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6, 2012

심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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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Me? I'd rather not." He paused. "I don't have any ability to judge."

"Oh, that is not true," returned the quick reply, tinged now with a hint of sarcasm. "You have already proven yourself very capable, even in our short time together. And besides, you have judged many throughout your life. You have judged the actions and even the motivations of others, as if you somehow knew what those were in truth. You have judged the color of skin and body language and body odor. You have judged history and relationships. You have even judged the value of a person's life by the quality of your concept of beauty. By all accounts, you are quite well practiced in the activity." 


"네? 저요? 저는 그렇지 않은데요." 그는 말을 멈추었다 다시 말하였다. "나는 판단할 능력조차 가지지 않았는데요"

"정말 그게 사실일까요," 바로 대꾸하며 이제는 조금은 비꼬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이미 우리가 함께 있는 지금 이 짧은 순간에도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심지어는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통해 많은 판단을 해왔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심지어 얘기하지 않은 동기조차 판단해왔고 그런 당신의 판단은 항상 진실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당신은 상대방의 피부색, 몸짓 뿐만 아니라 체취까지도 판단했습니다. 당신은 상대방의 과거와 관계에 대해서도 판단했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심미적 기호를 통해 바라보며 한사람의 가치마저 판단해왔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해 보건데, 당신은 상당히 판단하는데 잘해왔음을 알 수 있지 않나요. - 윌리엄 영  「 오두막 」

동안 인간이 가지는 자신만의 기호에 따라서 남을 판단하고 그 판단에 따라서 사람의 가치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그 평가를 마치 사실인 듯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1. [ 당신의 확신 얼마나 확신하십니까?]
2. 사람의 얼굴을 읽지 마세요. ]
3. 양치기 소년과 늑대 - 동화 다시보기 ]
4. 이해심의 여유 ]

인간이 가지는 자의적, 기호적 판단에 대한 이야기와 그 판단이 얼마나 상대방을 상처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글을 써내려가고 싶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수많은 행동들을 한다. 그것은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한 하나의 보호 작용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렇지만 단 한가지 자신의 보호 작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가는 한가지의 행동이 있다. 바로 심판자로의 인간이다.

떤 이유에서든 우리는 판단을 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판단을 해야 이후의 결정에 대해서 자신이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불안감은 인간에게는 두려움이 되고 그 두려움은 항상 자신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반복적인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확실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심리적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인해 인간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불안한 부분에 대해서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런 '정보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인간의 불안전성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정확한 판단을 위한 사실에 근거한 사실 확인보다는 대부분은 부정확한 내용을 시작으로 판단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객관적'이라는 이유를 가지고 상당히 '주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기호적 판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가장 첫 단계이다.


그렇게 시작된 기호적 판단은 결국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고 그 판단을 확신하게 된다. 어떤 자신의 기호적 판단에서 시작된 확신은 상대방의 동기부터 시작해서 상대방을 원래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한 사람이 누군가의 판단에 의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시작은 '주관적 기호'에서 시작하고 그렇게 '원래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는 본격적으로 그 확신에 근거해 다른 사람에게 가쉽(gossip)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신의 가쉽이 얼마나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원래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판단의 근거는 바로 자신의 주관적 기호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그렇게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그 두려움이 만들어 내는 판단, 그 판단에 신중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여 결국 어떻게든 결론 내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에서 결국 누군가가 상처받더라도 처음의 그 두려움에 상상하는 자신이 받을 수 있을 상처에 비하면 괜찮을거라는 그 이기적인 두려움으로 결국 자신이 만들어 내는 상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된다.

군가를 비난하고 욕할때는 신을 대신한 심판자처럼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든 자신의 판단이 섣부른 것이었고 그로 인해 누군가 상처받고 억울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그 공정했던 심판자는 어느새 피해자라 불러달라 한다. 자신도 잘못된 사실을 듣고 그랬다고... 그러나 그 사이,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을 묵살할 수 있는 자신의 주관적 기호에 의해서 더욱 더 증폭했던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자들에게는 죄의식보다는 피해의식을 느끼고 미안하단 말조차 스스로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자신의 '주관적 기호'에 의해서 누군가 상처를 받게 될 때마다 혀를 1cm 씩 잘라버린다면 그렇게 쉽게 판단하며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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