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0, 2011
지적장애우가 되고 싶다.
요즘 신앙인이라고 믿고 있던 내 자신에게도 짜증이 나고 정말 욕을 하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일들이 있었다. 내가 가진 소위 상식과 예의의 수준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일들로 스스로 화가 나기도 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상기하고 반복했다. 내가 가진 논리정연함으로 모든 일의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던 나에게 집안 거실에서 굴러다니는 흥보물 하나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성 필립보 생태마을의 홍보지였다.
첫머리에 "지적장애우들이 행복하게 살수있는 공동체..." 라는 부분을 보고 멍하니 멈춰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문구가 맘에 들거나 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지적장애우'라는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지적[지쩍;知的]장애우라고 보였을 그 단어가 나에겐 순간...
지적[指摘]장애우 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순간 대학생활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자페아 아동학교에서 보조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어떤 한 아이가 식칼을 잘못 휘둘러 나의 복부를 찔려 손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프기는 했지만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 아이가 나의 상처를 보고는 이내 "호...~" 하면서 아프지 말라고 달래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 아이에 대한 원망도 오히려 내가 그 아이에게 어떤 다른 형태의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걱정이 오히려 앞서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간은 너무도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서 지식을 쌓아야지만 인간으로 마땅한 것이고 그것이 평균의 활동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그 많은 지식들 속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정말 우주의 티끌보다도 못한 지식의 범주 안에서 새로운 활동을 하게 된다. 그것은 소위...
지적질이다.
자신이 가진 지식의 한계성은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본 것이 전부인 양 들은 것이 전부인양 자신의 편견과 자신의 기호에 맞춰서 남을 지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리다라며 다른 누군가가 잘못되었다며 지적을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번 쉽게 말한 것에 다른 누군가가 상처받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으면서 다른 누군가의 지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해 결국 또 반격하고 선악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심지어 신을 믿는 신앙인들도 비슷하다.
그런데 지적[지쩍;知的]장애우들은 그러한 판단을 쉽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렇게 판단할만한 충분한 것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누구를 지적하거나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좋다 나쁘다의 자신의 마음에 따르는 순수한 표현을 기대할 것이다. 그들은 지적[지쩍;知的]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적[指摘]하는 것 또한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적[指摘]장애우들이기도 하다.
너무 많은 것을 배워서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지적은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변명과 거짓으로 대변하여 적절한 지적엔 대처하지 못하고 다른 이에 대한 과도한 지적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우리는 '지적우월자'였던 것이었다.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것이며 또 아무리 논리적으로 판단해도 얼마나 많은 것을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것을 판단하고 누군가를 지적하고 옳고 그름을 너무도 확실하게 판단했던 나에겐 화나는 것도 마음에 안드는 것도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논리정연하게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하고 싶은 내 마음안에서 오래 전에 나에게 육체적 상처를 주었지만 내 마음 속엔 어떠한 앙금도 상처도 남지 않은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 내가 요즘 하고 싶었던 지적질의 마음도 사라지게 하도록 마음 먹었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신에게 "지적하려고 해도 지적하는 법을 몰라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우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청하면서 내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졌다.
내 마음 속의 화, 지적하고 싶은 마음 그 모든 것은 결국 내 욕심의 산물이라 생각하며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내 것이 아닌 것에 내가 아닌 것에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 마음을 순수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기만 하는 우리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지적장애우로부터 배우게 된다. 하느님은 바로 그들의 희생을 통해 우리시대 물들어 지적하며 사는 우리들을 반성하도록 내려주셨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너무도 고맙게도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지적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지식마저도 내려놓아야 함을 알려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난 지적[指摘]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지적장애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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