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파이더맨을 기억하는 분들에게 피터 파커 (주인공) 가 정의의 이름으로 악당을 물리치기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의외로 '유전자 조작 거미에게 물린 사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다소 놀라운 일이다. 그 잘난 거미에 물린 것은 피터 파커가 악당들과 싸워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계기이지만 사실 피터 파커가 악당들과 맞써 싸우기로 마음 먹기 시작한 것은 주인공을 길러주던 아버지 같은 삼촌 (큰아버지인지 작은 아버지인지 구별이 안되어서...) 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자신에게 제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 업자의 사무실에 강도가 들어와 돈을 가져가는데 피터 파커는 자신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은 업자가 맘에 안들어 그 강도를 그대로 보내주었고 그 강도는 눈인사와 함께 나가면서 거리에서 피터 파커의 삼촌을 만났는데 그 과정에서 삼촌을 총으로 쏘아 죽이게 된 것이다.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위대한 능력엔 막대한 책임이 따르게 된다.) 명대사를 남기고 떠난 삼촌 벤 파커 |
결국 자신이 눈감아 주었던 악당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사건을 통해서 피터 파커는 상당히 광범위한 악당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영웅의 시작은 그렇게 슬픔의 극복을 통해 시작한다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이기도 하지만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첫번째는 피터 파커처럼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인과관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동기부여 및 변화의 계기가 아주 강하지만 자신의 사소한 행동들의 결과가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줄지에 대해서 알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심코 재미로 연못에 던진 짱돌에 맞아 개구리가 맞아 죽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이 만드는 모든 결과를 신경쓰며 살아가기도 힘들지만 분명 자신이 모르는 본의 아닌 악의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현실적인 예를 들면, 일회용 제품을 사용하면 이제는 분명 환경에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알지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길거리 지나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사람을 보고도 그냥 모른체 지나가도 사실 나에게 나쁜 영향이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내가 끼어들면(?) 오히려 내가 다친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가해자들이 몇일 후에 자신 혹은 자신의 가족을 똑같이 폭행한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될 것이다.
두번째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에 대한 구별이다. 스파이더맨은 명확한 선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적하는 악당은 항상 악이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은 그 선악의 대립 구조에서 분명한 쾌감과 승리감을 얻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배트맨 시리즈 중 The Dark Knight (2008) 를 이야기한다. (영웅물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 영화는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와 같은 영화를 좋아합니다.) 선악의 구별이 명확한 영웅물일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의 선과 악이 내재되어 있는 모습에서 시작한 것이 아닌 항상 변화화면서 심지어 두얼굴을 가지는 양면성을 동시에 지닐 수 있다는 것을 내용과 영상(visual)으로 표현하는 놀라움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때문인지 스파이더맨도 결국 검은 스파이더맨을 등장하여 그런 선과 악의 양시성(兩是)을 보여주었지만 그래도 결국 굳은 의지로 이겨내버려서 그다지 큰 갈등을 보여주지 않았다.
세번째는 우리의 행동은 무엇으로 선하다, 악하다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누구나 생각하듯이 양심이라는 대답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이스라엘 보육원에 관한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이스라엘 보육원에 엄마들이 아이를 맡기고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와야 하는데 여의치 못한 사정에 늦는 엄마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엄마들은 보육원에 미안해하고 급하게 오고 그랬었는데 이스라엘 정부에서 아이들을 늦게 데리고 오는 엄마에 대해서 벌금을 매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현상이 일어났다. 늦어서 미안해하던 엄마들이 벌금을 내고 당당하게 늦게 오는 것이었다. 즉, 아이를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오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오히려 벌금으로 사라지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 예를 통해 양심이 선악의 판단 근거가 된다면 양심은 상황, 제도,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서 양심은 변화화는 대상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시공에 관계없이 절대 변하지 않는 1. 정언적 도덕명령 (categorical moral imperative)이 존재하여 어떤 상황에서든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가이다.
아주 당연하지만 '잘난 거미에 물렸기 때문에' 피터 파커가 정의(?)의 영웅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 내가 저지르지 않아도 내가 선하지 않은 행동의 결과가 결국 나에게 악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능력과 선한 행동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행동의 계기는 적극적으로 세상의 악을 물리쳐야 선을 쟁취할 수 있다는 아주 극적 이유였다. 그리고 더욱 의문이 가는 과정은 바로 어떤 2. 한 개인이 선한지 악한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인가이다. 그 다음은 3. 구체적인 개별의 행동을 어떻게 선하다 악하다 판단할 수 있는가?
