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y 23, 2019

작은 시골 학교가 있었다.
겨울철이면 그 학교는
항아리처럼 배가 불룩한 구식 석탄 난로에 불을 지펴
교실 난방을 해결했다.
날마다 한 어린 소년이 맨 먼저 등교해서
교사와 다른 학생들이 오기전에 난로를 지펴
교실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아침
교사와 학생들이 등교해서 보니
학교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불타는 교실안에는
그 어린 소년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소년을 밖으로 끌어냈다.

소년은 살아날 가망이 희박해 보였다.
하체 부위가 끔찍한 화상을 입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은 곧바로 소년을 근처의 시립병원으로 옮겼다.

심한 화상을 입은 채 희미한 의식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어린 소년은
의사가 엄마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말했다
불길이 소년의 하반신을 온통 망가뜨렸기 때문에
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어쩌면 이 상태에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른다고.

소년은 죽고 싶지 않았다.
꼭 살아나겠다고 소년은 굳게 마음을 먹었다.
아무튼 의사에게 큰 놀라움을 선사하며
소년은 죽지 않고 소생했다.

위험한 고비를 일단 넘겼을 때
소년은 또다시 의사가 엄마에게 하는 얘기를 들었다.
의사는 말했다.
하반신의 신경과 근육들이 화상으로 다 파괴되었기 때문에
소년을 위해선 차라리 죽는 편이 더 나을 뻔 했으며
이제 하체 부위를 전혀 쓸 수 없으니
평생을 휠체어에서 불구자로 지내야만 한다고.

소년은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었다.
결코 불구자가 되지 않기로….
언젠가는 다시 정상적으로 걸으리라고 소년은 결심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허리 아래쪽에는
운동 신경이 하나도 살아 남아 있지 않았다.
가느다란 두 다리가
힘없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소년은 퇴원을 했다.
엄마가 날마다 소년의 다리에 마사지를 해 주었다.
아무 느낌, 아무 감각,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걷고야 말겠다는 소년의 의지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 있지 않으면
좁은 휠체어에 갇혀 지내야만 했다.
어느 햇빛이 맑은 날 아침
엄마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게 해 주려고
소년을 휠체어에 태워 앞 마당으로 나갔다.
소년은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간 틈을 타 휠체어에서 몸을 던져
마당의 잔디밭에 엎드렸다.
그러고는 다리를 잡아끌면서 두 팔의 힘으로
잔디밭을 가로질러 기어가기 시작했다.

마당가에 세워진 흰색 담장까지 기어간 소년은
온 힘을 다해
담장의 말뚝을 붙들고 일어섰다.
그런 다음 말뚝에서 말뚝으로 담장을 따라
무감각한 다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꼭 다시 걷겠다는 소년의 강한 의지를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년은 날마다 그 일을 반복했다.
마침내는 담장 밑을 따라 잔디밭 위에
하얀 길이 생겨 날 정도였다.
자신의 두 다리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만큼
중요한것이 소년에게는 없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마사지와
소년의 강한 의지
흔들림없는 결심 덕분에
마침내 소년은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엔 더듬거리며 발을 옮겨 놓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소년은 다시 걸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달려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소년은 달리는 것에서 오는 순수한 기쁨때문에
끝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훗날 대학에 들어간 소년은 육상부에 소속되었다.

더 훗날
한때는 살아 날 가망성이 희박했으며
결코 걸을 수 없고
결코 뛰어다닐 희망이 없었던,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이 사람 글렌 커닝햄 박사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벌어진 1마일 달리기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학교 육상부원들을 부러워하고, 육상 선수가 되기를 바랬으나
하반신의 화상으로 다리를사용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던 소년.
그러나 1934년 1마일(1609.3m) 달리기에서 4분 6.7초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게 된 청년,



글렌 커닝햄 (Glenn Cunningham) 박사의 실화

Glenn Cunningham from Wikipedia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시련에 대해서 - 글렌 커닝햄

천천히 가는 사람이 종종
더 빨리 도착하는 것은 왜일까?
이런 사람은 무언가에 쫓겨 미친 듯이 달리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까닭이다.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느림을 충분히 향유하라.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은 경직된다.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시간은 항상 영원을 약속한다는 소중한 비밀을.

오늘날, 세상은 기다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
사람들은 신속하게 해결책을 찾고 싶어 안절부절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기다림은
우리가 지닌 본질적인 면을 가르쳐준다.
우리 자신의 발전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인내뿐이다.

무성하게 자라나는 잎들은 그만큼 빨리 시든다.
꽃이 필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즉각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는 서서히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찾아온다.


안젤름 그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느림

국의 어느 명망 높은 추기경님께서 오래 전에 한 신학생을 성추행했다고 하여 고소되셨습니다. 성추행범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그렇듯 각계각층에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매스컴에서는 연일 더 크게 소리내며 특집을 만듭니다. 상대가 다른 사람이 아닌 동정서원을 한 가톨릭 사제요, 명망 높은 추기경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추기경 자신은 하지도 않은 일이 세상 곳곳에 퍼져 사제로서의 신분은 물론 교회의 이름을 크게 실추시켰기에 더 고통스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악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확신한 후엔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담담하게 고통의 시간을 감내했습니다.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고, 악은 선 앞에 굴복하게 마련입니다. 고통의 시간은 죽음과도 같았지만 추기경 자신은 이 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 그 죽음의 고독감을 함께함으로써 오히려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다른 이의 욕망에 휘둘려 추기경을 고소했던 가련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와 화해의 은총도 받았습니다.

일생일대의 사건은 끝났지만 또 다른 어둠의 골짜기가 추기경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췌장암' 진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를 죽음 안에 가둬두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암환자가 되어 죽음을 앞둔 이들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한 사목을 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 ─ 《 평화의 선물 》



연히 알게 된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의 삶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살 것인가의 테마에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테마로 바꾸게 해준 성직자이다.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명망 높은 성직자의 고난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했다. 따로 글을 옮기기 보다는 양치기 신부님 이라는 필명으로 추기경님에 대해 쓴 글을 가져오는 것으로 저의 마음을 대신 합니다.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 양치기 신부님


요한 15장 1-8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우연히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님(1928-1996, 시카고 교구장 역임)의 영성일기 ‘평화의 선물’(바오로딸)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첫 장을 넘길 때부터 단 한 순간도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정도로 큰 감동이 제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230만 명 이상의 신자들, 1,800여명이나 되는 소속 사제들이 활동하는 시카고 교구의 교구장으로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던 추기경님께 1993년 11월 일생일대의 가장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추기경님께서 ‘성추행’이란 죄목으로 무고(誣告) 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소장을 손에 받아든 추기경님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고소내용 역시 너무도 놀랍고 어이없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무죄한 추기경님이었기에 불확실한 소문을 무시하고 사목활동에 집중하려고 하셨으나, 당신의 가치관과 서원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그 엄청난 고소 내용으로 인한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추기경께서는 당시의 고통스런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과연 주님께서 나를 위해 허위 고소를 준비시켰단 말인가? 물론 예수님께서도 허위 고발 당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악몽은 정말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CNN을 비롯한 각종 매스컴에서는 경쟁하듯 이 고소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었고 흉흉한 소문들은 입에서 입을 거치면서 더욱 증폭되어만 갔습니다. 추기경님의 입장은 참으로 난처했습니다. 그토록 난감하고 혹독한 상황 속에서 추기경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진정 의연한 참목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추기경님은 먼저 “이 사건을 통해 하느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청난 음모를 꾸민 사람들 역시 자신만큼이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있고, 자신만큼이나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여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고소인은 에이즈 환자였던 스티븐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 역시 추기경님께는 힘든 삶을 겨우겨우 견뎌내고 있던 한 마리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그 고소인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교회로부터 소외되어 왔던 사람, 에이즈와 그로 인한 외로움으로 고통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극적으로 이루어진 고소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 무고 사건은 교회에 앙심을 품은 일단의 사람들의 음모와 스티븐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거짓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추기경님은 그를 그 자리에서 용서하고, 그와 함께 화해와 감사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리고 이윽고 고소인은 고소 취하를 통해 자신의 우매함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이었음을 시인하였습니다.

겨우 무고 사건이란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난 추기경님에게 또 다른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췌장암이란 또 다른 십자가. 췌장암에 이은 간암으로 갖은 고생을 다하시던 추기경님께서 문병 온 친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건강할 때, 기도 많이 하게. 병들 때까지 미루다가는 정작 기도하고 싶을 때는 할 수 없게 될 지도 모르니까. 고통이 너무 심해서 기도하기 위해 마음을 모을 수가 없네. 신앙심을 잃어서가 아냐. 믿음은 그대로지만 고통을 견뎌내는 것만 해도 힘들어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다네. 건강할 때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 말게.” 

세상을 떠나기 불과 두 달 전 추기경님의 모습입니다. 그간 받아온 방사선치료와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이 재발되었지요. 담당의사는 길어야 1년이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추기경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도움으로 힘이 다하는 날까지 그들의 목자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게는 아직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있습니다. 그 동안 남은 시간을 뜻 깊게 사용할 생각이며,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뜻 깊게 사용한다는 것은 남은 시간도 사제들과 교우들에게 봉사하는 나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거의 생애 막바지에 도달한 상황 속에서도 추기경님은 하루에 강연을 두 곳에서 하시면서도 암환자 사목을 계속하셨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12건 이상 전화 상담을 하셨고, 동료 암환자들에게 셀 수도 없이 많은 위로와 격려의 편지를 쓰셨습니다. 아래의 추기경님 말씀을 읽으면서 그가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곤경에 처한 민중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병들었을 때, 도덕적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억압적 사회구조의 희생양이 되었을 때, 인간의 기본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그들과 함께 어둠의 골짜기를 걸어가야만 비로소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췌장암과의 투쟁이란 극심한 고통 앞에서도 끝까지 주님 안에 머물러 있기를 소망했던 추기경님의 삶이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자기 한 몸 챙기기도 힘겨운 투병생활 가운데서도   끝까지 양떼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추기경님의 모습에서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죽음의 길을 걸어 가시면서도 셀 수도 없이 많은 결실을 거둔 추기경님의 삶에서 참포도 나무이신 예수님의 자취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요셉 베르나르딘 추기경

Monday, May 20, 2019


조급한 확신 A jumped assurance 


에피소드 하나: 병원 응급실에 아이가 들어왔다. 팔이 부러진 상태로 들어와서 심한 통증을 호소한다. 혈관 주사로 진통제를 투여하려고 하니 아이는 갑자기 거부하고 경구용 진통제를 달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의 요구에 경구용 진통제 알약을 주었다. 아이의 보호자인 아버지는 말끔하지 못한 모습으로 아이 곁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계속해서 통증을 호소하고 계속 진통제를 찾았다. 응급실에서는 몇번 주었지만 상황을 의심한 의사는 아이의 약물검사를 해서 처방한 진통제를 복용했는지 확인한다.

CHICAGO | MED NBC

의사의 예상대로 아이에게서는 처방한 진통제는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몸이 불편하고 깔끔하지 못한 아버지를 의심했고 아이를 이용해서 약을 받기 위해서 병원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진실이 밝혀진다. 아이는 의도적으로 팔을 골절시켰다. 그리고 병원에 와서 진통제를 받고 이를 먹지 않고 숨겨두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사고로 몸이 불편해졌고 당시에는 쉽게 처방받을 수 있었던 옥시코돈을 처방받아 통증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정부 정책이 오남용을 먼저 걱정해서 처방을 제한하게 되고 나서는 제대로 약을 처방받을 수 없었고 제대로 된 처방을 받기 위해서는 더 높은 의료보험을 요구받았고 이를 충족시킬 수 없었던 아버지는 계속 통증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그 모습이 안타가웠던 아이는 스스로의 팔을 골절시켰던 것이다. 알약 몇개를 얻기 위해서 아버지의 고통을 옆에서 보면서 그 고통을 몇번이라도 줄이고 싶었던 것이다.

