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노숙인으로 살고 있던 사람은 자신의 꿈에서 큰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 꿈에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살해당하게 되는 순간 자신의 살인자를 목격하고 그 얼굴을 찾으려고 일상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리고 어떤 이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무 꿈도 꾸지 못하고 결국 그 6개월이 되기 전에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불안에 시달리며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FBI 는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이 꾼 꿈을 올려서 서로의 삶과 연결하게 하는 일명 '모자이크(mosaic)'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사람들이 꿈꾼 개인적인 내용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6개월 이후의 미래 때문에 어떤 이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불안과 어떤 이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다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우연에 의해서 자신의 꿈이 점점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개연성을 발견하면서 또 다른 불안과 희망을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에 두가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첫번째는 FBI 동료들 중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에서 FBI 국장이 사람들에게 연설한 내용이다.
There are no words for this...
None that mean half a damn anyway.
The people we love are gone, and they're not coming back.
And we'll miss them.
But things are going to get better.
The sun's gonna rise on a new day.
I know it doesn't feel like it will,
but that dawn is coming.
There's hope.
One of the agents here repeated to me something that a friend had mentioned to him.
And he said, "We're all prophets now."
And you know, I can't think of a prophet worth a damn... that didn't suffer.
And I also can't think of a prophet... that God didn't love.
슬픔을 표현할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것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겠지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떠났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그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태양은 새로운 날에 다시 떠오를 것입니다.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아도 그럴거란 것을 압니다.
그러나 새벽또한 찾아옵니다.
그것이 희망이죠.
여기 있는 동료는 자신의 친구가 그에게 항상 반복해서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길, "우리 모두는 이제 예언자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아십니다. 어떠한 예언자도 고통을 받지 않은 자는 없었고,
또한 어떠한 예언자도 신이 사랑하지 않은 자는 없었다고...
예언자는 어느 시대에도 환영받지 못하며 오히려 거짓 예언자들의 속임에 넘어가 세상 사람들은 참 예언자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고 또한 자신의 기득권, 안정적 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비록 진리라고 하더라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돌을 던져 그들을 배척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모두가 예언자가 된 이 가상적인 세상을 놓고 보면 자신의 미래가 자신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일어나는 세상이라면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나려고 하는 그런 의지와 행동들이 오히려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억압하는 상황이 된다는 설정이 흥미를 주게 되었다. 진정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알게 된다면 그것이 좀더 편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그런 삶이 될 것인가? 미래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게 불안을 주는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욕심이 만든 집착과 불신이 가지는 그 불안의 요소가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두번째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자신의 꿈에서 자신의 임무 중에 두 자녀의 엄마가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요원(agent)의 선택은 아직 자신이 맡은 임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꿈에서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한 가정의 엄마가 죽게 된다는 그 사실에 죄책감에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즉, 자신이 trigger 가 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 (existence) 가 사라진다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희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행하지도 않은 미래의 일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그 죄책감에 결국 자신의 목숨마저도 희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나에게 가장 크게 의미를 준 것은 '존재'가 가지는 관계의 의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본 미래에 대해서 믿는다는 가정하에서 모두 행동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의 미래가 자신의 맘에 든다고 할 때는 그 미래에 맞춰 살려고 필요한 것들을 찾으려고 하고 반대로 자신의 미래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할 때는 그 미래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게 노력하고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있는 trigger 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일어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래가 맘에 드는 사람이든,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든, 둘다 모두 자신이 본 미래에 대해서는 '믿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그 미래의 사실에 대해서 부정하고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그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즉, 두 가지 모두 믿음의 굴레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현상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가 미래를 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개연성과 두려움의 혼합된, 그리고 우리가 상상하는 '우리가 설정한 미래'에 항상 두려워하며 그 일들이 일어나게, 혹은 일어나지 않게 항상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존재란 존재 그 자체를 설명하여 알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그 존재가 꿈꾸고 두려워하는 상상의 범위까지 넓혀야 다른 이들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그 사람의 현재만을 통해서 우리가 상대방을 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만나 상대방이 어떤 직업,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족 관계이고 상대방의 현재의 배경을 안다고 하더라도 존재론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내가 기대하고 상상하는 것은 그 배경이 만들 수 있는 개연성 있는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기대하고 믿는 부분들은 서로의 현재가 줄 수 있는 개연성 있는 미래에 대한 믿음, 그 믿음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존재론적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결국 그러한 자신의 존재론적 미래에 대한 기대치로 자신의 존재론적 관계를 설정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관계의 유지는 믿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시즌 1을 끝으로 예산 부족 (이해가 간다. 에피소드 1회, 2회에 쏟아 부은 돈만 해도 상당할 것 같다.) 과 인기 부족으로 인해서 시즌 2를 만들지 않아서 시즌 1으로 끝나버린 드라마이지만 특이한 설정, 그 설정 안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흥미 진진한 전개가 맘에 드는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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