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6, 2007

누군가를 먼저 두고 떠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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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부 선고를 받고 그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정말 남아있는 시간이 내가 생각했던 기대했던 시간보다 짧을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이 나에게 다가온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의학적인 소견에 불과하지 나의 의지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그저 통계적인 수치일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일상의 변화는 그의 마음속에서만 변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비록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고 해도 쉽게 눈치채긴 어려웠다. 그의 일상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그가 다니는 직장을 향해 가고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들과 너무도 일상적인 대화를 하게 된다. 그 대화속엔 대부분이 밝은 미소로 상대방을 대하기에 그의 모습에서는 시한부라는 딱지를 붙이기엔 어울리지 않는 그 무엇인가가 느껴지기도 했다.


마음이 바라보는 시선

다시 아침 햇살이 밝아온다. 저 해는 어제와 다른 해이길 바란다. 하루의 반을 숨었다 나온 저 해가 어제와 다른 해이길 바라는 이유는 어쩜 어제의 나와 다른 나를 기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그 절박함 속의 분초를 다투는 마음은 이내 어제와 다를거란 희망으로 부풀게 된다. 햇살이 좋다. 잠시간의 마약같은 저 해는 어제 나를 비치는 해와 다를거란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지시하는 모양

얘기한다. 아침 넌 약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야.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이 그렇게 미련없이 살던 사람에게도 약을 먹는 순간만큼은 엄숙해진다. 성당 미사의 전례처럼 영성체를 모시는 그 순간의 느낌이랄까... 두려움과 간절함의 혼합된 하나의 타블렛을 먹는 것이다. 약이란 그가 아프다란 것을 얘기해주는 객관적인 증거이다. 영성체를 먹음으로 그가 주님의 착한 양으로 살아가겠다는 고백을 하듯 약을 먹음으로 그가 아픔을 인정하는 몇 안되는 객관적 시간이 되어버린다.

삼킨다. 물을 마셔 목구멍 넘어로 보내본다. 그리고 잠시간의 쓰린 아픔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익숙해졌다. 아픔도 그렇게 익숙해지는구나...

담담하게 바라본다. 

평소와 다를것이 없다. 그가 바라보던 누가 바라보던 변하는 것은 없다. 사실 인간의 인과처럼 그가 변하지 않는한 그를 둘러싼 무엇인가가 변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좀 지나친 욕심일 뿐이다. 그가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이것이 가장 힘들다. 변화를 통해 그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먼저 겁이 나기 시작한다. 겁나는 것은 용기낸다의 반대말이 아니다. 용기내어 무엇인가 할수록 겁이 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시 하루가 지나간다. 

다시 하루가 지나간다. 아침에 그에게 희망과 절망을 주었던 그 햇살과 똑같은 햇살을 그가 즐기고 있다는... 그 석양에 비친 햇빛을 만질 수 있다는 것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오늘도 같은 햇살을 즐길 수 있어서 감사하단 똑같은 감사의 일기를 남겼다.

마음속 희망, 각자의 희망

희망이란 마음속에...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사실... 그렇지 못한다. 마음속의 희망이란 막연한 미래의 희망이다. 희망에 절박함이란 말이 붙게 되면 사실 그 희망은 어딘가 떠다니게 된다. 병실 사이사이 사기꾼들이 팔고 다니는 만병통치약을 지식인이라는 판사 부부가 사는걸 본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결코 희망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의 말은 서로의 희망을 확인하고 얘기하기 보다는 '너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하며 무관심할려고 한다. 그건 사실 무관심이다.

얼마 남지 않을 수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는 말은 독약같은 말일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희망이라 붙어있는 무관심을 서로에게 선물주는 건 아닐까?

링거액이 떨어진다.

손등 사이 사이 파란 멍, 검은 멍이 얼마나 많은 혈관계와 교류를 했는지 보여준다. 세번째 실수로 링거 바늘이 뼈를 찌를땐 나도 모르게 울고 말았다. 뼈에게 미안해서도 정말 아프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번엔 한번에 될거야 하며 가졌던 자기 최면과 같은 희망이라는 진토제를 미리 복용했는데 효과가 없었던 것과 앞으로도 몇번의 비슷한 경험을 해야하는 것인지... 그 과거와 미래가 현실에 비취져 슬펐던 것 같았다. 그저 의사에겐 지금 자기가 얼마나 아프게 찔렀을까 미안함으로 나를 달래겠지만 사실 난 그것때문에 눈물이 나온건 아니었다.

힘겹게 결국 링거액은 떨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링거액은 떨어져 간다. 링거 주사는 다시 빼고 필요할 때 찔러야 하고... 얼마남지 않은 링거액은 그 반복된 아픔을 나타내는 이정표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결론내리기 전...

무엇이 되었던 순간순간에서 느끼는 감사도, 슬픔도, 고통도, 사실은 이유없이 돌아간다. 이유를 붙이는 건 이유를 붙이고 싶은 건 그 모든 것이 끝난 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모든 걸 다 해결해준 다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맞는 말이다. 시간은 우리가 연습할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체육관 같은 곳이다. 그 체육관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다면 해결되는 건 없다. 잘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의 행복도 불행도 사실은 무던한 우리의 실습의 결과이다. 행복도 실습이고 불행도 실습인 것이다. 한순간에 찾아온 행복에 즐거워하고 한순간에 닥친 불행에 절망스러워 한다면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삶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에게 슬픈건 그리고 슬퍼하는 이유는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거란 희망때문이 아니라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실습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이 짧아진다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슬픔이다.

그리고 결론은

그래도 무엇보다 슬픈건 누군가를 먼저 두고 떠난다는 것이다.

먼저 두고 떠난다는 것은...

그가 즐기는 햇살이 그 사람과 다른 햇살이라는 것이고...
심지어 그가 증명되고 싶지 않던 그 밉던 약과도 떠나고...
아파도 참으면 변화할거란 쓰린 희망조차와도 떠나고...
시간이란 체육관 입장권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리는 것보다...
한번도 형용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떠나는 것만으로도
그건 슬픈일일 수밖에 없는거구나...


From Unforgettable Unforgettable time by 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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