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28, 2012

생활시장과 대형마트 ─ 우리는 누구를 위해 소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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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의(衣)와 식(食)을 주로 담당하는 공간이 바로 '시장'이다. 시장은 우리가 생필품을 구매하는 물리적인 개념이면서 자본주의 경제이념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제시되는 공급-소비의 활동 무대도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만큼 우리는 시장을 통해서 우리들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고 소비자들이 필요한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시장경제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다. 물론 이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에 제한되지 않으며 이제는 인터넷의 상거래를 통해서 시장의 개념은 확대되고 있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서 이제부터 인터넷 상거래 공간은 논의의 중심으로 두지 않을 것이다. 시간 상으로는 1주일 혹은 가정의 냉동 보관 능력에 따라서 최대 한달의 생필품 등, 우리가 식재료와 생필품으로 사용되는 물건을 주로 구매하는 공간으로 제한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물론 인터넷 상거래는 이러한 물건들까지도 거래가 되고 있지만 통상적인 개념으로 "장을 본다"란 정도를 생각하고 싶다. 익숙하고 친숙하지만 우선 용어에 대한 정의를 통해 시작하고 싶다. 이제 우리는 대형 자본에 의한 마트, 대형규모의 마트부터 기업형 슈퍼마켓까지 대기업의 브랜드를 가지고 운영하는 시장과 구별하기 위해 기존의 시장을 "재래 시장" 혹은 "전통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소위 전통/재래 시장의 활성화가 우리 경제에 필요하다는 의견적 합의(consensus)가 있다면 현대/최신의 의미와 대비되어 보이는 전통/재래 라는 수식어 대신 그냥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대규모의 마트와 특별한 구별이 필요하다면 "생활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떨까 작은 의견을 먼저 제시한다. (지극히 개인적 의견) 편리한 이야기 전개를 위해서 이후 대규모 자본에 의한 마트는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트(SSM)으로 구분하고 생활 시장이라 제시한 중소자본 자영업자들이 모인 공간을 이후 '시장'이라고 표현하겠다. 


¶ 마트와 시장

마트와 시장은 소비 필요 / 욕구를 잘 충족시키준다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져도 먹고 사는 것, 입고 사는 것은 쉽게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어 차를 구매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에 돈을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형성은 도시가 형성되고 주거지가 밀집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다. 문제는 어떤 자본에 의해서 형성된 유통인가가 중요하다. 마트와 시장을 나누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자본이다. 더 엄밀히 말하자면 자본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규모를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의 자본의 확장성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시장을 먼저 생각한다면 시장의 경우 자영업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본에 맞는 크기의 공간을 차지하고 형성되어 자본의 규모가 실제 자본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과 비례해서 증가하는 경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마트의 경우에는 초기의 투자 비용이며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거대 자본이 들어가게 된다. 


과적으로 이런 구분을 통해 생각해보면 마트와 시장에서 얻어지는 이익이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지를 통해서 마트와 시장을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쉽게 말해 마트나 시장에서 얻어진 이윤이 누구에게 들어가는가이다. 대형마트는 물론, 기업형슈퍼마켓의 경우에도 해당 브랜드에 수익이 흘러 들어가고, 유통에 필요한 물류비, 판촉비, 마켓팅 비용 등 이윤이 본사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기업형슈퍼마켓은 대부분이 대형마트가 거리상 해결하지 못하는 원거리 계산대(POS; Point of Sales)라고 생각하면 된다. 따라서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의해 마트와 시장을 구별하는 것보다는 ① 자본의 초기 유입 ② 이윤의 분배 흐름이 어떤 형태인가를 통해 마트와 시장을 구별해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애매할 수 있지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업종을 한번 생각하자. 바로 빵집이다. 1980~90년대만 하더라도 동네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빵집하나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자라나는 세대에게 빵집은 그런 자영업 형태의 빵집이 아니라 대규모 프랜차이즈를 떠올릴 정도로 온 동네에 확산되고 있다. 2007년에서 2011년 기준으로 통계를 보면 동네빵집은 8,034개에서 5,184개로 34%가 줄어든 반면,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은 같은 기간동안 3,489개에서 5,290개 (52% ↑)로 증가했다. (출처: (사)대한제과협회) 이와 더불어 실제 매출 규모의 변화로 인하여 대기업에 흘러들어가는 자본은 증가한 반면 자영업자들의 개개별 소득은 줄어드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사실 커피 전문점, 음식점까지 자영업에 의한 다양한 형태보다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의한 일률적인, 통제적인 변화를 생각해 봐야 한다. 



