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18, 2013

답이 없는 이야기 - 평등과 복지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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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인터넷 상에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하나의 삽화(cartoon) 가 하나 있다.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지만 크게 두가지 내용으로 변형되어 퍼지기 시작했고 인터넷의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국내의 확산 속도가 가장 빠른 것으로 보인다.


첫번째 내용은 Equality doesn't mean Justice 라는 문구와 함께 Equality Justice 에 대한 비교를 나타내는 내용이다. 같은 그림의 내용이지만 설명하는 문구만 변경된 내용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두번째 내용은 평등이 보수주의자(the conservative)와 진보주의자(the liberal)에게 어떻게 다른지로 해석하고 있다. 같은 그림이지만 문구의 설명에 따라서 전달하고 싶은 내용의 큰 줄기는 달라지게 된다. 첫번째는 Equality 와 Justice 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과 성격을 전달할 수 있지만 두번째의 경우는 이념을 통해서 "평등"을 바라보는 두 이념 집단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것은 묘한 대조를 통해서 마치 보수주의의 평등과 진보주의의 정의로 연결이 되는 느낌까지 전해준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 내용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까지 덧붙어지고 있다. 보수 / 진보에 대한 선/악의 구별부터 시작해서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중 어떤 것이 더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오히려 이해하기 힘든 논리들도 보이고 하나의 삽화내용인데 사람들의 해석은 자신들의 생각과 시각에 따라서 적절하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가장 흥미로운 설명 중 하나는 왼쪽의 내용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오른쪽은 선별적 복지에 대한 내용이다. 선별적 복지가 필요하다라는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평등과 정의

번째 삽화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간결한 하나의 삽화가 전체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다. 즉,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에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끼워 맞추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삽화를 보고 나서 평등보다는 정의가 더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커다란 자기 모순적 결론에 빠지게 된다. 앞의 평등에 대한 내용은 단순히 분배에 대한 평등만을 강조한 것이다. 즉, 각자에게 돌아가는 상자는 하나라는 분배 자체에 대한 평등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오른쪽 결과, 정의(Justice)라고 표현한 내용이 사실은 더 평등에 가깝다는 것은 자기 모순적 결론이 아닌가.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에 따른 차등 분배가 '정의'라고 부를 수 있지만 이또한 야구 경기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배려하는 '평등'도 정의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바라보면 사람들이 평등한 상태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 평등하게 분배만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무엇에 더 가치의 중심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본다. 단순히 평등 / 정의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 

역시나 보수와 진보의 구별로 설명한 두번째 내용을 보면, 진보주의 이념을 선호하는 사람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수와 진보는 옳고 그름이 구별되는 이념의 구별이 아니다. 다만 [ 세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시각의 차이 ] 일 뿐이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는 결정적이거나 핵심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동의하지 않는다. 흔히 보수와 진보를 구별하면서 정치 이념으로 보수와 진보를 이야기하다가 어느새인가 경제 이념으로 넘어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를 통해서 보수와 진보에 대한 구별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제 정책에 대한 입장은 이제 국가가 얼마나 분배에 관여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자연스럽게 복지 국가에 대한 입장을 통해서 보수와 진보의 구별을 시도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한번 편을 나누어 당신은 보수주의자 / 진보주의자 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면 그 이후 택해야 하는 경제 정책, 분배 정책, 복지 정책 이 정해진다는 것이다.

번째 삽화 내용으로 넘어온다면, 삽화의 의도대로라면 보수주의는 분배의 원칙에 있어서 공평한 분배를 강조할 것이고, 진보주의는 분배의 원칙에서 약자에게 더 분배를 해야한다는 원칙을 가져야 할 것이다. 표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의 보수주의자들도 보편적 복지보다는 선택적 복지를 통해서 혜택을 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에 맞추어 본다면 진보라고 묘사된 상황에 더 가까울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같은 그림이지만 해석에 따라서 자신의 논리에 쉽게 끼워 맞출 수 있다는 점이다.

진보의 가치를 믿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답이라는 점이다. 즉, 보수는 시스템의 문제보다는 개인의 문제에 더 중심이 있고, 반면 진보는 개인의 문제보다는 시스템의 문제가 더 비중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사회의 현상이나 정책의 결정에 있어서 개인의 역량을 더 중요하게 볼 것인지 아니면 현재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고쳐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시선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어떻게 분배하고, 어떤 결과를 바라는가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보수의 입장이라도 얼마든지 결과적 평등을 만들기 위한 선택적 복지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관점의 문제이지만 왼쪽 / 오른쪽 모두 개인의 상황에 대한 분배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결정의 문제이지 보수 / 진보를 나누는 근본적 문제라 느껴지지 않는다.


