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님은 처음에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신자가 아니라면 드리면 안되는데 형식을 모르는 것을 보니 혹시 신자가 아닌데 그냥 호기심에 받으러 오셨나 하는 마음에 부제님은 신자분에게 물어보았다.
"형제님, 세례받으셨나요?"
신자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리고 무척이나 수줍게 있다가 얼굴이 순간 붉게 변하고 말았다. 부제님은 이분이 신자가 아닌 것이 들켜 얼굴이 붉게 변했다 생각해서인지 조금은 단호한 어투로 다시 이야기했다.
"형제님, 세례받지 않으시면 성체를 모실 수 없으세요."
그때서야 신자분은 오른손을 왼손 아래로 조용히 내리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 세례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입니다."
오른손 위로 올라온 그의 왼손의 손가락은 절단되어 있는 것을 그때서야 볼 수 있었다.
세상엔 죄가 아니라도 숨기고 싶은 사실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밝히고 싶은 존재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부끄럽고 밝히기 힘든 무엇인가 있는 상대방을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의 시작은 결국 우리의 이해심의 한계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하며 그 모든 경우를 헤아리며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오해하며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너'란 이유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경우를 다 헤아려 보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심판자의 오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먼저 상대방을 믿으며, 상대방의 편이 되어서 시작하는 그 마음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지 않을까요. 이해심은 나의 욕심대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머리의 충분 조건이 아닌 소중한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슴의 필요조건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심에도 여유가 필요하다.
0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