¶ 자유 경쟁 시장에 풀어버린 마트

마트가 대규모 자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마트가 가지는 접근성, 편리성 등 마트만이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까지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시장에서 유통하기 힘든 제품, 예를 들어 수입품 중에서 우리가 접하기 힘들지만 수요가 있는 열대과일이나 전자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게 되어 아직 시장이 자연적으로 형성되기 이전에 마트는 신도시 주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줄 가장 효과적인 형태임에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자유 경쟁 시장에 풀어놔서 시장과 경쟁하게 하여 시장이 쇠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시장의 경쟁력만을 탓하며 사라져가는 시장을 방치하고 마트가 지배하는 구조가 괜찮은지에 대해서는 분명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평등한 출발점: 자유 경쟁의 논리라면 기본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마트와 시장이 동일한 선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거대 자본이 가지는 나쁜 부분을 제거해야만 공정해진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 부분은 마켓팅이다. 기본적으로 대기업 자본은 자신들의 자본의 힘으로 일시적이고 물량적인 방법으로 소비자를 현혹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소위 이윤도 포기한 초반의 공격적인 마켓팅을 통한 부분은 공정한 자유 경쟁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또한 마트의 형성 과정에서도 기존 시장을 자본의 힘으로 밀어서 기존의 시장 공간을 마트로 만들기 위해서 땅을 사버리는 방법또한 어떻게 자유 경쟁의 논리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만 시장의 경쟁력은 이미 자본의 밀집도에서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거대 자본은 단순히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서 다양한 합법을 가장한 비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의 경쟁력을 이야기하기 전에 중앙 정부나 지방정부는 이러한 자본에 의한 불공정 경쟁의 모습과 구조를 파악해서 이를 규제하는 법을 제시해야한다. 


사실 시장과의 상생을 위한 거대 자본의 마트를 규제하는 방법은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핵심인 듯 그 문제로 설왕설래한다는 점이다. 사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자본에 의해서 파괴되는 기존 시장 구조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이다. 오히려 대기업은 영업시간 규제에 더욱 집중하게 해서 본질은 흐리게 하는 대기업의 프레임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마트와 시장의 불평등한 출발점은 바로 자본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누군가 제기할 수 있는 의문점이 있다. 왜 자본도 하나의 경쟁력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경쟁력이 아닌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가장 큰 경쟁력이다. 그러나 자본의 속성을 크게 두가지로 분리해서 생각하고 싶다. 하나는 ① 촉진적 자본 (promotive capital) 이고 반대의 모습은 ② 잠식적 자본 (aggressive capital) 이라 부르고 싶다. 전자는 자본에 의해 이윤이 발생하고 이를 재투자하여 순환적 구조의 자본의 생산적 활동을 계속 촉진하는 반면, 후자는 경쟁 상대를 쓰러지게 해서 합법적, 현실적 독과점 상태를 만들기 위한 자본이다. 

