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말해 양보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진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언제나 우리의 삶은 인간의 관계 안에서 어떤 결투의 속성을 항상 가지고 가는 것일까? 그 결투에서 지게 된다면 무엇을 잃어버리는 것인지 명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흔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급하는 것은 자존심이다. 자존심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그렇지만 누군가의 관계에서 진다는 생각, 혹은 자신의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무시 당했다고 느껴지는 느낌은 자존심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존심이란 자신이 주체이고 객체또한 자신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 흔들린다면 사실 그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은 상대방이 될 수 없다. 자존심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 상처를 받을 때, 자존심이 상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이 없어진 자신을 변명하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실제로 자신에게 없어진 것은 '자신감'일 뿐이지 자존심은 자신감이 없어진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그런 자신감은 사실 자신은 틀리면 안된다 혹은 자신은 지면 안된다는 강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을 때 더 많이 생길 수 있다.
안철수 교수가 언젠가 모 실리콘 벨리의 기업체의 면접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 (I might be wrong) 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틀릴 수 있기 때문에 ① 다른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고, ② 자기 발전의 가능성이 많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③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점이다. 참 역설적이지만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그 빈틈의 공간은 오히려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시작하는 강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재미있는 연결 고리이지만 자신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의 불완전성(incompleteness), 불안정성(instability)을 인정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일 수록 자신의 양보에 대해서도 항상 너그러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양보한다고 해도 그것이 단순히 지는 것이라고 연결시켜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기에 자신감을 잃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을 존중하는 자존심또한 상처입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일상에서 받는 상처의 대부분은 자신이 스스로 빗장을 열어놓은 문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아무리 누군가 나에게 '멍청한 놈'이라고 이야기해도 자신이 멍청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거나, 누가 뭐라고 해도 멍청하지 않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그런 외부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바보가 된다면 이 세상에 질 것도 별로 없고 내 마음의 상처도 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스마트한 것만 추구하는 이 세상에서 때로는 바보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양보(yield)하는 것이 바로 행복을 얻는 것(yield)이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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