'약을 얻기 위해서 아이를 이용했다고 생각했던' 의사는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사과를 마땅히 받아야 할 아버지는 의사로 부터 제대로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직업적 신념에 따라서 아버지를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고 잘 했던 행동이라고 확신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의심할 수 있고 쉽게 말해 '아니면 말고...' 라고 생각했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알 수 없는 씁쓸한 생각을 들게 한다. 아무튼 드라마에서는 의사가 깊은 사과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시카고 메드 Chicago Med 시즌 4의 에피소드 21편 Forever Hold Your Peace 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의심하고 진실이 무엇인지 찾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자신의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잘못된 진실을 믿고 상대방을 의심했다면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충분히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진실을 알려고 하는 노력할 때보다 진실을 알고 나서 더 많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진실이 밝혀졌으면 그만이지라고 이야기할 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보면 의사가 밝혀낸 사실은 '아이는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라는 결과는 알아냈지만 그 사실들이 '자신의 약을 얻기 위해 아이를 이용한다'는 사실까지 말해주지 않지만 많은 편견과 시선으로 이미 그런 결론으로 도약할 때가 많다.

성급한 정의 A jumped justification 


에피소드 둘: 미국의 공립 병원인 뉴암스테르담 New Amsterdam 의 정신과 의사인 이기 프롬 Iggy Frome 은 평소와 같이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아이들과 함께 집단 상담 치료를 한다. 치료의 일환으로 아이들이 모여서 치료활동의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시의 복지담당 공무원은 환자인 아이 중 하나가 특별히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이를 이기 프롬 박사가 사적인 감정으로 아이를 다루어서 이에 생긴 트라우마가 아닌 것인지 의심하고 이를 조사하도록 요청하게 된다.


이기 프롬 박사의 치료 중 학대 사실을 의심하며 조사하는 과정에서 결국 피해 당사자인 아이에게도 질문을 하게 되지만 아이는 더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결국 이기 프롬 박사에게만 말하겠다고 말했다. 환자의 치료 과정 중 학대 혐의 alleged 를 받은 이기 프롬은 모든 진료를 중단해야 했고 심지어 피해자였던 아이의 요청이라고 해도 모든 치료 과정이 중단된 상태에서는 쉽게 아이의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지만 이기 프롬은 이 요청을 듣고 바로 달려가서 아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가족 구성원의 학대를 받아왔었다는 그리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과가 좋아서 모든 혐의가 없어 다행이지만 만약 아이의 거짓 증언이나 잘못된 정황이 나왔다면 이기 프롬은 바로 의사 면허를 박탈 당했을 것이다.

뉴암스테르담 New Amsterdam 시즌 1의 에피소드 21 This Is Not the End 에서는 모든 환자들을 사랑으로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 이기 프롬은 어떤 아동을 부적절한 행동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고 이를 조사받는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서 이기 프롬은 천사에 가까운 정신과 의사였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배운 것은 버리고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주려는 환자들에게는 따뜻한 모습의 의사이다.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 보면 말도 안되는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보면 화가 날 수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을 모르고 이기 프롬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시 공무원에게는 잘못된 내용이 의심된다면 이를 적절하게 조치하고 그 의심을 풀어내는 것이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 의심은 아주 순간적이다. [인생의 선택에 대해서 ─ 익숙하지 않은 미래란 모험]


가정은 의심을 초래할 수 있다. 가정은 대개 친근한 경험들에 근거하는 법이다. 따라서 그동안 유지해 온 과정을 적용할 때만이 가장 좋은 글을 쓰고, 가장 명확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경우엔 박자를 조절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 행복하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덧없이 사라지고 말 것들은 이런 신속함을 요구한다. 만일 행인이 갑작스럽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하자, 당신은 우선 놀랄 것이다. 잠시 후 그를 관찰할 준비가 되고 보니, 그는 이미 당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후이다. 만일 당신이 이제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생각해 보리라 하고 뒤 쫓아간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인가?

─ 피에르 썅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中 

그래서 우리의 의심은 심사숙고한 결과라기 보다는 순간적이고 때로는 충동적일 때가 많다. 충동적이란 뜻은 결국 충분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관찰할 결과라기 보다는 자신의 쌓아온 경험에 근거할 때가 많다. 자신이 전혀 경험하지 않은 일을 의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본인이 자주 '노래방'을 가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사람이고 자신의 딸과 함께 딸의 남자친구가 노래방 이야기를 한다면 그 노래방이 가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딸의 남자친구도 쉽게 의심하게 된다. 물론 그 의심의 근거는 밝혀진 사실들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이라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Doubt (2008)

이런 이유로 미국의 어떤 주 정부는 내부 비리 혹은 부정 행위를 단속하는 인원들을 계속해서 근속시키지 않도록 한다. 왜냐하면 계속 의심하고 잘못된 형태를 봤던 이들에게는 모든이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쉽게 결론을 내리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스스로 정의로운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악은 좀더 확신하고 정의롭다 


두가지 에피소드를 보면서 생각이 들었던 것은 수많은 정의로움으로 얼마나 많은 사회의 악인이 사라졌을까 보다는 얼마나 반항하지도 못한 억울한 의인들이 먼저 쉽게 사라졌을까 싶었다. 악인과 의인으로 구별하는 것도 어렵지만 악인에 가까워서 사회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잘 사용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잘 피해다니고 그 구조 안에서 잘 생존하지만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해 살려고 하는 이들은 종종 그 사회 안에서의 의심을 더 많이 받고 스스로 방어하기 어려워하는 성격 혹은 스스로 방어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않은 이들이 먼저 사라지게 만들 때가 많다. 뉴암스테르담의 이기 프롬 박사가 그런 모습의 인물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때로는 기존의 시스템과 규칙을 어기더라도 환자들의 마음을 먼저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이였고 그렇게 기존의 규칙을 어기는 모습들은 모두 의심을 받기 쉬웠다.

아버지의 고통을 보고 참지 못한 아이를 보며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한 부분이 있다. 아버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자신에게 다가올 고통마저도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누군가를 위해 더 큰 고통을 받으면서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하기에 그런 경우 정 반대로 생각해서 아이를 이용하는 아버지가 되고 만다. 그러나 아버지는 정부의 약물 남용 opioid crisis 정책에 의해서 제대로 된 진통제도 받지 못하고 참으며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런 정책이 원망스러워도 그것조차 제대로 어기지도 못하고 참는 시민이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CHICAGO | MED Season 4 Episode 21 -  Forever Hold Your Peace

"그동안 어떻게 견디어 오셨나요?"

아버지: "대부분 술이였죠." 

사회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악인보다는 의인들이 더 쉽게 지치고 먼저 쓰러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고민해 보아야 한다. 사회의 규칙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참는 사람들이 있지만 자신의 고통을 절대 참지 못하는 이들은 불법으로 약을 구하는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사회가 가지는 규칙이 아무리 정의를 외쳐서 악인들의 남용이나 잘못된 부분들을 막으려고 해도 개인의 고통으로 참아내야 하는 이들의 소리도 잘 들어야 한다. 만약 그런 개인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은 생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다면 정의를 강하게 외치고 누군가의 잘못을 확신하는 이들은 선에 가까울까 악에 가까울까 생각해 본다. 그 구별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도 선한 이들은 자신의 정의감으로 누군가 잘못된 진실로 상처받을 수 없는지 그리고 그 상처로 상대방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그것을 먼저 생각해서 좀 더 신중할 수 있고 좀 덜 확신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정의를 외치는 이들이 우리에게는 전혀 정의롭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말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세상의 화려한 곳에는 사람의 고통을 찾아가지 않고 타인의 실수마저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을 통해 자신을 화려하게 할 수 있다는 공명심에 빠진 경우를 보게 된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천사들은 세상의 화려한 곳이 아닌 세상의 고통이 가장 큰 곳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이다. [[내주변] 지상에 내려온 천사와 악마]

확인될 때까지 확신하지 않는 것 Not sure till confirmed 


인류의 역사는 수많은 사법살인의 역사이기도 하다. 권력에 의해서 사적으로 죽였던 많은 역사 뿐만 아니라 심지어 법과 제도가 잘 정비되었다 싶었던 시절에도 사코와 반제티 사건 [Struggle ...]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법살인들 인민혁명당 사건을 비롯해서 수많은 간첩조작 사건들은 결국 소수의 권력자들을 위해서 사법살인을 했던 비극적인 역사이다. 그리고 그 사건들 속에서는 사법부는 증거와 사실을 중심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정의'에 의해 휩싸인 확신에 의해서 많은 생명을 죽인 사건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것, 소위 팩트 체크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미디어와 인간의 편견들은 수많은 잘못된 정보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확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으로 모든 것을 다 평가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이 아니다. 오히려 확신에는 어떤 의로움도 어떤 사실도 없다고 믿는 것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어느 시대보다 증거로 인정이 되는지 아닌지에 따라서 재판의 결과가 달라지고 그만큼 증거, 증인 material evidence, witness 의 증거능력을 더 고려하게 되지만 이 증거능력 때문에 억울한 사람들이 생기고 죄지은 사람들은 풀려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악마는 항상 섬세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지 모른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
이 말은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섬세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곳에는 악마가 숨어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쉽게 확신해서 섬세한 것을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곳에는 항상 어떤 악마가 숨어있는지 알 수 없다.

이기 프롬 선생님 Dr. Iggy Frome


고민을 남기는 두 편의 드라마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뉴암스테르담 시즌 1 에피소드 22 Luna 에서 이기 프롬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대사를 통해서 마무리한다. 내용을 담을 수 없지만 드라마 속의 장면들과 겹치는 이 대사들 속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의 수많은 섬세한 장면들이 담겨 있다.

Dr. Iggy Frome

"우리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전까지는 직관적이지 않아 보인다. 뇌는 무엇인가 합리적이고 잘 설명되는 것으로 결론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때로는 세상은 너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친구의 밝은 웃음이나 막 태어난 아이가 당신의 손가락을 잡으려는 때 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또한 부서지기도 쉽다. 한순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공포와 마주할 때,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트라우마를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려고 한다, 심지어 전혀 말이 안되는 내용이라도. 그런데 왜 세상이 악으로 가득찼다고 말하기 어려워 하는가? 그건 악이란 당신의 두려움이 맞다는 뜻이다. 악이란 쉽게 포기할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악으로 가득차 보여도, 우리가 누군가에게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쁜 상황이 되면 그런 믿음은 더욱 더 힘들어 진다. 그때는 우리가 일어나기 위해 선택해야 하고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의 주변은 그리고 매순간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한다. 그래도 여전히 세상은 어두워 보이나? 당연하다. 그러나 항상 빛은 존재한다. 더 많은 빛들 말이다. 당신은 그저 눈을 뜨고 바라보면 된다."

─ 이기 프롬 박사

"It does seem counter-intuitive until you realize how the brain works. The brain is just it's just trying to make sense of things. Like, sometimes the world is so beautiful, you know? The laughter of a friend, a newborn baby gripping your finger. Life is also fragile. You blink, it's gone, just like that. Into the face of horror, our minds turn our trauma into a story to make sense of it, even if it doesn't make sense. So why would you mind tell you that the world was evil? Because evil means that your fear is right. Evil means that you can just give up.

But to believe that we all have the capacity to be heroes, no matter how evil the world may seem. That's harder because that means when the worst happens we can choose to stand up, we can choose to help. And that's what, all day, all around us, people do. So is the world dark? Sure. But there's light. There's so much lights. You just have to open your eyes and look."

