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란 번역도 멋지지만 간결한 제목에서 나오는 그의 다양한 세계를 반영해주는 좋은 제목이었다.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였던 Robert Capa 는 생애 다섯번의 전쟁에 참여하여 전장에서 마지막 사진을 만들어가면서 숨을 멈추었던 종군기자였다.
마지막 전쟁에서의 필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흑백 사진이었지만 칼러사진보다 더 생생한 감동을 주는 전시회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무엇보다 글과 역사의 한부분으로 알 수 있는 짧은 전쟁의 모습을 전쟁에서 고통받는 군인, 민간인들의 시각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전쟁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전쟁이라는 상황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 점에서 신선했다. 역설적이지만 전쟁에서의 아이들의 모습이나 여인들의 모습은 의외로 현대인의 삶속에 찌든 사람들보다도 훨씬 '밝기도' 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잘 생겼었다.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미남의 얼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쟁의 모습을 담기위해 항상 앞서 나아갔고 군인들보다 먼저 앞장 서서 사진에 담아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의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은 그가 가진 삶에 대한, 일에 대한 열정의 부산물인지도 모를 것이다.
스페인 내전 당시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한 병사의 사진으로 시작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그 순간, 그리고 그 짧은 생사의 순간조차에도 병사의 얼굴엔 생에서의 마지막 고통을 느낄 수 있었고 그 고통은 전쟁이라는 큰 범주의 고통처럼 느껴질 만큼 사실적이었다.
제 2차세계대전에도 카파는 역시나 전쟁의 모습을 담아가고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D-day 에도 카파는 그곳에 있었고 공수부대의 낙하산 침투에서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병사의 모습을 위해서 먼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사람이 카파였다. 참전의 불안함, 승리의 기쁨, 전쟁의 아픔까지도 일부러 의도하지 않은 카파의 사진에는 잘 보여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도 잘 표현이 되어서 계속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 사진의 군중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도 종종 일으켰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가장 강력하게 잡았던 사진이 바로 왼쪽의 사진이었다. 사진속의 병사는 지금 독일군 저격병(Sniper)의 총을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다. 그는 또한 통신병이었다. 승전 그리고 종전의 기쁜 소식을 듣고 나서 얼마되지 않은체...
작은 사진속에서의 그 병사의 모습은 종전의 기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체 위의 사진과는 다르게 순간의 고통조차 느낄 찰나의 시간도 허용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기쁨과 동시에 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Overlapping 이 되는 하나의 사진이 있었다.
케빈카터, 1994년 수상작 |
아프리카 수단의 구조 사업이 정치적인 이유로 제대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을 이 사진으로 인하여 세상의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아이를 먼저 도와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거론했고 그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해 작가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가 삶을 끊어야 했던 이유는 윤리적인 문제보다는 그런 현실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느끼는 현실의 비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포토저널리즘이라는... 그래서 카파이즘 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로버트 카파는 종군기자의 단순한 자리가 아닌 사진으로 보지 못하는 곳에 대해 사람들이 좀 더 인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새로운 제 3의 눈으로 역할을 했으며 지금 우리에겐 역사이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겐 현실이었던 세상에 대한 냉철한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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