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Who Season 7 Episode 13 : The Name of the Doctor |
어릴 때부터 많은 꿈을 꾸고 개인적으로 Full HD 동영상 같은 다양한 색채의 꿈을 꾸기 때문에 가끔 꿈에서 일어나서 꿈에서 해야 했던 일들을 현실에서 하거나 때로는 반대로 현실에서 하지 못했던 과제들을 꿈속에서 다 끝내고 무척 좋아했는데 꿈에서 깨고 너무 허무했던 기억도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공상 과학 소설의 내용같이 날라 다니는 꿈, 그 중에서도 손바닥으로 추진력을 얻어 날라 다니다가 내 마음대로 착지하지 못해서 추락하는 꿈을 비롯해서 현재 많은 영화의 장면같은 꿈을 이미 해당 영화들이 제작되기도 전에 경험했었다. 특히 10살을 전후의 꿈들은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그 아파트 전체가 도미노 무너지듯이 그대로 넘어지는 꿈을 꾸며 깨어났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시까지 단 한번도 아파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아파트에 서 있는 꿈을 꾸웠는지 그리고 남들은 키 크는 꿈이라는데 왜 효과가 없었는지에 대해서 심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남들보다 꿈의 양이 많은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부터 꿈노트를 잠자리 가까이에 놓고 있었다. 꿈을 꾸고 일어나서 꿈의 내용이 생각나는데 다시 잠에 들거나 조금만 지나 아침을 먹을 때쯤이면 꿈을 꾸었던 기억은 있는데 꿈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잠자리 근처에 작은 노트와 펜을 놓고 거의 잠결의 상태에서 노트에 생각나는 꿈의 내용을 적어 내려간 것이다. 물론 맨 정신일 때 다시 찾아보면 무슨 말을 썼는지 알아보지 못할 내용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꿈의 내용에 대한 대강의 내용, 등장인물, 주요 대상 등을 보면 꿈의 내용이 맨 정신에도 떠오르는 장점을 가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한동안은 이 꿈노트 때문에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바로 꿈의 내용을 가지고 해석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매달리고 하루 생활 중에 사건이 생기면 좋은 일이면 좋은대로, 나쁜 일이면 나쁜대로 꿈의 내용을 맞추어 해석하려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다. 꿈의 해석이 의식이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욕망이나 때로는 풀지 못한 내면의 문제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려니 현실 세상의 생활마저 꿈에 의해 좌지우지 당하고 때로는 꿈의 내용에 따라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는 결정론적 하루가 되어버리거나 많은 사건의 원인을 꿈에서 찾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던 것이다.
꿈의 해석 - Die Traumdeutung
아직까지도 기억에 강하게 남는 꿈이 있다. 어느날 꿈의 마지막 장면에 건강하게 생긴 잘 생긴 핑크 돼지 한마리가 나를 향해 웃어주면서 장면이 끝나는 꿈이 있었다. 꿈이 너무도 생생히 기억에 남아 하루 종일 무슨 꿈일까 혼자서 즐거워하고 있으며 사람들 말처럼 돼지꿈은 복꿈이니 복권같은 것이라도 사야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복권을 싫어해서 지금까지 거의 사본적이 없지만 당시에는 그 꿈의 힘이 너무 강했는지 "이 정도 꿈은 한번 복권 사야하지 않나?" 고민했었다. 그렇게 즐거운 상상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어제 나왔던 그 돼지가 마지막 장면 그대로 나타났다. 마치 월화 드라마의 월요일 방송분을 보고 그대로 화요일에 이어가듯이 똑같은 장면으로 어제의 돼지가 그대로 나타나 준 것이다. 꿈 속에서 나는 "아 이 돼지가 나에게 빨리 복권이라도 사라고 재촉하려 다시 나왔구나" 생각하는 순간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에서 탐 크루즈가 가면을 벗어내듯 돼지가 자기 얼굴의 가면을 뜯어 내어 버렸다. 그리고 가면이 사라진 얼굴은 한쪽 눈에만 점이 크게 박힌 개 한마리가 혀를 내밀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꿈에 나타난 볼테리어 종 - 그래서 난 이 강아지가 별로다. |
