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28, 2013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 동화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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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락스 (Goldilocks) 는 원래 금발의 처녀란 뜻이다. 그러나 골디락스는 잘 알고 있는 동화 내용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이야기로 금발의 소녀가 곰이 사는 집에 들어갔는데 마침 곰들은 집에 없었고 탁자에 있는 음식을 보고 첫번째 음식은 너무 뜨겁고 두번째 음식은 너무 식어버리고 세번째 음식은 온도도 입맛도 딱 맞아 음식을 다 먹어 버렸다. (너무 짜고, 너무 싱겁고 적당한 경우로 바꾼 이야기도 있다.)  거실의 의자에 앉아 보니 첫번째 의자는 너무 크고, 두번째 의자는 너무 푹신하고, 세번째 의자가 가장 자신에게 적당했지만 의자를 앉아 놀다가 부셔버리고, 다음으로 침실에 가서 첫번째 침대는 너무 크고, 두번째 침대는 너무 푹신하고 세번째 침대가 가장 적당해 결국 세번째 침대에서 자다가 곰들에게 들킨 이야기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이야기는 엄마 말도 안 듣는 철없는 딸 하나가 겁도 없이 숲으로 들어가서 곰들이 사는 집에 무단 침입하는 것도 모잘라 음식까지 함부로 먹어버리고 기물도 파손하고 그리고 침대에서 편하게 자게 된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골디락스 기호에 맞는 세번째 곰 (새끼 곰)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은 골디락스같은 딸을 기르면 항상 불안하게 지내야 한다는 점이 있다. 최대의 피해자인 새끼 곰의 입장에서 보면 적당한 조건에 맞는 새끼 곰은 항상 모든 재산이 '아작'나고 말았다. 결국 대중적 인기가 있는 조건의 상품은 많은 경쟁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락스에 대한 이야기... 

골디락스는 이후 많은 비유의 대명사로 많은 분야에 사용되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된 예는 바로 행성의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조건 (habitable zone) 을 생각할 때, 금성, 지구, 화성이 행성의 크기와 조건은 유사하지만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다소 가까우면 금성처럼 높은 온도의 대기 조건으로 생명체가 살기 힘들어지고, 태양으로부터 조금 멀어지면 화성처럼 대기가 조성되기 힘든 조건이 되어 결국 대기를 포함하여 다양한 생물학적, 생물체가 살아갈 수 있는 대기, 환경 조건이 어긋나게 되고 지구가 가장 적당한 거리에 있어 지구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적당한 조건의 골디락스 조건에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즉, 어떤 치우치거나 극대화되는 조건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균형잡힌 평형 상태'를 이룰 수 있는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골디락스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조건은 결과론적 결과란 점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조건과 우리의 생물학적 특징, 인간을 비롯한 생물체가 살 수 있는 조건을 알고 있는 결론에서 지구가 최적의 조건이라는 점, 골디락스 조건이라는 것은 알고 있고 이를 통해서 외계 생명체도 우리와 같은 생리학적 원리와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에 찾고 있고 있는 것이다. 즉, 외계의 다른 생명체를 찾는 방법은 생명체는 모두 지구의 생명체와 동일한 생명 현상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 하에 탐색하지만 이 사실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만약 어떤 생명체는 질소로 호흡하고 (가능할까?)  아르곤 가스가 필수 원소이고 심지어 적당량의 방사능이 존재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생명 현상을 보인다고 하면 이 조건에 맞는 새로운 골디락스 지역 (Goldilocks Zone)을 찾을 수 있는가이다. 즉, 우리의 개념을 뛰어 넘는 조건들이 열거가 될 때 이를 만족하는 지구 밖 행성을 찾는 것 (어쩌면 외계 생명체는 행성이 아니라 항성 (별과 같이 직접 빛을 내는) 의 우리가 보기에 무시무시한 핵융합 반응 속에서도 살 수 있는지 모른다.) 이 가능한가이다. 조건에 맞는 행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그 조건이 또 우리가 모르는 필수적인 생리현상과 연결이 되어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사실상 어떤 조건에 맞는 골디락스 조건을 찾는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를 논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좀 더 긴 내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지구라는 지역이 골디락스 구역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미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내용이 참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인간이 열거한 조건, 예를 들어 항성 (태양) 과의 거리, 행성의 크기, 대기 구성 등을 찾았다고 해도 지구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조금 다른 어떤 조건도 인간 생존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즉, 우리가 고려할 수 있는 조건보다 우리가 열거하지 못하는 중요한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받아들인다면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지구와 같은 골디락스 조건을 맞는 행성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금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즉, 골디락스는 이미 현상이 일어났다는 ━"happened" 사실이 존재하고 그 사실을 연역적으로 어떤 조건이 있는지 탐색하는 과정이다. 심지어 우리의 그 연역적 추리가 맞는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추리가 조건이 되는 것이다.