따라서 마트와 시장의 상생을 바란다면 이러한 자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여 어떤 목적을 두고 자본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이성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아주 간단한 예로 동네 빵집이 영업을 하고 있는 가까운 공간 안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서는 것을 규제해야하는 합리적 이유는 바로 이러한 잠식적 자본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동시에 동네 빵집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 이미 영업을 하고 있고 해당 빵집이 가지는 시장 규모도 이미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가까운 곳에 대기업 빵집이 들어올 때 기존의 동네 빵집의 이윤을 나누어 가지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대기업 빵집이 생겨서 시장 규모가 두배로 증가한다면 단순히 잠식적 자본으로 규정할 수 없겠지만 그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누가 믿겠는가. 그렇다면 잠식적 자본이 시장을 장악할 때 우리에게 어떤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잠식적 자본이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유추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첫번째 문제 - 유통 구조의 권력화

단순히 마트의 주요한 활동은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느껴지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은 바로 유통이다. 생산자에게 물건을 공급받아서 소비자에게, 더 구체적으로 소비자의 규모에 따라서 어디로 보낼지를 결정하고 판단하는 부분이다. 유통의 시작은 공급자로부터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받는 것이다. 시장 원리로 살펴보면 다양한 공급자들이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의 경쟁력을 통해 경쟁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게 되면 공급자들은 가격경쟁력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다양한 내용을 통해서 자신들의 물건을 팔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마트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대기업 유통망이 자회사라는 이유로 경쟁력이 없는 공급자에게 납품을 받아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면 오히려 소비자들은 질 높은 물건과 서비스를 만족스러운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기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트가 시장과 경쟁에서 거의 모두 이겨서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자. 

공급자 입장: 농부 이당근씨는 자신이 개발한 유기농 농법과 영양소가 높은 소비자들이 찾을만한 질 좋은 당근을 생산해 낸다.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 마트에서는 이당근씨의 당근을 사주지 않는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윤이 적기 때문에 본사의 입장에서 이윤이 적은 이씨의 당근은 자신의 유통망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씨는 인터넷 등 다양한 직거래 방식으로 유통을 하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소량 물량을 자주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대기업 마트 유통망에 납품하는 것이다. 마트에서는 당근의 단가를 줄여서 납품을 하거나 아니면 수입품 가격의 몇% 이상은 넘지 않도록 결정을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이씨는 손해보는 납품 단가에도 납품을 하게되었고 결국 다음해부터는 이윤이 나지 않아서 자신이 개발한, 소비자 건강에 더 좋은 당근보다는 가격에 맞는 당근을 만들게 되었다. 


소비자 입장: 소비자는 보다 좋은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한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싼 가격으로 구매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제 삶의 질을 생각하는 소비자의 성향을 생각한다면 비싼 가격이라도 기능이 좋거나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고 싶어진다. 그만큼 제품의 다양성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유통망이 독과점에 비슷한 대기업 구조아래에서는 소비자의 다양한 소비 성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통 구조의 효율성에 비추어 이윤이 나는 제품이 선호되게 된다. 이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권은 유통망의 선택에 의해 제한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트 중심의 유통망이 장악되는 시장구조가 아니라 생산자와 유통망이 소비자에게 다양한 경로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과 더불어 공급자의 다양한 생산 효율성 향상을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유통망이 몇개 없는 사실상의 독과점 형태에서는 이러한 유통 구조의 권력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태에서는 상품의 다양한 경쟁력은 무시될 수 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실 생산자의 경쟁력에 따라서 다양한 유통망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기존의 도매시장 / 소매시장으로 이어지는 다단계의 유통망으로 중간 이윤이 더 커져 결국 소비자에게 가격이 증가하는 구조를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 규모에 맞는 중소 자본 시장의 정보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시장과 생산자 들이 직거래할 수 있는 유통망을 제시한다면 생산자는 적정 규모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급처가 생기고 시장은 다양하고 제품을 판매해서 마트가 가지지 않는 시장의 경쟁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림출처: 중앙일보