하루만에 돼지꿈은 개꿈으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고민하게 되었다. 이 꿈을 개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돼지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 고민의 끝에 꿈의 해석은 꿈이 정말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에 따라서 꿈은 그 의미와 가치가 변화한다는 느낌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은 집착하며 해석하려고 했던 그 꿈의 해석을 해석하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쉽게 말해 조금은 꿈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비록 내 꿈이지만 마치 내가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생각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꿈을 해석하지 않는 꿈의 새로운 해석은 오히려 꿈을 통해 현실에서 나쁜 일을 예방하거나 현실의 문제를 해석하려는 어리석은 관심을 버리게 되었고 그 이후 꿈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소재와 새로운 아이디어의 공장이 되어준 느낌이었다. 즉, 현실을 너무 잘 살아볼려고 노력하며 꿈마저도 그런 잘살고 싶은 현실을 위한 부속품으로 생각했던 순간에는 꿈은 항상 현실을 괴롭히는 존재가 되었고 고민거리였지만, 꿈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그대로의 이야기를 아무런 해석없이 받아들이는 순간 꿈은 또 다른 놀이 동산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꿈의 감각 - sense en rêve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꿈에서 감각을 느낀다. 그 감각이 꿈 꾸고 있는 자아가 실제 꿈자리에서 느끼는 감각인지 아니면 꿈 속에서 인지하는 꿈의 내용때문에 느끼는 감각인지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갑자기 잠자리가 더워져서 땀을 흘리게 되었는데 꿈 속에서 사막을 지나게 된다면 잠자리 더위에 의해 느껴지는 감각이 꿈에 영향을 주어 사막을 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인과관계의 해석은 특별히 수면과 관련된 과학 / 의학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막에 있는 꿈을 꾸웠다는 것이고 그에 비슷한 생리적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꿈속에서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정확하게 화장실이나 소변을 보아도 되는 적절한 장소에서 마음껏 (쉽게 말해 자유 의지에 의해 강력한) 소변을 보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소변이 화장실 변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역류를 하거나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바지를 입고 있는 등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실제로 촉촉한 느낌을 받으며 꿈에서 일어나 보니 실제로 소변을 보고 있었던 꿈을 누구나 한번쯤 꾸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만 그랬나?)
어느 날 꿈에서는 누군가를 포옹했는데 그 포옹했을 때의 느낌, 촉감 그리고 손끝의 느낌이 꿈속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꿈에서 깨어나 한참동안 고민했던 것은 내가 꿈 속에서 느낀 그 촉감은 실제 내가 신경학적 감각으로 느낀 것인지 아니면 꿈의 내용 속에서 내가 촉감이라는 기억을 꿈에서 기억해내 느낀 것인지 궁금했다. 즉, 내가 이런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촉감을 머리로 기억하고 있다가 적절한 상황에서 당연히 느껴야 하는 감각을 꺼낸 것인지 아니면 실제 잠자리 (현실)의 내가 느끼는 촉감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로는 꿈 속에서 슬픈 이야기를 접하고 깨어나니 눈물을 흘리고 있던 적도 있었다. 분명 생리적 반응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영화나 드라마 같은 픽션에도 슬퍼하고 무서워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꿈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이해되지만 영화/드라마와 조금은 다른 것은 1인칭이라는 점 뿐만 아니라 그 상황의 경험을 내가 직접 하고 있다는 점이다.
꿈의 사고 - thought en rêve
감각이야 꿈에서 보고 듣는 것들에 영향을 받아 생리적인 현상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꿈 속에서 종종 내가 논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내가 연극배우를 하면서 생전 처음 받아보는 대본을 받아서 그 대본을 열심히 외우고 연극 연습을 하는 꿈이었다. 만약 꿈이 전적으로 나의 무의식을 포함해서 나의 머리 안에서 만들어진 세상이라 가정한다면 연극을 위한 대사의 내용도 내 머리 속에서 나왔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내 무의식 안에서 가공이 되어 내가 외우는 대사들도 내가 창조한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연극하는 꿈은 꿈 노트에 의하면 거의 4일에 걸쳐 연속으로 꾸웠는데 꿈 속에서 전날 외웠던 대사들이 기억이 안나 걱정하는 내 모습과 동시에 대본이 완전히 바뀌어 다른 연극으로 바뀌어서 상당히 안도했던 내용이었다. 이처럼 무엇인가 과제가 꿈 안에서 주워지고 그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암기하거나, 문제를 풀거나 하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이다.
