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29, 2012

동양과 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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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에서 방송한 '동과서'라는 다큐를 보면 많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이 서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잘 만들어진 다큐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동양인과 서양인이 마치 남과여처럼 문화적인 차이에 의해서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누군가의 고민을 듣다 보면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주제, 예를 들어 자신의 미래의 진로나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걱정과 고민을 털어 놓는데 어떤 이들은 주로 동사로 이야기하는 경우와 다른 경우는 명사로 이야기 하는 경우이다. 즉, 구체적인 행동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이것을 할 수 있다. 때로는 행동의 일련들을 걱정하는 경우가 그 경우이고 다른 경우는 구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대상, 시험, 점수 그리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요소 등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비단 동양인이냐 서양인이냐라는 구분이 아니라도 개인적인 차이로 인하여 소위 '명사로 고민하는 경우'와 '동사로 고민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동과서 다큐멘터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동양인과 서양인의 일반적인 성향을 구별해서 정의한다.

양인은 동사로 세상을 보려하고,
양인은 명사로 세상을 보려한다.

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러한 구분적 성향을 몇가지 설문조사와 테스트를 통해서 동양인과 서양인이 구별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문화적인 차이, 교육의 방식 등 여러가지 환경의 차이가 분명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고 서양문화에 익숙해진 동양인, 그 반대의 경우에는 어떤가에 따라서도 재미있는 내용이 도출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전개로 나타나는 다른 성향은 관계성에 대한 부분이다.

다음의 그림을 보면서 가운데 사람은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은가? 의 질문을 하면...

출처: EBS 다큐멘터리 '남과여'

가운데 사람은 웃고 있지만, 가운데 사람을 제외한 주변의 사람들은 얼굴이 밝지 않은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동양인의 경우 아무리 가운데 사람의 얼굴이 밝다고 하여도 주변 사람들이 좋지 않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란 의견이 많았고 서양인은 그 사람만을 보고 주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으며 그 사람은 웃고 있기 때문에 행복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양인은 주변의 관계를 포함해서 판단하며,
양인은 대상의 상태에 집중하여 판단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양에서 계속 교육을 받은 동양인의 경우에 서양인의 시선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동양인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양에서 모든 교육을 받은 동양인의 경우에도 오히려 서양인의 시선보다는 동양인의 시선을 가진다는 점이다. 주변의 외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이러한 양상은 꼭 문화적인 배경때문이 아니라 다른 부분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시선과 관점은 서양인과 동양인의 큰 오해를 일으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차이와 오해

가장 큰 오해의 예가 미국에 사는 한국인 부모 중에 자식의 사고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정서처럼 '내 잘못이야! 내가 다 잘못한 거야!' 라는 한풀이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번역해서 실제로 지방 검찰이 기소를 한 경우가 있고 자백(confession)의 형태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서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서양인들의 시선에서는 그런 말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병원에서도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난다. 동양인의 경우에는 자신의 아이가 병에 걸렸다고 하면 부모의 반응은 "①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죠", "②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내 자식에게..." 와 같은 반응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분석하자면 아이의 병이 부모의 잘못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다. ① 은 마치 병이 걸린 병리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 같지만 그 질문에 대해서 자세히 병리학적 소견을 보호자에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의 모 병원에서 같은 상황이 일어났고 통역을 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의사에게 물어봐서 의사는 이 이야기를 병리학적 원인을 물어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자세히 설명했으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전해졌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왜 그렇게 된 것에 대해서 정말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답답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주로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서양인들은 때로는 참 단호하고 냉정한 경우까지 포함해서 단도직입적으로 "③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가 가장 큰 반응이다. 그리고 다소 사소한 차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동양인은 "ⓐ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나" 라며 환자 뿐만 아니라 내포적으로는 환자 주변의 가족들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듣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서양인은 "ⓑ 아이가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하나"로 표현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표현의 차이는 언어적인 차이때문이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언어적인 차이를 떠나서 부모의 마음은 다 아프고 힘들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대처하는 방식은 관계에 대처하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시선의 차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동과서 에서 다루었던 관계에 대한 동양인과 서양인의 시선의 차이는 비단 인간 관계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픈 아이를 두고 별로 알아도 소용없는 "왜 아이가 아프게 되었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동양인은 어떤 사건에 대한 전반적인 관계, 인과관계 뿐만 아니라 인연설과 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서양인은 아이의 아픈 것은 사실이고 그것에 대한 왜? 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먼저 던지기 쉽다는 것이다. 때로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내면에 그런 관계성보다는 자신의 아이라는 주체가 지금 상태가 이렇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한다는 주체 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학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언어의 구조가 이런 시선을 만들었는가? 아니면 이런 시선을 생물학적으로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어 그런 표현을 나타내는 언어가 나온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남과여 의 문제만큼 동양인과 서양인이 바라보는 이 대비적인 시선의 차이는 비단 동양인과 서양인에 대입해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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