앞서 제시한 내용은 농산물 등에 관한 내용이지만 공산품에 대한 유통 구조의 권력화 문제도 살펴볼 수 있다. 환경 유해 물질을 제거한 깨끗한 화장지를 만드는 정깨끗씨는 대기업 유통망에 자신의 경쟁력있는 제품을 납품하고 싶었지만 마트 유통망은 자신들의 자회사 혹은 자체 브랜드(Private Brand 상품)와 경쟁 상품이라는 이유로 납품량을 제한하거나 납품 단가를 낮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처럼 단순히 제품 자체가 경쟁력이 있어 인기가 있다고 해도 마트의 입장에서는 거절할 수 있게 되어버린다. 사실 이러한 유통 구조의 권력화는 생산자들이 대기업 유통망이 원하는 상품만 만드는 실질적인 하청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높다. 또한 농수산물 같은 경우에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수입품으로 대량 공급하게 된다면 사실상 이윤은 대기업 유통망과 수입업체 해외 생산지에 돌아가고 국내 1차 생산자들은 경쟁력이란 이유로 고사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시나리오에서 한가지 전제는 기업은 자신의 이윤을 위해서 상당히 합리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국내 생산자를 보호한다거나 국내 업체의 경쟁력을 증가시키기 위한 활동보다는 단순히 이윤이 어디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가의 단기적인 경영 결정을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벗어나 다양한 생산자를 생각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앞서 이야기한 내용은 단순한 기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지 생각해보자. 


¶ 두번째 문제 - 고용 구조의 불안정 

마트의 편리함에 푹 빠져 있던 지인은 시장과 마트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장의 자영업자들이 줄어든다라는 이야기에 마트에서 고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 사람들 근로 환경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즉, 마트가 많이 생기면서 시장의 자영업 상인들은 줄어들지만 그에 비해 마트의 고용 창출 효과도 높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고용 창출을 이야기할 때 항상 일자리의 숫자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일자리는 단순히 생계수단의 역할만을 강조하게 될 때 인간의 노동 창의성은 최하가 된다. 노동 창의성은 자신의 일자리에서 얼마나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할 수 있는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를 들어 빵집 사장인 박곰보씨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과 다른 새로운 단팥빵과 새로운 형태의 식사빵을 개발한다.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서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빵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매출을 증진시킨다.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빵집이 아닌 박곰보씨에게는 빵으로 더 큰 만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공간이 된다. 그러나 마트의 고용 구조는 유통과 판매에 집중되어 소위 단순 업무 이상을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정해진 규칙과 시간에 맞춰 일해야 하는 단순 노동이 주가 된다는 것은 뻔하다. 창의적 빵을 만들겠다던 박곰보씨도 결국 대기업 빵집에 밀려 마트 계산원으로 취직하게 된다면 사회적인 측면으로도 개인의 역량을 단순 노동으로 바꿔버리는 사회적 손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트가 증가하면 할수록, 자영업 시장 상인들이 줄어들면 들수록 직업의 형태와 다양성뿐만 아니라 노동의 질도 전체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사실 고용 인원의 증가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자. 그래도 여기에는 큰 함정이 존재한다. 바로 고용 구조의 불안정성이다. 사실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고용을 하는 주체는 거대 자본 기업이다. 기업 입장에서 고용된 노동자 가족이라기 보다는 이윤이나 기업 논리에 맞춰 언제든지 줄일 수 있는 인권비로 가장 먼저 다가갈 것이다. 