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18, 2008

막시밀리안 마리아 꼴베 (Maxilian-Maria Kol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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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의 순교자 막시밀리안 마리아 꼴베(Maxilian-Maria Kolbe)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폴란드의 무염 성모 마을의 원장으로 있던 콜베 신부는 독일군에 의해 지옥 같은 아우슈비츠 노동 수용소에 감금된다. 1941년의 일이다.  한 명의 수인이 수용소를 탈출했다.  나치는 본보기로 10명의 수인을 처형하기로 했다.  앞으로 불려나오는 사람은 물조차 주지 않고 굶겨 죽이는 아사(餓死)감방 행이다. 사람들은 아사 감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인가를 알기 때문에 공포에 질렸다. 무작위로 처형자가 불려나와졌다.

10명이 다 불려졌을 때,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제발 나를 살려주시오.  내게는 아내와 어린 자식이 있소."하며 울부짖었다. 그 때 꼴베 신부는 천천히 수용소 소장 앞으로 나서면서 "나를 대신 죽여주시오. 나는 딸린 가족이 없는 천주교 신부요. 저 사람 대신 나를 보내 주시오."라고 하였다.  수용소장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유대인 다음으로 미워하는 천주교 신부가 제발로 나서서 이런 청을 하자 쾌히 허락했다. 이 때 꼴베 신부의 나이는 47세였다.

신부 대신으로 목숨을 건진 이는 가요비니체코라는 사람이었다.  "그때, 신부님과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헤어졌는데, 신부님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요비니체코씨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리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다.  그는 심한 자책에 빠진졌다.  "그렇게 훌륭한 사제를 죽음으로 몰아낸 것은 나다. 내가 죽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을..."

그렇지만, 오랜 시간 후에 그는,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듯, 말없이 미소짓던 신부의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닫고, 긴 세월의 고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는 꼴베 신부의 그 "사랑"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게됐다.  가요비니체코씨는 93세의 나이로 1995년 세상을 떠났다.


꼴베 신부는 1930년부터 6년간 일본에 와서 선교사로 일했었다. 큐슈의 나가사키에는 그가 설립한 수도회가 남아있고, `성 꼴베 기념관`도 있다.

`성 꼴베 기념관`의 관장, 오자키(小崎) 신부의 말.
"지금까지 나는, 꼴베 신부가 가요비니체코씨를 구하기 위해 대신 죽겠다고 신청한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신부는, 사실은 아사 감방에 함께 넣어진 9명을 구하기 위해 신청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사 감방에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속옷을 입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먹을 것은 물론 물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확실히 죽는다. 살아날 희망은 조금도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여기서는 완전히 짓밟혀버렸다. 그들에게 삶의 의미 같은 것이 있을까? 그 가운데 꼴베 신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용히 기도하며, 동료들을 격려했다. 그들의 망가진 마음을 받쳐주며, 그들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종을 지켰다. 그 전까지 아사 감방에서는 절망과 고통, 하느님을 원망하는 소리뿐이었지만, 이 때만은 기도와 성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신부는, 시체를 치우러 오는 병사를 상냥한 눈으로 쳐다보며, 그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오자키 신부) 9명이 다 죽어 나가고 신부가 최후의 한사람이 되었다. 놀랍게도 17일간 살아남았다. 보통, 인간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17일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신부는 고질적인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감방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 나치의 간수로부터 기절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나치는 신부에게 독주사(훼콜산)를 놓아 안락사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최후의 한사람이 되어서도 신부는 고결함을 유지했다.  존엄을 잃어버려야할 상대가 자애로운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니... 나치는 결국 꼴베 신부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승리의 소식은 살아남은 수인들에게 전해졌다.

"아우슈비츠에 희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꼴베 신부의, 사랑의 죽음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에게 '살자, 끝까지 살아남자.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는 힘이 용솟음쳐 올랐습니다.  그 마음의 변화를 나는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아담이라는 사람의 증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같은 놀라운 사랑과 희생을 기리며 1982년 막시밀리안 마리아 콜베 사제를 '사랑의 순교자'로 시성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고난과 시련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울부짓으면서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주님은 왜 오늘 내 앞의 고난과 시련을 없애주지 않았냐고...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난 주님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나에게서 없애달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기에 나 하나 치유해주지 못하냐고 그래서 십자가는 더이상 지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주님을 믿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고 하면서 얘기합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보상은 무엇이냐고...
이렇게 고난도 시련도 다 이겼는데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왜 아무것도 없냐고 불평이 가득해지고...

신이 고통받고 있을 때 당신의 곁에서는 당신의 십자가와 당신의 무거운 마음을 들고 계시는 더 힘든 주님이 계십니다. 요즘 발견한 순교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은 죽음의 극한 상황에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같이 계셨기에... 결코 외롭지 않았고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죽을 것 같은 어떤 시련과 고난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 수 있기를 이 밤, 고요하고 은은한 주님의 향기가득담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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