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3, 2009

'평화의 기도'를 통해 얻어지는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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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됨을 깨닫게 하소서.

아멘.

Seigneur, faites de moi un instrument de votre paix.
Là où il y a de la haine, que je mette l'amour.
Là où il y a l'offense, que je mette le pardon.
Là où il y a la discorde, que je mette l'union.
Là où il y a l'erreur, que je mette la vérité.
Là où il y a le doute, que je mette la foi.
Là où il y a le désespoir, que je mette l'espérance.
Là où il y a les ténèbres, que je mette votre lumière.
Là où il y a la tristesse, que je mette la joie.

Ô Maître, que je ne cherche pas tant à être consolé qu'à consoler,
à être compris qu'à comprendre,
à être aimé qu'à aimer,
car c'est en donnant qu'on reçoit,
c'est en s'oubliant qu'on trouve, c'est en pardonnant qu'on est pardonné,
c'est en mourant qu'on ressuscite à l'éternelle vie.

세상에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세상의 어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존재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그렇다.

두려움에 떨고 있고 두려움에 무엇인가 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난 이렇게 이야기했다.

두려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데 다만 용기가 없을 뿐이라고...
빛과 어둠과 같이 두려움이란 용기가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래서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그것은

두려움과 용기가 모두 존재해서 두 존재가 내 마음에서 싸우다가 두려움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기에 두려움만이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렇게 말해줄 수 밖에 없었다.

평화의 기도를 좋아한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그 평화의 기도가 떠올랐다. (사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작품이 아니라고 밝혀졌다고 하지만 아마도 프란치스코 성인를 잘 나타내주기에 혹은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기도문이라 종종 그렇게 부른다.)

St. Francis statue at North End in Boston

프랑스어를 직접 해석하면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이란 표현보다는 미움이 있는 곳에 내가 사랑을 씨 뿌릴 수 있게 해달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이 더 다가오는 이유가 있었다.

단순히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하느님이 내려달라는 그런 뜻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런 사랑의 씨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달라는 점이다. 아름다운 기도엔 순수한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져야할 철학도 가지고 있다.

오늘도 순간 순간 그 평화의 도구로 나를 사용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유는 간단하다. 어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은 그저 빛이 존재하지 않음을 스스로 밝히는 등불과 같은 존재로 보여주고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미움은 사랑의 부재임을, 다툼은 용서의 부재임을 평화의 기도를 통하여 느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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