선은 결국 승리하는가?
어느날 후배가 갑자기 메신저로 물어보았다. "선은 결국 승리할까요?"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구별도 힘들고, 심지어 일상의 행동 하나가 선한 행동인지 악한 행동인지 판단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선이 결국 승리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기 중 질소와 산소가 싸우면 누가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만큼 무척이나 곤란한 질문이었다.
우리가 명확하게 악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를 이야기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 독일에 히틀러를 열광하며 히틀러에 자신의 모든 열정과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은 똑같이 악인이 되는 것일까? 그리고 당시 독일 사람들에게는 선악을 구별할 판단 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가 하는 의문을 만들게 된다. 꼭 그 옛날의 나치의 지배를 통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세상에 분명하게 잘못된 사람들이 잘살고 비리와 부페로 살아도 명예와 부를 축적하는 예를 쉽게 볼 수 있고 그런 예들을 보면 악한 사람들의 전파 능력은 훨씬 달콤하고 강력한 것을 느끼게 된다. 후배와의 대화 안에서 내가 했던 말은...
"악은 선보다 항상 성실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선하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 당장하지 않고 나중에 해도 그 행동은 선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게 된다" 라고 이야기했다. 선인과 악인의 구별만큼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의 판단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악한 행동이 무엇이 있을까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은 "살인"을 예로 든다. 그러나 어떤 아버지가 자기 집에 들어와 가족들을 위협하는 강도에게 정당방위로 강도를 죽이게 되었다면 그것은 선한 행동인지 악한 행동인지 판단할 수 있는가? 아무리 정언적 도덕명령에 의해 살인은 무조건 악한 행동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해도 그 악한 행동의 소유자인 아버지가 악인이라고 구별할 수 있는가이다. 즉, 아무리 정언적 도덕명령 체계에 의해 모든 행동에 대한 선/악의 판단이 절대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행동의 주체가 선인/악인으로 구별지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봉사활동을 많이 해서 이웃에게 도움을 준다고 해도 그 의도가 정치적 의도로 자신의 평판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면 사람들은 그 봉사 활동 자체에는 좋게 평가할지 몰라도 그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은 좋은 평판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두고 선이다 악이다 판단하는 것이냐라는 것이다. 때로는 악인의 좋은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해 더 좋은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있고, 선인의 나쁜 말 실수가 때로는 사람들에게 대립과 갈등, 때로는 분열과 전쟁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보면 선인/악인의 구별 및 선/악 행동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과 같이 사회적 네트워크,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미디어(방송 통신 뿐만 아니라 책 심지어 화장실 낙서까지도 포함해서...)의 다양성은 선악의 구별과 판단보다는 내가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좀더 풀어 설명하면, 우리가 선인/악인을 구별하여 선인의 이야기만 듣고 선한 행동만 판단해서 받아들인다고 해서 우리의 행동이 '선하다고 보여지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악인으로 구별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그 세력과 싸워 이겨야 겠다 생각할 수도 있고 아주 선한 행동을 보며 감동을 받아 행동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스파이더맨으로 넘어가면 우리는 극명한 선/악의 구별이 되어 있는 대립구도와 그 구별을 통해 선인은 선한 행동, 악인은 악한 행동 (대체로...)으로 일관되는 구도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면 현실처럼 별로 구별할 필요가 없고 우리가 응원해야 할 대상이 명확하고 우리가 참가해야하는 대상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구별의 시작조차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그 구별이 혹시 가능해졌다고 해도 그 이후 행동에 대한 개별의 판단은 더욱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쩌면 선/악의 구별이라고 하는 그 시작부터 해결하기 힘들기에 제목의 질문을 과감하게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은 결국 이기는가? →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동기부여는 무엇일까?
