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28, 2012

영원에 기대는 삶, 기대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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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베르나르도의 '선택의 순간 영원을 생각하라' 라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영원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느끼기 힘들었고 그보다 당장의 삶에 치이는 순간의 임기응변이 더욱 더 가치있어 보이고 유용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영원을 생각하고 싶어도 선택의 순간에는 순간의 선택을 하곤 했다.


상을 정의롭게 바꾸어 보겠다고 뜻을 같이 하는 변호사 친구가 갑자기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회계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친구들은 다소 의아해 하며, 영세입주민, 노동자 등 약자의 대변을 주로 했기에 아마도 돈이 궁해져서 그런가 하는 농담 속에 친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영세 세입자들이 자립하는데 내가 회계사였다면 비록 법정에서 지더라도 자립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자격증을 따지 못하더라도 그런 부분을 공부하고 싶어 졌어" 

그리고 이어 이렇게 이야기했다.

"힘들고 가난하고 어려운 삶에 놓여 있다가 세상을 떠나면 정말 그 곳이 천국일까? 이 세상에서 힘들게 보낸 착한 영혼이라도 마음 편안하게 천상에서 살아보지 못했는데 천국에서 그 평안한 삶이 갑자기 얻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그들이 천국에 가도 어색하지 않게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웃으며 행복할 수 있는 경험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사람이 줄 수 있는 사랑과 평화의 방법을 찾아서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곧 내 미래의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대화가 떠올랐다.


《 나의 아이가 무엇을 하고 싶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

랑하는 아들(딸)아 너가 앞으로 되고 싶은 것이 '과학자'라고 그랬지?

그렇다면 과학자가 되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았니? 너가 과학자가 되는 것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너가 그 과학자라는 직업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면 좋겠다.

너가 과학자가 되기 위한 과정에서 어쩌면 다른 것이 더 끌려 계획을 바꾼다고 해도 난 너를 응원할 것이야. 그런데 무엇을 선택해도 너에게는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단다. 그건 무엇이 되는 것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란다. 같은 직업안에서도 너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너의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단다.

그래서 너가 얼마나 많이 벌고 얼마나 큰 명예를 얻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가 하는 일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너가 의사가 되어 누군가의 생명을 어렵게 구하고 힘들게 살릴 수 있다면 우선 그 살린 생명이 웃을 것이고 그 생명의 가족이 웃을 것이고 그 생명의 친구들이 웃을 것이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생명에 무관심하게 대해 그 생명의 숨이 사라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잃어버리겠니. 만약 너가 변호사가 되어 억울한 사람, 약자의 편에서 변론을 해서 그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힘을 얻고 억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웃을지 한번 상상해보렴. 그러나 어떤 경우엔 한 기업의 편에 서서 단지 몇 사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해고시키는 부당한 일을 정당하게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을거야. 그런 경우 몇명의 미소를 기대할 수 있겠니?

너가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단다. 더 중요한 것은 너가 그 직업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해 몇명의 미소를 기대할 수 있는지 항상 생각해보렴. 그 미소의 수만큼 너도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비록 너가 손해보고 힘든 상황이 되더라도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를 항상 응원할 것이다. 너로 인해 행복해진 사람들이 바로 너의 편이기 때문이다. 비록 몸은 힘들고 마음은 아프더라도 너로 인해 많은 영혼이 이 세상에서 웃을 있게 해주었기에 그들이 하늘 나라에 가서도 마음편히 웃을 수 있는 연습을 시켜준 것만으로도 넌 보상받을 것이야.

그 믿음을 간직하거라, 랑하는 아들(딸)아.   

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이 될래? 무엇이 되기 위해 그 정도 해서 되겠어라며 특별히 어떤 직업을 쟁취하기 위해서 학교도 도구가 되고 그리고 그 목적을 택하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쟁취할려고 한다. 삶의 목적은 직업 그자체일 뿐이다. 그래서 물건에만 사용하는 스펙(spec; specification)이라는 말을 청년들에게 아무런 의심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얻고 싶은 직업의 특징은 대부분 정량화가 가능한 재물과 명예의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세상에 태어나 어떤 존재가 되는지가 직업으로 판단된다면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결국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내가 가진 직업의 범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미소를 나의 직업을 통해 줄 수 있었는지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내 삶에서 선택의 순간, 영원을 생각하란 말구체적으로 몇명의 미소를 만들 수 있는지 계산하라는 말로 번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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