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September 25, 2008

착한아이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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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막 20살이 되는 소녀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는 맨날 술만 마시고 딸을 보기만 하면 구타하고 그런 삶속에서 소녀는 20년이라는 세월을 참으면서 지내왔던 것입니다. 단지 아버지란 이유로 내가 아버지를 이해해야지 누가 이해하겠어... 생각하면서 매일 매일의 구타와 심한 모욕 속에서도 소녀는 그렇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매일 이렇게 아버지를 이해했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지 않으셔서 할아버지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그렇게 대하시는 것일거야. 내가 참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나마저 떠나버리면 불쌍한 아버지는 어떻게 혼자 사실 수 있겠어." 

그렇게 '착한 소녀'는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객사하고 나서 슬픔을 간직한 체 결혼을 하게 되었고 행복하게 아들 딸 낳고 잘 살았습니다....

... 하고 이야기가 끝나면 뭔가 이상하죠.


국 그 소녀는 자신의 둘째 아이가 10살이 되던 38살에 자신의 두 아이를 모두 야구 방망이와 날카로운 흉기로 죽이고 이를 목격한 자신의 남편마저도 잔인하게 살인을 했습니다.

법정에서 정신이상을 인정받아 치료보호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당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유는 당시 전혀 범죄기록도 없고 동네에서도 항상 누군가를 도와주기로 소문이 났었던 착하고 착한 한 부인이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하면서 충격에 빠질 수 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소위 "착한 아이 신드롬"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마음 속으로 바라는 것을 행동하기 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맞춰갈려고 하고 자신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그러나 제가 사실 말하고 싶은 부분은 발달심리학이나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을 얘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죄와 용서라는 부분을 얘기하고 싶네요.

너굴이의 감성손글씨 :: http://neogul1114.blog.me/

소녀는 마음속에 아버지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착한 심성에 사람을 너무도 깊히 이해하고 그 사람의 행동에 무엇인가 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조차 인정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어느 그 순간... 잘못이 있는데도 그 잘못이 상황에 파묻혀버리면 나중에는 그 상황은 잊어버리고 그 잘못이 마음속에서는 정당화되어버린다는 것이죠.

한동안 "용서"라는 테마에 휩싸인 적이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어떤 것일까? 정말 미워 죽겠는데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의 살인마에게 자신의 가족이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그 살인자를 용서하는데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 그런 것이 가능한 것인가. 그래서 그런 용서의 그 멀고 먼 길에 선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바보"라고 말합니다. 용서는 무슨 용서냐 똑같이 당해야지 그러면서 자신에게 남는 것은 분노와 무엇을 하던 쉽게 가라앉지 않는 자신의 마음입니다.

떻게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용서의 시작은 죄의 인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죄의 피해자들도, 위에 제시된 소녀와 같은 상황에서 소녀는 아버지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쉽게 고칠 수 없는 상황"과 "아버지의 구타와 나쁜 술버릇에 해당하는 잘못과 죄"는 분명 분리해서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그런 상황은 이해해야지만 그 상황에서 꼭 죄를 짓는 것까지 인정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용서의 시작은 사람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사람의 죄에 대한 철저한 분리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원치 않는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너무도 완벽하지 못해 잘못을 합니다. 그것은 "착한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착한 아이가 다양한 상황속에서 잘못을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상황에 묻혀 잘못도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은 더욱 더 위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진정한 용서란 무턱대고 덮어두고 그래 모든 걸 이해해... 의 무조건적인 용서라기 보다는 "너에게 있어 이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것은 너의 잘못이야" 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것이 더 큰 용서라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어떤 죄를 지었다는 것에 대해서 인지했다면 그 착한 아이는 그 죄를 아버지가 다시 행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의 인지는 용서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잘못혹은 죄의 인지없이는 자신마저도 그 죄의 피해자로 만들 수 있는 무서운 방아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못합니다. 성실하고 한점 부끄럼없이 살아간다고 생각해도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해야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용서의 시작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죄의 인식을 통해 다시 죄가 만들어지지 않기 위한 노력의 시작이고 인간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몇 안되는 열쇠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용서의 길은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덮어두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까지도 죄의 굴레 안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도와줄 수 있는 마음으로 시작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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