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뜨거워 진다면 사용자는 좋아할까? 싫어할까?
대부분 사용자들은 핸드폰이 뜨거워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고 인지하기 보다는 무엇인가 이상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의 가장 큰 이유는 '정상 상태'에 대한 기대값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 상태에서 핸드폰은 열이 조금 날 수 있다고 해도 뜨거운 것은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다. 즉, 정상 상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실제 어떤 이유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증상이 내 기대값의 범위에 속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런 감각적 상식은 때로는 참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 뜨겁지 않은 핸드폰을 더 선호하고 이를 정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핸드폰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핸드폰 기기 표면으로 열을 빼내지 못한다면 기기가 작동하는 동안 발생하는 열들은 핸드폰 기기 자체가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핸드폰이 뜨거워지는 것은 그만큼 핸드폰은 열을 잘 방출해 기기가 열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생각도 기술, 공학적 발달로 인간이 정상 범위의 열만을 느낄 수 있도록 발열을 최소화하고 열의 방출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지 않도록 설계를 잘 한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제품 설계의 가장 현실적 장벽은 공학 관점에서의 설계와 소비자 관점에서의 설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공학적 문제를 모두 해결하면서 소비자의 심미적 욕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거나 그 자체가 설계의 큰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제품 생산 기업은 전략을 잘 세워야 할 것이다. 소비자에게 제품의 공학적 우수성을 알리고 조금은 투박한 외형을 참아달라고 하는 방법이나, 소비자의 심미적 욕구를 최대한 자극시키지만 공학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 문제점을 포함하는 방법이다. 물론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전략을 찾을 수 있다면 좋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의외로 비용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핸드폰의 발열 문제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 제품의 내재적 특징은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소비자에게 눈에 띄지 않는 경우에는 소비자의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많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 접근은 심미적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공학적 완성도까지 동시에 만족시키는 일이 필요하지만 소비자의 심미적 자극이 최대한 반응할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비자의 심미적 자극을 극대화하려는 산업 분야는 어떤 분야일까? 전자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떠올리기 쉽지만 의외로 생각해봐야 하는 분야는 바로 농업 분야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면 자연의 생산품들은 썩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정상적이라면 모든 농산물은 모양이 제각각이고 때로는 벌레와 바람과 같은 외부적 충격에 상처받고 일그러져 있어야 정상이다. 특히 과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채소와 과일들을 살펴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심미적으로 끌리지 않으면 소위 '상품 가치'가 사라져 소비자는 외면하고 구매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과를 생각하면 모든 사과가 때깔좋고 상처하나 없는 제품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상품가치가 좋은 제품은 자연이 자연스럽게 만든 사과의 영양소와 구성 등이 동일할 수 있을까? 사과의 상품가치를 따지는 방법에는 다른 방법이 있다. 바로 당도라는 개념이다. 인간에게 맛있는 제품을 선전하기 위해서 사과의 당도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렇게 인간이 추구하는 욕심의 항목에 맞춰 사과는 개량되고 그 안에서도 잘 가꾸어지고 상처하나 없는 깨끗한 사과만이 상품으로 재배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재배의 방법을 위해서 농업은 발전해 왔다. 결국 농업의 목표는 자연에서 인간의 욕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제품을 얼마나 생산력 있게 만들어 내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혹자는 특정 영양 성분을 강화한 농산품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영양 성분이 강화된 제품... 등과 같이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 성분을 더 포함하고 있는 농산품을 생각한다. 이런 것은 농산품, 수산품 등 자연에서 재배해야 하는 제품 등을 우리에게 더 필요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 성분을 강화한다고 해서 정말 얼마나 증가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자연의 생명은 정직하다. 모든 생명체는 내부적으로 과한 대사물질은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부족하면 합성하고 이마저도 안되면 외부에서 섭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으로 어떤 특정 성분을 증가시켰다는 것은 생명체 자체의 불균형을 만들어 그것을 우리의 욕심으로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결국 자연의 생산품을 지배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대상으로 보았을 뿐, 자연에서 살아 숨쉬는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은 결과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말해 어떤 특정 성분을 강화한다고 해도 몇배의 수준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더 많이 팔고 기능성을 강조해 소비자의 심미적 이끌림을 만들기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조금은 심각하게 생각해볼 대상이 있다. 