골디락스 용어가 사용된 다른 분야가 경제학이다. 경제학에서 골디락스란 1990년대 후반, 경제성장률은 약 4% 정도로 적정한 고성장을 이룩하면서도 낮은 실업률과 낮은 물가성장률을 기록하는 경제 현상을 두고 골디락스 경제 (Goldilocks economy) 라고 부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면 물가상승률도 올라가지만 경제적 생산 참여자들이 원하는 모든 방향이 적당하게 균형을 맞춰 적정하게 유지되는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해석이 있지만 그 중 1990년대의 IT 기술를 비롯한 새로운 생산 형태의 도입으로 생산 효율성이 높아져서 생산력이 높아졌지만 가격 요인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던 점도 하나의 해석이 되고 있다. 정부 혹은 경제 정책 기관이 볼 때 서로 몇개의 경제 지표들이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상태를 두고 골디락스 경제라고 부른다.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고성장 과정에서 제조업 생산의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커져서 경제 고용률이 높아지는 현상에서도 골디락스 경제라고 불렀다.


그러나 경제 현상을 주요 경제 지표를 통해서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은 많은 경제 현상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골디락스 경제라는 이름으로 모순된 경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적절한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는 경제 활동 영역에서 몇가지 지표를 통해 균형잡힌 성장점을 찾는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 되어버린다. 즉,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골디락스는 이미 '만들어진 결과론적 해석'이 강하다. 그 결과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가능하지만 인간의 인지력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강한 의지에 보아야 하는 중요한 것을 놓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생명체가 생존 가능하다는 결과론적 사실에 대해서 우주행성학자들은 생명체에 가장 필요한 요소는 항성과 행성의 거리이다라고 한다면 다른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의 탐구에 있어 거리라는 요소에 집착하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 현상에 골디락스 경제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가 원하는 몇가지 경제 지표들은 만족할지 모르지만 관심있는 경제 지표에 나타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노동의 생산력은 높아질 수 있지만 실제 노동자의 고용률이나 노동자의 노동 생산환경,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을 높아질 수 있다.  거시적인 경제의 규모는 커지지만 실제 노동자 삶의 질은 점점 하향 평준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른 예로 산업 생산 규모는 줄어들지만 금융 자본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실제 성장은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물 생산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지게 되는 순간 해외의 충격에 쉽게 무너지는 부분도 고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농업, 축산물의 생산의 국내 비율이 줄어들게 되면 당장 경제가 좋아 보일때는 문제가 없지만 금방 생산하기 힘든 1차 생산품의 경우 해외 수입에 의존 비율이 높아지게 되고 그 이후 환율이나 해외의 상황에 따라 크게 충격이 전해지는 현상을 예상할 수 있다.

골디락스 경제의 환상은 일부 경제학자들에게 막연한 희망을 주게 된다. 한때 그런 적이 있기 때문에 또 다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그것은 우리의 개념에 존재하지 않는 외계 생명체의 모든 생리학적 조건과 생존 조건에 대한 지식을 모두 알아도 그것에 맞는 골디락스 조건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만약 이런 작업이 가능하다면 현 상황에서 골디락스 경제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적당한 범위'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적절한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물어보면 항상 대답하기 힘들어 한다.

회에 대한 이야기...

일반적으로 '기회(opportunity)'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느낌은 어떤가? 기회는 자신에게 유리한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시기적, 공간적 적절한 타이밍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기회는 잡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회'라는 단어에 가지는 느낌이다. 정성적 느낌은 이정도라면 정량적 느낌은 어떤가? 우리가 어떤 기회를 잡았다고 말할 때는 대부분 큰 돈을 벌거나 자본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아무리 종교 신학적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는 사건'이 부활하실 수 있는 '기회'라고 말 할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못박혀 십자가에 죽으시는 분에게 '기회 잡으셨네!' 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기회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특별히 대중적인 느낌은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적 기회로 통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아무리 유명해지고 명예로운 자리에 오르게 되어도 그 명예가 자본의 증가와 연결이 되지 않으면 특별히 그것을 기회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현대 사회에서 '기회'란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란 골디락스를 적용하여 적당한 자본을 얻는 것인가? 이 명제에 대해서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회란 가능한 큰돈, 많은 돈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목표는 골디락스가 전해주는 '균형잡힌 조건'은 소용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반대로 위험은 가능한 줄이기 바란다. 위험(risk) 는 가능한 가지고 있지 않고 권력과 힘에 의해서 자신들보다 구조적으로 하위인 집단에 넘기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현명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은행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위험은 투자자들과 은행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투자자에게 돌아가서 투자자들은 자신의 원금을 다 날려도 제대로 찾지 못하지만 은행이 개인에게 투자하는 것 (을 자본주의는 투자라 부르지 않고 대출이라 부른다) 은 은행이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받아내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은행이 기업에 대출해주고 상환 받지 못한 경우는 또 어떻게 되는가. 규모의 문제로 기업의 부실 채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위험 요소이다. 골디락스가 경제에 전해주는 하나의 교훈은 골디락스는 경제에서도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의해서 기업이 모두 기회만 찾고, 위험은 버릴려고 한다면 사실상 사라지지 않는 그 모든 위험을 떠 넘겨 받아야 하는 경제 추제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약 지구의 위치가 목성정도 되어도 인간이 생존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억지일 것이다. 지구는 지구가 놓인 위치에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에 대한 균형잡힌 조건을 갖춘 것이다.