선한/악한 행동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설명되었지만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하다/악하다 의 성격 규정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통해서 어떤 동기부여를 받는가가 더욱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동기부여는 대부분 우리의 관계, 조금 유식하고 현대적 용어를 빌리자면 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지금의 네트워크는 분명 인터넷을 포함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소셜네트워크도 포함해야 한다. 우리가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어떠한 매체도 네트워크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문제는 선은 결국 이기는가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다. 선/악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대다수가 인정하는 흐믓한 행동들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 아프리카에 봉사하러 갔다고 하는 소식에 대부분은 흐믓해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는 아니다. 일부는 분명 "우리나라도 어려운데 남의 나라까지..."라며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네트워크 안의 우리는 어떤 정보를 얻고 그 정보에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기부여가 얼마나 큰지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대안적 구체적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꾸는 것이 어떨까? 물론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선/악 판단은 차후로 미루자.
우리의 네트워크는 우리를 얼마나 동기부여하는가?
Agent Based Simulation (객체기반시뮬레이션)
원어 그대로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한국어로 해석하기 번거롭지만 Agent Based Simulation 이란 시뮬레이션 기법이 있다. 공학이나 일부 이학,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은 익숙한 용어이지만 시뮬레이션이란 쉽게 말해 현실의 원리를 통해서 일어날 법한 결과를 예측하려는 노력이다. 쉽게 말해 소행성 하나가 지구에 떨어질 것 같은 궤도를 가지고 떨어지는데 언제 떨어질지, 그리고 떨어지면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지는지는 다양한 물리 법칙과 환경 조건을 통해서 미리 계산을 해본다. 그 계산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시뮬레이션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일상의 일기예보도 현재의 기상조건과 바람의 움직임, 공기의 밀도, 온도 등의 다양한 변수에 따라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예측하는 과정이고 이또한 시뮬레이션이다. 그래서 시뮬레이션은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그래도 '그럴싸하게 흉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그 중 Agent Based Simulation (이하 ABS)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없이 심시티 혹은 롤러코스터타이푼 과 같은 게임을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건물을 짓거나 도시를 건설하는데 그 안에서 움직이는 각자의 객체들은 지 멋대로(?) 움직이고 때로는 불도 지르고 때로는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다양한 활동을 객체들이 알아서 행동한다. 그러나 그 객체들은 아주 무작위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룰과 정해진 방식에 따라서 인간의 모습을 비슷하게 따라하며 각자의 삶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날아간다던지 아무런 이유없이 큰돈을 번다던지 비현실적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결국 그런 개별 객체들이 각자 알아서 움직일 때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내가 게임 안에서 공공시설로 화장실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면 아마 그 게임 안에서 움직이는 객체(시민)들은 화내며 폭동을 일으키거나 폭력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오락시설이나 탁아시설 등을 많이 많들어 준다면 사람들은 아이들 양육 걱정이 줄어들어 인구가 늘어난다는지 그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학문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겠지만 아주 간단히 이렇게 설명하고 멈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
Sim City (심시티) |
ABS를 이용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네트워크를 한번 비슷하게 세상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다. 즉, 우리가 영향받는 네트워크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객체들이 살아가는 가상의 세상을 컴퓨터 안에 구현하여 어떤 조건에서 사람들은 네트워크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직접적인 궁금증을 이야기하면, ⓐ 네트워크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동기부여를 받는가? ⓑ 많은 사람들이 흐믓해 하는 동기부여가 커지는 방법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다. 전자는 ⓐ 우리가 네트워크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의 원리의 문제이고 후자는 ⓑ 많은 사람들이 소위 '선하다고 불릴만한' 동기부여를 많이 받을 수 있는가의 사회적 역학 문제이다. 두번째 문제는 쉽게 말하자면 심시티에서 무엇을 해주면 심시티 안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이다. 즉,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위해서 미리 ABS를 통해 예측해보고 우리 사회의 문제에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심시티가 한참 인기일 때 사람들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인을 대부분 알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화장실을 많이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거리에 배설하는 일이 적어지고, 쓰레기통을 많이 세우면 길거리가 깨끗해지고, 주거 아파트가 많아지면 사람들이 노숙인이 줄어드는 등, 원인-결과에 대한 방법과 해결책을 어느정도 플레이어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원인-결과에 대한 반응을 프로그램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로 모델링이다. 즉, 쓰레기통을 많이 놓으면 길거리가 깨끗해져야 하는데 사람들이 쓰레기통을 놔두고 길거리에 버리게 만들게 프로그래밍을 한다면 그건 비현실적이고 현실을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는 모델링이 아닌 것이다. 마찬가지로 ABS를 통해 우리의 네트워크 세상을 모델링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의 자극-반응을 적절하게 표현해주고 반영해줘야 한다. 그런 모델을 가지고 임의의 변수를 넣었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시뮬레이션이다.
