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8, 2010

껌과 영수증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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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밤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사람도 별로 없고 마침 하차문 바로 앞에 좋은 자리가 비어 있어서 별 부담없이 앉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습관처럼 창가쪽으로 기대고 가고 있다가 주머니에 손을 넣기 위해 몸을 버스 안쪽으로 움직였을 때 뭔가가 나를 땡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는 겨울이었고 니트를 입고 있었는데 습관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외투를 벗은 상태여서 오른팔에는 누군가가 붙어놓은 찐득거리는 껌이 니트에 엉켜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난 아직도 그 때의 그 생생한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몇 안되는 사람들이었지만 내 뒤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이런 짓을 하는 놈은 누구일까... 등 아주 더러운 기분에 마치 내 인격이 이 껌하나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더러운' 껌을 손으로 떼어내기도 싫어서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 결국엔 잘 떼어 내면 될 것을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니트를 쓰레기통에 던저버리고 말았다.

첫번째로 기분나쁜 건 누군가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의도적으로 붙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두번째는 그 누군가를 잡기 힘들다는 것에 더욱 더 화가 났고 세번째는 그 피해자가 하필 나라는 생각에 머리 끝까지 올라온 화를 참지 못하고 그 하루를 제대로 마감하지도 못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화에 스스로 견디지 못한 나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야만 했고 대부분은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한 사람들에게 그 화의 악영향이 전달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삶에 힘든 과정도 지나가고 그리고 화내는 데 너무도 익숙해서 결국 내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학대를 하며 분을 이기지 못하는 나에서 세상에 순응하며 결국 화를 내는 것은 내 스스로를 미워하는 결과라는 것을 차츰 느끼게 되고 나서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아픔을 느끼고 나서부터 결국 화의 피해자는 일차적인 피해자는 나이고 두번째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마저 상처준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그 긴 분노의 투쟁이 끝나갈 무렵... 

신기하게도 똑같은 버스에서 그리고 같은 위치에서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껌은 막 누군가의 입에서 나와서 여름의 열기에 더욱 더 찐득하게 녹아 버려있는 상태였고 당시 입고 있던 양복에 아주 걸쭉하게 묻어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전과 달랐고 결코 그 무의미한 껌에게 화도 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손으로 최대한 떼어낼 수 있는 한 떼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예전에 분노하고 느꼈던 그 더러움이나 존재할 필요도 없었던 수치심이나 바보스러움의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차분히 떼어내고 버스 벽면에 아직 남아 있는 껌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하겠어서 지갑에 있는 영수증으로 그 껌을 눌러서 더이상 누군가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 바라며 영수증을 붙었다.

혹시 누군가 그 영수증을 보면서 고마움보다 '뭐 이런게 있어'하며 화내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이해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혹시나 그것을 보고 불쾌하거나 화가 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대한 죄책감까지 느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를 참을 수 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번째는 화를 통해 자신을 미워하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여 자신 스스로에게 주는 상처를 막을 수 있는 길이고 두번째는 조금더 침착하게 내가 겪는 상황에 대해서 바로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이다. 자신의 분노에 어떻게 하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더욱 더 부끄러운 행동이 된다는 것을 화가 나지 않은 상황에서 잘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화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이유를 만들면서까지 화안에 갇히려고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에 화를 내고 자기 맘에 들지 않아 화를 내고 그리고 그 화에 노예가 되어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불안정하게 움직이며 사람들에게 많은 혼란을 주는지 알게 된다면 그 복잡하게 힘든 길을 일부러 가고 싶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화와 분노를 스스로 만들며 그 안에서의 행동에 대해서 떳떳하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화와 분노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사람일 것이다.

비록 화내야 할 백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결코 자신을 위해서 화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껌과 같이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주변에 수많은 시간과 공간안에서 영수증 같이 나를 보호해주려는 많은 손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가면 좋겠다.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과 고통이 다가왔는지에 대해서 분노를 가지는 것보다는 그 안에서 내가 모르게 받고 있는 따뜻한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다면 내 안의 분노는 곧 사라질 것이고 그 여유는 아마도 자신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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