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문턱없는 밥집'에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5명의 사모님이 근사하게 차려입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밥을 맛있게 먹고 내민 돈은 5,000원이었다. "
'문턱없는 밥집'은 '마음껏' 먹고 '형편껏' 내는 밥집으로 자본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유기농 재료로 만들고 형편이 어려운데 돈이 없어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낮은 문턱으로 배고픔에 힘들어 하는 이웃들을 위해 만들어진 밥집이었다. 형편이 조금 괜찮다면 넉넉하게 밦값을 치루어 형편이 어려워 밥값을 내기 힘든 이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5명의 사모님이 들어와서 밥값으로 5,000원을 지불했다고 한다. 처음 이야기를 듣고 한 사람당 5,000원이겠지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5명의 모든 밥값을 5,000원으로 계산한 것이었다. 그리고 집까지 가는데 밥값보다 더 많은 기름값을 흘리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사모님들을 돌아갔을 것이다.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 인격에 부끄럽지 않은 명품 ] 사치품을 명품이라 부르고 가난을 천박과 혼동해서 부르는 알 수 없는 시민 의식을 가진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여기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의 수단이 가장 정당해질 때는 인간이 제공한 모든 서비스, 제품에 대한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할 때이고 이 조건에서만 돈은 유용할 뿐이다.
밥값이 싸다고 의무적으로 1,000원만 내고 뻔뻔하게 나가는 돈 많은 사모님들의 문제점은 '돈이 있는데 제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치를 평가할 줄 모르는 (의식조차 결여된)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모순이자 문제점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자본을 취득하고 누리는 사람은 '자본이 가지는 가치 평가 기능'에 집중해야지, 자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자본을 만들어 준 인간의 노동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자본은 수많은 노동 (정신 노동이든, 육체 노동이든) 의 결과이지만 그 자본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의 가치는 평가 절하된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준 어미의 젖에 만족하지 않고 어미를 물어 뜯어 먹어버리는 맹수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단지 자신의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가능하게 한 대상마저도 파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소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wag the dog) 너무도 어이가 없는 역설들이 난무한다.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쉽게 해고하기 위해 경영자들은 단순히 재무상 숫자로 파악하지 자신을 위해 땀흘리는 인격적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는다. 쉽게 해고하고 그 해고에 대해서 법적 책임 한계 내에서 떳떳하다고 고개 들고 다닌다. 사실 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노동자들이 그 없는 월급을 쪼개어 내는 국민연금에 납입하고 그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기업들은 그 노동자를 해고한다. 미국은 최저 임금 9달러에도 사람들이 절대 빈곤에 힘들어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이제서야 5,000원 조금 넘는 최저 임금으로 사측은 별 문제 없다고 이야기하며 중소기업을 방패막이 삼는다.
인간의 천박함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모든 노동은 인간이 제공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인간이 없다면 기업들이 팔아 먹는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도 별 소용이 없어진다. 그런데 어느새 자본에 눈이 멀어 그 천박함은 도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은 사라진다. 천박함은 가난이 아니다. 천박함은 내가 누리는 가치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 이 시대에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으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다른 세상의 이야기같은 곳에서 보이는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도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한달에 몇억씩, 일년에 몇십억씩 생산력을 내는 노동 가치를 만들어내는가? 그런 생산력이 존재할 수 있는가? 오히려 부정부패와 자본의 노예가 되도록 조장하는 사람들은 수십억의 연봉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파괴하면서 자신의 양심과 지식마저도 자본에 헌납하는 소위 잘나가는 법무법인, 회계법인의 로봇들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노동은 사실 파괴를 위해 존재하는 부끄러운 노동인 경우도 많다. 약자가 일어나기 위해 도움이 되는 노동이 아닌 더 많은 자본을 위해 법률적 논리를 무기로 약자를 파괴하는 노동으로 그들은 자본을 챙긴다.
현대 사회의 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왜곡시키고 그 왜곡된 가치를 통해 소수의 자본을 증가시키는 사적 이익을 챙기는 약탈적 구조로 변질했다. 그 변질의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인간의 천박함조차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본으로 매꾸려는 의식적, 무의식적 행동들이었다.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그에 값을 매기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적 원칙이다.
그 기본적 원칙마저 왜곡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자본주의인가? 지금의 자본주의는 결국 자본만이 살아남는 파괴의 결론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천박함은 자본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가치를 평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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