그리고 마트에서 고용된 경우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안정적으로 오랜동안 다닐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사실 더 중요한 부분은 고용의 결정권을 사측에서 상당히 쉬운 방식으로 감원하거나 통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고용의 결정권이 중앙집중적이기 때문에 노동 환경이 열악하거나 힘들어져도 결국 생계수단을 위한 직업이 되어 불평부당한 처우에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처우가 좋고 복지혜택이 좋다고 해도 결국 그 혜택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고용 구조는 안정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오자. 대부분 대학을 나온 청년들의 고민은 마트가 많아지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는 꿈이 있기에 마트에 직장을 구해도 마트의 관리자나 본사에서 중책을 맡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아니면 다른 대기업, 대부분은 거대 자본의 우산 아래에서 생존하는 방식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청년들에게는 나라 전체의 고용 구조가 어떤 식으로 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자신이 갈 수 있는 직장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거대 자본의 우산 아래에서 직장을 구해 소위 안정된 생활을 경험하여도 여기엔 하나의 딜레마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을 고용한 거대자본의 기업이 자신에게 시키는 것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골목 상권을 장악하고 중소자본 자영업자와 자본으로 경쟁해서 이기게 하라는 것이라면 그들은 직장을 계속 다니기 위해 기업의 요구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움직여야 하는 것인가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아주 간단하다. 거대 자본이 탐욕스럽지 않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의 자본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될수록 그런 탐욕의 자각은 소수의 깨우침이나 득도를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게 된다. 운이 좋다면 도덕적 기업 안에서 아무런 갈등없이 직장을 다닐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개인적인 문제에서 다시 중소규모 자영업자가 많은 고용 구조와 거대 자본이 다수를 포함하는 고용 구조의 문제로 넘어오자. 청년들에게 특히, 고학력 청년들에게는 실감이 되지 않지만 대부분 자신들의 부모, 친척들은 모두 대기업의 우산 아래 직장을 다니기는 쉽지 않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고용의 대부분은 자영업자이고 건전하고 안정적인 자영업이 확산되는 고용 구조, 사업 구조는 비단 자신 뿐만 아니라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들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소득을 위해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창의적이고 다양한 재능을 발휘하는 자영업자들이 만들어지고 자본이 자본으로 증식되는 구조가 아니라 소규모 자영업자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자본으로 분산되는 것이 필요하다. 시장으로 좁혀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시장도 조직화되고 다양한 아이디어, 협동조합 등과 같은 다양한 유통 채널을 확대하는 방식을 위한 자본을 확대한다면 시장과 그안의 다양한 자영업자들이 자신이 일한만큼 소득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것이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이 되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자식들 위해서 열심히 시장에서 돈벌어 등록금 내고 생활비 주어 졸업시켰더니 아들은 마트에 들어가 아버지가 있는 시장을 밀어내어 마트 만드는데 일하고 딸은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자기 삼촌이 운영하던 동네 빵집을 몰아내는 현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단순히 고용 구조의 불안정을 만드는 측면뿐만 아니라 거대 자본의 속성이 잠식적 자본으로 흘러가게 되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그런 구조는 도덕적이고 정의롭다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구조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두가지 중 선택해야 한다. 하나는 자신의 양심을 꺼두고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고용 구조의 불안정성 뿐만 아니라 양심의 갈등을 만들어내는 도덕적 불안정성도 만든다는 것이다. 항상 반복되지만 아무리 거대 자본이라고 해도 그 속성이 잠식적 자본이 아니라면 분명 자영업자와 시장이 같이 공존하는 방법을 먼저 모색했을 것이다. 


