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3, 2011

인과관계의 희생물 (a casualty of caus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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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시한부 혹은 불치병을 선고받았다고 하자.

소중해질까 아니면 삶이 무의미해질까? 

우리가 즐겨 찾는 착각중에 하나는 세상의 인과관계는 정확할거란 잘못된 믿음이다. 즉, 대부분 결과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런 이유로 이런 결과가 이루어졌다며 즐겨 분석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렇게 인과관계의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지금 이루어진 결과가 인(因)이 되는 과(果)가 무엇이 될것이냐고 물어보면 머뭇거릴 것이다.

그렇게 인과관계의 전문가인척 세상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원하고 말하고 싶은 방향대로 끼워맞추기일 뿐이다. 인과관계란 존재한다.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이야기한 것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우리가 만든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insensible) 거대 법칙 (universal law) 에 의해 지배당하고 우리는 그냥 관찰할 뿐이라고 했다.


사실 그런 결과를 두고 이야기하는 인과관계의 역추적은 우리에게 큰 편견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과정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는다.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해석하고 분석해야 우리는 그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유사해보이지만 전혀 다른 법칙이 작용하는 대상에 대해서도 비슷한 잣대로 그어버린다.

리는 그래서 인과관계의 희생물(a casualty of causality)일 뿐이다. 아이러니 하게 신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인과관계의 희생물로 상처받고 고통받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책 또한 하늘의 조화로운 그 법칙으로는 인과응보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불교의 retribution 혹은 karma 라 부른다.

세상이 부도덕하고 잘못된 인간들이 정의를 짓밣으면서도 그들은 인과관계를 통해 모든 변명과 자신의 이익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안에 정의란 인간이 무수히 지꺼리는 말로 성립되는 것이 아닌 것임도 알것이다. 그것이 억울하고 당혹스러워도 막연한 정의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 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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