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당신은 수술할 집도의를 선택할 수 있다.
ⓐ 첫번째 외과의는 따뜻한 가슴에 눈물도 많고 그리고 남의 감정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수술 능력은 상대적으로 미숙한 선생님이다.
ⓑ 두번째 외과의는 냉정한 가슴에 눈물도 적고 그리고 남의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수술 능력은 절대적으로 뛰어난 선생님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내가 응급실에서 다음 날 아침에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흉부외과 선생님은 나에게 농담하시며 내 심장이 뛰는 것 보고 싶냐고 물어보셨다. 난 무슨 생각인지 몰라도 흥쾌히 좋아했고 흉강경(내시경)으로 내 심장이 뛰는 것을 모니터로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수술실 분위기가 어찌나 좋았는지 나는 수술실의 재롱둥이, 일명 '수재'로 불리었다. 그런 좋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옆의 마취과 선생님들은 무척이나 고생하며 땀빼는 상황이었고 그것도 모르고 마취되기 전까지 무서움, 두려움보다는 마치 소풍가는 어린 아이마냥 즐겁게 보내다 스르르 마취되었다. 수술이 끝나고 수술이 힘들었다는 것은 듣게 되었지만 난 세상 모르고 마취 전 즐거운 기분 그대로 깨어났고 반나절의 긴 수술에 진땀을 빼며 힘들어 하셨던 선생님을 고마운 마음에 거의 매년 찾아 뵙고 그때의 즐거웠던 수술실의 분위기를 회상한다. [ 믿음... 아픔을 이기는 약해보이는 가장 강한 도구 ]
수술과 치료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실력좋은 흉부외과 선생님을 만나서 살아났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런데 지금 계속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에서 아픈 사람들을 보며, 만나며 느껴지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단순히 의술이 아니라 의술에 묻어나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아닌가 싶어진다.
몇년이 지나 예전 수술기록지를 받아보고 수술 중에 한번의 큰 고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고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선생님이 얼마나 그 날 고생을 하셨는지, 그리고 수술이 시작되기 전 그렇게 쾌활한 나를 생각하면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힘들게 수술을 이끌어가신 선생님의 짧은 회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누군가의 아픔을, 슬픔을, 기쁨을 공감하는 마음이야 말로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는 간절함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내가 능력은 뛰어나지만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의 가족들이 느끼는 그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 선생님이었고, 수술 중 고비가 다가왔다면 아마도 냉정하게 그 순간을 포기하고 정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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