다른 예로 문제를 푸는 과정이 있었는데, 문제를 푸는 꿈에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지만 열심히 풀었지만 꿈 안에서의 논리와 법칙은 전혀 달라서 수학 문제를 거의 빵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무척 난감해 하던 기억, 수업에 참여하는데 시간이 훌쩍 흘러 나는 실질적으로 숙제를 할 시간이 전혀 없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숙제를 해오고 나만 숙제를 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 꿈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은 (꿈속에서는 너무 황당한 내용이지만...) 그 숙제의 내용과 숙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즉, 내가 실제 경험하지 않았고 결과는 나만 불리한 상황인데도 내가 스스로 대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숙제하지 않은 나 자신을 걱정하며 수업에 들어가 있는 꿈도 꾸기도 하고 실제 현실에서 열심히 풀려고 했던 문제였는데 뜻하지 않은 현자가 나타나서 힌트를 주어서 그 꿈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도 있었다. 학부 시설 프로젝트 하다가 막혀서 안 풀리던 부분을 노벨상 수상자가 나타나 힌트를 주는데 유창한 한국말을 했었다.
꿈이 심하게 황당하면 꿈이구나 받아들이지만 오히려 황당하지 않은 경우에는 현실의 일들과 과제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예를 들어 몇일 있다가 해주기로 했던 과제가 있었는데 꿈 속에서 그 과제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다 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당연히 내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일이나 꿈에서 어떤 이와 약속을 했는데 꿈에서만 약속한 것이었고 현실에서는 연락도 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인지 능력이 감퇴한 것인지 아니면 내 꿈이 너무도 현실적 창조를 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런 혼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한가지는 꿈에서 내가 사고하는 방식과 현실에서 사고하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화 인셉션(inception)에 나오는 현실과 꿈을 구별하는 토템이나 자신만의 특별한 구별 방법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가지 단점은 그 구별 방법을 실제로 실행해야겠다는 의지가 꿈에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꿈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주는가?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꿈 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한 시절부터 평균적으로 수면 시간이 3시간이었다. 새벽 시간 책을 읽느라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최소한 꿈을 꾸지 않으려고 수면 시간을 조금씩 줄여왔던 습관때문에 생긴 나쁜 버릇이다. 그렇게 꿈을 꾸지 않으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보통의 꿈보다 악몽에 가까운 꿈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실과 꿈이 서로 영향을 (정확히는 꿈이 현실에 주는 영향을) 주는 것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으로 감정적 혹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꿈의 상황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영화처럼 쉽게 되지 않지만 꾸고 있는 꿈의 내용이 너무 받아들이기 힘들 때는 일부러 깨려는 방법도 다각적으로 개발해보았다. 예를 들어 일부러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손가락 하나를 꺽어버리는 것과 같이 영화처럼 피해가 적고 효과적인 토템과 같은 팽이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토템을 꿈 속에서 항상 소지하고 있지도 않았고 그런 토템이 항상 같은 결과를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에 꿈과 현실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의 현실감(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을 때는 별로 소용없을 때가 많았다.
꿈 노트는 귀찮은 방법이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남겨준다. 꿈의 내용 뿐만 아니라 꿈 속에서 내가 기분 나빠하는 대상, 좋아하는 대상 등 때로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서 고민하는 보기 힘든 내 모습도 꿈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연구 분야를 꿈 속에서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의외로 그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꿈 노트를 적지 않으면, 내가 어젯밤 꿈을 꾸웠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거나, 꿈을 꾸웠다고 기억해도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꿈을 꾸웠고 꿈의 내용이 좋았다 / 나빴다 정도의 호감만 기억하게 된다. 그런데 꿈의 내용을 꿈 노트에 적어 놓으면, 내가 어떤 꿈을 통해 내가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알게 된다는 점이다.