마찬가지로 경제의 자본 투자에는 항상 위험이 동반되어야 한다. 위험 요소를 자신이 아닌 다른 경제 주체에 넘기는 방법은 책임은 지우고 권한만 높이려는 탐욕적 자본주의의 가장 큰 표본이다. 이런 이유로 파생상품이 만들어졌고 결국 그 파생상품의 피해는 은행의 복잡한 투자 공식 (formula) 를 이해하지 못하고 금융 기관만 믿었던 일반 투자자들, 심지어 투자도 하지 않았지만 금융 채무자였던 많은 서민들에게 그 위험이 전달되었다. 결국 우리가 기회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생각할 수 있던 자본은 무조건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 즉, 자본적 기회를 최대로 잡아보자 는 일반적인 생각들의 합은 결국 위험의 강도에 따라서 점점 죽어가는 경제 주체들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만약 골디락스 조건을 조금 벗어나 지구가 태양에 아주 조금 가까워졌다고 해서 당장 인류가 한꺼번에 멸망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에 아주 조금 가까워진 이유로 변화되는 자연계의 현상이 위험이 되어서 이 위험에 취약한 순서대로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위험에 덜 취약한 (위험에 대해서 대처할 충분한 자원 혹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은 조금 더 생존할 것이다. 만약 조금 더 태양에 가까워져 전 인류가 멸망해 버린다면 그 순간 지구라는 큰 실험실에서 골디락스 조건을 찾아낸 것이 될 것이다. 결국 인간은 생존을 결과로 골디락스 조건을 찾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 대상자들이다.

회(opportunity) 의 형용사는 opportune 이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조금한 엉뚱한 느낌이 다가온다. 그 뜻은 '적당한', '적절한' 이란 뜻이다. 앞서 기회란 단어가 주는 최대의 효율과 이득을 향한 막연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했던 최대의 효율과 이득은 자본이 주는 인간의 탐욕만을 보여주는 기회에 대한 오해가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다. 기회는 오히려 '골디락스'와 같은 것이다. 많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크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가 쓸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적당한, 적절한 조건에 맞는 시간, 공간, 자원을 찾는 것이 바로 기회란 점이다.

인생에 기회가 세번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 대해서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기회를 몇번 찾아오지 않는 뭔가 특별하고 시간의 특별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 세번정도가 적당할 지 모른다. 그러나 기회란 이미 존재하는 시간, 공간, 자원의 적절한 조건을 찾는 과정이다. 김연아 선수의 트리플 악셀이 뛰어나고 멋지다고 해서 나에게도 그 트리플 악셀이 기회가 될거라고 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맞는, 자신에게 적절한, 자신만의 골디락스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일단 그렇게 찾은 골디락스는 어떤 의미에서 상당히 지속적인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골디락스 조건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 된다. 앞서 설명한대로 골디락스는 결과론적 해석이다. 일단 어떤 결과가 일어나고 그 결과에 대한 우리들의 해석이 골디락스인지 아닌지 설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게 맞는 골디락스 조건을 찾는 것은 그만큼 많은 경험과 많은 내용을 개인의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조건의 시도를 통해 개인에게 맞는 골디락스 조건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마치 아빠 곰의 음식을 먹어 봐야 아기 곰의 음식이 더 맛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결국 골디락스 동화에서 우리가 주는 것은 세상의 다양한 우리에게 맞지 않아 보이는, 별로 내키지 않는 경험도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그래서 인생에는 세번의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는 인생은 세번정도 나에게 적절한, 적당한 조건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껏해야 자신에게 적당한 시간, 공간, 자원을 세번정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골디락스가 자신에게 적당한 조건을 찾기 위해 세번의 시도를 했다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무 현명하기 때문에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고 머리로 판단하여 나에게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골디락스 조건일 수 도 있는 경험을 포기하고 결국 더욱 더 자신의 기회를 만나기 힘든 것이다. 적당한 조건을 찾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탐욕의 크기로 너무 태양에 가까이 가버리면 인간은 지구도 금성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고, 자신의 두려움의 양이 커서 너무 태양에서 멀어지면 인간은 지구도 화성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인간은 항상 기회를 가질 것이다.


기회 (opportunity) 는 어느 순간 번쩍 나타나는 일시적 사건 (discrete event) 가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는 일종의 연속체 (continuu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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