 헨리 가넷은 사형당하고 사형수의 가죽으로 책을 만들고 (사형수의 가죽으로 먼저 만들어진다음 사형당한 것일까?) 자신의 죄를 상세하게 적어 놓은 형벌을 받게 된다. 그리고 2007년에 공개된 인피책 (人皮冊) 이 헨리 가넷의 것으로 밝혀졌고 책의 표지에는 헨리 가넷의 모습으로 보이는 형상이 나타난 것으로 유명해졌다. 헨리 가넷이 미리 계획을 알고도 이를 알릴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고해성사 THE SACRAMENT OF PENANCE AND RECONCILIATION 에서 알게 된 내용이였기 때문이다.

헨리 가넷의 인피책 출처: The Guardian  


Confidentiality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고해성사를 하는 살인청부업자 hitman 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고 신부는 이를 경찰이나 수사기관에 말하지 못하는 당혹스러움을 보여줄 때가 있다. 헨리 가넷도 성직자의 위치에서 암살음모를 알고 있지만 이를 왕에게 알릴 수 없었고 계획을 준비하던 가톨릭 신자들에게 찾아가 설득하려고 했었다. 성직자로 지켜야 할 비밀과 암살 계획 사이에서 적절한 절충안을 생각했던 것 같다. 종교 특히 가톨릭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알게 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헨리 가넷의 이야기를 들으면 성직자가 고해성사를 통해서 알게 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비밀 유지가 성직자라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내용인지 그리고 암살계획과 같이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위험까지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시민 사회 혹은 국가의 의미가 커지고 법이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제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법과 성직자가 가지는 비밀유지 원칙은 자주 충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법정 안에서 성직작의 비밀유지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성직자가 알게 된 범죄 사실 혹은 범죄 가능성에 대해서 증언하지 않아도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범죄 사실을 인지하거나 범죄자를 특정할 수 있는 identifying a criminal 어떤 이가 이를 수사 기관에 알리지 않는다고 불고지 (不告知) 죄 가 존재하고 이또한 범죄라고 생각한다면 성직자는 분명 범죄자가 되기 쉽다. 범죄사실이나 범죄자를 알았다는 것만으로 이를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범죄가 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혹은 좋아했던 국가 중 하나는 대한민국일 것 같다. 지금 (2018년) 도 살아있는 국가보안법에는 이러한 불고지죄는 국가보안법의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권력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가 공권력에 처벌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Confidential 은 평범하게 비밀내용 정도로 표현될 수 있다. 사전에 의해서 '기밀'로 번역되고 비밀은 'secret' 로 번역되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사실 문서 취급에서 보면 Confidential 이 붙은 문서보다 secret 이고 그보다 높은 문서 보안 수준은 top secret 이다. 느낌으로는 기밀이라고 하면 뭔가 빈틈없이 빠져 나가면 안되는 비밀같은 느낌이지만 그런 느낌이 맞다면 기밀은 top secret 에 더 어울릴 것이다. 사실상 confidential 은 다소 개인적인 내용 혹은 가급적 공개되지 않는 것이 좋을 내용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기업간의 거래 및 회의 내용들은 confidential 이 되는 것이고 공적 이유로 공개되지 않아야 할 필요성이 있을 때 secret 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직자와 신자간의 개인적인 내용에 대해서 서로가 (주로 성직자) 발설하지 않을 권리나 의무가 엄격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직자라는 직업을 가지는 '기능적 자아'에게는 권리처럼 주어질지 모르지만 성직자가 아닌 자연인으로는 발설한다는 자유의지까지 잘못되었다 말하기는 다소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밀유지를 뜻하는 confidentiality 앞서 살펴본 성직자 / 신자를 뜻하는 priest–penitent 혹은 clergy–penitent 간에 비밀유지가 지켜지는 상태 혹은 지켜야 하는 의지를 confidentiality 라고 부른다. 동일하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환자의 상담 내용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이나 광범위하게 의사가 진료 과정에서 알게 된 환자의 병력 및 질환 상태에 대한 비밀유지를 하는 것도 동일하게 doctor-patient confidentiality 라고 말한다. 또한 법적 대리인과 의뢰인 사이도 동일하게 attorney-client confidentiality 라고 한다. 이와 같이 찾아보면 현대 사회에는 직업상 (기능적 자아) 취득한 개인적인 정보에 대한 비밀 유지에 대한 어느정도의 공감대가 존재한다.


