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25, 2013

황금알을 낳는 거위 ─ 동화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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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어리석음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화를 통해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짧은 생각들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솝우화 (Aesop's Fables) 혹은 아이소피카(Aesopica) 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그 기원과 정작 이솝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다. 원 저작자는 고대 그리스의 노예였던 아이소포스(Αἴσωπος, Aesop)이 지은 우화들의 모음을 이야기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토끼와 거북이부터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비롯해 양치기 소녀와 늑대도 이솝의 우화이다.


우화는 사람이 아닌 동물과 같은 대상을 통해서 인간에게 교훈을 주는 구조를 가진 짧은 이야기로 이야기는 짧기 때문에 전달되기 편하고 내용이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직접적인 교훈을 주지 않아도 내용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는지 정확하게 전달되는 특징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이솝우화의 특징은 간단한 상황 설명과 결과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무엇인지 바로 알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이솝우화 중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다. 이솝우화의 한 부분이지만 시대의 배경과 전해지는 상황에 따라서 이야기의 내용은 배경은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노예였던 아이소피카의 원 내용과 조금은 다르게 가끔 이야기의 배경은 프랑스의 농부, 한적한 시골 마을이 되기도 하지만 원 이야기의 내용은 헤르메스 신에게 총애를 받아 황금알을 하루에 하나씩 낳는 거위를 선물 받은 그리스 배경의 농부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배경이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연히 거위를 얻게 되었는데 (혹은 주변 농부의 거위를 관찰하다가) 하루에 하나씩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의구심은 많았지만 매일 관찰하며 낳는 황금알이 진짜임을 알게 되었고 이에 큰 행운을 얻은 것이라 기뻐했지만 농부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매일 황금알을 낳는다면 거위 배속에는 수많은 황금알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고 거위를 죽여 배를 갈랐지만 결국 배속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결국 매일 얻을 수 있었던 황금알 마저도 얻을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나친 인간의 욕심은 찾아온 행운 마저도 파괴할 수 있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fortune; 재산) 에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아주 간단하고 명확한 교훈을 준다. 추가적으로 황금알에 너무 집중해서 황금알이 만들어 지는 원리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단편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보았던 농부의 무지함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엉뚱한 짓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교훈도 우리에게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구조를 현대 자본주의에 적용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욕심은 어디에서 시작하나 

간의 욕심은 어디에서 시작하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만난 농부는 어느 순간 더 많은 황금알이 거위 배속에 있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인간의 욕심은 분명 합리적인 사고보다는 욕심에 빠져 제대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한다. 조금만 침착하게 생각한다면 농부는 자신이 배를 갈랐을 때, 가르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수입에 대해서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금 경제적인 의미로 살펴본다면, 거위는 자신에게 주기적으로 (매일) 황금알을 주는 상당히 괜찮은 수입원이다. 그리고 고정적 수입을 제공해준다. 만약 농부가 배를 갈라 많은 양의 황금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해도 그 양은 한정되고 고정적 수입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아마도 농부는 당장 큰 유동자산 (목돈) 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생산의 주체가 바로 거위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왜 농부는 욕심이 생겼을까? 황금알 정도면 어떤 시대 상황이라도 상당히 안정적 생활을 보장할 수 있었는데 왜 과욕을 부렸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황금이라는 재물을 보았기 때문에 더 욕심이 커진 것인지, 아니면 농부가 원래 욕심 가득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처럼 욕심의 시작은 인간을 생각처럼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거의 중요한 생산 주체였던 거위를 죽이게 되어 더이상 생산적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따라서 인간의 욕심은 당장의 재물과 명예 등과 같이 자신을 꾸며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 지속적 생산 주체가 될 수 있는 근본마저도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마는 것이다.

단순히 이런 욕심의 결과가 아이들에게 욕심의 어리석음을 보여주기 위한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이 되어야 한다. 즉, 인간의 욕심은 점점 복잡하고 인지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교묘하게 변화하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더 많은 탐욕을 통해서 수많은 거위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욕심은 파괴와 폭력을 쉽게 만든다 

[ 파괴와 폭력에 대해서 - 세상을 보는 방법 ] 을 통해서 이미 파괴와 폭력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파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를 제거하는 행동
폭력은 존재의 대상을 목적이 아닌 수단(기능)으로 다루는 행위


라고 이야기했다. 농부에게 거위는 자신의 문제 (경제적 욕심, 경제적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위를 죽였지만 문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거위가 존재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농부는 이 또한 멍청한, 다시 말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조차 하지 못할 폭력을 저지른 것이다. 그 결과 거위는 파괴되었다. 이처럼 욕심, 인간의 욕망은 어리석은 폭력을 만들어 낸다. 결국 자신의 문제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에 최면 걸리듯 행동하고 그렇게 파괴의 결과만 만들어내는 최악의 경우를 쉽게 만들어 낸다. 욕심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욕심의 결과는 상대적으로 알기 쉽다. 인간의 욕심이 인간의 어리석음과 만날 때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은 파괴를 만들 가능성만 높아진다.

