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2, 2013

느림에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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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지난 기억 속에는 유독 진하게 남아 있는 시간들이 존재한다.

잔잔한 사랑의 아련한 기억도, 쓰라린 아픔의 이별도... 그 어떤 순간이든 인간이라면 여전히 진하게 남아 있는 그런 순간들이 존재해서 어떻게든 우리가 살아있음을 깨달게 해준다.

뜻하지 않은 심근경색(M.I.)과 당뇨(D.M.)이란 친구들이 찾아와 준 7월의 어느 날도 무척이나 날씨였다. 파란하늘, 그리고 수채화같은 구름의 농담(濃淡)이 아름답게 드리워진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나의 가슴은 왜그리도 아팠는지 타오르는 기관지, 무엇때문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앞으로 누워보고 뒤로 누워보고 어떤 방법으로도 통증은 가라앉지 않는 그런 날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간지 12시간도 안되어 정말 응급으로 막힌 심장혈관을 뚫어주는(?) 시술을 마치고 자정이 조금 넘긴 시간에 다시 고요한 중환자실에 부산떨며 돌아왔던 그날이 여전히 기억에 가득하다.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했던 그 중환자실... 오래전 긴 수술끝에 들어갔던 중환자실의 느낌과 다르지만 그래도 중환자실이 나에게 주는 그 슬픔의 강도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무게이다.


행히 시술을 마치고 가슴 통증은 사라졌지만 생각하지 못한, 원하지 않는 친구들의 방문은 나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만들었다. 잦은 체혈, 예전의 항암치료로 이미 숨어버린 혈관을 숨박꼭질하듯 찾아야내야 하는 순간마다 얼굴은 웃지만 항상 한번으로 끝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바랬고, 혈당 수치가 나오는 몇초동안 희망의 강도가 커지는 나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상상하지 못한 높은 혈당 수치, 그리고 그런 상태가 꽤 오랜 기간 유지되었다는 혈액검사 결과... 모든 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있었는데 가슴으로는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분극된 머리와 가슴을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원을 나오고 삶은 많이 변화되었다. 불규칙한 식사도 항상 규칙적으로 바꾸었고, 걷기 이외 하지 않던 운동도 정기적으로 해주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을 하였다. M.I. 와 D.M. 이란 친구가 오기 전,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나의 마음은 스트레스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계속 일상처럼 다가와서인지 그냥 너무도 흐린 먹구름의 연속같은 기억들 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점점 그 구름의 그늘 안에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생각조차 퇴화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너무도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매일 약을 먹는다는 것은 내가 좋아지게 해준다는 믿음보다는 내가 아픈 상태임을 일깨워주는 각성제이고  매일 먹는 식사마다 생각하며 골라 먹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인도 필요한 식습관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내 욕심을 항상 누르고 내 자신을 최면에 걸어야 하는 과정으로 다가오곤 했다.

년이 지나간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살아가던 세상이 내가 생각했던 세상과 조금은 다를 수 있다는 아픔에 대한 수용이 되었다는 것이 나에겐 가장 큰 변화이다. 무엇보다 나는...

느림에 기대어 보려고 한다. 

반년동안 일부러 일을 만들고, 외출을 하고, 최소 한시간 이상 이동해야 갈 수 있는 공간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노력했다.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생각 하고 무엇보다 나에게 다가온 나의 현재에 비판도, 좌절도 없이 느림의 속도도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것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앞의 방향이 나에게 바른 길이어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 매번 생각나도록 했다. 그리고 공간의 익숙함이 생각의 익숙함으로 다가올 때 나는 다른 곳을 찾아 옮기고... 그렇게 익숙해지지 않는 연습도 하고 있다.

그렇게 이동하는 시간동안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내가 스쳐지나갈 수 있는 사람들간의 온기를 느끼고, 내가 귀를 막아 듣지 못한 섬세한 사람들의 소리도 아무런 판단없이 들으려고 노력했다. 역시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가치없다 느끼는 그 작은 순간 모두 지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찰나이며 그 순간이 나를 매일 변화하게 만드는 작은 비료 알갱이 같은 존재임을 느끼며 쉽게 버릴 수 없음도 생각해보았다.

이해하는 것만큼 버릴 수 있는 것도 용기라는 것도 배우며... 때로는 이해받지 못함에 안타가워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흐르는 강물처럼 떠내려 보내는 것도 필요함을 느끼고 시간은 흘러갔던 것 같다.

느림에 기대어 보려고 한다. 

비록... 오늘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라고 해도, 내 앞에 장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해도 사실 지금의 느림이 결정적으로 나의 삶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빠름에 기대어 지금 이순간 내가 꼭 보아야 하는 그 순간의 영상을 내 속도에 지나치게 된다면 나의 삶은 그저 일그러진 형체들로 흐려진 피사체만 존재할 것이다.


우리의 기억이 머무는 짙은 그 시간은 항상 느리게 간다... 어쩌면 우리가 의식하는 시간이 느리게 가기 때문에 그 순간 우리 머리 속 필름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져 더욱 더 짙어지는지 모른다.

아픔때문이든, 기쁨때문이든 우리의 기억에 진하게 남은 순간은 우리에게 느리게 흘러간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느림에 기대어 보려고 한다. 

매 순간 소중한 의미를 찾으려면 진한 사진을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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