─ Dr. Iggy Frome



조급한 확신과 성급한 정의의 섬세함

Tuesday, May 14, 2019

터넷을 통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동영상을 본다 뉴스를 읽는다 이제는 영화를 본다 와 같이 예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인간의 일들이 인터넷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인터넷은 결국 무엇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도록 정보와 자료를 주고 받는 구조이다. 영화라는 자료를 제공해주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서 받아서 사용자들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인터넷은 정보를 주고 받는 하나의 메시징 플랫폼 messaging platform 이다. 인터넷의 시작을 생각해도 지금처럼 무엇인가 복잡한 것을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글과 사진 정도를 쉽게 주고 받을 수 없을까 생각했던 연구소 CERN 의 결과물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인터넷은 '주고 받는' 메시징 서비스의 확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간단한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간단하게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부터 학술 논문을 출판해서 다른 연구자들과 정보를 주고 받는 것도 하나의 메시지 활동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들은 정보의 교환과 행동의 시행으로 구별할 수 있다. 또한 인간 활동의 대부분은 정보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친구끼리 주고 받는 문자 메시지를 생각하자. 각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주고 받고 이를 통해서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이를 통해 만난다. 만나서 무엇을 할지 미리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장소가 좋을지 찾아본다. 이 과정에도 인간은 인터넷에 적당한 장소를 검색하고 검색 결과를 통해서 장소를 결정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인간과 인간이 주고 받는 대화 conversation, 인간과 기계 (인터넷) 가 주고 받는 communication 이 존재한다. 모든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정보의 교환을 메시징 messaging 이라고 하고 이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messaging platform 이라고 부른다. 좀 더 확장하면 기계와 기계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교환도 메시징이다. 그리고 이미 인터넷이라는 괜찮은 플랫폼은 메시징을 하기 좋은 시스템이라 알고 있다. 정보의 획득은 인간에게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에 도움을 준다. 기계도 비슷하다. 기계가 어떤 정보를 획득하면 이를 계기로 해서 어떤 행동을 할지 미리 정해진 조건에 따라서 실행하게 된다. 이처럼 기계가 정보를 획득하여 이를 실행하도록 하는 정하는 것을 알고리즘이라 부른다. 결국 인간도 기계도 '정보의 교환' '행동의 실행' 으로 반복한다.

단순 메시징 서비스 

문자 메시지는 가장 기본적인 메시징 플랫폼이다. 간단한 정보 조금 확장해서 파일 정도는 붙여 보낼 수 있지만 인간이 원하는 형태로 바로 사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문자 메세지로 동영상을 받았을 때 동영상을 내려받아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앱이나 프로그램을 통해서 실행시켜 보아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단순한 메시징 서비스라고 해도 이제는 다양한 포맷의 자료를 서비스 안에서 in apps (in situ) 처리할 수 있는 서비스는 기본이 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메시징 서비스는 단연 '카카오톡'이다. 한국인 대부분, 한국인을 친구로 두고 있거나 한국인이 주요 고객인 외국인들에게는 필수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미 [나는 왜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가] 와 [나는 왜 여전히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가...] 를 통해서 카카오톡을 사용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전달했다. 보안에 대한 내용은 [ID 와 보안에 대한 단상 ─ 인터넷에서 무엇이 나를 확인해주나] 을 통해서 간략한 생각을 전달했다. 가장 단순한 메시징 플랫폼이 가지는 기능적인 측면에 좀 더 집중해서 풀어 나갈 생각이다.

a. 다중 기기 접속은 필요한가? 

여러개의 기기에서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은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한다는 뜻과 함께 겉 껍질보다는 메시징 기능이 중심이고 어떤 겉 껍질을 씌워도 내가 쓰던 기능을 거의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 안드로이드 앱에는 있는 기능이 윈도우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사용할 수 없다면 기능이 플랫폼에 종속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하는 서비스를 할 때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도록 설계하기 위해서는 웹에서 완벽하게 기능할 수 있는 서비스를 먼저 설계하고 웹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 정보를 앱에서 잘 받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설계가 필요하다.


다중 기기에서 접속한다 혹은 거의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은 이미 웹서비스 하나만으로도 어디에서도 웹브라우저만으로도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혀 알 수 없는 스마트폰 운영체제가 만들어져도 최소한 웹브라우저만 있다면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웹 표준을 지키는 서비스라면 모든 웹브라우저에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 크롬 (Google Chrome) ─ 작은 OS 를 꿈꾸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인터넷 표준을 따르는 서비스 그리고 웹브라우저에서도 잘 서비스되는 메시징 플랫폼이 중요하다. 웹표준을 잘 따르는 서비스라면 특별히 다중 기기를 제한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한 기기에서도 여러개의 웹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고 하나의 기기에서만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 무조건 특정 핸드폰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것은 불편할 뿐이다. 다중 기기를 허용해서 생기는 보안 문제를 언급할 수 있지만 제한된 기기만 접속허용할 때는 보안 상 더 취약할 수 있다. 만약 탈취된 아이디 / 암호를 통해서 접속하고 다른 기기의 접속을 모두 끊어버린다면 피해자는 제대로 대처할 수 없거나 심지어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는 줄도 모를 수 있다. 다중 기기 접속을 허용하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접속이나 의심되는 접속을 찾아내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다.


b. 다양함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단순한 대화를 생각하자. 개인 간의 친목 목적 혹은 정보 공유를 위해서 사용한다. 대화만 주고 받는 기능이지만 사용자들은 점점 원하는 기능이 늘어난다. 그리고 메시징 플랫폼에서 필수로 생각되는 기능은 의외로 이모티콘이다. 대면하지 않고 단순한 문자만을 주고 받을 때는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를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다. 목소리와 얼굴에는 어느정도 감정과 상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화난 감정'을 나타내기 위해서 화가 난 얼굴 혹은 폭발하는 인물의 이모티콘 혹은 스티커 등을 통해 좀 더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 이모티콘 기능 (스티커 기능을 포함하여) 은 일종의 오컴의 면도날 Occam's Razor 같은 원리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모티콘을 놔두고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인간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모티콘의 특징은 줄임말이나 특정 집단에서만 사용하는 은어 隱語 를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이모티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보내고 싶어 한다. 사진 음악 그리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많은 정보들을 보내고 싶어한다. 오래전에는 사진을 보내는 것은 단순히 파일 하나를 보내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 파일을 처리하는 것은 받은 사람의 몫이였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메시징 플랫폼은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좋은 서비스의 특징은 사용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잘 이끌어 내어야 한다. 만약 사진 데이터를 보내는데 사진을 바로 보여주지 않고 내려받으라고 한다면 분명 불편할 것이다. 즉, 사용자들이 주고 받는 데이터의 종류는 이미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정보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사진을 보냈다는 것을 사진을 보라는 것이고 음원 데이터를 보내주는 것은 음악을 들으라는 것이고 지도 정보를 보내주었다면 내가 여기에 있다 혹은 여기에 가면 좋겠다와 같은 다음 행동을 포함한다. 그래서 좋은 서비스는 교환하는 정보의 종류에 따라서 어떻게 처리하고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를 잘 설계한다.

단순한 링크 하나만 보내줄 때도 해당 링크에서 얻어낼 수 있는 parsing 정보들을 통해서 관련된 이미지와 간략한 요약을 보여준다. 링크를 들어가보면 될 것 같지만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거치는 모든 과정은 정보의 유용성을 먼저 평가하고 싶기 때문에 간단한 요약을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메시징 서비스가 링크가 악의적인 스크립트를 포함하고 있는지 미리 검사할 수 있기 때문에 보안의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결국 인간의 정보 교환에서 원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잘 판단하고 이를 잘 처리하도록 도움을 주는 서비스의 형태를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보내주는 사진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지만 사진에 포함된 문자를 인식해서 OCR 문자 정보의 형태로 추출해줄 수 있다. 누군가 처방전을 사진 찍어서 보내줄 때 그 처방전의 문자열을 추출하고 웹에서 검색할 수 있는 링크를 만들 수 있다. '처방전'이라는 대상을 인식하고 약이름과 약 성분을 바로 인터넷에서 찾아내서 보여줄 수 있지만 그런 기능 이전이라도 사진 안의 문자 정보들이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은 사진의 형태를 보고 인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냥 '나 오늘 찍은 셀피가 맘에 들어 보내줘' 라고 하는 사진과 '여기 처방전 좀 봐줘' 라는 사진은 쉽게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문자로 추출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다르고 중심 대상 (관심 대상) 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메시징 서비스이지만 결국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정보의 교환이 그 목적이라면 행동을 좀 더 수월하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작업과정 workflows 를 잘 설계해야 한다. 그런 작업과정을 잘 설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료의 형태 (파일형식) 뿐만 아니라 자료가 가지는 성격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격은 대화 상대자(들)이 이 자료를 통해서 어떤 행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처방전 사진을 보내 주었을 때 이미 받은 사람은 인터넷에서 혹은 약물정보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약을 검색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조금 더 확장한다면 사용자의 작업과정을 통해서 배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용자는 받은 사진 중에서 화면 갈무리 (스크린캡쳐) 했던 사진들은 주기적으로 지운다면 미리 지우기 전에 다음의 사진들을 지울 것인지 물어볼 수 있다.

c. 찾고 싶고 또 지우고 싶고 

누군가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할 때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은 메시징 서비스를 실행하고 특정 상대방의 대화창을 들어가서 계속 과거의 대화내용으로 스크롤 & 스크롤을 계속해서 찾아내고 보여준다. 물론 치매 예방 혹은 두뇌 발달을 위해 내가 보여주고 싶은 사진은 '언제', '누구에게', '왜' 와 같은 정보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데이터 측면에서는 비효율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들 중 잘못된 정보가 하나라도 있다면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인간에게 그런 메타데이터 metadata 를 같이 적어달라고 태그 tag 와 같은 형태를 제시하지만 잘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인간에게 아무리 '너가 나중에 찾기도 편하고 정리도 잘되어서 좋아'라고 해도 일단 귀찮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인간의 귀찮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진에서 관련된 정보들을 추출해서 별도의 자료와 관련된 별도의 데이터를 관리한다. 그 결과 사진을 저장하고 보여주는 서비스에서는 '개' 를 검색하면 개들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사진에 내가 있을 때는 나를 묶어서 같이 관리해주고 가끔 성형하기 전 자신과 성형한 후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처리하는 귀여움을 토하기도 한다고 한다. 개인적인 경우 '곰' 사진을 검색하니 내 사진이 나온 적도 있었다. (역시 완벽하지는 않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이미 데이터를 잘 구별하기 위해 많은 서비스들은 가능한 데이터의 데이터를 잘 정리하고 있다는 것과 어느새 자신의 많은 자료들은 메시징 서비스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이 필요한 자료를 찾아낸다. 그래서 예전에는 메시징 서비스로 받은 자료들은 별도로 저장을 해두어 저장한 곳에서 자료를 찾아냈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많은 자료들을 메시징 서비스 내부에 두고 있다. 그래서 메시징 서비스이지만 동시에 클라우드 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사용자들이 쉽게 검색할 수 있고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기능이 필요할 것이다. 주로 사용하는 서비스인 텔레그램의 경우 대화 상대방 이름을 누르거나 (안드로이드 앱) 웹에서는 메뉴에서 사진 (Photos) 를 선택하면 지금까지 나누었던 사진 목록을 보여준다. 대화 내용을 먼저 생각해서 언제쯤 받은 것인지 생각해서 스크롤 해서 올리지 않아도 사진이라는 대상만 따로 관리하기 때문에 빠르게 찾을 수 있다.

한참 ICQ 란 서비스가 유행했을 때 대화 내용을 백업하는 일은 필수였다. 그런데 모든 대화 내용을 저장해 두는 것과 지우는 것을 생각하면 몇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다. 대화 내용도 하나의 자료이다. 그리고 그 ① 자료가 어디에 저장되는지 ② 내가 삭제한 자료는 정말 사라진 것인지 ③ 자료의 소유권은 누구인가 를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도 몇십년 전에 저장했던 대화 내용들이 있지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결국 메시징 서비스가 등장하고 대화의 영역은 한번 이루어지고 소멸하는 영역이 아니라 기록되는 자료의 영역으로 이동해 왔다. 그리고 기록될 수 있는 인간 사이의 정보교환은 궁극적으로는 인간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예상하기 좋은 데이터가 되어 왔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사는 사용자들의 대화내용을 자료로 뽑아 낼 수 있다면 주말에는 어느 식당이 잘될 것인지도 예상할 수도 있고 날씨에 따라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부부사이에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아기 기저귀는 얼마나 주기적으로 구매하는지 등도 알게 된다. 개인적인 그리고 사적인 이유로 그런 데이터의 수집은 불법일 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의한 서비스 약관에 의해서 충분히 소비자들의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데이터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점점 사소한 대화 내용까지도 나누게 되면서 대화 내용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을 때가 많다. 그리고 아무리 사적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정보들도 있다. 아무 생각없이 나누는 대화 중에는 개인의 동선 혹은 어디 / 언제 와 같은 정보들을 공유하게 되고 만약 범죄에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화는 필요하지만 은밀한 대화가 필요할 때 기록되지 않는 대화 기능도 필요할 수 있다. 이제는 대화 내용은 텍스트 형태의 자료가 아니라 이미지의 형태일 때가 많다. 아무리 대화 내용을 지워도 간단하게 화면 갈무리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대화 내용을 통해서 누가 잘못했고 때로는 범죄 혐의에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노출되고 싶지 않은 개인 정보들도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만약 대화상대자의 계정이 해킹당해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공개된다고 할 때도 같은 생각을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대화 내용이 쉽게 공유될 때 정의의 심판으로 잘못한 이들이 밝혀지는 것이 더 많을지 평범한 사람들의 개인정보들이 노출되는 것이 더 많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대화 내용은 누구의 소유인지 더 정확히 대화 데이터는 누구의 소유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만약 서비스를 제공해준 기업도 같이 소유한다고 한다면 많은 이들의 대화 내용은 자신들이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자료에 불과하다. 대화 내용은 계정 주인의 것이라면 그 대화 내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전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고 받는 대화 내용들이 암호화 encrypted 된 상태라면 암호화에 사용되는 키 key 를 무효로 revoked 만들면 암호화된 내용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만약 서비스를 해주는 기업이 자신들도 데이터의 소유 혹은 관리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소유할 수 있다면 나의 대화내용이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개인 정보는 그 민감한 정도에 따라서 사람의 목숨까지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의료 정보이다. 선택적으로 데이터의 민감도를 서비스 업체에서 결정할 수 없다면 개인이 대화 자료를 어떻게 처리할지 권한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양한 메시징에 대해서 ... 

