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anuary 28, 2013

글쓰기에 대한 소회(所懷) - 의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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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으로 글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단 한번도 글을 잘 쓴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 철자법도 맞도록 노력하고 가능한 쉬운 언어로 사용하려고 하다보면, 그 표현의 한계때문에 생각의 흐름이 막힐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쓴 글이 다시 바라볼 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인지 알아도 표현의 어색함과 부적절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을 수 있겠다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렇지만 트윗날리듯 순간의 생각을 표현하기 보다는 짧게는 몇일에 걸쳐, 길게는 몇달에 걸쳐 적어두었던 순간 순간의 메모들을 모아서 글을 적으려고 노력한다.


  •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단 의도가 첫번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내가 글로 표현하지 않은 메모의 흔적들은 곧 휘발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시간이 날때마다 조금은 긴 글이 되지만 정리하고 싶은 개인적 욕심이 더 강하다. 그래서 보통은 논문을 통해 그런 욕구를 표현하고 정리하였다. 그런데 나에게 두가지의 사건이 일어났다. 첫번째는 뜻하지 않게 젊은 나이에 심장혈관 하나(RCA)가 완전히 막혀서 급성심근경색이 오고 다른쪽 혈관 (LAD) 도 그리 좋지 않아서 두번에 걸친 시술을 받아야 했다. 그와 함께 찾아온 당뇨라는 병마는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느끼게 해주었다. 아직도 시술전 심장혈관조영술로 찍힌 나의 심장혈관 이미지를 본 순간의 두려움은 잊지 못한다. 정말 죽는 것은 한순간이구나 하는 그 두려움으로 진료실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가득 쏟아지고 말았다.
     
  • 두번째 사건은 2012년 대선이다. 4년전 용산 참사로 길거리로 내몰리던 사람들, 그리고 생존을 위해 싸우다 얼마나 뜨거운 화마의 불길 안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을 보면서 이유는 모르지만 심한 절망감에 빠졌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그리고 정말 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도 없는가 하는 좌절감이 가슴속에서 계속 자리잡고 있었고 그렇게 수많은 한 인간의 힘없는 외침이 서서히 사라져 갈 수 있다는 현실의 벽을 느낄 때 2012년 대선은 마치 세상을 확 바꾸어줄 하나의 돌파구처럼 큰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기대와 달랐다. 그런데 그 패배같았던 결과는 오히려 개인적인 인식의 범위와 방법이 얼마나 한계를 가지는가... 그리고 세상의 많은 정보와 지식을 사로잡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던 소위 '진보'의 가치가 오히려 우물안의 닫힘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아주 강한 뽕망치로 나의 머리를 타격했다. 

단은 서로 통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삶에 대한 한계성과 인식에 대한 한계성을 느끼는 순간, 그 한계를 넘을 수 있는 것은 비판받아도, 비난받아도, 직접 행동하고 직접 알리지 않는다면 그 삶과 인식의 한계성에 결국 남는 것이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나씩 메모장에 적어두었던 주제를 꺼내어 긴 글이지만 상황에 맞춰 생각의 흐름도 바꾸고 적어보았다.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다. 최소한 내 삶의 한계로 인해 어느 날 죽게 되어도 죽기 전 날까지 남긴 내 글들은 비록 부끄럽고 부족해도 삶의 이후 나를 대변할 그 불완전한 삶의 기록이 되어줄거라 믿었을 뿐이다.

여기에는... 광고도, 어떤 사적 이익도 바라지 않고 글을 올린다. 그것이 부족하고 부끄러워도 내 글을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그 어떤 것에도 원리가 숨어 있고 그 원리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길게 풀어 설명하기도 했고, 때로는 쓰고 싶은 이야기도 너무 감정에 치우친 내용이 되어 전체의 정보가 왜곡될까 걱정되어 넣지 않을 때도 많았다.


최근에 올린 [ 인터넷은 우리를 똑똑하게 해주는가? ] 는 인식의 한계성이라는 오랜동안의 생각을 인식의 시작, 발전, 정착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트윗터 상의 어떤 사용자는 "블로그의 몇개 글을 읽어보았지만 교조적이다. 해당 블로그 내용은 니콜라스 카라는 학자의 생각을 모티브로 쓴 글인듯..." 이란 내용으로 평가를 해주었다. 두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첫번째는 교조적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런 마음으로 쓰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는 모티브가 되었다는 학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그런 학자였다는 사실이었다. 단순히 인터넷이 인간을 멍청하게 한다는 현상에 대한 언급이 전부라고 생각했지, 글의 내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은 글을 조금만 관심있게 읽어본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생각하지 못한 '의도'를 찾아내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나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떤 행동이든 의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고 싶었던 두번째 동기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의도'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었다. 합리성과 정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함부로 이야기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때로는 그것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합리적 판단이 얼마나 큰 오해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서 불신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글을 써오다 2012년 대선을 통해서 어쩌면 그런 불신의 문제는 결국 인간의 지식, 논리 그 시작부터 잘못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주제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인식의 한계성'으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왜 합리적이고 지적인 인간의 집합은 비합리적이고 감정적 오해와 대립을 만들어 내는지 그 현상이 너무도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한계성의 실마리를 '상대방의 의도를 판단하려 하는가?' 라는 주제를 통해 흐름을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에 대한 한계성... 먼 이야기같았던 죽음이 어느 순간 다가올 수 있다는 두려움과
인식에 대한 한계성... 내가 생각한 세상은 나와는 다르게 돌아간다는 공포로 인해, 

무엇인가 남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생각했을 뿐이고,
무엇인가 잊었던 생각의 추억을 꺼내어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의도들이다. 이제 꿈같은 요양 시간들이 지나고 다시 다른 공간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시작하게 되겠지만 글쓰기는 부족하고 부끄러워도 계속 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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