¶ 소비자는 참고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다

마트, 시장이 가지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잠시 벗어나 소비자 입장에서 마트보다는 시장을 이용할 때 우리가 얻게 되는 혜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싶다. 아무리 마트가 거대화 된다고 이야기해도 그리고 그런 현상으로 유통의 권력화 및 고용 구조가 불안정해진다고 해도 편리하고 깨끗한(?) 마트를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 이해한다고 해도 일단 내가 불편한데 마트보다 시장을 선호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설득시킬 방법은 없다. 아무리 많은 자영업자들이 망해간다고 해도, 시장이 사라진다고 해도 난 내가 필요한 것 살 수 있는 마트만 있으면 만족한다는 사람들에게도 특별히 설득시킬 방법은 없다. 그러나 조금은 뜻있는 자신의 소비 패턴이 세상을 바꾸는데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작은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길 것 같은 분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다. 

본적으로 시장도 자본을 가지고 안정적이고 낮은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유통 경로가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그에 따라서 다양한 공급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결과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다. 시장이 유통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 공급자를 바로 이어주는 소비자가 공급자와 가까워지는 구조가 된다면 우리는 다양한 공급자들의 노력이 살아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넓게 보지 않고 농수산물에 좁혀서 바라보고 싶다. 사실 경쟁력 있는 공급자들도 자영업자들이다. 돼지고기를 생각해보자. 최근 들어 돼지고기의 원산지가 국내산인 음식점을 보기 힘들어졌다. 국내 축산업계의 여러가지 힘든 고비때문에 축산업을 그만두는 농가들이 많아진 이유도 있지만 사실 국내 돼지고기 유통이 줄어들 때 공급을 맞추기 위해 수입에 많이 의존하게 되며 가격 경쟁에 의해서 계속 수입 돼지고기가 유통 안에서 관성을 받게 되었고 결국 국내 축산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수입산 돼지고기만으로 사는 것도 위생검역상 문제만 없다면 나빠보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 국내에서 생산될 수 있는데 수입으로 모두 대체가 되는 상황에서는 특히 식재료의 경우엔 수출하는 나라에서 가격을 올린다면 국내산으로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신선한 식재료의 공급이라는 측면 뿐만 아니라 만약 돼지고기 축산 산업이 자생할 수 없을 정도로 사라지면 소비자들은 값비싼 수입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 따라서 국내 생산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물가 부담 측면에서도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여기에 요점이 있다. 다양한 공급자를 확보하는 것은 다양하고 안정적 구조의 유통망이 필요하고 소비자들이 어떤 유통망을 이용하냐에 따라서 유통의 다양성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개별 소비자들이 마트 유통의 자본에 맞서 다양한 공급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시장의 기능은 충분히 그런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에 대한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거대 유통 자본은 중앙 집중적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다양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신의 운영 합리성에 맞춘 유통을 고집하게 된다. 

공급자와 소비자의 거리가 짧다는 것, 유통의 단계가 짧다는 것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물류이다. 내가 소고기를 먹을 때 국내산 소고기와 수입산 소고기는 동일한 고기로 느껴질지 몰라도 같은 양의 소고기가 운송되는데 발생되는 연료 소비와 에너지 발생은 다르다. 국내산의 경우에는 짧은 거리와 짧은 물류 등으로 해당 제품을 만드는데 소비되는 에너지 소비도 줄어들게 된다. 사실 소비자 측면에서 환경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별로 와닿지 않지만 식재료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신선도와 영양의 측면에서 우리에게 상당히 불리한 제품을 소비하는 것이다. 역시나 순수한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와 닿지 않을 것 같아 그만 이야기 한다. 

저장 능력이 발달하며, 구체적으로 냉장고가 대용량이 되면서 사람들은 대규모로 물건을 구매하고 이런 구매 패턴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경제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당장 냉장고를 열어보고 내용물들이 얼마나 보관되는지를 살펴보면 그 허상을 알 수 있는 가정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년이 넘은 야채부터 시작해서 냉동실엔 아직 먹지 않은 고기 등, 냉장고는 사실 없어서는 안될 가전제품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식생활 문화를 망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미국은 거주 특성상 대형 마트가 발달할 수 밖에 없고 교통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고 한번에 대량을 구매하게 된다. 그러나 도시로 다가오면 다가올 수록 도심 안에서는 마트는 우리나라처럼 큰 규모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도심의 주거 지역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은 마트가 아닌 중소 단위의 협동조합이나 개인 상점으로 주변 농장에서 가지고 온 신선도가 높은 야채와 식재료를 판매한다. 특별히 수입되는 제품도 한정되어 있고 소량으로 판매한다. 주변 거주자들도 짧은 기간동안 해먹을 식재료만 구매해서 빨리 처리를 하는 형태로 시장 문화가 형성된 곳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에는 이렇게 신선한 지역 농산물을 짧게 유통해서 판매한다. 


식재료의 형태가 장기간으로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선도를 유지하는 재료에서 가공식품의 형태로 변화된다. 즉, 간식으로 옥수수, 감자를 먹던 옛날과 다르게 대부분 간식은 과자같이 유통기한이 긴 제품으로 증가하며 이와 함께 자연식품에서 가공식품으로의 비율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건강상 가공식품이 좋을리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보다는 편리성을 더욱 더 강조하며 의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내 농수산물, 간단한 가공만으로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는 식재료 소비는 마트가 증가하면 증가할 수록 자연스럽게 증가할 수 밖에 없다. 