바로 소고기이다. [ 대량 생산의 불편함 ] 에 대해서 다루었지만 소고기는 소비자에게 공급될 때 소가 직접 우리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고기의 형태와 육질의 선호도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마블링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자연 상태의 소에게 마블링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블링은 소의 살코기 사이 사이 잘 스며들어 간 지방 조직이라고 보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다. 좋은 마블링, 더 정확한 표현은 소비자의 선호도를 따르는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서 소는 목초지에서 자유롭게 운동하고 풀을 뜯어 먹는 생명체가 아니라 갇힌 상태에서 덜 움직이고 옥수수 사료가 주 원료인 사료를 먹어야만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린다. 인간으로 바라보면 지방 세포들이 많아지고 그렇기 위해 혈관은 콜레스테롤이 높아지고 비만 상태의 소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소들은 인간의 식재료가 되기 위해 생명의 가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소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먹는 소고기가 자유로운 목초지에서 뛰놀면서 소다운 삶을 살다가 인간에게 도축당하기 전까지 그들만의 행복한 일생(?)을 살던 소가 아닌 공장형 목축 시스템에 꼼짝하지 못하고 비만 상태에서 스트레스 가득 받은 소를 섭취한다는 사실이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고기를 먹긴 하지만 가능한 이런 부자연스러운 생산 시스템을 통해 나온 제품들의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기를 가득 쌓아 두고 불판에 구워 먹는 것을 자제하고 가능한 지방이 적은 소고기로 소고기 생산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면 목초지에서 자란 소고기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상당히 불편한 것도 사실이지만 소고기를 심하게 먹고 싶다는 욕심을 줄이기 시작하고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강원도 마을에서 농사를 하는 집에 몇일 머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적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자연이 주는 다양한 식재료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그때 이별 선물로 받았던 겨우내 말린 취나물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요즘도 생 취나물이 나오는 계절이 오면 된장에 살짝 묻힌 취나물의 그 향과 맛, 그리고 씹는 느낌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산 속에서 나오는 다양한 나물들의 향연은 정말 감미롭고 환상적인 맛이다. 이런 맛에 한번 이끌리면서 자연에서 나오는 선물들이 절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의 제철에 맞는 식재료들은 인내를 통해 얻어지는 정말 오랜 동안 만들어지는 선물같은 존재이다. 이런 다양한 식재료를 발견하고 유통시키는 것은 소고기를 비롯한 일부 식재료에 대한 편중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의 대량 생산은 그런 기다림의 조미료를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언제나 쉽게 인간의 욕망에 의해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철이 아니라도 사과는 가스처리 (에틸렌 처리) 를 통해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과육의 특징을 알고 이를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에틸렌 처리를 하면 다른 채소나 과일들은 오히려 변해버리게 된다. 자연 상태라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생산 가치가 떨어져 더 이상 재배하지 않거나 기르지 않는 재료들은 거의 대부분 수입한다. 수입을 위해서 많은 식재료들은 보존 처리를 하게 된다. 소비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핸드폰이 열이 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열을 처리하지 못해 핸드폰 내부는 열에 의해 망가지는 것과 같이 보존 처리되고 상품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식재료는 인간이 원하지 않는 많은 독성 성분이나 변화된 성질을 감수해야만 한다.
소고기의 마블링, 깔끔하고 구멍하나 없는 채소, 윤기 흐르는 늙지 않는 과일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그런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등은 이상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도시 중에는 도시 농업에 눈을 뜨는 곳이 많다. 대량 생산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 가치를 강조하는 식재료가 아닌 생산지가 도시 인근으로 도시에서 빠르게 유통되고 빠르게 소비되는 그런 구조이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유리할 수도 불리할 수도 있다. 불리한 점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도 과밀화 되어 그런 시스템을 도입하기에는 이미 대량이 필요한 지역이 되었다는 점이고 유리한 점이라면 서울을 제외한다면 그런 자급 경제 구조를 만드는데 별 부담이 안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우리나라 식재료의 다양한 접근도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나물은 그 어떤 나라의 접근법과는 다르다. 그리고 계절과 지역의 특징을 잘 살리는 지역의 음식이 잘 발달하였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인의 밥상(KBS)을 보면 우리나라의 식생활은 만족할 줄 알아 욕심내지 않으며, 과욕하지 않아 남는 것이 없는 너무도 이상적인 시스템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현대 사회의 식생활에 도입하기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 대량 소비를 조금만 줄이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지역 공동체의 지역 생산, 지역 소비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생명에 대한 첫번째 단추는 자연의 생산품을 인간이 어떻게 대하는가의 태도이다. 심미적 욕망이 너무 강해져 이제는 인간은 기본적 활동을 위한 식생활이 아닌 욕심많은 포식자로 대량 소비하는 하나의 소비적 동물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먹거리에 대한 상위 포식자의 무분별한 조작과 생산은 결국 포식자의 파괴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도 익숙해서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움의 교훈은 잊어버린 체 살아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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