Agent Based Simulation 을 이용한 동기부여 네트워크
우리는 인터넷의 다양한 미디어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접하는 정보가 무척이나 다양하고 무한하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광장에 놓여 작은 스마트폰이라는 단말기를 통해서 바라보는 히끼꼬모리(은둔형 외톨이)와 별로 다르지 않다. 즉,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존재해도 나와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 속에서 내가 정보를 얻는 네트워크는 내 손안의 스마트폰 정도일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광장의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고 상대방에게 정보를 얻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새로운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내가 얻어내는 정보의 네트워크란 물리적인 공간이나 활동 범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경로로 정보를 얻어내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한 사람의 네트워크를 파악하면 그 사람이 가지는 정보의 범위가 정해진다. 그렇게 네트워크 안에서 점으로 표현되는 객체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네트워크 영영을 가진다. 그리고 그 영역에는 서로 선으로 연결된 다른 객체들이 연결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네트워크의 다양한 관계도가 노드(node)와 라인(line)으로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심시티는 ABS 가 아니다. 각 객체들이 각자가 놓인 위치와 상황, 환경에 따라서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만 만약 두 객체가 같은 위치, 환경, 상황에 놓인다면 반응은 비슷하다. 왜냐면 두 객체의 모델은 같은 모델링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비슷한 (기술적으로 난수(랜덤)함수를 통해 약간의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ABS는 각각의 객체가 가지는 모델링이 모두 다르다. 즉, 같은 환경,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반응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우선 다양한 객체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 객체들이 독립적인 모델로 만들어진다. 그 모델은 자신이 가지는 네트워크의 범위 그리고 네트워트 안에서 자신이 받는 데이터 / 주는 데이터에 따라서 각자의 모델이 정해진다. 그리고 공개된 범위에서 주고받아지는 데이터 안에서 단어를 추출해서 그 단어의 긍정적/부정적 정도에 따라서 분류를 하고 긍정적/부정적 경향을 시간에 따른 변화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유입된 데이터를 살펴보고 만약 어떤 특정 행동의 변화, 긍정적 변화가 일어나는 상황을 조사하여 어떤 동기부여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해당 객체의 네트워크의 변화, 그리고 그 주변의 네트워크의 성향 및 주고받은 데이터의 데이터가 전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즉, 객체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과정으로 동기부여를 받는가에 대한 시뮬레이션 (가상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조금 다르다면 가상의 데이터가 아니라 인터넷 안에 소셜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살펴본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모델링의 방법은 소개하기 어렵지만 상당히 큰 객체수를 대상으로 해서 공개 데이터에 대해서 조사를 하고 그를 통해서 구글 번역등과 같은 다양한 도구를 통해 데이터의 흐름을 위한 해석을 하여 긍정적/부정적 사고의 변화를 추정한다. 따라서 계산량과 데이터량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지만 여분의(?) 슈퍼컴퓨터가 있다면 한번쯤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ABS를 구축하고 각 객체가 가지는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인터넷 상의 소셜미디어, 네트워크 정보를 통해 만들게 되면 그 안에서 재미있는 현상들을 몇가지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앞서 설명한 동기부여라는 부분이다. 우리의 행동이 변화할때 마음이 변화할 때의 네트워크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 더 풀어 설명하자면 C_102 이라는 객체가 있고 이 객체는 실제 인터넷 상의 소셜네트워크에 참여하는 한 사용자이다. 이 사용자는 처음에는 부정적 언어와 부정적 행동을 뜻하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긍정적 단어와 행동의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변화의 가장 원인으로 C_102 과 관계를 이루는 네트워크의 변화를 보고 그 주변 네트워크의 긍정도/부정도를 또한 확인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 사람이 가장 많은 동기부여를 받은 네트워크 줄기와 유입 경로가 어디일까 확인하고 그 연결된 객체가 C_248 라는 사용자라면 그 객체 주변에서 C_102 와 같이 얼마나 많은 동기부여를 받게 되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다.
