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September 18, 2013

가난한 마음은 계산하지 않는다.

Leave a Comment
연히 뮤지션 중에 '울랄라 세션'을 알게 되었다. 노래도 노래지만 멤버 중에 한명이 위암 말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안타가움과 그 아픔이 느껴졌는데 인터넷 상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들이 떠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암 말기라는데 결혼 준비를 하고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동정심을 이용한 언론 플레이가 아니냐는 익명의 이야기들을 보는 순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함부로 이야기하는 모습,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모습, 무엇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 자신의 머리를 통해서 검증하려는 모습들이 참 씁쓸하게 느껴졌다.


제부터인가 '가난한 마음'이라는 주제가 맴돌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가난함을 벗어나 삶의 방식으로 '가난한 마음'이란 무엇일까 하는 잠깐의 생각을 아침마다 해보고 그리고 그 안에서의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고민하게 된 시기와 더불어 가톨릭 뉴스 '지금 여기'에 연재되는 "프란치스코와 함께 30일 기도"를 보게 되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지만 역시나 무거운 마음으로 머무르게 된다. 그 중 [ 12일째 기도 ] 에 나온 아침 기도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자들의 아버지였다.
한번은 그의 제자 하나가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에게 말했다.
“그대가 가난한 척하는 부자인지 아닌지,
그것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 말에 가난한 사람은 상심하였고
프란치스코는 크게 화를 내며 제자를 꾸짖어,
그 가난한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발에 입맞추며 용서를 빌라고 명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자주 말하였다.
“누구든지 가난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이오.
가난한 사람은 우리를 위하여
몸소 가난해지신 그리스도의 형상이오.” 


람들의 아픔은 머리로 이해되고 자신의 모든 논리적 과정을 이해시켜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야기처럼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며 가슴따라 그 아픔에 같이 기도해주는 마음만이면 충분할 때가 많다. 때로는 그 아픔에 귀를 기울이며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자신이 너의 아픔에 이해하고 싶다는 욕심때문에 자신의 머리로 상대방을 증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아픈 상처에 손을 넣어 진짜 상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잔인함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가난하다는 것은... 그래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머리를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도 버리고 가슴으로 누군가를 같이 아파해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아닐까.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 누군가를 공감하고 다가갈 수 있는 선물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0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