Confidentiality to privilege


앞서 소개한 성직자 - 신자간의 비밀유지  clergy–penitent confidentiality , 의료인 - 환자간의 비밀유지 doctor-patient confidentiality , 법적 대리인 - 의뢰인간의 비밀유지 attorney-client confidentiality 이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비밀유지를 말할 때 confidentiality 를 쓰기 보다는 privilege 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clergy–penitent confidentiality 보다는 clergy–penitent privilege 라고 사용하고 의료인 - 환자간의 비밀유지는 doctor-patient privilege 라고 표현한다. 우선 privilege 란 말은 사전에서 찾아보면 '특권'이란 번역이 가장 먼저 나온다. 개인 혹은 일부 소수가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이득을 뜻할 때 특권이란 말을 사용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특권은 그리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소수 재벌의 특권' 혹은 '권력자들의 특권'과 같이 일반 시민들이 동일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에누리 없이 처벌을 받게 되지만 권력이나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심지어 누군가의 자식이라는 것만으로 처벌을 받지 않게 되는 경우를 보면 특권이란 분명 사라져야 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성직자 - 신자간의 비밀유지가 privilege 라면 성직자가 누리는 특권인지 신자가 누리는 특권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privilege 의 어원에 대해서 찾아본다. 개인을 뜻하는 라틴어 'privus' 와 법을 뜻하는 라틴어 -lex (-reg) 가 결합되어 '개인에게 적용되는 법 혹은 법률'이란 뜻으로 'privilegium' 이 시간이 지나 privilege 가 되었다. 어원대로 privilege 는 특별한 권한 혹은 권리라기 보다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다양한 법의 내용을 뜻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누릴 수 없는 것을 누리는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서 누린다면 그것을 특권으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있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내용은 대통령 직무 행정부 특권 executive privilege 을 가지게 된다.

다시 돌아와서 성직자 - 신자간의 비밀유지가 privilege 라면 누가 누리는 특권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켜야 할 비밀인데 도대체 무엇이 특권이 되는가? 어원에서 살펴본 것처럼 특권이 '누릴 수 있는 이득'이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비밀을 유지하는 상태나 지켜야 하는 상황을 confidentiality 라고 말했지만 이는 법률적 책임이나 의무를 가지지 않는 비밀을 유지하는 상태이다. 헨리 가넷의 사례를 통해서도 보았지만 성직자 - 신자 비밀유지를 떠나서 폭파 계획을 미리 알고도 이를 알리지 않은 것이 범죄자가 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확장해서 생각하면 동료 중 누군가 HIV 바이러스 양성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이를 주변에 알려서 미리 조심하게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아서 다른 동료 누군가 바이러스 양성자가 되었다면 그 사실을 알았던 사람은 법적 책임은 아니라도 양심적 가책을 가져야 하는가?

이처럼 개인간의 비밀유지가 공적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거나 예상되는 피해를 생각하게 되었을 때 이를 비밀유지를 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비밀유지는 지켜야 한다는 내용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논쟁이 되어 왔다. 특히 그런 논쟁의 중심은 대부분 법정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많은 경우 비밀유지가 인정되어야 할 내용이고 이를 통해서 아무리 공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신의 비밀유지를 지킬 개인적 의지에 대해서도 인정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법정에서 말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그렇게 증언을 하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지게 할 수 없다는 내용은 역설적으로 법정에서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 되어졌다. 결국 개인간의 비밀유지를 뜻하는 confidentiality 는 법의 울타리에서 '비밀유지를 지키려는 개인'에게 적용되는 법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Privilege against jurisprudence


법은 항상 상당 부분 허술하다. 직접적으로 증명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법이 완벽하다면 법이 시대에 따라서 변하거나 '법을 이용한다'라는 표현은 자주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경우 법이 정하는 특권 혹은 예외는 법이 모든 이에게 평등하다는 주장을 부끄럽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범인을 찾는 범죄 드라마에서 범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범인을 잡아 가둘 수 없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많은 경우 범죄사실은 알고 있지만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문제 혹은 법률적 특권이나 예외 사항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나라일 수록 특권과 예외가 많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법앞에 모든이들이 평등하다면 소위 '국민 법 감정'이란 오묘한 감정도 존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법리학 jurisprudence 는 법이 가지는 철학이나 원칙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법 앞에 평등하게 될 가능성을 말하는 학문이다. 좀더 어렵게 표현하면 "법의 본질과 목적, 법의 개념, 법의 객관적 가치 또는 법의 이념, 법의 존재상태 또는 법의 효력 · 타당성, 법현상 등을 일반적으로 구명하고, 다시금 법의 제정 · 해석 · 적용에 특유의 논리 또는 법적 사유(思惟)의 기본적 카테고리나 법학 방법론을 고찰하는 것을 그 임무로 한다."  라고 나와 있다. 여전히 어렵다.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인간이 관찰하여 얻어낸 이론이 법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감지할 수 없지만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어떤 거대 법칙 universal laws 가 존재한다면 그 법칙만 알아낸다면 물리학은 더 이상 공부할 필요가 없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슷한 느낌으로 법에도 공정하고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원리가 존재하고 이를 알아낸다면 법은 객관적 판단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세상은 너무도 복잡해서 상황에 따라서 해석하고 경험하지 못한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을 계기로 법의 골격이나 구조가 변화되어 왔다. 놀라운 지혜를 가진 완벽한 사람이 법이란 이렇게 작동한다라고 알려주었다면 사회 안에서 논란이나 갈등이 발생하며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줄어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법은 그러한 해석의 영역이 더 강해지는 영역은 아닌가 의문이 들때가 많다.