즉, 단순히 긍정도/부정도를 단어와 표현으로 계량화하기는 힘들지만 시간에 따른 변화와 실제 같은 객체가 보이는 반응의 정도가 변화한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부분이다. 따라서 이 시뮬레이션(가상실험)의 목적은 얼마나 현실과 비슷하게 반영하는가가 아니라 변화가 일어나는, 동기부여가 일어나는 네트워크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학술적인 내용으로 가공되어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려고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한 선/악인의 구별과 선/악 행동의 판단은 어렵다고 하지만 분명 선→악한 행동 혹은 악→선한 행동의 동기부여는 분명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동기부여의 공간이 지금은 자신이 가지는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영역에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오프라인에서 주고 받는 동기부여에 대해서는 반영하기 힘들다는 한계성을 가지지만 이후 오프라인에서의 네트워크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확인된다면 이를 확장할 수 있는 도구로도 가능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랜동안의 데이터와 객체기반시뮬레이션 기법을 통해서 소위 긍정적 행동을 유도하는 동기부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공동체의 영향을 주목하라: 긍정적 변화의 동기부여는 단순히 한사람으로 인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자신의 네트워크에 이미 긍정적 객체들(C_248 과 같은)이 다수 존재할 때 동기부여의 속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 긍정적 클러스터(cluster; 집단)가 많을 때 더욱 더 동기부여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현상으로 되돌려 보면 긍정적 공동체에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 동기부여는 더 빨라진다.
LinkedIn 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의 공개 네트워크와 그에 연결된 다른 네트워크 데이터를 통해 객체 모델을 구성한다. |
ⓑ 다양화에 주목하라: 아무리 주변에 긍정적 집단이 많다고 하더라도 부정적 집단이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그 집단 크기가 작아 무시되거나 교류 데이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는 오히려 동기부여가 이루어지지 않고 현상 유지를 이루는 경향이 크다. 즉, 자신의 네트워크에 모두 긍정적 집단만 존재하기 보다는 부정적 집단과도 데이터를 주고 받을 때 오히려 긍정적 동기부여가 더 빠르다.
ⓒ 고립 객체에 주목하라: 어느 순간 갑자기 네트워크는 그대로 유지되어 있지만 자신의 네트워크에서 전혀 교류하지 않는 객체(사용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긍정적 상태를 상당히 오래 유지하고 긍정도도 상당히 높은 상태를 유지했지만 어느 순간 전혀 데이터를 만들지 않고 고립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스스로 고립하기 시작하는 사용자로부터 긍정적 동기부여를 받았던 경험이 있던 객체(사용자)들이다. 초반에는 적극적으로 네트워크에 활동하기 시작하던 객체들도 어느 순간부터 주변의 일정 네트워크가 활동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해당 객체도 활동량이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활동과 비활동의 네트워크로 새로운 클러스터(집단)을 형성하게 된다는 점이다.
ⓓ 긍정적 동기부여는 줄어든다: 초반에는 긍정적 상태로 시작한 객체도 점점 고립 객체로 둘러쌓이게 되면 부정적 상태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가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증가할 수록 사용자는 긍정적 / 부정적 집단의 크기가 불균형이 이루어지고 다양화는 상대적 크기로 줄어든다. 그 이후에는 부정적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차 부정적 표현이 급격하게 증가한다. 긍정적 표현은 하나의 객체를 중심으로 보면 시간에 따라 포화를 이루며 일정해지지만, 부정적 표현은 시간에 따라 밀도있게 (dense) 증가한다.
평화로운 심시티를 만들 수 있을까?
아직 계속 진행중이기 때문에 다양한 변화에 대한 관찰을 더 해야할 필요가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스파이더맨처럼 강력한 영향력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아주 괜찮은 긍정적 동기부여를 줄만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그냥 놔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동기부여라는 것을 단순히 사용자들이 표현하는 단어와 데이터를 통해서만 그 특징을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지만 동기부여가 가지는 네트워크는 분명 우리에게 많은 부분을 시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표현으로 우리가 심시티를 할 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모든 주민들이 대체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심시티를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항상 그런 사람은 꼭 있듯이 폭력과 범죄율이 높은 심시티를 일부러 만들 수 있을까? (프린세스 메이커를 할 때도 꼭 나쁜 캐릭터로 만들려는 플레이어는 존재하듯...)
