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18, 2013

어느날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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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에서 이제 자유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시술받은 부위는 불편하고 심장도 그리 편하게 뛰는 것 같지 않아서 내내 불안하다. 그리고 자주 피를 뽑아야 해서 의연하려고 해도 항상 주사 바늘의 두려움은 매번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병실에 누워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편안한 시간과 공간이다. 다행히 창밖으로 보이는 창밖 풍경은 나에게 익숙한 풍경이라 새로운 것에 대한 관찰보다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답답하고 계속 컴퓨터 앞에서 앉아 있다가 지겨워지면 찾아가던 음대의 낮은 언덕에서 바라보던 그 풍경이 그대로 다가왔다. 편하게 다가왔다.

뜻하지 않게 다가온 당뇨는 사실 나에게 그리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심장이 아파서 응급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당뇨인줄도 모르고 그렇게 지낼만큼 생활에 큰 아픔도 불편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프기 전 시간동안 가슴앓이하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아픔 속에서 질환의 아픔도 그렇게 쉽게 묻혀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차라리 병실은 시간도 공간도 따뜻한 공기의 보호를 받고 있어 마치 에어 쿠션으로 감싸진 듯한 그런 느낌들의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간호사의 검사 일정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큰 한숨을 지어내고 말았다. 전혀 불편하지도 아프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 흐름 속에서 만약... 이라는 가정을 붙이며 여러가지 불안을 좋지 못한 상상으로 가득 채웠다. 그날 받아야 했던 검사는 안과에 가서 당뇨성 망막변증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큰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안감이 없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큰 한숨이 나를 대변해주듯 불연듯 슬픈 생각과 상상으로 방금 전까지도 나를 보호하고 있던 에어 쿠션이 나를 더욱 압박하는 느낌으로 가득해졌다. 다른 검사하러 갈때는 조금은 불편해도 걸어서 갔었는데 나도 모르게 힘도 숨도 희미해지며 결국 휠체어를 타지 않으면 안되었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너무 높은 당 수치에 혹시 이미 진행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검사가 끝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렇게 주르르 흐르고 말았다.


원하고 몇일이 지난 어느날... 혼자 외출을 나가 버스를 타는데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그 햇살이 너무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햇살에 생명이 존재하듯 춤추는 그 실루엣 그리고 그 햇살에도 명암이 존재한다는 그 뚜렷한 모습... 그리고 그 햇살이 뭉글 뭉글 내 눈물에 빛나고 있었다. 그 어떤 수정이 낼 수 있는 색의 다양함을 여전히 기억한다. 요즘은 그날 햇살처럼 좀처럼 햇살을 구경하기 힘들다. 날씨도 안좋고 가끔 햇살이 비치는 순간에 느끼는 그 햇살은 예전에 만난 햇살과 다른 햇살임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냥 스쳐 지날 갈 수 있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빛에 보이는 피사체들... 안과 검사이후 내가 눈을 뜨면 무엇인가 볼 수 있음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햇살에 비치는 그 모든 피사체... 그리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그 일상의 마주함이 결국 얼마나 당연하면서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지... 내가 바라볼 수 있다는 그 신비가 마치 매 순간 매 초마다 신이 주는 선물과 같은 기적이라 느껴진다.

리가 세상과 이야기하는 모든 통로는 열려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귀도... 우리의 입도... 우리의 눈도... 그리고 우리의 맘도... 무엇인가 열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신비이다. 단순히 생물학적, 물리학적 논리를 떠나 내가 지금 무엇인가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너무도 벅찬 사실이다.

Cartoon by Angelo Lopez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 당신께서는 “지각없이 내 뜻을 가리는 이자는 누구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로워 알지 못하는 일들을 저는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지껄였습니다. 당신께서는 “이제 들어라. 내가 말하겠다. 너에게 물을 터이니 대답하여라.” 하셨습니다.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 (욥 42, 2-6) 

I know that you can do all things, and that no purpose of yours can be hindered. “Who is this who obscures counsel with ignorance?” I have spoken but did not understand; things too marvelous for me, which I did not know. “Listen, and I will speak; I will question you, and you tell me the answers.” By hearsay I had heard of you, but now my eye has seen you. Therefore I disown what I have said, and repent in dust and ashes. (Job 42: 2-6) 

망의 순간은 기적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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