지금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대화에 대해서 생각했지만 필요에 의해서 기계와도 대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주기적으로 내가 원하는 주제의 책이 출판되었는지 내가 좋아하는 기자의 기사가 올라왔는지 내가 찾아가지 않아도 나에게 알람을 준다면 편리할 것이다. 서버를 운영하고 있는데 서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알람을 준다면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과 대화하지 않아도 메시징은 일종의 알람 alarms 혹은 알림 notification 으로 인간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기계가 알려주어 획득한 정보도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해준다. 만약 웹서버의 서비스가 중단되었다면 접속해서 다시 서비스를 재시작해주거나 문제를 찾아 해결해주기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접하는 많은 알람 알림들은 기계가 인간에게 전달하는 메시징이다. 메일이나 다양한 형태로 기계가 인간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지만 이왕 자주 사용하는 메시징 서비스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면 더욱 편리할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목적을 가지는 기계가 서비스에 상주하고 있으면서 뭔가를 알려주는 것이 바로 텔레그램의 봇 bot 이라 한다. 웹서비스에서 봇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한다.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면서 색인을 만들거나 웹사이트의 정보를 미리 정리해 놓거나 웹서비스가 잘 작동하는지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노크하는 기능 등 인간이 원하는 기능을 자동으로 해준다. 메시징 서비스 안에서도 봇은 동일하다. 예를 들어 자신이 원하는 중고 물품이 올라오면 메세지를 보내준다.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봇을 만들 수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인터넷 혹은 원하는 정보가 수집이 되면 해당 정보를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주면 된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주제의 신간 서적을 받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신간 서적을 알려주는 곳을 통해 봇이 계속 주기적으로 찾아보다가 원하는 주제가 나타나면 메시지를 보내준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정보를 제공하는 곳에서는 체계화된 구조를 가지는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 책이름 뿐만 아니라 책의 주제, 저자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어야 그 중에서 원하는 정보를 걸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정보를 봇이 주기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되어야 한다. 선택된 정보를 메시지의 형태로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원하는 기자의 기사만 받아 보고 싶을 때는 해당 기자가 있는 언론사에서 제공해주는 기사 정보 중에서 기사쓴이, 일자, 주제 등이 기사에 연결된 메타데이터가 되어야 한다. 인터넷에서 무작위로 검색해서 찾아 줄 수 있지만 이런 경우 내가 원하는 기자가 음주운전해서 무리를 일으킨 기사들도 찾아줄 것이다. 이렇게 정보를 좀 더 체계적인 구조로 만들어주는 데이터 구조 방식 특히 인터넷에서 교환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XML 이 있다. XML 은 어떤 정보가 있는지 자료 자체가 표시하는 형태이다. JSON JavaScript Object Notation 도 있다. 목적은 자료의 교환을 하면서도 자료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인간이 쉽게 해석할 수 있는 형태를 추구한다.


XML 이든 JSON 이든 결국 자료 자체의 교환보다 교환되는 자료가 내용을 가지고 있고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전달해서 이를 통해 인간이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효과적으로 획득하기를 바란다. 몇가지 봇을 통해서 기계가 인간에게 전달하는 정보, 자료의 특징을 살펴본다.

a. 웹서비스가 살아 있나 죽었나? 

개인 웹서버를 운영하면 가장 신경쓰이는 것이 내 웹서버가 제대로 살아있는지 서버는 살아있지만 연결된 인터넷이 문제가 생겨 서비스가 안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생각날 때마다 접속해서 확인할 수 있지만 그렇게 신경쓰면 인간을 위한 웹서버가 아니라 웹서버를 위한 인간이 된다. 간단하게 내 웹서버를 감시해 달라고 봇에서 부탁하고 봇이 주기적으로 들어가서 문제가 있다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주면 된다. 만약 서버 자체가 오프라인인지 웹서비스만 중단된 것인지 알고 싶다면 다른 포트 port 를 확인해서 서버가 살아있는지 웹서비스가 중단되었는지 알려주면 된다.

웹서비스처럼 간단하게 이상유무를 확인하는 봇도 있지만 서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관리자의 대처가 필요할 때 메시지를 보내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서버의 온도가 너무 높게 올라가거나 연결된 저장장치가 갑자기 이상이 생겨 연결이 끊기는 경우 혹은 인터넷에서 자료를 내려받는데 내려받기가 모두 완료되었을 때 메시지를 보내줄 수 있다. 자주 사용하는 토렌트 서비스를 예를 들어 본다.


리눅스 서버에서 자주 사용하는 토렌트 클라이언트인 트랜스미션 transmission 을 통해 자료를 받기 시작해서 언제 받는지 자주 들어가서 확인할 수 있지만 만약 자료를 모두 다 다운받으면 특정 스크립트를 실행하도록 할 수 있다. 해당 스크립트는 텔레그램의 봇에게 메시지를 보내준다. 그리고 전달받은 메시지를 봇은 사용자에게 '자료의 내려받기가 모두 완료되었다'라고 알려준다. 방법은 [개인 위키 문서]에서 참고할 수 있다.

b. 프로그래밍 할 줄 모른다면? 

봇은 인간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해주는 목적을 가지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할 때가 많다. 아니라면 많은 이들이 이미 구현해 놓은 것을 사용할 수 있지만 이때도 스크립트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게 편집할 수 있어야 할 때가 많다. 프로그래밍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구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찾고 해당 웹서비스가 텔레그램 Telegram, 푸쉬블릿 PushBullet, 슬랙 Slack 과 같은 메시지 서비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예를 들어 웹서버가 온라인인지 확인해주는 웹서비스를 찾아본다.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가입하고 자신의 웹서버를 등록하고 알림 notification 을 어떻게 할지 설정한다. 이때 알림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로 텔레그램과 같은 메시지 서비스를 설정하면 자신이 원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조금 더 복잡한 기능을 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필요했던 기능이 있었는데 긴 링크 주소를 짧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통해서 공유를 하고 싶었다. 컴퓨터에서는 간단하게 버튼으로 짧은 주소를 만들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공유도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에서는 쉽지 않았다. 짧은 주소를 만들어주는 앱도 있지만 불필요한 기능이 너무 많고 불편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짧은 주소를 만들기 위해서는 웹브라우저로 서비스에 들어가서 불편한 화면에서 만들어 만들어진 주소를 복사해야 했다. 만약 봇에 공유하고 싶은 긴 링크 주소를 보내면 봇이 짧은 주소로 만들어서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만약 텔레그램에서 받은 정보를 짧은 주소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에 보내고 만들어진 짧은 주소를 다시 텔레그램에 보내준다면 원하는 기능을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웹서비스 사이에서 데이터를 교환하고 서로 필요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라 부른다. 서로 자료를 교환할 수 있는 표준을 웹서비스에서 지원한다면 웹서비스는 기능 (짧은 주소를 만들어 주는, 메시지를 주고 받는) 을 제공하고 이에 필요한 데이터는 규격에 맞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기능과 자료를 구별해서 서로 교환해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상호운용성 interoperability 라 부른다. 이런 기능을 쉽게 해주는 서비스를 보통 자동화 서비스라고 한다. 자동화 서비스는 프로그래밍 기술없이도 원하는 서비스들 사이에서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서비스이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IFTTT] IF This Then This 가 있다. [자동화 작업을 통한 Lean Computing ─ 인간은 왜 기계를 필요로 하는가] IFTTT 는 직관적이고 간단하게 사용하기 좋지만 원하는 조건에 따른 기능을 만들기는 한계가 있다. 짧은 주소 봇을 만들기 위해 [Integromat] 이란 서비스를 소개한다. 조금은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잘 만들면 전문적인 프로그램보다 더 괜찮은 봇을 만들 수 있다.

조금 더 신경쓴다면 웹후크 webhook 기술을 살펴보면 좋다. 웹후크는 웹주소를 기반으로 해서 전달하는 표준이다. 일반적인 API 는 클라이언트에서 서버에 필요한 자료들을 요청하게 된다. 예를 들어 지도 데이터가 필요하다면 원하는 지역이 어디인지 서버에 요청하고 서버는 그 요청받은 데이터를 보내준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특정 이벤트가 발생한다면 해당 이벤트를 받을 수 있는 웹후크 주소를 받아서 자신의 메시징 플랫폼에 등록해 놓고 이벤트가 생기면 웹후크를 보내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역API 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은 복잡한 API 설정이 아니라도 자신이 원하는 이벤트가 발생하면 이에 대한 알람을 받을 수 있는 연결을 쉽게 할 수 있는데 웹후크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c. 기계와 대화하는 이유는? 

기계에게 정보를 주고 받는 과정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기계는 인간이 알아주기 바라고 행동을 해주기 바란다. 정보를 보내주었을 때 즉, 알림 혹은 알람이 왔다는 것은 인간이 무엇인가 해야하거나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두번째 특징은 인간의 목적은 기계에게는 메시지를 보내는 트리거 trigger 가 된다는 것이다. 웹서버가 오프라인인지 알고 싶다는 목적은 그대로 '만약 웹서버가 오프라인이라면...' 이란 조건이 되고 이 조건은 기계에게는 무엇인가 실행하게 한다.

기계와 인간의 대화지만 기계는 인간의 목적을 수행하는 대리인이 된다. 대리인이 된 기계는 주로 반복되는 작업, 특정 조건에 맞는 결과물을 수집, 번거로운 작업 과정들이 연속되는 과정이다. 결국 인간이 귀찮아 하는 내용들을 쉽게 불평없이 해줄 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하면 된다. 메시지 플랫폼 서비스로 다시 돌아오면 하나의 서비스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려고 하는 플랫폼은 필요한 기능을 추가하려 하지만 그만큼 플랫폼의 규모가 커지고 비효율적으로 만들어지기 쉽다. 왜냐하면 해당 기능을 모든 사용자들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시지 서비스 플랫폼에는 두가지 전략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주요한 수익이 되는 기능들을 메시지 서비스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택시를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를 메시지 서비스와 통합해서 제공할 수 있지만 택시를 예약하는 외부 서비스와 필요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통합해서 운영하는 경우에는 메시지 서비스와 통합된 형태로 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외부의 택시 예약 서비스와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다면 택시 잡는 서비스는 외부 서비스에서 해주는 것이다. 어떤 전략이 좋다고 말할 수 없다. 다른 예로 배달 앱을 생각해 본다. 배달 앱에서만 주문이 가능하게 한다면 다른 서비스와 데이터를 교환할 필요가 없다. 만약 배달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메시지 기능은 제공하지 않고 주문 배달 서비스 기능에 집중한다면 경쟁력이 줄어들지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처리하는 데이터를 다른 서비스와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개방적 형태를 가질지 사용자가 필요한 모든 기능을 다 구현하고 닫힌 형태를 가질지 선택해야 한다. 어떤 형태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개인적 생각으로 모든 서비스를 다 잘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회사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심지어 구글도 구글플러스는 포기해버렸다. 확장성을 가지고 개방한다면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구글홈이나 아마존알렉사 와 같은 음성인식이 가능한 스피커 기기와도 연동될 수 있는 기회가 그런 것이다.