삽화를 보고 느낀 것은 오히려 차라리 사람들 앞에 놓여 있는 울타리(fence)를 없애거나 모두가 볼 수 있게 최소 높이로 만든다면 분배의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바로 보수와 진보는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놔둘 것인가, 아니면 현재 놓여 있는 시스템의 불합리나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오히려 진보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복지에 대한 시선

지를 이야기할 때 누구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진다. 크게 보면 노령인구에게 얼마를 줄 것인지, 어느정도를 줄 것이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쉽게 얘기해 ① 복지 혜택을 받는 대상 ② 복지 혜택의 규모 를 이야기한다. 개인이 받게 되는 관점에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금액과 대상이 주요 관심사이다. 즉, 복지의 관점이 개인에게 얼마를 주고 누구를 줄 것인가에 따라서 복지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서 울타리를 낮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지의 주요 관점을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는 것, 혹은 최소한 생계 걱정 안하고 살 수 있는 최저 생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생계의 문제는 돈을 얼마나 버는가 보다는 얼마나 쓸 수 있는가의 '가처분소득'의 양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복지혜택의 크기를 "누구에게 얼마를 주는가"의 총량의 크기로만 생각해도 실제로 가처분소득이 0에 가깝다면 실제 복지는 존재하지 않거나 오히려 복지 혜택의 효과는 거의 0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복지의 규모는 단순히 누구에게 얼마를 주는가의 시혜 효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최소 생계를 유지하면서 얼마의 자본을 사용할 수 있는가의 크기로 측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자료화면: MBC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2013년 2월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복지의 개념은 혜택의 규모와 대상이 관심이지 어떻게 시스템을 변화해서 그 시스템 안에서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키는 방법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전기사용료 등을 포함한 소위 유틸리티 (utility) 에 관련된 사용료에 대한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국가는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대기업에는 산업용 전기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전기료 혜택을 주는데도, 몇만원의 전기료도 부담이 되는 극빈층에게는 전기료 등의 요금은 상당한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즉, 삽화에 나온 것처럼 울타리가 높아서 접근조차 힘든 사람에게 상자를 주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의인지 아니면 울타리를 낮추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정의인지는 무엇이 옳다 그르다의 문제이기 보다는 어떤 정책을 믿는가에 따른 신념의 문제가 될 것이다.

복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재미있는 현상 하나가 있다. 예를 들어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경우에 무상의료에 들어가는 자본의 크기를 들어 복지의 크기를 조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복지의 크기는 주로 현재 의료에 소요되는 비용을 근거로 해서 어떤 부분에 혜택을 줄 것인지 아닌지를 선별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복지의 무시하지 못하는 혜택은 자본의 혜택이 아니라 안정의 혜택이다. 즉, 내가 어떤 병에 걸려도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안정이다. 사람들이 보험을 드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위험에 대해 자본적 안정을 만들기 위해서 지불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분야가 많아질 수록 사보험의 규모는 커질 것이고 사보험은 보편적 혜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결국 사보험에 가입한 사람 / 가입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더 심해질 것이다. 사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재원을 국가가 비용으로 생각할 것인지, 사보험을 들지 못한 중산층이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비용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할 것인지는 국가가 가지는 복지 철학의 차이가 될 것이다. 다시 삽회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비록 두개의 상자가 주어져 당분간은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국가가 복지를 바라보는 철학이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재정이 힘든 상황에서는 언제든 뺄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불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수수료의 경제학 

가가 복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조금은 떨어져, 생계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쉽게 말해 복지의 헤택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문제를 조금 단순화 시키기 위해 극단적 예를 한번 생각해보자. 최저 생계를 유지하지 못해 국가에서 보조 혜택을 받지 못하면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살펴볼 때 그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의외로 사회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큰 돈의 흐름이 아니라 일반적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의식되지 않는 수수료와 같은 거래비용 (transaction cost)에 대한 부담이다. 은행의 ATM 을 사용할 때도 특별히 일정 한도 이상의 금액을 보유하거나 카드 사용 실적 등의 기준을 통해서 자본의 양이 많은 사람들, 쉽게 말해 수수료와 같은 거래비용이 그렇게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수수료를 면제해주지만, 서민들이나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생계에 몇만원, 몇십만원이 큰 차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수수료를 면제해주지 않는다. 경제의 논리에 비추어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가처분소득을 고려하면 어렵고 힘든 서민들에게는 작은 푼돈으로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노숙인들이 어떻게든 일을 찾아서 임금을 받고 은행을 사용하기 힘든 이유가 첫번째는 이미 경제적으로 소외당해 은행 서비스를 사용조차 힘든 사람들이 되었기도 했지만, 두번째는 은행을 사용했을 때 발생하는 수수료에 대한 부담도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숙인들은 쉽게 은행을 이용하기도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모아둔 돈을 항상 간직해야 하기 때문에 도난의 위험이나 항상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밖에도 생각해볼 많은 것들이 있지만 복지를 얼마를 주는가의 시혜(施惠)의 입장이 아닌 국민들이 살아가는데 저항감을 느끼는 부분들이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쉽게 말해 이 사회가 얼마나 울타리가 높은가에 대한 질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물가를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중산층에게는 대출이나 금융에 관련된 이자에 대한 저항감 등을 생각해볼 수 있고, 아주 사소하면서도 크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에 대한 부분이다. 정책의 방향은 국가의 이념에 따라서 달라지지만 결국 아주 간단하게 결과는 해석될 수 있다. 어떤 한 정책을 수립하여 국민들의 저항감이 증가하는가, 감소하는가이다. 특히 세금과 물가에 관련되어서는 더욱 그 저항감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수수료 등도 마찬가지이다. 수수료의 저항감이 덜한 사람들에게는 혜택이라는 이름으로 면제해주면서, 수수료의 저항감이 큰 사람들에게는 꼬박 꼬박 받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복지가 필요하다는 필요성이 느껴졌다면 단순히 어느정도 규모를 혜택을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가처분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는 방향의 사회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도 새로운 관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복지의 혜택을 증가한다고 노령인구에 기초노령연금을 얼마 주겠다면서 실제로 그 돈으로 생활해야하는 생필품에 부가가치세 및 공공요금이 증가한다면 실제 복지 비용은 증가해도 실제 효과는 줄어들 뿐이다. 그러한 복지 비용은 실제 수수료나 공공제, 그리고 오히려 유통이나 생필품에 관련된 거대 자본으로 더 유입될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따라서 복지를 규모의 경제학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포함한 거래비용이 소득 수준에 따라서 느껴지는 저항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얼마를 투자하는가의 관점을 떠나 조금은 미시적인 시각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소비해야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지의 '가처분소득'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병에 따라 의료 혜택이 차이가 난다면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병의 종류조차도 운에 맡겨야 하는 불안 속에서 살지 않고 안심하며 사는 안정의 복지가 복지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문제 - 복지는 국가의 책임인가? 