실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이터를 모아서 객체기반시뮬레이션을 위해 사용자 하나하나를 객체로 만들어 모델을 만드는 두번째 이유는 현상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 모델에 우리가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면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해당 네트워크가 반응해줄까 하는 궁금증도 있다. 즉, 우리가 만약에 좀더 긍정적 동기부여가 커지는 방향으로 만들 수 있는 인위적인 방법이 존재한다면 현실에 적용해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확인해보고 싶기도 한 것이다. 여전히 연구중이고 계산 중이지만 그런 긍정적 동기부여가 가능한 방법을 소개하자면,
ⓐ 공동체(집단)의 힘을 무시하지 말자: 긍정적 영향은 집단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지만 반대로 부정적 영향은 의외로 집단의 크기가 작아도 그 영향이 크다. 즉, 긍정적 동기부여를 위해 필요한 집단의 크기는 항상 어느정도 유지하고 있어야 좋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바라보면 공동체나 봉사 활동 같은 나눔의 실천을 위해서도 개인활동보다는 단체활동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을지 모른다.
ⓑ 다양성은 긍정적 동기부여의 친구이다: 결론적인 이야기지만 자신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집단/개인의 이야기도 듣는 연습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부정적 영향이냐는 것이다. 부정적 집단의 크기가 큰 상태에서는 오히려 부정적 동기부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비대한 집단의 위험성: 다시 돌아가지만 선/악의 구별, 선/악한 행동의 판단이 가장 어려운 근본적 이유는 악한 집단으로 판단되는 (현실적으로...) 집단에서도 긍정도가 높은 집단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당히 비대한 집단이 포착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집단 자체의 긍정도는 높은 반면 그 주변과의 네트워크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소수 발생하는 집단 외부와의 교류 데이터 안을 통해 살펴보면 부정적 소수와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크기는 비대한 집단 / 긍정도는 높음 / 집단 외부와 연결된 외부 네트워크는 아주 소수 / 그 소수 객체들은 부정도가 높거나 평균 의 특징을 보인다. 그런 특징을 보이는 집단은 오프라인 상에서 알아본 결과 종교 단체로 비이상적인 교리와 행동을 강요하는 범죄집단에 가까운 단체의 회원들이었다.
조금... 더 좋은 세상을 꿈꾸며...
블로그 내용은 구체적인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 것이 아니기에 구체적인 모델링 방법이나 연구 내용을 공개하기 어렵지만 어느정도 계속 진행이 되고 계산과 분석이 끝나면 시사할 내용이 생기는대로 갱신할 예정이지만 우리의 삶에서 선/악의 객체를 구별하고 선/악의 행동을 판단하는 모호함으로 사람은 항상 변화할 수 있는(switchable) 객체라는 가정하에서 그 변화의 과정을 실제로 인터넷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알아보려고 했다. 즉, 스파이더맨이 제시해주는 그 명확한 구별과 판단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가 정말 네트워크 안에서 좋은 동기부여를 받으며 좀 더 긍정적 세상으로 만들어가는데 우리는 적극적 참여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오래전에 시작한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선이 악을 이기기 위해 우리가 네트워크의 종속적 사용자가 아닌 적극적 이용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처음 선/악의 구별 / 판단 그 자체가 상당히 무의미한 시도일 수 있기에 우리에게 더욱 더 필요한 동기부여 즉, 변화를 이끄는 역학적 변화과정이 궁금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긍정적 변화라는 조금은 주관된 가치를 부여했지만 더 쉽게 표현하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직은 중간 단계이지만 그 안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의 조건으로 공동체라는 긍정적 집단이 많이 존재하면 조금은 긍정적 변화의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변화의 방향을 바라는 다양한 오프라인/온라인 집단이 많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마치 프랑스 혁명의 살롱에서 사람들이 열심히 토론하는 그 작은 변화가 점점 커지는 그 집단을 생각하며 그 방향성에 대한 신뢰도 가지게 되었다.
조금 더 내 주변을 챙길 때가 아닐까 싶다. 경제가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긍정적 변화를 이끌 집단의 방향성이 우리를 좀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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