효율적 메시징 서비스에 대해서 ... 

지금까지 경험해본 그리고 사용 중인 몇가지 메시징 서비스를 생각해보면 메시징의 기본적인 기능과 골격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목적을 떠나 어떤 환경에서 더 효율적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a. 다중 기기에서의 효율성 

앞서 다중 기기에서 한 계정이 동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생각하는 보안 및 정책에 따라서 정할 수 이지만 만약 일부 기기로 제한이 된다면 같은 사용자인데도 기기마다 다른 계정을 만들어서 사용해야 하는 불편이 있다. 다중 기기를 사용하다 보면 생기는 불편함 중 하나가 다른 기기로 수신된 문자 메시지 혹은 알람 등을 지금 사용하는 기기 혹은 컴퓨터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스마트폰 기기들은 많은 알림이 뜨는데 이 중 나에게 급하거나 바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심지어 기기 A 는 집에 놓고 왔는데 회사에는 기기 B 뿐일 때 기기 A 를 통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런 물리적인 장벽을 해결해주는 서비스 중 하나가 [푸쉬블릿PushBullet 이란 서비스가 있다. 푸쉬블릿을 여러 기기에 설치를 하고 컴퓨터 웹브라우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에도 플러그인 형태로 설치를 해두면 각 기기들마다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원격으로 다른 기기에서도 문자를 보낼 수 있다. 기기에서 울리는 알림 중에도 원하는 내용은 다른 기기에서 받아볼 수 있다. 간단하게 기기들은 모두 가방이나 다른 곳에 두고도 알림 내용을 확인하고 문자 메시지는 송수신이 가능하다. 물론 부재중 전화 내용도 볼 수 있다.


다중 기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기기 사이에서 정보를 보내야 할 때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물론 자신의 메시징 서비스 계정에 자료/정보를 보내고 (텔레그램의 Saved Messages) 다른 기기에서 로그인해서 확인하 수 있지만 기기 개별로 혹은 단체로 보내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b. 그룹 작업에서의 효율성 

이제는 많은 업무에서도 메시징 서비스는 필수가 되었다. 오래전에는 이러한 메시징 서비스만 특화시켜 기업 내에서의 하나의 별도 서비스인 경우가 많았다. 초기 ERP (전사적자원관리) 시스템에서도 이러한 부서간 메세징 서비스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였다. 독특하고 차별화된 메시징 서비스들이 많이 나왔지만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아 사라진 서비스들도 많고 지역에 따라 사용 편차가 심한 서비스들도 많다. 개인적 메시징 서비스와 함께 관심을 가지게 되는 메시징 서비스가 공동작업을 위한 메시징 서비스이다. 많은 서비스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서비스는 [슬랙Slack 이다. 우선 가볍다. 텔레그램과 같이 다중 기기에서 접속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웹서비스로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이전의 공동 작업, 특히 공동 개발의 경우에는 프로그래밍 개발환경과 메시징 환경이 통합되어 복잡한 경우가 많은데 슬랙은 업무를 위한 정보 교환 그리고 이에 필요한 간략한 공유가 기본이다. 채널을 통해서 프로젝트 혹은 주제에 맞는 정보들을 분류하고 참여 사용자들 뿐만 아니라 외부 정보들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참여하는 프로젝트에서 보내주는 소식 내용을 채널에서 바로 업데이트되어 보여주고 사용자들은 이에 대해 멘트를 올리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원래 게임에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메시징 서비스에서 출발한 슬랙은 작업 환경에서 교환하는 정보들이 꼭 작업에 필요한 내용들로만 구성될 필요가 없다는 점과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작업을 위한 협업 공간이 같을 필요가 없다는 점 다만 그 두 공간이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슬랙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협업 작업을 이루어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기능을 끌어와서 통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서비스라는 점이다.

c. 개인적 대화에서의 보안성 

만약 본인이 전문 청부 살인업자이고 죽이려는 대상이 정해졌다면 무엇부터 할 것인지 생각하자. 우선 대상이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하는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얻어내고 싶어한다. 그런 정보들은 개인의 동선에 가장 큰 영향 혹은 확실한 동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개인의 약점을 찾으려 할 것이다. 가족과 같은 부분일 것이다. 비슷한 경우가 정부에서 어떤 사람을 사찰하거나 감시 대상이 될 때 알아내려고 하는 개인정보들은 어디에서 가장 쉽게 얻어낼 수 있을까? 이전에는 어떤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제는 개인 휴대기기 안의 내용을 찾아내면 많은 양질의 정보들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정보에 민감해 별도로 설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움직임이나 활동 시간도 알아 낼 수 있고 인터넷 검색기록을 통해서 요즘 자녀의 대학 등록금 걱정이 많다는 것이나 낚시를 좋아해 주말에 어디를 갈지 검색해본 거도 알아낼 수 있다.

친한 친구와의 대화는 그 누구보다 진심일 때가 많고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들은 인터넷 검색 기록으로 알아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의 가장 솔찍한 친구는 '인터넷 검색창'이 되었다.

종종 해킹으로 개인정보 특히 사용하는 아이디와 패스워드 조합이 유출되고 나면 해당 아이디로 메신지 서비스에 부정 접속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로그인이 되면 가까운 지인들에게 말을 걸어 입금을 부탁하는 것이다. 가까운 지인인지 친인척 관계인지는 대화내용을 보거나 대화명만 보아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특히 '사랑하는 자기'라고 써있다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을 누구나 직감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떠나서도 내가 나눈 대화 내용과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지 그리고 누가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는 메시징 서비스의 정책이고 철학이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가 만들어 내는 대화 중에서 간직할 가치가 있는 아주 중요한 대화인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소중한 사람과 나눈 대화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대화 자체에 큰 의미를 두어 지우는 것을 감정적으로 대하는 이들도 많지만 개인정보는 남겨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는 여전히 말한다. 지금까지 남겨진 대화 내용때문에 유명인들의 비행적 불법적 언행들이 들어나게 되었고 그런 '순'기능도 생각해서 대화 내용을 저장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불법적인 내용들이 들어나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만을 생각하지 그 대화 내용 속 피해자들을 생각해보면 문제는 다르다. 피해자들은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는 인터넷의 수많은 익명에 의해서 다시 피해를 보고 있고 어쩌면 그 대화 내용에 존재하는 실체하는 데이터들이 다시 인터넷을 떠돌게 될 것이다. 결국 유명인의 사법적 처벌을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 은밀하게 수많은 피해자들은 계속해서 피해자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그래도 지금까지 존재하는 많은 메시징 서비스 중에 개인적으로 텔레그램을 추천할 수 밖에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모든 대화방이 사라지는 기능부터 개인간의 대화 내용을 삭제하고 상대방도 동시에 모두 삭제하게 할 수 있고 (일부 서비스는 일정 시간이 지난 것은 지울 수 없도록 정책을 세워놓고 있다. 이 점을 잘 생각해보면 데이터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소록을 통해서 친구를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경우에 대화가 가능하게 되어 있고 심지어 대화 내용을 화면 갈무리 (스크린캡처)도 허용하지 않도록 한다. 최근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유명인들이 텔레그램의 이런 기능들을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빠르게 서비스 플랫폼을 바꾸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좋은 메시징 서비스란 존재할까? 

기능적인 측면에 대해서 생각하다 결국 자연스럽게 보안 문제 그리고 그 보안의 다른 단면과 같은 '인간의 탐욕적 창의력'을 생각하게 된다. 지극히 안부를 묻는 개인적인 대화가 거의 전부이고 주로 자동화 봇이나 서버 관리 등을 위해서 주로 메시징 서비스를 사용하는 입장에서 단체대화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많은 놀라운 사건들은 정말 세상에는 창의를 뛰어넘어 창조적 인간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생들이 집단 따돌림을 위해서 계속해서 단체 대화방에 초대를 하고 대화방안에서 (언어적) 폭력을 가하는 경우에서 볼 수 있지만 메시징 서비스가 가지는 기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상대방을 어떻게 가장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대화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단체대화방의 은밀함을 이용해서 자신의 성적 경험을 공유하거나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사람의 나체 사진을 올리고 공유하고 대화방 사람들끼리 감상(?) 하고 점수를 매기기도 한다는 사건을 접하기도 했고 이런 은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끼리 은어를 통해서 행동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사람이 일하는 곳이 어딘지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그 곳에 가서 인증 사진을 찍는 것을 일종의 게임 용어인 퀘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별히 그들만 아는 용어를 통해서 수행되고 때로는 닫힌 게시판뿐만 아니라 공개된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올리고 그들만이 아는 은어를 태그로 널리 홍보하는 과감성까지도 보일 때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개인정보가 잘 보호되고 자신의 대화내용이 잘 보호되는 메시징 서비스일수록 이런 은밀함이 더욱 잘 유지가 될 수 있고 그럴수록 비인격적 행동들은 점점 더 유행하게 될 것이라 우려하고 그런 이유로 대화내용이 보호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공개가 되고 감시받아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질문을 하지 못해 생긴다. 

이런 주장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나치 수용소에 갇힌 유명 과학자가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행히 살아날 수 있었다. 기자들이 몰려와 과학자에게 질문을 했다.

"탈출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었나요?" 

한 기자의 질문에 따라 질문은 과학자가 그 안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탈출하기 위해 저항을 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 쏟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과학자는 기자들을 향해 질문을 했다.

"비인간적인 행동을 한 나치에 대해서는 왜 묻지 않으시죠?" 

과학자의 노력과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과학자 (혹은 유명인) 에게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나치 수용소의 근본 원인은 비인간적 나치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종종 아니 거의 대부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습관에 놓인 사람들은 언론의 잘못된 질문을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인들이 단체대화방을 통해서 비인간적 행동들을 공유했다고 해서 메시징 서비스가 감시하지 못하고 그것을 빨리 밝혀내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이상할 뿐만 아니라 그런 감시와 통제를 위해 만들어진 메시징 서비스가 얼마나 더 많은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고 심지어 그 감시와 통제를 하는 기업 혹은 권력이 어떻게 사람들을 억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은밀한 닫힌 대화방에서 여성 혹은 대상에 대한 협오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곳은 메시징 서비스를 닫는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은어들을 연구하는(?) 어떤 언어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은어들은 이전에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던 언어들이나 예전에 게시판 형태로 운영되던 곳에서 만들어진 언어들이 많다는 것이다. 줄임말을 사용하거나 혹은 일상적인 언어지만 뜻이 다른 형태로 교환된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소환'이란 단어도 특정 여성을 파티에 오게 한다 혹은 특수 성폭행을 위한 범죄 모의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메시징 서비스가 사라지면 인간의 그런 모습들도 같이 사라진다면 당연히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누구나 편리한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서비스 자체도 아니고 보안이 뛰어난 서비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런 은밀함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은밀함은 진정한 인격을 보여주나? 

어디나 정답은 없다. 아마도 유명인들의 단체대화방에 충격을 받은 다른 유명인들 혹은 은밀함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좀 더 보안성이 좋은 다른 서비스를 찾아야 겠다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보안성 다른 말로 들키지 말아야 하는 행동과 말들을 들어나지 않도록 하는 보안성이 아닌 전혀 생각하지 못한 개인 피해자들에게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대화방의 특징은 바로 그들의 행동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이를 즐기고 피해자들은 그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즉 그들의 비인간적인 행동들도 있지만 그 안에는 피해자들이 더 많다는 점이다.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 중 하나는 카페를 운영하는 어떤 분은 남자 혼자 오시거나 남자들 여러명이 와서는 갑자기 커피를 만드는 공간을 직접 찍거나 뒤돌아서 배경으로 나오게 찍는 경우를 종종 볼 때가 있다고 하셨다. 행동이 너무 어색하고 마치 그렇게 사진 찍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것은 그렇게 어느 카페에 가면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공유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외모에 대한 평가부터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뒷말까지도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였다. 유명인들의 단체대화방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만 유명인이 아니라도 우리 주변에 누가 그런 은밀함을 즐기는 사람인지 알 수 없고 심지어 좋은 사람으로 보여도 그 이면에서는 어떤 은밀함이 숨어있는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의심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유리없는 동물원 

처음 시작은 메시징 서비스 플랫폼의 기능적인 부분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사실은 메시징 플랫폼이 가지는 확장성 그리고 그 확장성이 단순히 웹서비스에 제한되지 않고 어쩌면 사회적 현상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발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말해 메시징 서비스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왕따 피해자, 성범죄 피해자를 비롯해 은밀함에 감추어져 자신도 모르게 공유되어 버리는 자신의 개인정보로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메시징 서비스가 보안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더욱 은밀진다고 설명하기 어렵다.

