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연남동의 골목을 지나가 본다. 익숙했던 큰 길가의 술집, 밥집, 그리고 술취한 사람들, 쓰레기 봉투의 거리가 아닌 주변이 온통 주택가인 골목을 지난다는 것은 다소 용기를 요구한다. 아무리 방향 감각과 공간 감각에 신뢰하는 나라고 해도 여러가지 걱정거리를 모두 뿌리치고 일단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첫길의 두려움은 자연스럽게 몰려온다. 왜 이 길을 선택했지, 이 방향이 맞을까, 가다가 중간에 길이 끊기면 어떻게 하지, 전혀 엉뚱한 길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동네 유명한 껌 씹는 여고생 언니를 만나면 어떻게 하지 ... 그 수많은 상상은 곧 쓸데없는 공상임을 알게 되지만 그래도 그 살짝의 불안함은 오히려 새로운 길에 대한 어색한 기대를 만들어 낸다.
가는 방향에 조금 높은 건물이 있을 때 조금은 도움이 된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이정표는 단지 방향의 확신뿐만 아니라 이정표가 되는 건물이 점점 커지는 그 작은 희열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 조금만 걸어가면 도달 할 것 같은 남산 타워같은 것을 이정표로 두지 않는다. 너무 큰 남산타워를 향해 갈 때는 용기만큼이나 충분히 지치지 않을 무언가도 필요함을 이젠 세월이란 선생님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작은 골목을 돌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게가 보인다. "건담이 지키는 가게" 라는 이름의 어린시절 본드 냄새 맡아가며 한번쯤 만들어 봤을 프라모델이 가득한 가게를 빼꼼히 구경한다. 신기하다. 어린 시절의 어떤 시간이 이렇게 멈춘 것 같은 그곳에 잠시 서서 추억의 잔상을 지금 바라본다.
소박한 커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그 구수한 불빛의 커피가게가 바로 옆 골목에서 서 있다. 두 사람이 커피를 놓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미소가 가득하다. 그들의 미소가 가게의 크기보다 크다. 갑자기 다른 골목에서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바로 옆 미용실에 들어간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음식을 전하며 여기도 미소가 가득해진다.
음식을 전해주던 그 사람은 미용실에서 나와 나와 같은 골목을 걷는다. 이내 골목하나 꺾어져 자신의 가게에 들어간다. 테이블 4개 정도 두고 일본식 다솜한 가게를 운영하나 보다. 손님들이 음식을 즐긴다. 살짝 홍조를 띠는 창가의 손님들 이 곳은 또 어떤 이야기로 세상을 나누고 있을까. '나눔의 순간'을 목격해서일까. 다음 번 이곳에 와서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가 어딜까 마땅한 골목이름도 눈에 띄는 건물도 없는 모든 것이 평범한 그곳. 다음에 다시 오겠다며 골목의 냄새를 기억해본다.
그렇게 골목을 지나 비슷한 방향으로 큰 길가에 또 나왔다. 여기가 여기로 연결되는구나. 익숙한 공간을 그렇게 낯선 오늘 처음 지난 그 골목과 연결한다.
골목은 그런 곳이다. 설레임도 두려움도 약간의 용기도 약간의 도전도 모두가 다 필요한 곳. 그리고 실망할거라 가지 않았다면 찾지 못한 숨겨진 소소한 것들을 발견하는 것... 그렇게 나만이 가지는 그 어떤 지도에도 그려져 있지 않은 나만의 보물 지도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Snapshot on 22,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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