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걸음도 침대 밖을 빠져 나갈 수 없는 중환자실은 편하다고 하기엔 너무 불편한 그런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중환자실에서 이틀만에 움직일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다른 환우들처럼 자리에서 모든 생리현상을 해결하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그런 특권이었다. 잠시라도 침대를 벗어나 저 앞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그 큰 기대에 언제 화장실을 간다고 이야기할까 고민을 하다가 점심 면회 시간 1시간 전 채혈을 하고 당당하게 나의 권리를 요구했다.
내가 화장실을 가기까지는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니었다. 나를 도와줄 남자 직원분도 호출해야 했고 귀와 코에 걸친 산소줄도 달고, 팔에 들어가는 수액 라인도 달고 거추장스럽긴 해도 뭐 몇일 누워 있었다고 이쯤이야 나 혼자서도 거뜬히 일어날 수 있을텐데 생각하고 자신있게 일어서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나의 그 확고했던 생각과는 달리 나도 모르게 휠체어 앞에서 다리에 힘 하나도 제대로 주지 못하고 푹 주저 앉고 말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순간 몇십여년 전 고등학교 시절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었다.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에서 몇일동안 있었는지 기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침대에 누워만 있었지만 남들과 다르게 수술 예후도 좋고 머리 속에는 침대에서 얼른 일어나서 혼자서 걸어다닐 수 있을거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데 간단한 외출이 허락되고 휠체어가 내 침대 옆에 놓여져 있었지만 난 혼자서 쉽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 휠체어가 뭐가 필요할까 생각했지만 그 확고했던 믿음과 달리 정말 너무도 힘없이 주저 앉아 버리는 내 사지를 보면서, 휠체어에 타면서 설명할 수 없는 심한 속상한 마음이 다가왔었다.
첫번째는 그렇게 강하게 믿고 있었던 내 상상에 대한 믿음이 거짓이구나 하는 두려움
두번째는 어쩌면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 모두를 다시 제대로 못할수있나 하는 두려움
그런데 그때 내 중환자실에서 내 바로 맞은편에 있던 2살 많은 형님이 있었다. 매일 신문과 잡지를 끊임없이 보고, 책을 손에서 놓치 않는... 그런 형님이었는데 내가 휠체어를 놔두고 혼자서 일어나려다 쓰러지는 모습, 그리고 쓰러지고 나서 얼굴에 번진 그 낙담 가득한 얼굴을 보았는지 나에게 다음 날 쪽지를 남겨주었다.
"좌절은 너가 무엇을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기분이 아니라 너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과 휠체어라는 희망이 있는데 그 희망을 볼 수 없을 때라고 생각해 이겨내렴"
몇일 후 그 형님은 중환자실에서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다시 들어온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 그 형님의 기억이 문득 떠오르고 기억할 수 있어서 그럭저럭 잘 참아낼 수 있었다. 비록 내 의지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해도 휠체어에 몸을 맡겨도 그것이 좌절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나의 희망이라는 내 동지라 생각하며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오래 전의 그 기억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어서 아닐까.
가끔...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 생각하지 못한 존재가 천사처럼 내 곁에서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순식간에 느낀 사랑처럼 깊고 진하게 남아있는 사랑도 없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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