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1, 2011

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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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의 열쇠는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 사람만 없으면...", "저 사람은 왜 항상 저 모양이야..." 그렇게 대부분 자신의 화나 잘못의 원인은 내 자신이 아닌 상대방에게 있다고 얘기한다.

위기의 부부들이 가지는 4가지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특징은 문제의 원인이 어느 한쪽에 있거나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범주에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오히려 감정적인 부분의 엇갈림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네가지의 특징은

1) 비난하기 

"너가 항상 그렇지...",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해!", "너가 할 줄 아는 게 뭐야" 무엇인가 시작점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점이라고 부르는 것도 참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양말을 왜 아무데나 놓느냐 아니면 화장실 불은 왜 끄지 않고 나오냐는 등의 그런 생활 습관에 해당하는 일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들은 습관적이기 보다는 순간의 실수를 비난으로 이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그 원인이 되는 일들이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당신은 왜 화장실 불도 안끄고 그래" (사실) "당신이 그렇지 맨날 그렇게 절약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 (비난) 으로 이어지는 말과

"당신 화장실 불을 안 껐내" (사실) "잊어버린 것 같은데 꺼주고 나오면 안되어요" 이라며 비난적 요소가 사라지면 오히려 내가 불을 안 껐구나 하는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다음 번에 그런 일들이 더 잘 상기될 것이다. 오히려 비난이 가해지면 화장실 불을 끌때마다 그 비난이 떠오르며 "내가 절약정신이 없다고? 아니 도대체 누구 돈으로 먹고 사는데" 하는 마음으로 비난에 대한 자기 방어적 요소가 더 떠오르게 될 것이다. 

2) 경멸 

비난의 단계가 반복되거나 심해지면 어떤 행동이나 사건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이나 상대방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거론하며 경멸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잘못이나 실수는 경멸을 위한 시작점일 뿐 중요한 건 상대방에 대한 불신과 미움을 포함한 원색적인 내용을 이야기 하기 마련이다.

비난의 단계는 그냥 훈계나 일이 잘 되기 위한 하나의 합의를 위한 부분이지만 경멸의 단계에서는 상대방이 화장실 불을 꺼도 모든 것을 제대로 해도 흐트러진 수건이 맘에 안들면 상대방에 대한 경멸을 보이게 된다.

어떤 말이나 행동도 다 맘에 안들고 이런 경멸의 단계에 들어서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경멸에 의한 서로간의 상처로 인해 이전에 사랑했던 모든 기억과 추억이 다 거짓이 되어버리고 사람 자체에 대한 증오로 인해 자신의 삶마저도 잃어버리고 삶에서 행복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의 일상이 경멸의 반복으로 인해 습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3) 자기 방어 

자기방어와 경멸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경멸하는 상대방이 논리적이나 감정적으로 옳다고 생각할 수 없는 단계에서는 상대방의 경멸에 대해서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정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나에겐 잘못이 없고 상대방이 너무 극단적이고 일반화된 시각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들 때 상대방이 잘못되고 나에겐 잘못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언성은 높아가지만 실제로 합의에 이르거나 어떤 평화의 방법을 찾아내기 보다는 서로의 귀는 막아버리고 나의 이야기만 줄기차게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로가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바라보는 시선이 잘못되었으니 원인은 너에게 있고 너가 고쳐야 한다고 하는 원인 제공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되면 될수록 자신의 주장은 항상 맞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자기 방어로 시작하게 되지만 사실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상대방이 질 때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서로의 시각은 평행선을 긋게 되고 반복되고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계속 싸우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는 바로 결과 / 과정에 대한 합리화이다. 결과가 잘못되어도 과정에서의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하고, 과정이 맘에 안들면 결과가 좋아도 과정에서의 잘못됨이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결국 자신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심한 하소연과 자신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의 문제가 반복되어서 답답한 마음에 상대방에게 소리지르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4) 무시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야 연인들 사이에서는 그냥 헤어지면 해결될 수 있지만 부부의 삶을 살고 있고 아이가 있는 상황이라면 평행선을 그으면서 살아가다가 결국 무시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서로 어떻게든 잘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던 그 단계에서 이제는 무관심으로 이끌어지면 서로에 대한 애정은 냉냉하게 식어버리고 서로에 대한 기대는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상황이 맞는다면 언제든지 이혼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무시의 상황에서는 어떤 해결을 위한 서로의 노력보다는 어떻게하면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정적인 활동에 점점 힘을 쏟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 활동은 스스로도 더 힘들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특징이 자신의 관계가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관계로 가고 있다는 하나의 신호이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새로운 시각을 보아야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대답에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상대방을 대한 나의 태도가 사랑의 표현이고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위의 질문을 하게 된다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행복하기 원한다고 할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허물과 실수를 밝혀내 상대방을 원래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상대방이 대꾸할 수도 없는 논리로 이기게 된다면 정말 나의 마음은 편하고 좋을 것인가? 결국 당신은 승리자가 되었지만 상대방은 패배자가 되기 마련이다. 반대로 내가 패배자가 되고 상대방이 승리자가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결국 그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방이 패배자가 되길 바랄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비난하고 자기 방어하는 사이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한 노력은 절대 아닐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희생해가면서 누군가를 그렇게 패배자로 만들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당신을 사랑한다는 미명하에 당신의 모습 하나하나를 비난하고 항상 자기 합리화에 상대방을 패배자로 만드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가장 현명한 방법은 헤어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결혼은 한 사이라면 그리고 도저히 해결책이 없을 것 같아 헤어진다고 해도 사실 문제는 반복되기 쉽다. 왜냐면 문제가 나에게 있지 않고 상대방에 있다는 믿음때문이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도 똑같은 문제에도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또 비슷한 사람 만났다는 착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상대방이 패배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희열을 느낀다면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희열은 결코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은 상대방이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주는 것이지 어퍼컷을 날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안에서 상대방을 비난, 경멸을 하며 자기방어를 하고 심하게 되어 결국 서로에게 무관심한 상태까지 가게 된다면 그 책임과 원인 제공은 상대방에 있다는 파렴치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 결국 서로 패배자로 만들려고 하는 그 수많은 노력 속에 지치고 힘들어진 나와 너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때문이다.



언제나 이 질문에 대답해보자 

이기기 원하는가? 행복하기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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