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등학교 때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급성림프종, 원인도 모르고 조직검사후에도 병리학적으로 매칭이 되는 케이스가 없어서 1주일에 2번 7개의 독한 항암제를 맞아야 했었죠. 그렇게 1년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주사 바늘이 들어갈 혈관을 찾기 힘들어 다리 혈관까지 쓰게 되었고 매일 항암제에 취해 토해가며 밥도 먹지 못해서 병원가기 바로 전날엔 아버지는 그동안 많이 먹어두라며 항상 뷔페 식당에 데려가시곤 했습니다.
아프고 힘들고 그랬었지만 정말 감사한 것은 아버지가 그 많은 경제적인 부담에도 치료를 한번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와서는 오히려 그런 경제적인 부담에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라는 점입니다. 그때까지는 과장해서 전세계 모든 아픈 사람들은 저처럼 치료 잘 받고 그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느낌인지 모르기에 당연한 치료에 아픈 것 말고 어떤 걱정이 있을까 하면서 말이죠.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주사처방전을 가지고는 수납하는 곳에서 그냥 처방전을 주머니에 넣고는 돌아가는 어떤 아버지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2주가 지난 후 그 아버지와 아픈 아들은 제가 있던 건너 병실에 들어와 있었고 그 아이는 병실에서 다른 세상으로 먼저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았던 것은 아버지 손에 쥐어 있던 여러 장의 처방전이었습니다.
한번 치료에 보험을 처리하고도 십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하고 약값까지 포함하면 한번에 이십만원 이상의 돈이 들었습니다. 그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죠. 누구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자식 챙길 능력없으면 자식은 왜 낳아서 저 고생이야..."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에도 그런 자본의 논리로 바라보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 참 그렇죠.
그 이후 저의 모토는 "적어도 돈이 없어 죽는 아이들만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주어진 돈으로 누군가를 도와야지 가장 효과적일까... 를 생각하다가 세상을 그런 논리로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나 한심스러운가 느껴졌습니다. 왜냐면 이 세상은 너무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고 두번째는 우리가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볼만큼 그렇게 인정어리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세상만 보고 싶은 것이 인간이기에 안타가운 많은 사연들 속에서도 그들을 잊어버리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약 10여년동안 일요일마다 모자원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쩔 땐 험한 꼴도 보고 때로는 그 안에서 사기도 당하고 그렇기에 내 시간 내 돈 쓰면서 왜 이런 짓을 하나 할 수 있지만 그런 것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기에 그저 하게 됩니다.
병원에 있다보면 금전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고요. 갑작스럽게 다가온 현실에 아무나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합니다. 가끔은 왜 하느님이 이런 아픔과 찢어지는 고통을 인간에게 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랜 고민속에서 아픔 속에 슬픔 속에 고통 속에 살아가는 많은 주위의 사람들을 보면서 그 결론은 너무도 쉽게 나오게 되더군요.
"서로 도와야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고 얘기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 어떤 고통과 슬픔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도와줘야 할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닐까... 어디를 둘러봐도 도와줘야 할 사람이 많은 이 세상은 그래서 살만한 세상인 것 같습니다. 가난이 무서운건 그 가난 자체보다 누군가가 꿈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더 무섭다는 말처럼 우리가 서로 돕는 것이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예전에 어떤 국회의원 후보가 이미지 쇄신용으로 고아원에 기부를 하면서 바쁜 일정에도 와서 사진 찍고는 가셨다고 합니다. 물론 대외 홍보용으로 그 이후에 그 사진은 여러곳에서 볼 수 있었죠. 그런데 오히려 그 사진에서 주목을 받았던 것은 그 사진 뒤에 집안에서 묵묵히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는 다른 후보였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데 지속적이고 끊임없는 마음은 금액보다 더 마음을 움직입니다.
분명 기계 냄새나는 인터넷 공간보다 사람 냄새나는 그런 공간을 필요한데 이제는 관심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취향과 다르다고 해서 사람냄새보다는 기계냄새가 가득한 공간이 더 인기가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더 좋은 곳에... 더 많은 사람에게... 나의 도움이 혜택을 보게 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그렇게 누가 더 힘들까, 누가 더 어려울까 고민하면서 주위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외면한다면... 혹은 이정도만큼 어려워야지 도와줄만하지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 사람은 고아원 앞에서 사진찍는 사람의 마음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묵묵히 안에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의 마음일까요...
그냥 이유없이 도울 수 있는 마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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