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5, 2012

인격에 부끄럽지 않은 명품

Leave a Comment
번째는 명품에 대한 인식이다. 명품을 영어로 뭐라고 할까 질문하면 대부분은 luxury (goods)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명품은 영어로 masterpiece 이다. 이 뜻은 시대에 관계없이 누구나 칭송할만한 인간의 작품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명품이란 말그대로 백화점에서 팔리는 사치품을 명품이라고 부른다.

의식의 잠재성 측면으로 보면 당연히 사치품으로 인식되어야 하는 많은 물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masterpiece 의 명품과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는 사치품은 쉽게 말해 잘 미화되고 포장된 명품으로 둔갑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치품이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타나는 욕구 불만의 표출이며 소유하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줄 수 있는 하나의 미니미(mini-me) 를 갖추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도 마치 그런 물건들이 자신의 인격과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대상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언젠가 명동성당 앞을 지나가는데 껌을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할머니께서 소위 명품 숄더백을 매고 가는 아가씨에게 하나 사달라시며 '명품백'에 손을 대니 여자는 즉각적인 반응으로 "할머니! 이게 얼마짜리인지 알아요!" 하며 소리질렀다. 그 옆을 우연히 있던 나는 그 아가씨의 반응에 너무도 기가 막혀서 "이봐요! 당신 인격은 도대체 얼마이길래 그렇게 무례해" 라며 아가씨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번째 착각, 그러나 우리가 쉽게 느끼지 못하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착각은 바로 고급과 천박함은 공존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가난을 천박함으로 여기는 그 천박함'을 당연하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가난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무리해서 고급을 추구하고 자신을 고급으로 감싸려고 노력하는 그 허세때문에 심한 빚을 내서라도 명품 업체들을 살찌우고 있다. 결국 제대로 보고 먼저 살펴야 하는 인격을 고급이라는 거추장스러운 가면으로 감추기 급급해지고 그렇게 하여 남들의 의식에서 '나는 고급스럽다'를 강조하고 싶어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어린 시절 나는 상당히 부유하게 자랐다. 그러나 지역적 특징이 그런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속에 입는 간단한 티셔츠하나도 80~90년대인데도 수입품과 십만원은 기본으로 하는 옷들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나는 당시에 티 한벌에 만원 정도의 브랜드를 항상 입고 다녔고, 아이들은 나를 가난한 집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선에 별로 신경쓰지 않던 나였지만 뒷얘기하며 아이들은 나를 그 중저가 브랜드 이름 (헌트) 으로 나의 별명을 대신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우리집이 '얼마나 못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 당시 한명이 그대로 전해준 그대로의 말이 '얼마나 못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였다.) 우리집에 가자고 나는 흥쾌히 데리고 갔었다. 그때 우리집은 넓은 정원에 2층집으로 방만 8개 였던 집이었다. 아이들은 놀라며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야 너 근데 왜 헌트만 입고 다니는거야?"

이쁘고 맘에 들어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명품을 자기 돈 주고 사는 것에 대해서 도덕적 잣대를 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리고 자신이 누리는 부를 꼭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나누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지만 최소한 자신 인격에 부끄럽지 않은, 천박하지 않은 자신을 위해 노력할 생각은 하면서 그렇게 누렸으면 좋겠다.

0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