갑-을 관계의 자본주의 

소위 '갑질(갑의 횡포)'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원래 갑(甲) / 을(乙) 이란 계약서 등의 문서 상 구별을 위해서 순서를 나타내는 것인데 어느새 주도권을 잡고 있는 집단 혹은 개인이 갑(甲) 그리고 그 주도권에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대상이 차례로 을(乙) / 병(丙) / 정(丁) 으로 구별되게 되었다. 오래전부터 이런 계약 관계 상에서의 불공정 , 불평등에 대해서는 호소되었지만, 소수의 외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가 모 유업의 대리점 관리자와 대리점 주의 녹음된 전화 통화 내용이 공개되며 거의 열풍과 같은 관심을 끌게 되었다. 불매운동과 같은 성난 소비자들의 반응도 나타났지만 한달이 조금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세상 속으로 묻혀 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심이 되는 문제는 바로 본사에서 각 대리점으로 밀어내는 물량, 즉 대리점은 경제 원리에 의하면 대리점이 관리하는 지역 주민들의 수요에 따라서 제품을 주문하고 그에 맞춰 본사 / 공장은 제품을 조달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생산된 제품을 무조건 떠 밀어 대리점에서 할당량을 다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수요도 없는 물건이지만 본사 / 공장에서 보낸 물건들을 떠 맡아야 하고 만약 수요가 없어 팔리지 않은 물건도 결국 대리점이 그 손해를 떠 맡아야 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결국 본사 입장에서는 대리점에 밀어 낸 물량은 모두 수입이 되지만 대리점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면 대리점만 손해를 보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런 구조는 유제품 유통 업체만의 문제는 아니다. 주류, 통신 등 고객들 가까이 접근해 영업해야 하는 유통 구조를 가지는 거의 대부분의 산업에서 할당과 밀어내기 식의 영업을 통해서 결국 회사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경제적 손실을 통해서 본사의 경제적 이익은 보장해왔던 것이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생각해보자. 물론 유통 대리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다 생산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 주체는 결국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집단이다. 그리고 그 집단도 그 생산활동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얻게 되는 것이다. 즉, 대리점의 생산 활동을 통해서 본사또한 결국 지속적 생산 이익을 얻게 되는 가장 큰 수혜자라는 점이다. 개인적 추측으로 거위도 황금알을 낳음으로 인해 자신에게 생리적인 이득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거위에게는 하나의 노폐물과 같은 황금을 모아 모아서 마치 신장과 같은 기관에서 농축시켜 황금알이라는 형태로 배출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이야기를 사실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자신의 생명 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일을 했던 것이고 중요한 것은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거위의 입장에서 삶의 공간을 제공해 준 농부에게 고마워 하며 자신의 배설물을 아낌없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농부의 가장 큰 경제 생산 주체는 바로 거위가 되어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리점을 압박하여, 대리점은 삶의 기반을 점점 잃어가며 빚에 시달리게 되는데 본사는 생산 주체인 대리점에서 얻을 것을 다 얻어내는 것이다.