아래 왼쪽은 2019년 수상한 한 사진이다.


베트남 여인이 두명의 아이를 데리고 있는 사진이다. 그리고 오른쪽은 이 사진을 찍었을 때의 모습이라고 한다. [관련 기사] 사진을 담아내기 위해서 기자회견장처럼 꾸며진 staged 상태에서 촬영한 것이였다. 이 사진을 보고 유리없는 동물원이 생각났다. 사진을 찍기 위해 여성과 아이들은 그저 피사체인가 싶은 느낌이다. 여성의 아픔을 전달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마음이 진심이였다고 해도 기자회견하듯 몰려들어 찍어내는 다수의 모습에서는 그 말조차도 그리 큰 설득력을 가지지 못한다.


은밀한 단체대화방이나 닫힌 커뮤니티 혹은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인간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그 욕망의 대상으로 어떤 타인을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동물이 되어버린지 모른다. 그래서 누군가 일하는 곳에 가서 동물원에서 바라보듯 피해자는 모르게 은밀하게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고 자신들만의 은어로 입장료를 내고 후기를 공유하며 서로의 그 비인격적인 유대를 결속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유리없는 인간동물원으로 세상을 만든다.

정답은 어렵고 힘들지만 ...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인간들에게 집중해서 원인을 찾아야 할 문제와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갈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로 구별해서 원인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민에 대하여 ─ 구조적 범죄에 대한 생각] 최근에 감상한 시카고 경찰 Chicago PD 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필요한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약품 배달 차량을 특수절도하는 내용이 나온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어느 때와는 다르게 경찰들도 뭔가 깔끔한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보험이 불가능해 약을 구할 수 없는데 그럼 죽어야 하는 것인지 누구의 책임인지 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인간의 비인격적인 은밀함이 메시징 플랫폼에 의해서 좀 더 강화가 되었다면 반대로 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해도 줄일 수 있는 플랫폼 차원에서의 방법은 없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체대화방의 은밀함이 세상에 들어나는 이유들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개인 사용자의 부주의함에 단체 전체가 위기(?)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중 한명이였던 누군가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이를 고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개인이 누구인지 특정해 내기도 쉽고 그런 경우 개인적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양한 사용자가 모이는 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좋은 시스템은 바로 신고 report 이다. 물론 악의적인 의도로 신고를 남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스타그램의 경우 특정 태그를 통해서 성매매 혹은 불법적인 내용들을 광고하는 경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대화 중이라도 누군가 불법적인 내용이 존재한다면 이를 저장하고 화면 갈무리를 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 법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증거의 완결성을 위해서 메시징 플랫폼에서 신고가 들어오는 순간의 자료와 자료의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간단한 방법으로 올라오는 자료들을 검열하거나 대화내용을 통해서 불법성을 바로 찾아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 정보 뿐만 아니라 불법성을 찾아내기 위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검열을 하는 것은 미국의 9.11 이후 애국자법 Patriot Act 과 같은 부작용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해자를 더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인권의 감수성을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메시징 서비스가 어떤 방법을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서비스 플랫폼이 제시해주지 못하는 인간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불편한 관심 An Inconvenient Concern' 을 가질 필요도 느껴진다. 뜻하지 않은 인물에 의해서 은어들이 등장해서 세상에 알려질 때가 있다. 대한민국 제일야당 원내대표는 대통령 지지여성을 비하하는 은어를 우렁차게 말해서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기도 했고 한 연예인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뜻하는 은어를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세상 사람들이 그런 은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수많은 은어들이 존재하고 보통 관심이 없다면 알지 못하고 살아가지만 많이 불편하지만 그런 은어들이 무엇이다를 알게 되면 고구마 줄기처럼 그런 언어들을 쓰는 이들을 현실에서도 의외로 찾아내게 된다. 좀더 체계적으로 그런 은어들을 직접 알지 않아도 기계들에게 학습시키고 표현들을 찾아내는 것도 위에서 설명한 기계 봇의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조금은 성급한 결론이지만 ... 

여전히 한계만을 가지고 결론을 내야 할 때는 문제는 복잡하거나 인간이 존재하면 항상 있던 문제였던 거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좋은 심지어 '도덕적으로 깨끗한' 메시징 플랫폼이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비인격적 인간들은 유리없는 동물원을 만드는데 도구로 활용할 것이다.

유명 연예인의 단체대화방 내용들이 세상에 들어나기 전에는 그들이 피해자들을 유리없는 동물원에서 지켜보았다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는 오히려 그들이 이제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동물원 안에 있는 이들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 불편하지만 우리는 그런 은밀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그 과정들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앞서 카페에 와서 어색하게 커피 만드는 공간을 촬영하는 이들이 있다거나 의심스러운 행동이 느껴진다면 당시의 CCTV 화면을 확보해 놓는 방법도 좋은 대안이다. 다른 사람 인물을 올리는 행동이나 개인정보의 노출이 우려되는 자료들은 신고하는 것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는 피해를 막는 예방이기도 하다.


만약 인터넷 공간 상에서 이런 은밀한 자료들의 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가끔 실수같이 자료들이 공개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자신을 특정하거나 개인정보가 나온 정보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찾아서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개인 사용자들이 사용하기에 [구글 알림]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의 개인정보 등이 인터넷에 나타나지 않는지도 확인하면 좋을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불법적인 내용에 대한 신고가 들어왔을 때 신고 내용과 자료의 완결성을 플랫폼에서 입증된다면 증거로 쉽게 채택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는 인터넷 서비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만 제공해주고 이익을 창출하는 방법을 생각하였지만 웹 서비스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과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반대로 웹 서비스를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법적 책임이나 경제적 배상이 아니라 인간의 비인격적인 행동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부분까지 뜯어 고쳐야 한다고 말은 하고 싶지만 인간 방종에 의한 피해자들이 최소화하기 위해 법과 제도가 존재하고 그와 동시에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도 하나의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법과 제도와 같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는 서비스를 주도하는 기업들이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공익을 놓고 무엇을 선택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바라건데 유럽을 중심으로 인터넷 서비스 뿐만 아니라 데이터 그리고 그 관리에 대한 책임을 의무화해야 하고 그 주체가 누구여야 한다는 것을 선언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는 플랫폼이 무엇인지 소위 '따뜻한 마음을 가진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메시징 플랫폼을 생각하다 ─ 서비스의 사회적 확장에 대해서

Monday, May 6, 2019

운다라 말할 때 교육기관이나 지식이 많은 학자를 떠올리 쉽지만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은 사실 자연이다. 그리고 자연의 섭리 providence 를 잘 따르는 대상은 오히려 인위적인 그래서 인간의 욕심이 반영되지 않는 진리를 선물해줄 때가 많다. 언제부터인가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동네 꽃집에서 만난 꽃집 아저씨(라지만 할아버지에 가까운) 를 만나고 꽃이 주는 다양한 매력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은 꽃을 가볍게 바라본다. 아름답다는 가장 많은 수식어를 붙이지만 그 아름다움만큼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가장 기분좋은 선물이라고 받지만 가장 쉽게 버려지는 선물이 꽃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찬란한 꽃이 개화한 상태는 즐기지만 개화하지 않은 꽃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시들어가는 꽃들 속에도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 잘 보려 하지 않는다. 가장 미물처럼 보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가장 따르며 살아가려는 존재이기에 그들은 항상 순수하고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도 그 짧은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가끔 꽃을 보면 자연의 섭리 그리고 만약 종교를 가졌다면 그 자연을 만든 창조주에게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원하는 소위 초자연적인 '기적'은 이미 꽃이라는 생명안에 살아 숨쉰다는 것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다만 우리는 고개를 돌릴 뿐이다. 

용담초 Gentiana scabra , 한국자생꽃 중 하나

부분의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도 눈을 감아버린다.

─ 크리스티앙 보뱅, 인간 즐거움 [원문

국화 Chrysanthemum


국화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진 꽃이다. 한송이 꽃보다는 여러송이 작은 꽃들이 뭉쳐 있을 때 그 군집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꽃이다. 꽃집에서 국화를 고르면 국화는 정서에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구매욕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무엇에 좋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꽃은 무엇인가 나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떠돌 수 없는 꽃들이 나로 인해 세상을 구경하고 나는 꽃을 보아 기분이 좋아지고 기르는 과정 속에서 내가 주는 관심이 어떻게 생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대부분 화분을 공기정화를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잘 모르게 된다. 그리고 혹시나 어떤 식물은 인간에게 유해하다는 소문이라도 난다면 그런 식물은 보기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국화의 중앙 부위 관상화 부분과 주변부 설상화 색 조합이 다양하다

인간의 필요 욕구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꽃이지만 많은 이들이 별 거부감없이 좋아하는 꽃이 아마도 국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국화 한다발 혹은 한움쿰 데려 오면 국화는 별 문제없이 잘 자란다. 잘 시들지도 않고 일부 시들어도 대부분이 활짝 피어 있으면 보기도 좋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많은 국화들은 꽃들은 생생해도 아래 줄기부터 시들어 말라버리기 시작한다. 한 줄기에서 자라 나온 꽃들은 생생하게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더 활짝 피어 화사로운 향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데 그 아래 줄기에 붙은 잎들은 정말 시커멓게 말라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 마른 잎들만 잘 뜯어내면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계속 자란다. 신기하다. 한 줄기에서 나온 부분인데 꽃은 생생하게 살아있어도 잎들은 말라버린다. 같은 줄기를 가지고 있고 잎들이 말랐다면 줄기에서 물을 끌어올리지 못했나 싶지만 꽃은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것은 어쩌면 꽃을 살리기 위해서 잎들은 스스로 말라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산뜻한 연두색과 노란색의 조합

생명시스템 안에는 아포토시스 apoptosis 세포사멸이라는 과정이 있다. 한 세포가 계속해서 증식하지 않고 새로운 세포들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서 스스로 사멸하는 것이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세포 분열을 일정 회수를 하면 세포가 더이상 분열할 수 없는 현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반대로 자신만 살겠다고 계속 분열하게 되면 세포가 원래 해야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체 자리만 차지하는 세포들이 된다. 그런 세포를 우리는 암세포라고 부른다. [세포의 죽음 - 죽어야 산다] 식물에도 암세포가 있을까 궁금해졌다. 세포생명학 cell biology 은 식물도 암세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세포의 무한 증식으로 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주로 감염에 의한 작용이 많고 그렇게 암세포를 가진 식물들은 확산되는 전파가 약하기 때문에 거의 없다고 해도 된다. 세포사멸의 과정과 비교하기는 다른 규모이지만 꽃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사멸하는 잎들을 보면서 때로는 국화 꽃들이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국화 잎들이 스스로 말라 죽어 만든 희생의 결과일지 모른다는 것을 바라본다면 국화꽃의 오랜 아름다움이 한없이 기쁘기도 어렵다.


하나의 아름다움에 취해 그 아름다움이 만든 많은 조건들과 희생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 사회에서도 어떤 아름다움을 본다면 그 아름다움 안에는 어떤 희생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 같다.

설유화 Spiraea thunbergii


설유화를 처음 만난 것은 결혼식장에서 누군가의 부케에 꼽혀 있던 작은 가지였다. 화려한 꽃들 속에서 작은 가지와 작은 잎들로 제대로 꽃 하나 없는 상태였다. 부케를 해체하고 각자 맘에 드는 화려한 꽃들을 한송이 두송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나도 화려한 꽃 몇송이 가져가고 싶었지만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설유화란 이름을 가진 가지였다.