지를 이야기하면 항상 자본의 논리와 성장의 논리와 대치되며 이야기 되어진다. 따라서 자본과 성장의 논리에 대응해서 탈상품화 (decommodication) 의 개념으로 복지국가의 유형을 구분하는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탈상품화란 생계의 유지 혹은 자본의 획득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 국가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대응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이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에스핑 앤더슨(Esping-Andersen)의 사회복지국가 유형으로 세가지를 구분하는데,

ⓐ 자유주의 복지국가(liberal welfare regime) : 국민이 노동시장에서 일을 할 수 없을 때 생계에 필요한 최저 수준을 제공하며, 개인의 책임을 더 강조하며 최소한의 공공부조 프로그램을 주장한다. (예: 미국, 캐나다, 호주 등)

ⓑ 조합주의 복지국가 (corporatist welfare state) : 직업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공공 시스템이 존재하며, 사회보험 방식으로 최저 소득보다 높은 수준을 보장하며 직업별, 계층별 차등 복지가 제공된다. (예: 오스트리아, 프랑스, 독일 등)

ⓒ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social democratic welfare state) : 조세, 급여, 복지 수준을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 사회적 평등과 연대성을 강조하며 높은 급여 수준과 더불어 높은 세금 등으로 일정 사회 생활 수준을 유지한다. (예: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앞서 설명한 탈상품화 정도는 ⓐ → ⓑ → ⓒ 순으로 강해진다. 즉, 사회 구성원이 노동력을 상실해도 국가 생활 수준을 책임지는 수준이 높은 편이며, 실직에도 심리적 안정감이 높아진다. 이런 비교를 통해 분류하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형태에서는 소위 "도덕적 해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예를 들어 노동하지 않으면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통해서 일하지 않고 먹고 살 수 있다는 마음때문에 일부러 실직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노동 인구에 대한 구분이나 여러가지 문제점 등을 언급하지만 세가지 구분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은 바로 개인의 책임 - 국가(시스템)의 책임의 균형에서 어떤 정책을 선택할 것인가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성장과정이나 주요 경제 동력원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복지정책의 기조와 방향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어떤 복지정책이 더 우리에게 적합한지는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하겠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복지의 가장 큰 효과는 "심리적 안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가처분소득" 측면에서의 최저 생계에 대한 시선,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위한 의료, 노동 등의 안정망 확보 시스템은 중요하다고 본다. 의료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어떤 질환이든 치료를 받는데 별도의 사보험의 보호망이 없어도 국가보험으로 보장이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안정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역시 탈상품화으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벗어나도 다시 재교육이나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직업 구조를 가지기 위한 시간동안 국가가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을 보장해준다면 좀더 직업 탐색의 시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우리나라의 여건과 여러가지 가계 경제 활동의 형태를 보면 이런 부분을 바로 적용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우선은 크게 증세에 대한 저항이 커질 것이다. 그러나 증세의 방향을 간접세 등을 통해 낼 수 밖에 없는 조세 제도를 통해서 이루는 것이 합리적인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에 유리한 조세 제도를 고쳐서 직접세의 형태로 증세를 늘리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통치의 이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답이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무엇이 옳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 통치 권력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어떤 것이 필요하며,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국가 발전을 위한 길인지에 대한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에 따라서 국민의 어느정도가 생계를 걱정하는 인구가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보수 / 진보의 구별을 통해 복지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보수 / 진보의 이념의 경계를 넘어 경제적 관점과 삶의 질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지향점을 생각하며 복지 정책을 수립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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