런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현재의 유통 대리점의 가장 큰 차이점을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황금알은 아니라도 최소한 경제 주체로 생산 활동을 하는 대리점이 많다는 것이다. 즉, 대리점이 횡포에 시달릴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황금알이 아니라고 믿는 본사에 있었다는 점이다. 대리점주들은 본사 입장에서 마음에 안 들면 바꿔버리면 되는 대체 가능한 대상이라 보았을 것이다. 즉, 언제든지 대리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에 본사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대리점 따위는 그냥 계약 파기해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리점을 하지 못하게 하면 가장 빠른 해결책이라 믿었을 것이다. 즉, 농부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 한 마리가 아닌 그냥 일반 거위 알을 낳는 많은 거위들이 있었다면 농부는 그 거위들이 낳는 알에 욕심을 내기 보다는 거위의 모든 것, 예를 들어 거위 고기, 깃털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었을 것이다. 결국 인간의 욕심은 거위와 나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위가 나에게 줄 수 있는 이득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대량 생산을 통한 욕망의 극대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현대 생산 구조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대량 생산이다. 대량 생산은 집중화된 생산력을 필요했지만 동시에 광범위한 소비력을 요구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은 전문화되고 이를 통해 대량 생산된 제품들은 유통을 통해서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었다. 단순히 공산품 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업적 생산 뿐만 아니라 농업, 어업, 축산업 등 자연에서 생산하는 경우에도 대량 생산이 주축이 되었고 소고기, 돼지고기와 같이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축산품은 이제 공장식 축산 시스템을 통해서 동물적 본능을 제거된 체 단지 인간에게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사육된다. 어업도 별로 다르지 않다. 무한히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던 생선들도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특히 산란기를 포함하여 쉬지 않기 때문에 개체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특정 어종에 대한 수요가 집중되어 멸종의 위기에 놓인 어종과 공격적 조업을 통해 다양한 어류들이 필요하지도 않지만 같이 포획되어 버려지는 경우도 많다. 가장 잔인한 인간의 활동 중 하나는 바로 상어 지느러미 요리를 먹기 위해 상어 지느러미만 잘라내고 나머지 상어는 그대로 바다에 버리는 경우이다.


농업을 잠시 살펴보자. 인간의 농업은 이제 일부 품종을 위해서 자연에서 그대로 자라는 다양한 종은 사라지게 된다. 대부분 인류의 농산물은 밀, 옥수수, 쌀, 콩 등으로 제한되게 되고 종의 다양성도 심하게 제한되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농산물은 매년 종자 회사에서 종자를 구매해서 농사를 해야 하는데 그 중에는 자연이 만들어 낸 종자보다는 병충해에 강한 유전자 조작된 농산물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런 대량 생산적 농업을 위해서 대규모 산림, 목초 지역이 모두 개간되어 모두 생산 지역으로 바뀌게 되고 우리의 땅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는 토종 농산물들은 이런 대량 생산 품종에 의해 점점 사라지게 된다. 이는 유전적으로 종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학문적 문제도 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병충해에 강한, 예를 들어 옥수수가 전세계 생산의 90%이상 생산되는 경우 알려지지 않은 병충해가 나타난다면 효과적으로 90% 이상의 옥수수가 병충해에 파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즉, 단순히 병충해에 강력한 농산물이라고 종자를 판매하고 재배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이란 조건이고 알려지지 않은 병충해가 나타나면 거의 대부분의 옥수수는 병들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도 종의 유전적 다양성은 중요하다.


사실 가장 주목해야 하고 가장 현실적으로 문제가 보이는 부분이 축산업이다. 특히 소고기, 돼지고기의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형 생산은 비 위생적인 대규모 사육 환경이나 잔인한 도축 과정을 떠나 추가적으로 농업에 커다란 문제를 만들어 낸다. 소나 돼지는 초식동물이고 기본적으로 풀을 통해서 에너지원을 축적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풀을 먹는 초식동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필요한 풀도 막대하다는 것을 먹이사슬의 원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소, 돼지의 대량생산을 위해서 사료마저도 대량생산을 하게 되고 지구의 한쪽에서는 먹을 식량 (곡물) 조차 없어 굶어 죽는데 다른 한쪽은 자신들의 미식을 해결하기 위해 소, 돼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사료를 만들어 낸다. 이런 사료를 만들기 위해서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는 우림 지역이나 산림 지역을 파괴하여 경작하고 점점 근본적인 자연 환경을 파괴하기 이른다.