설유화 가지

뿌리도 없는 가지가 잘 자랄수 있을까 걱정하지만 그래도 희망하며 물에 넣어 주었다. 몇일이 지나 설유화에 있던 잎들은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고 녹색의 잎들은 몇개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버려야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몇개 남은 잎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물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기대하지 못한 기적들은 그때부터였다. 새로운 잎들이 가지 사이사이에서 자라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녹색의 줄기가 옆으로 자라나고 있던 것이다. 더이상 희망이 없을 것만 같았고 그리고 한번 모든 잎들이 떨어져 앙상한 그 가지에서 내가 준 것은 물밖에 없는데 가지를 만들고 잎을 만들어 내고 있던 것이다. 새로 자라는 잎들과 가지들도 신기했지만 작은 가지 끝에는 눈송이같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거의 모든 잎들이 떨어지고 작은 잎들이 나온다

그렇게 오랜동안 잎들은 녹색에서 노랗게 변해 떨어지고 또 다른 곳에서 자라나고 작은 꽃들도 몇번 피어났지만 곧 검게 시들기를 반복했다. 우연히 만나 처음의 모든 실망감 속에서도 심지어 잘 자라주기 바라는 마음조차 없었던 설유화 가지에서 피어나는 녹색의 가지와 힌 꽃은 생명이란 누군가의 관심을 벗어나 자라려고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상처주고 그렇게 그 상처의 고통은 통증이 아니라도 살아가야 하는 의욕을 사라지게 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희망하지 않는다고 해도 생명은 자라나고 살아간다. 쉽게 포기하고 싶어지는 어느 날 이렇게 큰 생명체인 나는 얼마나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고 있었는지 오히려 부끄러워질 뿐이다.

새로운 잎들이 자라고 가지가 옆으로 생긴 설유화

보면서 매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에서 김혜자 선생님의 대사는 이러했다.

"내 삶은 때로는 불행했고 때로는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 것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드라마 「눈이 부시게」 마지막회 중에서 

하루를 사는 것이 가장 힘들다. 하나의 작은 생명들 모두 "살 가치가 있습니다" 라는 말이 주는 위로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홀로 피어나는 작은 설유화 꽃처럼 한 순간에 위로를 주었다. 그리고 그 설유화를 향해 나도 모르게 말했다. "대견하다. 고맙다."

두번째 잎들이 떨어지고 작은 흰꽃이 피어났다

삶은 아주 별것 아닌 위로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반대로 별것 아닌 상처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싶어질 때가 있지만 그래도 살아있어야 작은 꽃이라도 피워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오히려 다시 살아가며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게 된다.

스토크 Hoary stock


스토크를 만난 적이 있는 이들은 공감각으로 스토크 꽃향기를 떠올리게 된다. 모양만 보아도 그 향기가 기억될만큼 꽃향기로 풍성한 꽃이다. 스토크는 꽃도 풍성하게 잘 나오기 때문에 굵은 줄기에서 나온 한 줄기만으로도 가득하게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향기로운 스토크는 물에 넣어 두면 물이 금방 혼탁해지고 마치 줄기가 녹아버린다. 녹는다는 표현을 가장 정확할 정도로 물에 담긴 줄기는 데친 아스파라거스처럼 흐늘해지고 무엇보다 녹색으로 짙어지는 물에서는 스토크가 가지는 꽃향기와 비교되는 묘한 냄새가 난다. 마치 정원을 모두 밀어버리고 거기에서 나온 식물들을 우물에 넣은지 일주일은 된 것 같은 냄새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스토크의 향기에 반했다가 조금만 지나면 나는 악취때문에 꽃이 아직 시들지도 않은 상태에서 버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장 색이 짙은 느낌의 핑크 스토크

"나는 식물을 못길러요." 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설유화의 꽃처럼 아무리 작은 생명이라도 살아가려는 존재이고 작은 관심으로도 그 생명의 시간은 차이가 난다. 스토크는 물에 넣고 이틀이면 빠르게 줄기가 녹는다. 그리고 그렇게 녹은 부위에서는 제대로 물을 끌어올리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스토크같은 줄기를 가진 식물들은 처음에는 줄기가 조금만 잠기게 놓고 잠긴 부위가 녹아들때는 다시 꺼내 잘라주어 다시 단단한 줄기로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스토크 같이 줄기가 녹는 꽃들인 라넌큘러스나 거베라는 꽃으로 만나서 그렇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꽃을 보면 물에 담겨 있는 존재가 아니다. 반면 그냥 보아도 튼튼한 방수 체질같은 국화나 장미를 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장미는 물에 많이 잠겨도 잘 자라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래서 원래 어떤 존재인지 알고 그에 맞게 맞춰주지 않고 똑같은 방법으로 대할 때 누구는 쉽게 사라지고 누구는 잘 자랄 수 있게 된다. 꽃집에 가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가요." 혹은 "관리 잘 안해줘도 되어요."라고 하지만 각자 가진 특징을 무시하고 사람들이 가장 귀찮은 상태에서 손쉽게 죽지 않는 강한 꽃들을 선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사람들의 강한 선호 preference 는 다양한 대상의 특징을 생각하고 싶지않다는 폭력일 때가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과 만나 서로의 특징을 알려고 하고 그 특징에 따라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야지 모든 꽃들을 장미다루듯 스토크 줄기를 물에 깊게 담궈두고는 냄새난다고 스토크를 향해 싫어한다면 그것이 스토크의 잘못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보라색 스토크

교육도 비슷하다. 획일화 된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창의력이나 학습능력의 저하와 같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그 획일화에 맞지 않는 특징을 가진 이들은 항상 소외되고 심지어는 제거되어도 그들의 특징때문이라고 말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꽃이 아무리 다양해도 일부 꽃들만 집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들은 꽃 그대로의 존재로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목적을 위해 꽃이 필요한 것 뿐이다. 간단하게 우리가 지구에 사는 꽃이고 지구를 가꾸는 어떤 정원사가 있다고 했을 때 우리들이 정원사의 마음에 드는 특징을 가지고 나올 가능성보다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저 필요없는 잡초가 될 뿐이다. 스토크의 특징을 잘 알고 잘 길러주면 오랫동안 기분좋은 꽃이다. 피어날때의 향기도 오래가고 꽃이 시들어도 크게 색이 변하지 않고 마르기 시작할 때 꽃잎만 잘라주어 말려주어도 스토크의 향기가 오랫동안 남아 있어 모아두어 옷장에 넣어두면 꽃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말린 꽃을 글리세린과 알콜을 적당하게 섞어서 스토크 마른 꽃들을 넣어두면 화장실에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맨드라미 Cockscomb & 꿩의비름 Hylotelephium erythrostictum


맨드라미가 불꽃같은 모습으로 보였을 때 한 줄기를 데려온 적이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엇인가 열정이 느껴지는 불꽃같은 느낌이라 좋아하지만 꽃이라는 느낌보다는 갈대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큰 한줄기에서 작은 줄기를 잘라서 여러 개의 꽃병에 나누어 담고는 가장 큰 줄기는 버리기 위해 한 곳에 남겨 두었다. 그리고 신경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몇일 후 맨드라미를 둔 카페에 다시 갔는데 시험관 모양의 꽃병에 내가 버린 그 맨드라미 줄기가 담겨 있던 것이다.

"아니 이걸 왜 버리지 않으셨어요?"

꽃에 대한 애정 (죽이지 말아야지 하는) 은 있지만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던 카페 사장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냥 있길래 아직 죽지 않은 것 아니였나요?"

그런데 그 순간 너무 신기한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 꽃 하나 있지 않던 맨드라미 줄기는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줄기의 잘린 부분 옆으로 작은 잎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미리 버렸다면 그리고 사장님의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쓰레기통에 들어갔다면 볼 수 없을 장면이다. 순간 그 맨드라미 줄기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생각해보면 줄기도 생명인데 그저 꽃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버릴려고 했기 때문이다. 꽃을 좋아하지만 꽃만을 좋아한 것은 아닌가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비롭게 그 맨드라미에서는 붉은 꽃 몇개가 나왔고 다른 맨드라미보다 더 오래 자랐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는 맨드라미는 붉은색을 떠올리는 식물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줄기의 색과 신비롭게 나온 힌 뿌리의 색이 더 강하게 남아 있다.

맨드라미 Celosia cristata

그래서 가끔 처음보는 식물들을 볼때 맨드라미 같은 줄기는 아닐까 살핀다. 그런 꽃들은 잘 자라면 뿌리가 내릴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에 부응했던 꽃이 뀡의비름 꽃집에서 통용되는 이름은 불로초이다. 아직 개화하지 않은 꽃들은 연두색으로 꽃이 잘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면 별모양의 작은 꽃들이 한순간에 개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화려하지 않게 그냥 한 자리를 조용히 차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자라난다. 그리고 색의 변화도 별로 많지 않고 꽃이 마르고 시들어도 조용히 작은 꽃들만 떨어질 뿐 그리 큰 변화가 없다. 무엇보다 물만 잘주고 빛만 적당히 허락해주면 꽃잎들도 변색없이 오래동안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맨드라미 줄기와 같은 강인한 줄기에서는 조금씩 뿌리가 내려온다. 처음에는 이 꽃을 불로초라 불렀을까 궁금했지만 이제는 정말 죽지않고 살아가는 꽃이 아닐까 싶은 의심까지 든다. 그리고 맨드라미도 불로초도 그렇지만 뿌리가 잘 내리고 살아가는 꽃들은 장수하는 비율이 높다. 앞서 언급한 설유화도 가지 굵기만 충분하다면 뿌리를 내린다. 그러나 나무가지보다는 맨드라미나 불로초와 같이 단단하고 연두색을 가진 줄기들은 뿌리를 확 내리고 강인하게 살아갈 것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꿩의비름 Hylotelephium erythrostictum

우연히 안목없는 것 같은 카페 사장님의 선택을 받은 꽃없는 맨드라미 줄기를 보면서 꽃이 없어도 줄기만 있다면 두번째 기회가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뭘 좀 좋아한다고 뭘 좀 안다고 함부로 버릴려고 했던 내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꽃들이 사라진 줄기들도 쉽게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기회가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살려고 하는 그 강한 의지에 불구하고 내가 기회를 없애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르 레브 Le Rêve & 페루백합 Alstroemeria


백합의 개화를 지켜보면 수학의 기하학이 떠오른다. 안 꽃잎과 바깥 꽃잎이 조화롭게 더 정확하게는 안쪽 3개의 꽃잎들이 뭉쳐 있으면 바깥 꽃잎은 안쪽 꽃잎의 반을 걸쳐서 피어난다. 그래서 안쪽 꽃잎들은 120도를 이루어 있고 바깥 꽃잎들은 60도 정도 돌아가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백합의 꽃잎이 몇개인지 물어보면 머리 속에서 개화하는 모습이 떠오르며 쉽게 6개라 대답할 수 있다. 백합은 힌백 [白] 을 생각해서 힌 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백합의 백은 100 [百] 을 뜻한다. 알뿌리의 모양이 겹겹히 쌓인 모습에서 유래된 명칭이고 나리꽃이라고 불리운다. 그래서 나리꽃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지만 더 좋은 것은 꽃들이 가진 각자의 고유한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다양한 핑크의 아름다움을 가진 부활절 나리꽃 Easter lily 인 르 레브 Le Rêve 가 있다. 힌색의 시베리아 Siberian lily 도 비슷하지만 르 레브 한 송이를 밤새 놔두면 아침이면 공간 전체가 꽃향기로 가득하다.

흰 나리꽃 백합 Siberian Lily 

많은 이들은 반려 동물들이 좋은 점으로 들어오면 반겨주는 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르 레브 한송이가 만드는 향기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반려 동물 뿐만 아니라 꽃도 반겨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꽃 향기의 특징은 자신의 향기를 위해 다른 향기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공적인 향이 나는 향초나 향수 같은 경우에는 그 향기 때문에 다른 향기들을 몰아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화로운 향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러나 꽃 향기는 신비롭다. 강한 향기를 가지는 꽃들이라고 해도 각자의 향의 영역이 있고 자신의 향때문에 다른 향을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화로운 그리고 공간의 구조에 따라서 향이 가지는 특징도 달라진다. 수직으로 올라가는 향을 가진 꽃들이 있고 수평으로 퍼지는 향을 가진 꽃들이 있다. 르 네브와 같은 꽃들은 수평으로 올라가는 향이 강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잘 들어나지 않지만 아무도 없는 밤동안에 수평으로 올라간 향들은 순환하며 넓은 범위까지 향을 전파한다.