"인위적인 법률과 그 가치에 대칭되는 것으로 자연히 존재하는 언제, 어디서나 유효한 보편적 불변적 법칙"으로 존재하는 자연법과 대비되어 복잡한 세상에 더 적극적인 해석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을 실정법 positive law, ius positum 이라 부른다. "경험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현실적인 제도로 시행되는 법"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권리를 만드는 법"이라 부른다. 앞서 설명한 많은 특권이나 예외는 실정법에서는 '새로운 권리'로 표현되며 인간 세상에서의 다양한 상황에 '조금 더 정의롭다고 추정되는 방향'으로 추진하려는 노력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따라야 하는 많은 실정법들은 그렇게 느끼기 어렵지만 많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과정들이다. 막상 법이 주는 느낌은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권리보다는 할 수 없는 제한들로 가득하지만 많은 부분은 앞서 설명한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특권 privilege 들은 법이 좀 더 합리적이고 많은 이들이 인정할 수 있는 실정법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해왔던 것도 생각해야 한다.


Privilege under jurisdiction 


실증법은 그래도 개인의 사생활 개별 인격이 가지는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회가 필요해서 만들어 낸 성직자, 의사 등 개인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직업들이 나타나고 만약 성직자나 의사가 신자나 환자의 사생활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사회가 필요해서 만든 직업이 존재하는 의미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에 결국 다양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비밀유지 혹은 특권은 단순히 사생활 보호가 아니라 직업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든 성직자들이 개인의 고해성사 내용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말한다면 어떠한 신자들도 성직자를 믿지 못하게 되고 결국 고해성사가 가지는 종교적 의미가 아무리 성스러워도 기능할 수 없는 고장난 기계나 다름없게 된다. 그러나 가끔은 어떤 생각에서 개인의 사생활보다는 공공 혹은 국가를 위해서 사생활이 제한받아야 하고 사생활의 내용이 국가를 위험하게 한다면 이는 비밀유지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래서 국가의 안보를 위해서 위험을 찾아야 하고 개인들이 나누는 사생활 속에서 이러한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활동, 대화, 심지어 생각까지 감시하기 위해서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에서 얻어낸 개인적인 내용을 수집할 수 있다고 믿는다.

9.11

극단적 충격은 인간의 이성을 충분히 마비시킬 때가 있다. 9.11 테러를 목격한 이들에게는 이런 테러가 일어나 수많은 생명이 사라진 것의 공포와 어쩌면 내가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테러는 막을 수 있다면 막아야 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당연하다. 테러를 계획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막을 수 있는' 테러는 당연히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을 수 있는'이란 가정은 인간을 참 어지럽게 만든다. 그 막을 수 있는 방법이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알아낸 테러의 징후를 통해서 막는다면 자신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이들의 사생활을 볼 수 있는 권리를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에게 쉽게 내줄 것인지 말이다. 많은 이들은 나는 테러와 관계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할 수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들이 항상 정의로울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테러를 막아줄 수 있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가상이지만 현실적인 예를 들어 본다.

1. 노동조합을 설립하려고 하는 노동조합장은 아내가 임신한 상태이다. 시위 관련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경찰에서는 체포하려 한다. 아내가 다니는 병원을 알아내고 담당의사에게 언제 진료하러 오는지 알아내고 다음에 올 때는 남편도 같이 오라고 하라고 의사에게 강요한다. 의사는 환자의 정보를 알려줄 수도 없지만 아내가 임신 중 주의 관찰해야 하는 산모라는 정보까지 수사당국에 알려준다. 
2. 모기업의 비리를 폭로한 내부 고발자가 있다. 정신적 압박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을 받는다. 기업은 내부 고발자를 미행해서 이 사람이 다니는 정신과 의사에게 접촉해서 어떤 상담 내용을 받았는지 회유하며 거액을 제시한다. 그리고 앞으로 상담 내용을 알려주면 더 많은 사례를 하겠다고 약속을 한다. 
3.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어떤 학자가 다니는 가톨릭 성당에 가서 신부에게 정부의 정보기관 담당자가 접근해서 학자에 대해서 물어본다. 처음에는 어떤 사람인지에 묻지만 그 사람은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국가에 위험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앞으로 그 사람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려달라고 한다. 

