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0, 2014

친절함은 누구를 위한 투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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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학교 정문 앞 소위 공갈빵이라고 불리던 호떡을 파는 아저씨가 계셨다. 길거리 음식의 매력이지만 격식없이 간단하게 횡단보도 파란불을 기다리며 간단하게 사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종종 애용했던 기억이 난다. 십년 정도 지난 후 여전히 호떡을 파는 트럭을 여전히 있었고 머리는 조금 하얗게 서리 내리셨지만 아저씨도 여전하셨다.

반가운 마음에 배부르지만 호떡을 하나 사먹었었다. 오랫동안 익숙하지 않았지만 예전처럼 주문하는 방법은 몸이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호떡 하나요! 라고 외치는 대신 작은 소리내며 검지 손가락을 올리며 한개라는 것을 전했다. 그리고 아저씨는 예전처럼 활기차게 종이에 호떡을 싸서 주셨다. 가격이 올랐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아저씨께서 호떡을 주실 때 모습은 여전하셨다. 아저씨는 청력에 문제가 있으신 난청 장애인이시다. 그래서 몇개요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손가락으로 몇개를 알리는 것이 더 편하고 즐거워 하셨다. 가끔 열명이상 같이 가다가 호떡이나 먹을까 싶어 주문해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열손가락을 펼치고 앞뒤로 한번만 더 흔들면 아저씨는 귀신같이 20개를 주문하시는지 쉽게 알아들으셨다. 

예전 집앞에 맛으로 유명한 튀김 노점상이 있었다. 튀긴 음식을 그리 즐기지 않았기에 평소 줄이 긴 것을 보아도 그렇게 먹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날 혼자서 마땅히 먹을 것이 없는 순간 그 튀김집이 생각이 났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바로 먹을 수 있었다. 역시 줄이 긴 집은 맛이 없거나 맛이 있거나 한데 내 입맛에 딱 좋아서 생각보다 더 많이 튀김을 먹게 되었다. 튀김 6개를 먹고 나서 집에 포장을 해갈려고 6개 더 주문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먼저 먹고 계산하려는 아가씨가 말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는 주인 아주머니를 향해 계속 "4개 먹었다고요!" 하면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순간 나는 주인 아주머니의 행동을 보면서 아주머니께서 듣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가씨는 어렵게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뭐 저래? 말을 왜 못알아 들어?" 하면서 나가는 것이었다. 순간 먹고 있던 튀김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은 생겼지만 맛있어서 던질 수가 없었다. 

난 아주머니에게 손가락으로 6개를 표시하고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여기서 6개 먹었다는 사실을 알려드렸고 또 다시 6개를 표시하고 주먹을 쥐어서 어깨 위로 땡기며 포장해갈 것을 알려드렸다. 아주머니는 알아들으셨다는 듯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원하는 튀김 6개를 넣고는 추가로 4개를 서비스로 넣어주시며 튀김 12개 값을 조금은 어색한 말투로 알려주셨다. 뜻밖의 서비스에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그 이후 가끔 찾아갈 때마다 나를 알아보시고 항상 주문한 것보다 더 많이 넉넉하게 주시는 서비스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날 나만 그렇게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주는 것일까 싶어 옆을 살펴보는데 그렇게 살펴보는 나를 유심히 보시다가 나에게 말해주셨다. 

"예뻐서 특별히 더 주는 것이예요~!" 

음... 단지 특별한 감각을 가지셨기에 나를 예뻐하시는지는 몰랐지만 손님이 적은 한적한 어느 날 아주머니가 나를 예뻐해주는 이유에 대해서 손가락으로 주문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하루만 도와주러 나온 남편분께서 가끔 잘 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서러웠던 그리고 무시당하던 많은 경험들이 있던 어느날 손가락으로 열심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주었던 내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이야기들었다 나에게 알려주셨다. 난 오히려 그 말들에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덤으로 주셨던 튀김들도 당연히 고마웠지만 그보다 잊지 않아주셨다는 것에 더욱 더 고마웠던 기억이다. 

은 경우 '그 사람을 잘 알아...' 라고 말하는 표현에는 참 많은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에 대해서 잘 아는 것처럼 속단하고 함부로 이야기하고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내가 어떤 기분인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단지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함부로 이야기하는 그런 경우 말이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수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안다고 말을 한다. 


학교 앞 호떡파는 아저씨나 집앞 튀김파는 아주머니께서 청력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내가 정말 그 두분을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 학교 동문을 만나면 호떡파는 아저씨가 회자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호떡파는 아저씨가 청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마치 호떡을 먹어봤다는 하나의 암호같은 내용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사실만으로 그 사람을 알 것이라고 믿는다. 그 사람의 출신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속단하고 심지어 혈액형이 무엇이니깐 어떤 성격일 것이라고 쉽게 믿어버린다. 사실과 가치의 경계를 스스로 망치고 있는 것이었다. 

찬가지이다. 아무리 튀김집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계속해서 튀김을 더 준다고 해서 나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가끔 튀김 가게 아주머니 이야기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나서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일까? 물어보면, '사람들에게 친절하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라고 대부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에게 친절할 수 있다는 것은 꼭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다. 많은 경우 내가 잘 아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기가 쉽다. 그러나 친절이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이나 불쌍한 감정을 가지는 대상에 대한 호혜가 아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아주머니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로 튀김 몇개를 더 가질 수 있는 이득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개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는 그 무형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 


친절은 결코 댓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친절은 항상 자신의 가치를 높여준다. 돈과 명예로 누군가를 아랫사람 대하는 태도가 자신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은 어쩌면 자본과 권력이 친절이 주는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게 만드는 하나의 작용일지 모른다. 

1 comment:

  1. 오랜만에 방문합니다. 잘 지내시죠? 오늘도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김재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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