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1, 2012

설렁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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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나서 명동으로 얼른 달려가 주린 배를 달래며 들어간 곳이 바로 하동관, 그 곳의 담백한 곰탕 국물과 깍두기, 김치가 맛나는 곳이다.

내 식성이 언제부터 이런 고깃국물 스타일이 좋아하게 되었는지 잘 기억은 안나지만 항암치료를 받던 시절이 본격적인 시작으로 생각한다. 아버지는 매주 항암치료 받는 화요일 전, 일요일이나 월요일에 치료 후 먹어도 토하는 나를 위해 거의 매주 빠지지 않고 호텔 뷔페나 든든히 먹을 수 있는 곳에 데리고 가셨다. 아무리 잘 먹어도 화요일에 항암제에 결국 다 토하게 될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치료 이후에는 거의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해서 한꺼번이라도 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때 나는 분명 철이 없었다. 물론 형편도 무척이나 넉넉한 상황이라 아버지의 그런 사치가 나의 치료에 비하면, 나의 아픔에 비하면 응당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그 당연해 보이던 것들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조금씩 느껴지고 그 당시 나의 생각들이 무척이나 부끄럽기만 하다.

아프기 이전까지는 채소는 좋아하지 않고 항상 고기, 튀김 음식 같은 입맛에 쉽게 땡기는 음식에 길들여져 있었고 몸보신 위해 끓여준 곰탕이나 사골국 같은 국물은 전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치료 이후 전혀 기운이 없이 맨날 누워 있는 나를 위해 뭐라도 입맛에 맞을까 이것 저것 시도해 보고 우연히 설렁탕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의 어떤 음식과는 다르게 설렁탕은 한그릇 뚝딱 끝내고도 토하지도 않고 속이 불편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 이후  아버지는 서울 시내 유명한 설렁탕 집을 찾아내고 아침 시간 잠깐의 산책으로 치료로 뚱뚱해진 몸을 이끌고 움직이고 설렁탕 집에서 한끼 식사를 하면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하루 식사가 되었다.


료가 끝나고 그 이후에도 설렁탕이나 곰탕을 먹을 때 난 너무 맛있게 국물하나 남기지 않고 싹 비운다. 깨끗하게 하동관의 곰탕을 먹고 너무도 기쁜 포만감을 느낀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고깃국물 가득, 김치에 깍두기에 넣어 먹을 때마다 아버지가 얼마나 수많은 희생의 고리 안에서 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았는지 세삼 부끄러운 마음을 떠올린다. 아직도 그 마음에 보답할 준비조차 안되었는데 그렇게 나는 한그릇 깨끗하게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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