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 2014

열매를 맺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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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아래 과일 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같은 해 같은 봄을 지나면서 과일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였지만 언덕 쪽의 과실과 평야 쪽의 과실은 항상 다른 모습이었다.

바람이 휘몰아 치고 햇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언덕 쪽 과실은 항상 바람에 상처받고 언덕에서 내려온 새들의 괴롭힘으로 힘들게 보내고, 하루 중 제대로 햇빛을 받지 못해 어느새 바람과 새들에 시달리다 보면 하루가 저물고 혼자 아픔과 상처를 살피며 마무리하는 일상이었다. 

햇살이 가득한 평야 쪽의 과실은 적당한 바람과 무엇보다 과수원 주인의 관심어린 보살핌으로 보기 좋은 과실로 상처하나 없이 보호받고 자라났다. 혹시나 작은 상처하나라도 날까 종이로 곱게 싸여 자라났고 더 크게 자라도록 같은 가지의 다른 과실들도 모두 잘라내어 버렸다. 

언덕의 과실은 항상 슬퍼했다. 매일 상처받아 아프고, 슬퍼하며 외롭다.
평야의 과실은 항상 편안했다. 매일 걱정없이 풍요로운 햇살을 즐긴다. 

그렇게 언덕의 과실은 항상 슬픔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지만,
반대로 평야의 과실은 항상 기쁨에 눈물이 생길 날이 없었다. 


어느덧 가을이 다가왔다. 과실은 익어 어느새 과일이 되었다.
언덕의 과실은 상처깊고, 못생긴 과일이 되어 버렸다.
평야의 과실은 보기좋고, 잘생긴 과일이 되어 있었다. 


과수원 주인은 잘 익은 평야의 과일을 조심스럽게 수확하여 시장에 팔았다. 그러나 상처에 울퉁불퉁해진 언덕의 과일은 시장에 팔 수 없기에 그대로 놔두었다. 시장에 팔린 평야의 과일은 보기좋은 과일이 되어 누군가의 후식으로, 식재료로 쓰이게 되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언덕의 과일은 슬픔이 가득해졌다. 시장에 팔려간 값비싼 평야의 과일보다 자신이 볼품없고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난 무엇일까?" 

가을이 되어 계절이 바뀌면 무엇인가 달라질 것이라 믿었던 작은 희망은 오히려 더 큰 마음의 상처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슬픔이 계속되고 가을은 깊어가면서 먹이를 찾아 떠돌던 새들은 점점 자신을 괴롭혔다. 더이상 성장할 수 없는데 새들이 괴롭히고 쪼아먹어 상처는 깊어지고 더 이상 회복되지도 않았다. 속살이 흉물스럽게 들어난 자신의 모습에 체념하며 슬픔과 아픔을 참아내며 깊어가는 겨울의 문턱에 결국 모든 속살은 썩어 사라지다 마지막 새에 의해 남은 씨앗 하나는 어느 먼 땅에 스며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땅으로 스며 들어간 씨앗하나는 작은 과일 나무의 묘목으로 자라간다.



기 좋은 과일만 찾으려는 사람들의 욕심은 우리의 교육이 우리의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과 비슷할 것 같다. 상처를 받아도 극복하는 방법보다는 상처받지 않도록 공존하기 보다는 홀로 편할 수 있는 경쟁의 논리가 강조되고, 어느날 어쩔 수 없이 받은 상처에 원하는 모습의 과일이 아니면 쉽게 실망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겉모습에 집중하고 자신의 욕심을 투영하여 원하는 모습대로 자라도록 지나친 집착을 보이면 결국 그 많은 과일들은 '왜 자라야 하는지', '나는 무엇인지' 에 대한 삶의 근본적인 질문조차 하지 않고 성장하게 되어버릴 것이다.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은 그저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를 받고 아픔을 통해 '나'라는 자아에 대한 철학적인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준다. 그리고 세상은 항상 보호받을 수 있는 온실의 화초처럼 자랄 수 없음도, 상처를 주는 바람이 때로는 나를 시원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는 나와 함께 있는 존재들에 대한 이해를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과일의 존재 이유는 보기좋은 과일을 만드는 것인가? 비록 상처받고 심지어 자신의 모든 속살마저도 들짐승, 날짐승에게 나누어주어도 과일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과육이 아닌,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좋은 씨앗을 얻는 것이 과일의 존재이유이다.

는 아픔의 경험이 많았다. 그 어떤 순간도 내가 원한 적 없었지만 큰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도 받아보았고 심장도 아파보며 죽음의 문턱 앞에서 돌아오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도 느껴보았다. 아마 그런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더 아플 것 같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 아픔의 슬픔이 찾아올 때 몸이 느껴야 하는 아픔만큼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들 때문에 마음의 슬픔도 깊어지는 경험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세상의 시선에 불안해지고 걱정이 쌓여갈 때 누군가 이야기해준다.

"열매는 씨앗을 만들기 위해 있는 것이야... 비록 상처받고 좀 찌그러져도 열매를 맺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이겨낸다면 어느새 새 생명을 만들어 내는 씨앗이 되어 있을거야. 그리고 모든 열매는 각자 그 익는 속도가 다르니깐 걱정마. 비록 그 열매가 겉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걱정하지마. 그리고 너의 상처받은 그 모습은 오히려 삶의 양식으로 나눌 수 있는 희생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잊지말아라. 그렇게 아낌없이 나눌 수 있기에 누군가에게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음을 잊지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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