르 레브 Le Rêve

과학적으로도 꽃들이 가지는 향과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화학적 향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향이란 결국 인간의 코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은 주로 향을 내는 물질의 확산 그리고 공기 속에서의 농도 더 정확히 말하면 공기안에서 얼마나 농도를 가지는 분압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화학물질의 분압은 확산하기 유리한 단순 분자이기 때문에 다른 향을 몰아내거나 분압을 줄이지만 꽃향기는 대체로 분자량이 큰 형태이기 때문에 분압도 적당하게 유지하면서 향기를 유지한다. 그래서 다른 향을 방해하지 않고 고유의 향을 낸다.

잎들의 기하학적 구조를 보면 꽃잎의 구조를 이해하기 쉽다

그렇다고 향이 강한 백합, 나리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연히 만나 그 매력에 푹 빠진 꽃이 바로 페루백합 보통은 알스트로에메리아 라고 부르는 꽃이다. 꽃시장을 가면 알스트로에메리아 색은 다양하다. 실제로 야생형태로 있는 꽃 모양은 계속 발견되고 있고 그 중 상품으로 팔기 좋은 꽃들만 주로 해서 30여가지가 있다고 한다. 알스트로에메리아는 페루백합 Lily of the Incas 잉카의나리꽃이라 불린다. 작은 꽃들이 국화처럼 모여 있지만 꽃 하나씩 보면 나리꽃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래서 꽃잎도 6개이다. 그러나 더 신기한 것은 꽃잎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서 무늬가 다르다. 그래서 백합에 누군가 위 아래를 구별하기 위해 표시한 것 같은 느낌이다.

페루백합 알스트로에메리아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 cosmos 의 이름을 그대로 가진 꽃인 코스모스보다 개인적으로 나리꽃 종류가 우주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꽃이란 생각이 든다. 향기부터 개화하는 꽃잎의 조화로움 그리고 그 안에 나타나는 강인한 수술들은 생명력까지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꽃잎 하나에 무늬마저도 어떻게 저 꽃들은 중력을 더 잘 알고 기하학을 이해하는 자연과학자 같은 꽃이다. 알스트로에메리아를 끝까지 살게 하면 꽃들이 떨어지고 처음에는 볼 수 없던 굵은 씨방이 생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꽃에서 끝나버리는 꽃들과는 달리 나리꽃 백합류의 꽃들은 신비로운 규칙을 가진 꽃들이라 좋다.


거베라 Transvaal daisy 


거베라도 오랫동안 같이 하기 힘든 꽃이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데려오면 쉽게 꺾어지고 줄기가 쉽게 녹는 것 같은 느낌이라 데리고 올때마다 걱정이 먼저 앞서는 꽃이다. 그러나 거베라는 참 매력적인 꽃이다. 많은 사람들은 처음 접할 때 종이로 만든 조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것이 거베라의 꽃잎은 잘 가위질한 종이같기도 하고 그 색이 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파스텔톤이기 때문이다.

삼색의 거베라

우연히 꽃상자로 선물받은 분께서 시들어가는 꽃을 처리하기 위해서 버리시는데 종류별로 뽑아서 가져갔다. 짧아진 줄기가 아쉽긴 했지만 잘 묶어주고 꽃병에 잘 세워주었다. 그리고 그 거베라는 거의 한달 가까이 잘 지켜주었다. 그런데 그 전에는 보지 못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거베라는 안쪽에서 작은 꽃들이 몽글몽글 자라나는 것이다. 자세히 확대해서 보면 작은 꽃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안쪽으로 어두운 꽃의 중심은 거베라의 작은 꽃들로 점점 화사해진다. 그렇게 시간을 가지고 잘 자라면 거베라 한송이는 인구가 증가하는 지구같은 모습으로 점점 자신의 색을 찾아서 변화해 간다.

거베라 A & B

매번 금방 시들어버리는 거베라를 바라보면서 나와 거베라는 성격이 맞지 않는구나 혹은 나에게는 꽃집에서는 좋은 거베라는 주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꽃상자에 꼽혀 있던 줄기가 짧은 거베라들을 모아서 보면서 알게 된 점은 거베라의 줄기를 꽃병에 닿도록 두면 그렇게 닿은 부분을 중심으로 해서 쉽게 꺾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꽃병에 닫지 않게 잘 묶어주어서 여유 공간은 종이로 둘러쌓서 거베라의 줄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더 정확하게는 거베라의 줄기 중 한 부분이 힘을 더 받지 않도록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볼 수 있던 거베라의 경험으로 그 이후에는 거베라는 오랫동안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꽃상자에서 버려진 거베라들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기억의 거베라들

보통 인간 관계에서도 모든 문제의 원인을 다른 이에게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좋지 않은 결과가 생기면 대부분 자신의 탓을 하다가도 혹시나 다른이에게 그 문제의 원인이 있지 않을까 원망하게 될 때가 많다. 사실 정신건강의 측면에서도 너무 많은 자기 탓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뿐만 아니라 자존감도 줄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남탓은 중요하다고 한다. 가끔 무엇인가 안될 때 존재의 문제로 탓할 때가 있다. 거베라처럼 '나는 거베라랑 맞지 않아'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베라는 내가 어떻게 해도 잘 자라지 못할 꽃이라고 한동안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거베라가 주는 매력은 항상 매번 이번에는... 이라는 희망을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거베라가 잘 자라고 심지어 작은 꽃들이 만들어내는 그 마법같은 생명력을 느끼게 되었다.

위 거베라 B 가 한달가까이 지난 모습

몇번의 시도로 쉽게 결론을 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진리인 것처럼 쉽게 편견으로 만들고 그 편견은 결국 새로운 매력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없는 장애물이 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모르고 살아도 별 문제는 없지만 짧은 인생 속에서 신비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변화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거베라가 참 좋아졌다. 그리고 그동안 빨리 보내야 했던 많은 거베라들이 생각났다. 이제는 데려오면 잘 기를 자신이 생긴 꽃이지만 그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의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들 그 무엇보다 좀더 세심하게 다루지 못하고 좀더 잘 알아주지 못했던 나의 무관심에 있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탓을 하는 것은 좋지 못할지 몰라도 그 탓을 떠나 원인이 무엇일까 알아보는 것은 이후의 같은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실수를 통해서 우리는 새로운 신비를 만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생명은 항상 이로움이 있다. 


하나의 믿음처럼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가끔 보이는 바퀴벌레들에게도..? 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지구의 생태계 차원 혹은 도시의 생태계를 위해서도 바퀴벌레는 어떤 이로움을 가지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른다. 꽃의 향기에는 특유의 고유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거주하는 공간마다 항상 같은 꽃을 두고 그 꽃을 통해서 시각장애인들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후각적으로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엌에는 스토크를 두고 화장실근처에는 후레지아를 두어서 꽃이 가지는 특유의 향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익숙해진 공간이라면 그런 것이 왜 필요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각을 쓸 수 없을 때 공간이 아무리 익숙해져 있다고 해도 후각이 주는 안도감은 여러가지 이로움을 주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위치한 공간을 인지할 수 있는 다른 감각을 제공해주는 것은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살구향기 가득한 수선화 

꽃향기 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면 다양한 이로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그 이로움을 어디에 어떻게 필요한지 생각해야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기도 하지만 쓰레기이도 하고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구에는 도움이 되는 존재일 때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가진 하나의 특권 중 하나는 생명이 가지는 다양한 이로움을 찾아서 그 이로움이 필요한 곳에 배치하고 이로움을 이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에서 만물의 영장일 수 있기는 하다.

배려 받음의 미학 


꽃집에서는 꽃병에 담아 주려면 약 45도 사선으로 줄기를 잘라주고 물병에 넣어주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하라고 해도 그렇게 안하고 그냥 넣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도 하지만 왜 사선으로 자르고 넣으라는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고 그대로 한다. 사실 그렇게 자르는 것이 좋은 이유는 물병에 담아 두었을 때 수평으로 정확하게 자르면 그 단면이 물병에 모두 접촉해서 물을 흡수할 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선으로 자르면 잘린 끝 부분으로 서있고 그 단면은 물과 접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선으로 잘라도 꽃이 기울어져 물병의 옆면에 사선과 모두 닿아있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물을 흡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스티로폼으로 잘 서있도록 해준 라넌큘러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어떻게 있으면 물을 잘 흡수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보통의 경우 사선으로 잘라주면 되지만 물병의 모양에 따라서 평면으로 잘라줘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사선도 평면도 좋지 않다면 가운데 부분만 오목하게 잘라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자르는 것이 좋은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물에서 한번 나온 줄기는 다시 잘라주는 것이 좋다. 물론 줄기가 안 좋아지거나 물을 흡수할 수 없을 것 같은 색이라면 물을 잘 먹을 수 있는 길이까지 잘라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물에서 한번 나온 줄기를 한번 잘라주고 다시 넣는 이유는 공기주사를 생각하면 빠를 것 같다. 한번 빠진 줄기에서는 이미 공기와 접촉을 했기 때문에 공기 방울이 생길 가능성이 있고 그대로 다시 넣어준다면 공기방울은 줄기 안에서 공기 색전 air(gas) embolism 과 같이 물이 흡수되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꽃들은 어떻게 하면 물을 잘먹을 수 있을까 그 고민만 잘해준다면 생각보다 많은 꽃들이 오랫동안 살아 즐거움을 줄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꽃을 못 길러...' 라고 하지만 그건 꽃병에 그냥 넣는 것만으로 꽃들은 잘 자라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들은 사람이 넣어준 대로 그리고 움직인 그대로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꽃병이 줄기가 딱 붙어 물을 흡수할 수 없는데 오래 살거라는 것은 코와 입을 막아버리고 잘 잘아봐 하는 것과 비슷하다. 꽃들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이다. 최소한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가꾸는 사람의 손길에 따라서 그 생명력의 길이는 달라진다. 물론 꽃들의 특징에 따라서 신경써줘야 할 내용들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그 목표는 모두 동일하다. 물을 잘 먹이기이다.

바로 말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미스티블루는 꽃들이 색을 변하며 피어난다

꽃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명력을 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국화는 종종 마른 잎과 꽃들을 잘 골라줘야 하고 약해진 줄기는 잘 잘라줘야 한다. 조금 넓은 범위에서 주변에 있는 장애인들을 생각하면 어떤 도움이 그들에게 필요할지 생각할 때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어떤 배려가 필요할지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하나의 목표는 '어떻게 하면 덜 불편할 수 있을까' 이고 지나친 도움도 장애인들에게는 부담이라는 불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에 비해 꽃들은 아주 단순해보이고 명료한 '물의 흡수'라는 목표가 있지만 꽃들마다 그 방법들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은 다양한 꽃들을 접할 때마다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마땅히 배려 받아야 하는 존재들은 그만큼 우리의 손길에 따라서 결과는 큰 차이가 나타난다.

라넌큘러스는 피어나는 공간이 서로 확보가 될때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다

배려한다는 것은 대상의 특징을 더 알수록 수월해지고 자연스러워 진다. 그리고 모든 배려라는 미덕에는 어떤 목표를 두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 목표의식이 정확해야 할 때가 많다. 꽃병에 담을 때 줄기가 약한 꽃들은 병과 기대어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확실히 물병과 접촉한 부분의 줄기들은 다른 부분보다 약해진다. 그래서 줄기가 직접 닿지 않도록 그리고 가능한 수직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스티로폼이나 종이로 모양을 잡아준다. 수직으로 곧은 줄기들은 줄기 전체가 균형있게 물을 올리기 때문에 물의 흡수에서도 유리하다.

다양한 색의 알스트로에메리아 줄기가 수직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우리 주변에 사소하고 미물이라 불리는 생명들에는 그만큼 스스로의 의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손길에 따라 그 생명력이 달라진다. 그런 이유로 같은 꽃들이 다르게 자라는 모습들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조금은 알게 되고 인간의 손길에 따라 달라지는 생명력을 보면서 섬세한 배려가 주는 그 변화를 알게 된다. 그렇게 인간은 아무런 힘없어 보이는 꽃들에게서 무엇인가 배운다.


꽃에게서 배운다 ─ 자연의 섭리 그리고 인간의 배려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