¶ 누구의 배를 불릴 것인가

소비자의 입장에서 소비자에게도 좋은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편리성 앞에서 무너지는 것이 일반적인 소비자이다. 결국 소비자도 의식적인 소비를 하지 않는다면 시장이 활성화 되어야 하고 그를 위해 소비자들도 시장을 많이 이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해도  아무리 설득해도 납득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설득을 포기한다. 결론적으로 국가 전체의 측면에서 무엇이 이득이 되는 길인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방향에 맞게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면 결국 그 정책에 따르는데 마트 애호가 들은 다소 불편을 느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가까운 곳에 시장이 많이 생기고 그 시장 안에서 많은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할 수 있다면 국부의 측면에서도 이득이라 믿는다면 그런 방향으로 규제 정책과 진흥 정책을 추진하면 되는 것이다. 특별히 이런 문제에는 다수의 공감대보다는 정책 결정의 철학과 신념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마트가 흥할 때, 누구의 배를 더 불릴 것인가 생각해보자. 당연히 마트 사업자들의 자본은 더욱 더 거대화되고 그 자본의 성격이 계속해서 잠식적 자본으로 남는다면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더 불러오는 자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소위 낙수효과에 의해서 서민들도 혜택을 볼 수 있을까? 그건 아마도 개가 풀뜯어 먹는 소리보다 더 믿음이 안갈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자본의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즉, 기업의 철학이나 이념이 도덕적 기반으로 바뀌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그런 자본은 다른 지역의 마트를 만들기 위해 부동산 투자될지 모른다. 

역 경제 측면에서도 생각해보자. 우리가 동대문구 마트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했다고 해서 내가 지불한 돈들이 우리 동대문구 지역 경제를 위해 얼마나 쓰일까? 일단 내가 마트에 지불한 돈들은 본사로 집중하게 되어 있다. 시장에서 지불한 돈은 최소한 지역 경제를 이루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돌아가고 그 돈은 지역 경제 안에 순환될 가능성이 더욱 더 높아진다. 경제가 활성화되는 방식은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 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경제주체들이 소비 경제를 이루면서 활성화 되는 것이다. 소수 부자들이 비싼 명품을 구매하는 액수가 증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서민들이 얼마나 많은 소비를 이루어내는가가 중요하다. 우리가 오해하는 미국의 대공황 시절 뉴딜 정책의 핵심은 토목사업이 아니다. 뉴딜 정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공 사업에서 노동자들에게 임금 지급을 철저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즉, 토목사업의 주체들이 노동자들의 임금을 체불하여 자신들의 주머니에 넣는 구조였다면 결국 돈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다수의 노동자가 아니라 소수의 토목 사업가들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배만 불리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 정책을 통해 노동자들이 정당한 보수를 안정적으로 받게 되고 그들의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고 그들이 가정을 꾸리며 소비하는 자본이 결국 시장과 공급자에게 연쇄적으로 이루어져 돈의 순환이 다수의 서민으로 시작되면서 뉴딜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마트가 자본으로 세력을 증가시키는 것이 우리 나라 국민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뉴딜 정책의 핵심은 많은 서민들이 일을 통해서 가처분 소득이 증가해서 소비가 증가해야한다는 것이다. 마트와 시장을 놓고 볼 때 다수에게 가처분 소득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마트가 아닌 시장인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물론 누군가 반론으로 마트가 커져서 고용인원이 늘어나 그들에게 월급을 주어 그들도 다수가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면 다시 앞서 이야기한 고용 구조의 안정성에 대한 이야기로 올라갔으면 좋겠다. 핵심은 누가 돈을 처분할 권리가 일차적으로 주어지느냐이다. 만약 소비자들이 쓰는 돈의 규모가 100이라고 했을 때 100중 60은 시장에, 나머지 40은 마트로 분산된다면 사실 60의 규모는 시장의 다수 자영업자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것이고 그 다수는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자본이 되는 것이지만 마트의 경우 40은 일단 본사로 들어가고 그 중 인권비를 자신들의 정책에 맞게 고용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만약 경영 합리화 등 기타 등등의 이유로 임금을 줄이거나 명목 수당 이외 추가 수당을 줄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결국 마트에 일단 들어간 자본의 결정권은 경영을 위한 소수에게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 아주 재미있는 사실은... 