앞서 설명한 관계에서 알게 되는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 있는 이들이 그 비밀유지를 깨는 대신 황금의 유혹이나 권력의 공포를 이용해서 개인의 사생활을 알아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헨리 가넷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목숨을 내놓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목숨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비밀유지를 해야 하는 상대방이 '위험한 사람'이라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어 하면서 쉽게 알려주기도 할 것이다. 비밀유지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신은 위험한 사람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공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안 보이지만 앞으로 테러를 할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권력기관의 말을 믿고 심지어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적극적으로 상대방의 사생활을 알아내려고 할지도 모른다.

9.11 테러 이후 테러 방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DHS

권력에 반하는 어떤 존재도 쉽게 무너지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권력이 주는 큰 유혹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권력은 신뢰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비밀유지까지도 쉽게 포기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한다. 더욱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쉽게 무너진 사생활에서 자신이 깨버린 비밀유지의 상대방은 극심한 고통에 놓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다행히(?) 상대방이 진짜 나쁜 놈이라면 나름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뭐라 할 수 없지만 진짜 나쁜 놈이 아니라 권력에 저항한 의인이라면 비밀유지를 깬 이들은 어떤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Perjury against privilege 


인간의 이성은 스스로 옳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찰 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제이 애셔 Jay Asher 의 소설이자 2017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진 13 reasons why 를 보면 자살을 선택한 한 소녀가 자신이 왜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육성으로 남긴 내용으로 회상하며 말하는 내용이 전해진다. 여러가지 이유들을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거짓증언 perjury 이 어떻게 진행되고 사건 what it happened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믿을만큼 얼마나 강하게 말하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자신이 감추고 싶은 것을 적극적으로 가리기 위한 이야기는 얼마나 자극적인지 느끼게 된다.

13 reasons why (Netflix)

"Smith Johns 는 테러범이다." 

냉전시대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스파이의 숫자보다 미국 정보기관이 찾아낸 스파이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이였지만 러시아계라는 이유로 스파이라고 미국 정보기관에서 의심을 받아 감시를 받다가 진짜 스파이가 된 사람도 있었고 정말 스파이였던 사람은 미국에 협조한다고 하고 제거하고 싶은 사람들을 스파이라고 지목하여 무고한 사람들이 사생활이 감시를 받고 일상 생활에서 고통을 받기도 했다. 문제는 그렇게 사생활을 감시했으면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내는 것이 정상일텐데 '저 사람은 스파이다'라는 전제하에 감시를 하면 모든 행동들이 스파이 활동을 위한 몸짓이라고 해석해서 보고했다는 것이다. 때로는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스파이를 찾아내 높은 위치에 오르고 싶은 명예욕에 아무런 혐의가 없는 사람들을 스파이로 만드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나중에는 자신이 잡아낸 사람들은 진짜 스파이라고 믿는 확증 편향 confirmation bias 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권력이 만든 거짓 증언은 그만큼 그 피해와 고통은 생각보다 크다. 1920년대 사코와 반제티 사건은 그 당시에 보아도 많은 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형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무엇이 정의인지 아는 것과는 다르게 결과는 그들은 전기의자에서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당시 그들이 무정부주의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그들은 진범이라고 믿는 이들도 많았다는 것도 사실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의 범행을 증명하는 과정이 아닌 그들이 가진 사상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무정부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살인범일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비슷하다. "누구는 빨갱이다" 라고 크게 소리지르면 자신은 빨갱이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자신이 살기 위해 쉽게 누군가를 빨갱이로 만들었다.

사코와 반제티

거짓증언 perjury 혹은 위증이란 말은 라틴어 perjurium 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false oath 란 뜻이다. 단순한 거짓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통해서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을 깨버렸다는 뜻에서 비밀유지 confidentiality 을 깨는 것과 의미가 더 통할 것 같다. 개인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비밀유지와 거짓증언을 하기도 하지만 권력과 같은 구조도 알고 싶은 정보를 위해서 거짓증언을 비밀유지를 쉽게 깰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한다. 정보기관에서 "Smith Johns 는 테러범이다." 라고 말하면 환자나 신자와 같이 비밀유지를 해야 하는 상대방의 정보를 얼마나 쉽게 제공하는지 아니면 제공하지 않는지 궁금할 때가 많다.