우리 시대의 황금알을 생각한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우리 시대에 주는 생각해볼 가치는 무엇일까? 아마도 갑(甲)질을 열심히 해서 을(乙)들의 고혈을 빨아 먹는 욕심 덩어리 인간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생긴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매일 황금알을 받으면서 살 것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전혀 본질조차 생각하지 않는 멍청함이 존재한다. 바로 황금알이 낳는 거위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황금알이 아닌 '낳는' 이란 점이다. 경제 활동은 생산 주체의 생산 활동이 근본이다. 즉, 생산 주체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생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농부가 거위의 배를 가를 때 가졌던 기대는 자신에게 커다란 부를 제공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그런데 그 커다란 부의 원천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요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즉, 세상의 부는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닌 생산 주체의 생산 활동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대리점에 횡포를 부린 본사의 생각도 그런 경제의 기본 원리 조차 파악하지 못한 부적격의 경영자이다. 즉, 회사의 생산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도 하지 않고 경제 주체를 제거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누가 생산 주체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회사의 이익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장 눈에 보이는 공장의 생산만이 생산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불교의 수도자들이 식사 전에 외우는 공양계가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내 덕행으로는 받기 부끄럽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 있고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깃들었으니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고치는 약으로 바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유통은 단순히 공장에서 생산을 한다고 해서 이익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회사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 공장의 생산 뿐만 아니라 유통을 위한 대리점의 활동이 필수적이다. 갑-을 관계에 의해 횡포를 부린 그 모습이 도덕적 문제를 보이기도 했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회사의 이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경영자들이 경영을 했다는 점에서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공양계에서 말하듯 자신이 지금 먹는 밥 한톨, 물 한방울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지 한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음식을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경영자들도 자신의 이익을 누가 만들어 주는지 진정한 생산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도 못하기에 그들에 대한 고마움은 커녕 그들을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겼다는 점에 더욱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현명한 자본가라면 '황금알'을 낳지 않는다면 황금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간단한 원리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황금알에 눈이 멀어 '낳는' 생산 활동을 하는 수많은 주체의 배를 가른다면 결국 그들의 이익도 멈추게 될 것이다.

황금알을 찾아서... 

농부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닌 그냥 수많은 거위들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황금알이 없기 때문에 농부는 실망해야 하는 것인가? 만약 현명한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농부는 황금알이 아닌 '낳는'에 집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단지 생산이 미덕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대량 생산은 분명 나쁜 활동은 아닐 것이다. 대량 생산으로 우림, 산림이 파괴되고, 공장형 축산으로 소고기, 돼지고기의 생산이 많아져 사람들은 대량의 고기를 소비할 수 있게 되고 원하는 수산물을 마음껏 먹게 되어 우리의 식욕을 충족 시켜준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서 '낳는'다는 생산 활동이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낳을 수 있도록 거위가 건강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지 황금알이 아니라도 해도 일반 거위 알을 낳는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낳을 수 있는 거위'가 중요하다. 우리 시대에 '낳을 수 있는 거위'는 무엇을 뜻할까? 어렵지 않게 그 낳을 수 있는 거위는 바로 '자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생산한다는 것에 대해서 인간은 별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활동은 생산적 활동이라고 믿었다. 만약 죽지 않을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조금씩 가른다면, 거위는 언젠가 죽게 될 것이다. 다시 복원하지 못하는 상태로 거위가 생명을 잃어버리면 더 이상 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낳을 수도 없게 된다.


인간은 당장 거위가 죽지 않고 아직까지 황금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거위의 존재 따위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다행히 그 거위는 상대적으로 건강하지만 하루는 깃털이 뽑히고, 하루는 상처입고, 그렇게 매일 상처만 입는다면 언젠가 거위는 지쳐 죽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연도 더 이상 회복 될 수 없는 상태까지 된다면 더 이상 생명의 활동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의 공양계를 조금 더 생각하면 우리의 모든 생산은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그 근원적인 질문에 도달할 수 있다. 쌀 한톨 만들어 내는데 농부의 손길도 필요했지만, 수확하기 전까지 햇빛이 필요했고 물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 모든 성장 이전 한톨의 씨앗으로 시작했고 그 한톨의 씨앗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항상 '자연'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근본이 되는 자연을 파괴하고 어떻게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대량 생산의 이 시대 배를 갈라 더 많은 황금알을 찾는 인간의 모습에서 바로 자연을 파괴해 더 많은 생산을 해보려는 인간의 욕심을 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결책은 오히려 간단하게 대량 생산을 줄이려는 인간의 노력에서 찾아보고 싶다. 마치 매일 하나의 황금알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욕심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단순히 욕심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라 거위가 낳을 수 있는 능력만큼 하루에 하나의 황금알만 취한 것처럼 자연이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만큼 기다리고 인내하며 생산하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즉, 자연이 만들 수 있는 능력의 범위를 지키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매일 황금알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매일 얻는 보람도 있고 그 보람이 거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과욕을 부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마음과 대조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본사가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대리점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생활조차 어려워지도록 만드는 것도 결국 자연을 파괴하는 범위까지 대량 생산하려는 인간의 욕심과 통한다.


아마도 대리점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며 본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영자도 이솝우화를 자식들에게 들려주며 "과욕을 부리면..." 라고 교훈을 말해 줄 것이다. 우화가 더이상 우화(愚話)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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