유통 구조의 권력화, 자본의 거대화를 바라보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에 의해 거대해지는 자본들은 점점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독과점 형태로 변해가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역설의 결과 생산은 유통 구조의 권력화에 의해 단순화되고 공급자마저도 독과점화 되고 소비자들은 다양한 제품보다는 마트가 제공하는 제품만을 쓰게 되고 자본의 거대화에 의해 자본을 쓰는 결정권도 다수가 아닌 일부 소수로 점점 몰리게 되면서 결국 자본을 처분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들의 도덕성이나 합리성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당히 흥미로운 사실이다. 냉정의 시대에 경제적 이념으로 대치되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이지만 자본주의 TKO승 정도 이긴 것으로 판단되는 현대 사회에서 그 자본주의가 확대되고 자본이 거대화함에 따라서 나타나는 모습은 오히려 공산주의처럼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이념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생산자들이 자신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으로 다른 소비자에게 매력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었는데 유통의 권력화는 결국 그런 생산자를 자연 도태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다양한 의견과 합리적 판단으로 자본의 결정이 공익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이념이었지만 결국 자본의 거대화는 자본을 독식하고 결정하는 소수의 등장으로 공산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진 계획경제처럼 자본 엘리트들의 결정권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왜 무너졌는가에 대한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역설적으로 ⓐ 개인의 독창성,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 계획 경제의 결정권자들이 소수였다는 점이었다.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다. 


¶ 마무리하며... 

사실 소비자들이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시장의 임무이다. 그러나 그만큼 자본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거대 자본이 골목 상권까지 장악하려는 모습이 마음으로는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적당히 잘 사는 대부분들에게는 귀간지러운 소리일 뿐이다. 아무리 (재래)시장이 인정있고 좋아요~ 싸고 좋아요~ 난리 부르스를 치고 광고를 해도 마트를 뛰어넘는 매력이 없다면 소비자들에게는 별로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단순히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능사인듯 싸우는 모습도 일단은 버려야 할 것이다. 영업규제를 해도 매출의 큰 변화가 없는 구조를 만든다면 대형 마트들도 억지로 전기 낭비하며 영업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부의 역할은 크게 두가지가 아닐까. 첫번째는 정치권에서 시장이 중요하다, 골목상권 보호해야한다. 대기업의 횡포 막아야 한다는 입바른 소리할 때 진정 그런 정치적 요구가 ⓐ 행정적인 부분에서 기본 철학, 이념으로 자리잡고 그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인가이다. 두번째는 만약 그런 정책적 방향이 맞고 그렇게 하겠다면 ⓑ 마트보다 시장이 더 좋아질 수 있는, 소비자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가치'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런 가치를 위해 당근과 채직이 적절하게 조화되어야 할 것이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지만 마트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마트에게 적극 장려하게 하고 식재료 및 신선식품의 경우 거주 지역에 맞추어서 시장을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 거대 자본이 기존의 시장 공간을 잠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규제 방안, 유통 구조를 다양화 하기 위해 정보 통신 기술을 접목시키는 방안, 시장 안의 자영업자들이 진흥할 수 있는 정책 등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국가적인 마케팅도 필요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거대 자본 유통, 판매의 문제점이나 무엇보다 고용 구조를 안정화 시킬 수 있는 노동 전반의 정책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시장과 마트의 공생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대기업 경제가 아닌 서민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혜안을 가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리가 심각하게 착각하는 한가지는 국가의 경쟁력은 일부 소수 기업의 이윤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결국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먹고 살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상위 1% 가 전체 부의 80% 이상을 차지하거나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그것을 향유하고 걱정없이 사는 반면 그 반대의 빈곤층은 경제적 약자가 되어 경제적 이유로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세상은 불안하고 행복이 없는 국가이다. 국가의 정책은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철학의 기본에는 대기업의 자본을 늘릴 수 있는 방향이 아닌 다수의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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