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전의 일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대학때도 학교가 가까워 재밌게 지내는 이성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4학년 어느 날 학교 식당으로 내일 보자는 말과 함께 예전에 자신이 미국에서 사온 인형을 가지고 나와달라고 했다. 아무런 걱정없이 다음 날 학교 식당에서 만난 그 사람은 이유도 영문도 모른 체 그 인형을 준비한 가위로 싹둑 싹둑 잘라버리고는 "너는 이 선물 받을 자격없어" 라는 말과 함께 그냥 가버렸다.
너무도 깜짝 놀라고 어리둥절한 상황에서 이유도 알지 못하고 그냥 "받을 자격없다는" 통보만을 받고는 그렇게 연락이 끊겼던 것이다. 사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그 이후에도 그 일을 회자하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유일까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상담해 보아도 수많은 추측만 난무할 뿐이지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사람 뿐이라는 점이다. 사실 몇년이 지나 공석에서 그 친구를 만날 기회는 있었지만 인형을 자르는 그 영상은 마치 반복되듯 내 머리에 남아서 그 친구 앞에서 계속 그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소심해진 내 마음의 벽때문에 그냥 물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가끔 그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잊은 듯 지내왔었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 그 사건이후 얼마나 내가 사람들의 알지 못하는 시선과 반응에 혼자 힘들어하며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소심한 나로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 대해서 뭐라고 그랬다는 소문 뿐만 아니라 별로 의미두지 않아도 되는 상대방의 시선과 태도를 생각하면서 내 스스로 여러가지 방어적인 추측을 가득하게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러한 방어적인 추측들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한숨이 나오곤 한다.
몇년 후 사귀게 된 외국에 살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사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멀리 떨어져 있고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 다투기도 하였지만 매일 안부를 묻고 잘 지내고 있었지만 어느 날 여자친구의 지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흉흉한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어느 시점에서 이별을 하게 되었다. 소문이나 가쉽에 항상 걱정하며 두려워하면서 살았던 내 소심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리는 가쉽은 마음을 스스로 힘들게 만들었고 그런 가쉽을 만들어내는 채터 혹은 가쉽퍼의 일방적인 혹은 과장된 내용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웃긴 사실은 그 반대로 여자친구에도 수많은 이간질과 저질스러운 블랙메일을 내가 보낸 것처럼 만들어서는 결국 나를 경찰서 조사까지 받게 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정을 정리하고 있어서 확실한 알리바이와 시스템 로그 분석으로 그 메일이 내가 보낸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해결은 했지만 더욱 더 진실에서 벗어난 그런 가쉽과 이간질로 내 스스로가 얼마나 속박되어 살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원망스러운 부분은 왜 미리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데... 라는 연락을 주지 않았는지 그리고 이상해서 보낸 확인 메일이나 전화에도 제대로 대꾸조차 안하고 그런 극단적인 방법을 쓴 상대방을 생각하며 그 사람도 나만큼이나 그런 소문과 가쉽에 얼마나 속박되어 살았었을까 하며 원망보다는 그냥 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로 생각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에 소극적이기 시작했던 나의 삶 안에서도 그런 대응의 모습은 직접 물어봐서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보다는 그냥 혼자 추측을 하며 생각하고 그 생각에 어떤 구체적인 대처 방법도 제시하지 못한 체 그냥 속앓이만 하면서 살아왔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생기는 성격이 바로 소문과 남들의 시선, 판단에 민감해지고 나를 나쁘게 말하는 시선에 대해서는 억울함에 호소하며 방어하지만 결코 적극적이지도 않고 어느날 버스 안에서 뜬금없이 눈물을 흘리는 때도 있었다. 남들의 시선이나 가쉽이 왜 같인 사실에 대해서도 꼭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지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적극적으로 잘 했다" 라는 말도 "어디 분위기 모르고 나대냐" 라는 말로 변하고 사실은 존재해도 그 사실에 대한 가쉽이나 시선은 결국 그렇게 남 이야기를 좋아하는 "가쉽퍼"의 기호와 판단으로 왜곡되기 쉬운데도 그 소문의 내용에 더 신경이 쓰이고 그 시선이 퍼지는 것에 대해서 마음 아파하며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런 시선이 두려워서 사람들 앞에서 내 맘대로 춤추고 싶어도 추기 힘들었고 뭔가 적극적으로 하고 싶어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하지 못했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군중이 많아지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그 수많은 군중 모두에게 모나지 않는 사람으로 보여야 했고 그 시선의 자체 검열로 인하여 내가 원하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서 하지 못하고 뒤돌아서서 후회한 기억들이 쌓여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도 그런 시선이 결코 맘에 들지 않는다. 교회 활동을 하거나 어떤 사회 생활을 하더라도 부딪치는 사람들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시선과 그 사람들이 떠벌릴 수 있는 편향적이고 부정적인 나에 대한 이야기가 두려웠고 그런 두려움에 결국 내 마음이 이끄는 삶보다는 그들의 시선이 불편하지 않은 모습만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에 들어 내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나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그러한 시선들 때문이 아니라 그 시선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스스로 감옥을 만들었는지 알게 된 것 같다. 인형 사건에서 나는 항상 '내가 어떤 잘못을 했을까'라며 나를 추궁했고 이간질에 의해 경찰서까지 갔다온 이후에도 '내가 무엇을 서운하게 했나'며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그리고 내 맘에 안드는 소문들을 만들어 내는 가쉽퍼의 시선엔 그들의 성품을 비난하면서도 내가 정말 그런 모습이 있는건가 하면서 조심스러워지기만 했다. 그러나 어느 날의 기도를 통해서 느낀 하나의 교훈은 그런 편견과 삐뚫어진 시선을 가지고 소문을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코 좋은 이야기를 하며 누군가를 칭찬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그들의 삐뚫어진 시선과 자신의 욕심어린 편견에 만들어진 가쉽들에 의해 나같이 소심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늘 알 수 없는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남들의 시선이나 편견 그들의 기호에 맞는 일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올바른 가치관에 신념을 가지고 행동 하나하나 순간 순간 행하는 것이고 혹여나 부끄러운 일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먼길을 돌아서 왔지만 이제는 그 누구의 시선이 두려워서 내 삶을 우회하지 않을거라고 다짐한다. 내 존재의 의미는 그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 존재의 의미는 너무 쉽게 무너질 것이다. 내 삶의 기둥은 나 스스로이고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은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으로도 나는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느끼던 그 시선의 두려움과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나 스스로도 누군가에 대한 판단, 내 기호에 따라 누군가를 비난하는 굴레에서 탈출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다.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이다.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늘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판단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한 달 전이나 두 달 전 또는 며칠 전의 낡은 자로써
현재의 그 사람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늘 잘못된 것이기 일쑤이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딴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말로 비난하는 버릇을 버려야
우리 안에서 사랑의 능력이 자란다.
이 사랑의 능력을 통해
생명과 행복의 싹이 움트게 된다.
:::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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