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수롭지 않게, 별 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요소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이런 기술이 자유롭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몇년 되지 않았고 이 개념이 도입된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당시 이 웹 기술은 과학잡지 Science 지에도 소개가 될 정도였다. 이제는 뭐 정말 대수롭지 않게 쓸 수 있는 요소기술이지만 그 전까지 이런 방법을 해결하지 못해서 웹사이트 상에 채팅방 하나를 만들어도 매번 웹페이지가 계속 페이지 고침(reload; F5)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웹에서 거의 모든 사무적 작업 뿐만 아니라 복잡한 공학적 기능까지도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찾아왔다.
이렇게 우리가 별 느낌없이 쓰는 대부분의 기술, 그리고 우리의 삶안의 많은 요소들은 누군가 처음으로 기능의 결핍, 즉 부족함 혹은 필요함을 느끼고 그에 따라 그 필요성을 창출해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그 누구도 웹사이트에서 문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그 오래전 계속 페이지 고침으로 모든 웹이 이루어지는 그 상태 그대로 존재했을지 모른다.
요즘 유행하는 김어준의 말처럼, 자신의 스트레스의 근원이 정치이고 투표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행동이라는 이야기처럼 남들이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데 본인이 느끼는 그 불편함의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그 과정 안에 인간은 창조의 과정이 발생하게 된다. 바로 그 결핍, 부족함의 주체가 될 때 이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이다.
하나는 그냥 그 불편함을 무시하고 살아가며 그 불편함에 내성이 생겨 그냥 사는 방법,
다른 하나는 그 불편함을 줄이기 위한 창조적 작업으로 변환하는 방법.
인간이 발명(개인적으로 세상엔 발명은 아닌 발견이라 생각하지만...)은 그래서 불편함의 산물이다. 편리함에 파묻혀 그 이기만을 누린다면 우리는 창조적 발명품의 노예가 될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불편함을 거부하지 않음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지혜가 될 수 있음도 창조적 발명품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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