How to protect privilege 


프랑스의 정치인 중 피에르 베레고부아 (Pierre Eugène Bérégovoy, 1925년 12월 23일 - 1993년 5월 1일) 우크라이나 이민 2세이고 정규 교육은 제대로 받지도 못했지만 프랑스 노동자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서 평생을 싸워왔고 16세부터 금속 노동자로 일하다가 정치에 입문해서 1992년에 부패 척결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총리에 올랐지만 다음해 5월 1일 노동절에 자살을 했다. 자살하게 된 이유는 부패 척결 정책을 펼치던 베레고부아 총리 자신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친구에게 '거액'의 돈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했고 이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것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크게 떠든 내용과는 다르게 그의 자살 이후 그가 얼마나 청렴하게 살았고 자신의 돈마저도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쓰고 월세를 내기 위해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에르 베레고부아 (Pierre Eugène Bérégovoy)

개인적으로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때 한강공원을 매일 산책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강공원에서 만난 한 사람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도 유명한 연예인이어서 아무리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예기사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서럽게 우는 모습에 그저 연예인으로 힘들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 이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생을 마감하셨다. 사건 이후 알게 된 내용 중에는 증권가 직원이 소위 증권가 찌라시 내용을 올린 내용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증권가 직원은 고인을 얼마나 잘 아는 사람인지 모르겠고 그런 내용이 아무리 공인이라도 어떤 고통이 될지에 대해서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갔었다.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내용이 가져올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쉽게 말하고 쉽게 전달한다. 성직자를 믿고 자신의 어려운 이야기를 했는데 그 내용을 통해서 성직자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그 아이는 어떤 성격의 아이야" 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고해성사 중 나눈 이야기의 일부를 말해서 사람들이 공연하게 알게 되버린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사가 집에 와서 자신의 환자 이야기를 하면서 무용담 삼아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는지 자랑하지만 그 안에서 환자를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하거나 누구나 아는 공인이라면 "그 배우가 우리 병원에 왔는데 내가 맡았잖아." 하며 환자의 질환을 아주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아주 가벼운 가쉽 안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비밀유지 내용을 깨고 있는지 느끼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지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자신도 들은 이야기라며 쉽게 가쉽으로 말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닌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피해자가 되어야만 느끼게 되는 몇 안되는 공감이 안되는 내용이다. 비밀유지를 지킬 것이라는 믿음으로 신자나 환자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지키지 않은 사람은 큰 고통을 느끼지 않을 때가 많고 반대로 믿었던 사람은 고통을 얻게 되기도 한다. 막상 확실한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밀을 유지할 상대로 믿지 말고 어쩌면 깰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비밀을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내는 방법 중 하나는 말을 할 때 인상적인 그리고 유일한 impressive and unique 표현을 적당히 섞으라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받았던 환자가 정신과 의사를 비밀유지를 깨서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보았다는 소송을 걸었고 정신과 의사는 자신만이 그 사생활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친구에게 말할 때는 쓰지 않았던 성적 행위에 대한 특별한 단어를 정신과 의사에게만 이야기했다는 점으로 소송에서 이긴 적이 있었다. 결국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깨졌을 때의 상황도 생각해야 하는 복잡한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영화 Doubt (2008)

그래서 영화 Doubt (2008) 에서는 가쉽에 대해서 다시 모을 수 없는 찢어 흩어진 베개의 깃털을 비유해서 전달했다. [ About Gossip ]  사람에 대한 단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항상 경계하게 된다. 스스로 확인하고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인데 들은 내용만으로 단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탓하고 심지어 자신은 옳은 행동을 했다고 믿을 것이다.

윌리엄 W. 영의 오두막의 한 장면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네? 저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요." 그는 말을 멈추었다 다시 말하였다. "나는 판단할 능력조차 가지지 않았는데요"

"정말 그게 사실일까요," 바로 대꾸하며 이제는 조금은 비꼬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이미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 이 짧은 순간에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심지어는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통해 많은 판단을 해왔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심지어 얘기하지 않은 동기조차 판단해왔고 그런 당신의 판단은 항상 진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당신은 상대방의 피부색, 몸짓 뿐만 아니라 체취까지도 판단했습니다. 당신은 상대방의 과거와 관계에 대해서도 판단했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심미적 기호를 통해 바라보며 한사람의 가치마저 판단해왔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해 보건데, 당신은 상당히 판단하는데 잘해왔음을 알 수 있지 않나요.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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