꿈 노트를 통해 발견한 새로운 내용은 내가 현실에서 피하고 싶고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좋아하는 척 해야하는 내용들도 존재한다는 것,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데도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시선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척 해야하는 것들도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현실에서 갈등하는 정도가 10점 만점에 8점 정도의 강도로 갈등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꿈 속에서는 더욱 심하게 갈등하거나 반대로 내가 고민하고 집중하고 고집하는 내용들은 실제로 고민하는 척 하는 것을 통해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 등 내가 현실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나에 대한 모습과 많은 부분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내가 가지는 특정 관심 대상 (object; 오브제) 가 있다면 그 대상에 대해서 어느정도 관심을 가져야 (concern) 을 가져야 나다운 모습일까 현실에서 많이 고민한다는 점이다. 즉, 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보다는 사회적 시선과 사람들의 기대에 더 부응하기 위한 내 모습을 만들려고 하는 자아를 꿈 노트를 통해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왜 장래희망을 꿈이라 부르는가...
우리는 장래희망을 물어보며 "너는 꿈이 뭐니?" 라고 물어보는 것이 참 이상했었다. 꿈 노트를 그려가며 꿈 속에서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내가 자유로운 상황이 무엇인지 내가 꿈 속에서도 웃음지을 수 있는 내용들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재산이라고 믿는다. 꿈 노트를 꾸면서 내가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할 때 희열을 느끼는지 먼저 알게 되었고 그 희열을 현실에서 느끼기 위해서 무척 노력해왔다. 꿈 속에서 느낀 그 희열이 너무 강해 기억한 것이 아니라 꿈 노트를 통해 반복해서 내가 무엇을 경험할 때 희열을 느끼는지 지난 꿈 노트를 넘기면서 기억했던 것이다.
그렇게 꿈 노트를 통해 찾아왔던 꿈 두 가지는 세상의 숨겨진 원리를 찾아내 사람들의 쉬운 언어로 풀어 해석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다양한 눈을 통해 이야기하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이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추상적으로는 세상의 이치를 밝혀내는 것... 세상의 언어로는 연구하는 것이 내가 희열을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다른 한 가지는 글을 쓴다는 즐거움이었다. 글을 쓰는 즐거움은 역설적으로 슬픈 꿈을 통해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의 꿈이었다. 억압과 탄압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이미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고문을 받았는지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감옥에서 글을 쓰려고 그 어떤 것도 허용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 이를 뽑아 치아 뿌리로 감옥 벽에 글을 쓰고 깨어났었다. 그때 비몽사몽 꿈 노트에 내용을 적고 마지막에 적었던 나의 기분은 별표(★) 였다. 별표는 빠르게 꿈에서 느낀 느낌을 적기 위한 기호들 중 하나이다.
그런 끔찍하고 지저분한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리고 꿈 노트에 그 내용을 적어 놓고 기분을 표시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고통 안에서도 내가 왜 기분이 좋을 수 있었는지 인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몇년 전 치료때문에 현실에서 기억했던 단기 기억들이 지워진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만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 일을 경험하고 느낀 것은 아무리 아픈 기억도, 아무리 슬픈 기억도 지워진 기억보다는 존재하는 기억이 더 소중하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라고 부르고 때로는 [ 기억하지 않는다면 트라우마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기도 하지만 ] 잃어버린 기억조차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꿈이 선물해준 기억들조차도 소중할 때가 많다. 그리고 꿈 노트를 통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정말 내가 어떤 꿈 속에서 자유롭고 평화로운지 찾아주었고 그런 편안한 나를 통해서 현실에서 찾아야 하는 내가 찾고 싶은, 하고 싶은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 같다. 꿈의 기억이든, 현실의 기억이든 중요한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내 마음에서 자유롭게 놓아주는 연습을 위한 좋은 재료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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